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48화 (48/317)

# 48

미궁 돌입

최초의 3계층 관리자.

특별한 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의 성취감은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카르텔은 등장하지 않았고 그런 카르텔들의 뿌리가 될 지역이 계속 내 손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래층의 상황이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미궁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20층에 도착하고 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즉, 현재로써는 확인이 불가능.

우리가 13층 고정 안전 구역을 손에 넣은 이후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11층 고정 안전 구역을 관리하고 있었다.

"뭐 하세요?"

주하연이었다.

"11층 고정 안전 구역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걸로 보면 뭐가 보여요?"

"아뇨. 상황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입장과 퇴장은 알 수 있거든요. 게다가 수련자 이름까지 볼 수 있습니다."

몰랐던 기능이다. 이것저것 만지다 보니까 방문자들의 이름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이요?"

"네."

관리 창을 조작하자 7명의 이름이 주르륵 떠오른다.

진상수, 황우진, 박찬영, 나상민, 이윤형, 한바다, 조연은.

이 중 익숙한 이름이 존재했다.

'진상수.'

과거 2개 층을 지배했던 카르텔의 보스다.

18층과 20층을 지배했던가?

특히 20층은 미궁의 출구가 고정되어 있어서 제법 오랜 시간 미궁에서 왕처럼 군림했던 놈이다.

하층으로 향하는 포탈을 막아버리고 다음 층으로 가는 포탈도 막아버린다. 그럼으로써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던 최악의 수련자 중 하나.

이권을 탐낸 다른 놈들의 배신으로 카르텔이 분해되어 죽기 전까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놈이다.

내심 아쉽기는 했다.

더러운 놈들이 먼저 올라오다니….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기는 했다.

'진상수는… 무력이 강한 편이 아니었는데?'

아주 쓰레기는 아니었지만, 그리 강한 놈도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다? 뭔가 이상했다.

"관리자 기능이 대단하긴 하네요… 이름까지 보인다니… 메시지 같은 것을 보낼 수는 없죠?"

"그런 기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아쉽네요…."

전력의 보강. 주하연 또한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나는 주하연을 향해 말했다.

"그래도 출입 기록을 보면 제법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이틀째…."

[12층의 고정 안전 구역에 수련자가 입장하였습니다.]

"…뭐?"

나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무슨 일이세요?"

"…새 파티가 12층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나는 곧바로 이름을 확인했다.

방금 전까지 우리의 대화 소재였던 이들, 7명의 파티원이 맞았다.

"…빠르네요?"

주하연은 놀란 표정이었다.

물론 나 또한 놀랐다. 나간 지 이틀 만에 다음 층의 고정 안전 구역에 도착했다. 우연히 가까운 장소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다.

확인 결과 중상자는 없었다.

즉, 12층에서 다칠 실력은 아니라는 뜻.

더더욱 의문이 들었다.

나는 진상수 파티의 파티원 이름 중 하나의 이름에 주목했다.

'한바다.'

진상수가 차지한 카르텔, 자칭 푸른 바다파 또는 푸른 바다 카르텔. 그가 죽고 다른 놈이 계승을 했지만 저 푸른 바다라는 이름 하나 만큼은 중층을 지나 상층에 가까워지도록 이름을 유지했었다. 나중에는 제법 강력한 길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파티원 중 하나의 이름이 한 '바다'다. 뭔가 연관이 있을 듯했다.

진상수에게 의미 있는 놈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반대로 이런 소문이 떠돈 적도 있었다.

진상수는 본래 푸른 바다의 주인을 살해하고 자리를 강탈했다. 이름조차 전리품이라 카르텔 이름이 푸른 바다인 것이라고.

푸른 바다의 본거지에는 푸른 바다의 원주인이 여전히 모진 고문을 받고 있으며, 사실 20층 고정 안전 구역의 관리자는 그 사람이라는 소문이었다.

이 아는 사람만 아는 소문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상수가 저런 소문을 퍼뜨린 놈을 찾으란 명령을 내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소문내던 놈들을 찾아서 모조리 죽여버렸지 아마?

그러나 관리자 권한을 받고는 새삼 그게 헛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배신자들을 모조리 쫓아내면 그만 아닌가? 관리자 권한에는 추방 권한도 존재한다.

뭐 진상수가 20층 고정 안전 구역을 조금 의문이 남는 방식으로 통치했고, 그 때문에 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주하연의 말이 현실로 끄집어냈다.

"그런데 아까 레벨이 올랐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네. 맞습니다. 올랐습니다"

"그럼 이번 층은 경험치를 제대로 주는가 보네요. 한동안 여기 층에서 머물 생각이신가요?"

주하연은 조금 기대된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아뇨. 바로 다음 층으로 갈 겁니다."

"어째서죠?"

주하연은 조금 당황한 듯했다.

아무래도 올라오는 파티를 만나고 싶은 듯했다.

필요하다면 인원을 보충해도 좋고, 합류를 해도 나쁘지는 않다. 그녀는 지금 남은주를 걱정하고 있었다.

"저는 남은주 씨와 조금 더 함께했으면 합니다."

"…그러니 인원 보충을…."

"파티 합류는 조금 힘듭니다. 만약 타 파티와 만난다고 해도, 그쪽 파티에서 인원 한둘 빼 오기는 더 어렵구요. 저들도 완성된 파티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습니까?"

내 말에 주하연은 침묵했다.

"그리고… 확실히 남은주 씨는 저희 중에서 재능이 가장 떨어지기는 합니다."

"…그래요. 사실이기는 하죠. 하지만…."

"저도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노력하고 계신다는 거요."

나는 말을 하면서도 다른 일행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나연 자매와 남은주는 서로 즐거운 듯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주하연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래도 실제 성장이 조금 느리죠. 그런데 최근, 괜찮게 성장하셨더군요."

"…맞아요. 그러니까 이대로 꾸준히 성장하면…."

"그 성장 당시, 기억나십니까?"

"…네?"

"남은주 씨는 꾸준히 제 전투를 지켜보고, 제게 질문하고, 요령을 흡수했습니다. 그리고는 12층 전투에서 진가를 발휘했죠. 그 당시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듯한 모습은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맞아요."

"그래서입니다. 이번 층은 나쁘지 않습니다. 레벨도 오르고 능력치도 오르는, 지금 일행에게 나쁘지 않은 장소입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 둔다면 기세를 탄 남은주 씨의 성장이 이대로 멈출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필사적이지 못하게 될 거다. 남은주는 지금 수준에 적당하긴 하지만, 실력이라는 것이 본래 자신의 한계 그 아슬아슬한 곳에서 줄타기를 할 때 급속도로 성장하는 법이다.

물론 무너져 버리면 죽을 가능성이 높기에 실제로는 권장되지 않는다. 무슨 검술 연습도 아니고 이건 실전이니까.

하지만 나라는 보험이 존재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힐도 있고, 주하연도 있다. 작정하고 날뛰면 미궁에서 잠시라도 날 막을 존재는 손에 꼽힐 정도.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삐끗하면 받쳐줄 존재가 준비되어 있으며,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 주고, 피드백을 줄 조언자가 존재한다.

몽땅 나긴 하지만, 확실히 남은주가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다.

"…다행이에요. 신후 씨도 은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고 계셨군요."

주하연은 내가 진지하게 남은주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 조금 안심한 표정이었다. 나름 정이 들었다는 거겠지.

근데 설마 도태되면 진짜 버릴 거라고 생각한 건가?

왜 내 이미지가 이 모양이지? 쓰레기 짓은 많이 자제 한 것 같은데?

"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설마 제가 도태되면 이 미궁 한복판에 버리고 갈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도태되면 챙겨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끽해야 짐꾼 정도가 되겠죠. 보호도 힘든."

…솔직히 한동안 그런 쪽으로 굴릴 계획이었기에 내심 찔렸다. 남은주에게 역할이 달라질 수 있지만 버리지는 않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 얘기를 들은 건가? 남은주를 나중에 관리직으로 빼줄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동안 놀고먹게 할 생각은 없었다. 나름 관리직 가기 전에 밑바닥 짐꾼이나 경험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최근 조금 성장세가 나아져 뒤로 미룬 계획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제대로 걱정하고 생각해 주셨네요. 제가 다 고마울 정도예요. 은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제가 왜 그럴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렇게 강하시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빨리 더 위층을 향해 움직이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법 냉정하신 데다, 최근 저희를 밀어낸 적도 있으시잖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움찔.

괜히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는데… 아니, 그거 긴장감 조성이었다고 했을 텐데…. 그때 납득 한 줄 알았는데, 납득 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말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넘어가 준 것 같았다. 즉, 애초에 안 믿었다는 뜻이다.

"지금에서야 묻는 건데… 저희를 왜 밀어내려고 하신 거예요? 긴장감 조성이라는 이유는 아닌 거 알아요. 역시 쓸모가 없어서? 확실히 서윤이를 제외하면, 아니 솔직히 서윤이도 신후 씨에 비하면…."

"아닙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거는 아닙니다."

이들은, 나연 자매를 제외하고도 주하연은 내가 조금 투자를 한 만큼 쓸만한 사제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저 남은주마저 제법 믿을 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탑에서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약해도 그 존재 하나하나가 소중한 법이다.

그러니 약하다고 해도 버릴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남은주는 좀 고민하기는 했는데, 최근에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럼 왜 그러셨어요? 솔직히 무서웠어요. 저희 파티는 사실상 신후 씨를 중심으로 편성된 파티인데, 신후 씨가 떠나면 제대로 파티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어요. 알아요? 신후 씨가 저희를 밀어냈을 때, 파티 분위기가 어땠는… 미안해요. 추궁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무서웠다는 말은 사실인 듯했다. 최대한 내 기분을 거스르지 않았던 일행, 특히 주하연이 이런 말을 내게 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중간에 자신이 과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곧바로 사과했지만,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미안하군요. 솔직히 밀어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조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체 왜요?"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는다. 여기서 뭐라고 해야 하지? 제가 회귀했는데 1회차 때 호구짓을 너무 많이 했거든요. 여기서 더 친해지면 또 호구 될까 봐 그랬어요. 정에 휘둘리면 1회차처럼 망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니면 너무 친해지면 쉽게 버리기가 힘들 것 같아서요 나, 정에 이끌리면 지구를 구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전자는 너무 쓰레기 같았고 후자는 중 2병 걸린 망상증 병신 같았다.

이럴 때는 한국 쪽 수련자들이 지구가 위험한 사태라는 것을 대부분 모른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솔직히 내가 새벽 뉴스를 챙겨 봐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고백하면 일행이 믿어 주기는 할 거다. 하지만 되려 불안감을 조성하고 겁을 먹을 수도 있었다. 현재 이런 놀이 적정 수준인데, 신화 속에나 나오는 거인을 잡아야 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올지 모르기도 했고.

제법 도박 수에 가까운 짓이라 꺼려졌다.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주하연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대답을 듣겠다는 듯이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점점 따가워지는 시선을 느끼며 결국 고민 끝에 겨우 생각난 핑계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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