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미궁 돌입
[11층의 고정 안전 구역에 수련자가 입장하였습니다.]
멈칫.
나타난 메시지 창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다른 수련자들이 미궁에 입장했다. 심지어는 고정 안전 구역까지 도착했다.
우연히 도착 한건지, 아니면 노리고 1-1구역을 향한 것인지는 모른다. 아무래도 후자에 가깝기는 할 거다.
미궁 안에서 마주치긴 할 거라 생각한다. 몬스터의 수준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으레 그렇듯 레벨업 속도는 늦어진다. 작정하고 레벨업만 노릴 수도 없다. 능력치도 올려야 하니까. 물론 나서윤과 둘이서만 한다면 미궁 안에서는 따라잡히지 않겠지만, 다른 일행도 챙겨야 하는 입장상 그건 불가능. 결국 만나긴 한다는 소리다.
선두였던 내가 갑작스레 멈춰 다음 층으로의 진입을 머뭇거리자 주하연은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왜 그러시죠, 신후 씨?"
"…아뇨 메시지가 와서요."
"네? 무슨…?"
"11층 고정 안전 구역에 새로운 수련자가 입장하였다는군요."
확인 결과 7명이었다. 우선은 한 파티가 올라온 듯했다.
에파토스가 말했던 던전 클리어에 5일 정도 걸릴 거라던 그 파티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9층 던전을 5일 정도에 클리어하는 것은 수준이 높은 거다.
내가 잘 키워준 엘리트 파티, 여성 진 4명이서 3일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5일 정도면 상당히 준수하다.
"드디어 다른 사람을 보는 걸까요?"
남은주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은 만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어떤 수준인지는 모릅니다. 뭐 8층에서 만났던 놈들 보다야 쓸만할 거 같지만… 그래도 저희는 이제 13층으로 향하니까요."
사냥 자체는 14층에서 할 거다. 어차피 수준이 같은 이들이 많이 나올 뿐이라면 몰이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 사냥은 역시 몰이 사냥이다. 그리고….
나는 남은주를 바라보았다.
[상태 창]
-이름 : 남은주
-나이 : 22
-직업 : 전사(일반)
-LV. 12
-신체 능력
근력 : 13 -〉 16 민첩 : 11 -〉 14 체력 : 15 -〉 18 마력 : 8 -〉 10
갑작스럽게 늘어난 능력치.
탑은 분명 스스로 노력하는 이에게 보답을 준다. 레벨이 2 올라 잠재력이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기본 잠재력이 '하'에 불과한 남은주가 생각보다 괜찮은 성장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처절하고 필사적이었다는 뜻이다.
일행에게, 내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엉망인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버틴 대가일 터. 솔직히 옛날 생각이 나 안타깝기는 했다.
아마 13층을 거쳐 14층에서도 12층처럼 성공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지금 저 성장세를 능가하는, 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더 오랫동안, 후방 지원이 아닌, 최전선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계는 빨리 오겠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저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 봐야 0이 아님을 확인하는, 말 그대로 0이 아니라는 사실에 의의를 두는 수준이기는 하다만….
"일단 올라가겠습니다. 만날 때가 되면 만나게 되겠죠."
나는 말을 하고는 곧바로 13층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
13층에 도착하자 변치 않는 풍경이 우리를 반겼다.
"…여긴 항상 똑같단 말야."
배경은 여전히 미궁 안이니까.
나연은 그런 말을 하면서도 주변의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주변에 적은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조금 표정이 풀렸다.
"12층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1-1구역을 향해 이동합니다."
주변이 안전함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레벨업과 능력치 상승, 탑을 오를 것.
나는 일행을 선도했다.
다음 공동에서 만난 적은 붉은 빛의 털을 가진 놀이었다. 예상대로였다.
나는 그 사실을 팀원에게 전달했고, 팀원은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붉은… 놀이요?"
몬스터의 변화에 남은주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네. 놀의 털이 붉더군요. 기색이 이전보다 강해 보였어요."
이전보다 강하다. 그 말에 일행은 긴장된 기색을 비췄다.
"…얼마나…."
"뭐 현재 수준이면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싸워 보긴 해야 하겠지만요."
내가 느낌으로 전해지는 사실을 전달했다.
붉은 놀 15마리.
시작부터 수가 조금 된다.
"그럼 첫 전투고 하니 11층에서와 마찬가지로 저 혼자 전위를 맡습니다."
"네."
"몇 마리 일부로 흘릴 테니까, 싸워 보도록 해."
"네 오빠."
우리는 곧바로 공동으로 진입했다.
붉은 놀들은 이전의 갈색 놀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뭉쳐…?"
의아하다는 기색의 주하연.
붉은 놀은 갈색 놀보다 육체적인 능력도 조금 높았지만, 작은 전술까지 사용했다.
그래 봐야 두셋이 뭉쳐 사람을 하나씩 견제하는 느낌의, 어렵지 않은 전술이었으나 마구잡이로 달려들던 갈색 놀과는 명백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긴장 놓지 마세요! 서윤아, 조금 앞으로 나와!"
나서윤은 충분히 대응 가능한 애들이다.
너무 뭉쳐서 한 번에 우르르 가지 않도록 나서윤과 후열을 거리를 조절했다.
"컹컹컹!"
나서윤이 조금 무리에서 떨어지자 곧바로 짖어대는 소리와 함께 붉은 놀들이 흩어져 달려오기 시작했다.
'다섯.'
나만 유일하게 다섯 마리의 붉은 놀과 상대하게 되었다.
어그로 관리고 뭐고 자기들이 그렇게 덤벼들었다.
나서윤에게 셋, 남은주에게 7마리, 정확히는 각기 셋, 넷으로 나뉘어 남은주와 후열을 각각 노리는 듯했다.
나는 즉시 남은 무기 중 하나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남은주 쪽으로 향하는 붉은 놀을 향해 집어 던졌다.
콰직!
"끼잉!"
제대로 명중한 무기에 한 마리의 붉은 놀이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남은 두 마리가 잠시 멈칫했고, 그사이 남은주는 그 둘과 후열을 향해 달려드는 네 마리 사이를 틀어막았다.
나는 내게 달려드는 붉은 놀 하나를 검으로 베어버렸다.
"끼엥!"
복부를 그어버리자 붉은 피와 내장이 흩뿌려진다.
익숙한 광경이다. 나는 몸에 뿌려지는 피를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 몬스터의 시체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질 흔적이다.
한숨에 하나를 베자 주춤한 붉은 놀들. 이쪽의 전력이 상상 이상임을 눈치챈 듯했다.
나서윤 또한 간단히 하나의 적을 제압하고 유유히 붉은 놀의 포위망을 탈출하고 있었다.
나는 슬쩍 남은주의 전투를 살펴보았다.
내 덕분에 7에서 6마리의 놀을 상대하게 된 남은주. 후열을 향해 달려들던 놈들마저 가로막아 6마리에 의해 끝내 포위까지 당했다.
"은주야! 대지의 방패!"
텅!
달려들던 붉은 놀을 방패로 밀어버린 남은주는 곧바로 자신의 몸을 감싸는 대지의 방패를 느꼈다.
"흐아아압!"
그러자 방어를 일부 포기하고는 한 마리의 놀에게 그대로 달려든다. 후열과 가장 멀리 있는 놈!
달려드는 놈의 공격을 빗겨 맞으며 검으로 허벅지를 벤 후 반 바퀴 회전하며 자신의 방패로 벤 자리를 강하게 내리친다.
굳건한 대지의 방패 덕분에 어깨 쪽에 나무 방망이를 빗겨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데미지가 없는 모습.
연속으로 얻어맞은 놀이 무너질 때, 자연스레 몸을 반 바퀴 몸을 돌려 후열을 시야에 넣은 남은주가 즉시 외쳤다.
"강력한 도발!"
"크허어엉!"
개과인 주제에 거의 사자의 포효와도 같은 소리를 지르며 한 마리의 붉은 놀이 남은주에게 달려든다.
가장 후열에 가까웠던 놈. 기색이 이상하자마자 남은주는 망설이지 않고 강력한 도발을 쓴 것이다.
광견병 걸린 개새끼마냥 달려드는 놀을 침착하게 방패로 쳐낸다.
힘을 줘 미간과 관자놀이 같은 뇌에 충격을 주기 쉬운 쪽을 노리는 모습.
아무리 놀이 미쳐 날뛴다고 하더라도 뇌에 충격이 오면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는 점을 노린다.
동시에 달려드는 다른 놈들의 방망이질과 물어 대려는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며 침착하게 방어, 공격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연의 지원.
"실프! 윈드 커터!"
카사의 파이어 볼, 정확히는 불덩이는 주변에도 피해를 주기에 나연은 최근 아군 주변을 지원할 때 실프의 윈드 커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데미지는 적어도 주변에 피해가 적고, 기동력만 빼앗아도 최근 물이 오른 남은주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주기 때문이다.
또다시 하나의 다리가 다치고 나연의 공격에 어그로가 튀는 순간 남은주는 다시 외쳤다.
"강력한 도발!"
그리고는 다른 한 놈을 향해 인벤토리에서 꺼낸 옛 무기를 집어 던지고는 후열에 가까운 놈들에게 접근해 어그로를 다시 자신에게 끌어들였다.
자연스러운 어그로 관리.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를 지켜보는 와중에도 나는 달려드는 놈들을 하나씩 베어냈다.
나는 현재 방패는 없기에 회피탱과 같은 모습으로 놀을 상대한다.
신체 능력과 경험 덕분에 어그로 관리 능력이 까다로운 회피탱임에도 놓치는 일은 없었다.
내가 한눈을 팔며 천천히 상대하는 사이에 나서윤은 자신에게 달려든 네 마리를 모조리 정리한 상태였다.
'이쪽의 성장도 만만치가 않네.'
내가 아무리 느긋하게 싸웠다고는 하지만 나보다 빨리 처리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남은주를 향해 달려간다.
"은주 언니!"
남은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기동력이 무너진 놀이 어느새 5마리가 되어 있었고 남은 한 마리를 처리하는 중이었다.
나 또한 마지막 놀을 처리하고는 후열을 바라보았다.
내가 가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나서윤이 도착해 남은주가 상대하던 놀의 등판을 갈라버렸고 나머지는 잔당 처리에 가까웠다.
전투를 마무리하자 나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훌륭하네. 몬스터가 더 강해졌는데도 깔끔했어."
내 칭찬에 가장 반색한 것은 나서윤이 아닌 남은주였다.
"감, 감사합니다!"
"아뇨, 진짜로 잘하셨습니다. 이전 층에서도 그렇고, 키퍼로써 소양이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이번에도 전혀 흘리지 않았고요."
"나연 언니랑 하연 언니가 열심히 지원을 해준 덕분이에요. 오히려 지원이 전위가 아니라…."
"적절한 선택입니다. 전위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고, 설령 좀 위험하더라도 전위와 후열 중에 후열을 우선하라고 한 것은 저니까요."
내 말에 나연과 주하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남은주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나서윤도 그간 남은주의 고생을 아는지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내 칭찬이 축하할 만한 일인가?'
솔직히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하지만 본인들의 기분이 좋아 보이니 더는 말하지 않았다.
시체가 사라지고 떨어지는 음식과 붉은 놀의 가죽을 조금 챙기며 통로 번호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일행을 향해 말했다.
"이번에도 1-1 구역을 우선적으로 얻습니다."
"그래야죠."
여성 진은 격한 동의를 표했다.
11층에서의 스트레스를 다시 받고 싶지 않은 듯했다.
일행의 동의 하에 나는 1-1구역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고블린들 또한 13층부터는 상위종인 홉 고블린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블린 로드를 부리는 홉 고블린은 고블린 로드보다 조금 약한 정도지만, 상위종이기 때문인지 그들을 지휘했다.
고블린 전사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고블린 로드가 전위를 자처하고 후열에는 저격병과 주술사들이 가득하다. 고블린 무리는 수가 30을 넘긴 상태. 이번에는 나와 나서윤이 안으로 파고들어 원거리 공격을 하는 놈들을 쓸어버리고 고블린 로드들의 후열 공격과 저격병들의 후열 저격은 남은주가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렇게 하루를 지나고 이틀째가 되었을 때는 오랜만에 레벨업을 할 수 있었고, 13층의 고정 안전 구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3층의 고정 안전 구역을 발견하셨습니다.]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건을 설정하고 관리자로 등록했다.
최초의 3계층 관리자.
나는 미래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