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46화 (46/317)

# 46

미궁 돌입

나는 일행을 향해 내가 방금 발견한 장소에 대해 말했다.

주변을 경계하며 쉽지 않은 휴식을 취하던 일행은 내 말에 반색하는 기색이었다.

이제껏 11층에 존재하는 수련자가 우리들뿐이라는 사실, 즉 보이는 모든 길 반대편에는 몬스터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고, 습격을 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 왔는데, 내가 안전한 장소를 발견했다고 하니 반길 만 하다.

"어디, 어디인가요, 파티장 님?"

신체 능력이 가장 낮아 제일 힘든 남은주가 가장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전위가 나랑 나서윤이라 육체적으로는 그나마 가장 덜 힘든 게 남은주다. 하지만 일행 중 가장 능력이 부족한데 포지션은 후열을 지키는 키퍼. 그것도 사실상 혼자서 둘을 맡아 키퍼를 해야 하다 보니, 그녀는 정신적으로 몰려있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극심해 휴식이 가장 절실해 보였다.

"바로 앞. 이 통로를 지나면 나옵니다."

나는 일행을 이끌고 고정 안전 구역으로 향했다.

일행은 곧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는지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 관리자가… 오빠네요?"

"아, 응.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해서."

"근데 뭔가 제약이 이것저것…."

"아. 기다려봐. 풀어줄게."

나는 곧바로 관리 창을 열어 일행들을 예외로 등록시켰다.

곧바로 반영이 되었는지 일행은 한결 안정된 표정을 지었다.

"와, 기껏 찾은 데서 잠자고 밥 먹고 가야 하는 줄 알았네… 잠만 잘 잘 수 있어도 감지덕지긴 하지만. 근데 왜 이런 조건을 건 거야?"

나연은 안심하면서도 의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거 악용될 소지가 많더라고."

"관리자 권한이 생각 이상으로 강한가 보군요."

"즉시 퇴출도 가능할 정도입니다."

내 말에 주하연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거 그냥 주인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네요. 확실히 악용될 소지가 넘치네요."

실제로 악용된다.

11층부터 20층까지. 이곳은 각 층의 카르텔 본거지가 되니까. 모두 같은 집단이 아니긴 했지만. 게다가 수련자들이 대부분 통과해버려 카르텔도 서서히 위층으로 향하고 복수를 당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인과응보랄까.

그래도 결국 대부분은 쓰레기가 쓰레기를 청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내 걱정에 일행은 동감하는 듯했다.

"그래도 우리가 위층으로 향하면 초기화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조건 해제가 '죽음'이라고만 쓰여 있어요."

"…들키면 좋지 않겠네요. 빨리 다음 층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

주하연은 아무리 우리가 강해도 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면 나를 죽여서 권리를 빼앗으려고 할 테니까. 그러니 다음 층으로 도망치는 것을 권했다. 어디까지나 나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뭐, 저도 오래 머물 생각은 없으니까요. 앞으로도 꾸준히 다음 층으로 향할 통로를 찾아야겠죠."

나 또한 그 생각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도망친다기보다는 맞는 사냥터를 찾는 것에 가까웠지만.

미궁에서 얻어야 할 것도 있고. 그걸 위해서는 빠르게 위로 향하는 것이 맞았다.

그래도 언제 위로 향할지는 나도 모른다. 애초에 다음 층으로 향하는 통로는 무작위로 생성되니까.

대부분 공동을 청소할 시 무작위로 나타난다. 그러니 많은 공동을 빠르게 클리어하면 확률이 높아지긴 한다. 그래도 2일 동안 청소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리 높은 확률은 아니다.

오랜만에 일행은 하루를 푹 쉴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일행을 일부러 밀어내지 않았기 때문일까. 일행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나는 새삼 에파토스의 말이 정말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도 내 앞에서는 괜찮은 분위기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비하면 확실히 어색한 점들이 있었다.

나서윤은 웃었지만 저리 편한 표정이 아니었고, 나연은 억지로 말을 붙이려는 기색이 강했었다. 남은주는 이전보다 확실히 안정된 표정이었고 가끔씩은 좋은 분위기를 틈타 내게 어그로 관리와 같은 전투에 관한 기술을 물어보기도 할 정도였다. 주하연은 솔직히 겉으로는 달라진 점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이전보다 분위기가, 표정이 조금 더 부드러운 것 같았다.

오랜만에 건조식품 대신 조금 조리된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충 때울 수밖에 없는데, 이 장소는 시스템이 보장한 안전 구역이다. 덕분에 조금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의외로 남은주가 요리를 나쁘지 않게 하는 편이었다. 나연과 나서윤은 요리를 잘하지 못했고, 주하연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익숙치 않은 듯했다.

화기애애했던 식사 시간이 지나자 일행은 밀린 수면을 취했다.

나 또한 별말 하지 않고 오랜만에 푹 쉴 수 있었다. 에파토스의 말로는 다음 선두 일행이 11층에 오려면 아직 3일은 남았다. 그 전에 다음 층으로 향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루 푹 휴식을 취한 이후 우리는 다시금 사냥을 나섰다.

"이번에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곧바로 통로 위의 숫자에 관해 일행에게 말했다.

"발견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습니다. 혹시 몰라서 1-1로 오긴 했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솔직히 저 통로의 숫자는 별거 없었다. 구역-방 번호 정도의 느낌이랄까? 302호실 = 3층 01호실 같은 느낌으로, 길 잃지 말라고 적힌 번호에 가깝다. 물론 그 덕분에 15층에서 찾을 신전이나 이와 같은 고정 안전 구역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런 게 있었나요?"

"네. 어제 발견하긴 했는데, 다들 너무 힘들어 보여서 말해봐야 의미도 없다 싶어서 조용히 있었습니다. 저도 저게 뭔지는 몰랐으니까요. 그래도 덕분에 뺑뺑이는 안 돌았습니다. 하하."

보통 이런 사항을 밝히는 것이 좋고, 특히 정찰을 하는 역할인 암살자, 도적 계열이나 궁수 계통이 파티 장에게는 반드시 알려야 하는 사항이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인망도 있었고, 전사임에도 정찰을 하는 역할이었으며, 동시에 파티 장이다. 알릴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사항이었다. 대부분은 밝히는 것이 좋지만, 어제까지의 파티는 솔직히 그다지 컨디션이 좋지 못했고, 그래서 밝히지 않았다고 한들 내게 비난을 할 파티원은 없었다.

"끄응… 조금 창피하네요. 왜 이걸 지나다니면서 못 봤지?"

주하연은 내게 뭐라 하는 대신 되려 조금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거야 그녀가 저런 것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첫날을 제외하고는 계속 컨디션이 좋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게다가 그녀는 사제. 정찰을 할 이유가 없는 직종이다.

물론 조금이야 서운할 테지만, 자신들의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니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결과가 좋기도 했고, 아직 탑에 물이 덜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솔직히 저런 암묵적인 규칙이 생긴 것은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니까.

그 와중에 다시 안전 구역 하나를 발견해 다시금 관리자로 등록했다. 규칙은 이전과 동일. 이 안전 구역은 두 달짜리였다.

"안전 구역이 하나가 아니었네요?"

"네. 이번 것은 두 달이라는 시간제한이 있더군요."

"처음 안전 구역히 훨씬 좋긴 하네요. 운이 좋았어요."

어차피 두 달씩이나 있을 생각은 아니었기에 우리에게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니다.

다른 이들은 어지간한 상위권 파티가 아닌 이상, 두세 파티가 연합 해야 한 공동을 청소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해도 하루에 2~3개가 한계일 터. 오히려 생성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지. 그러나 우리 파티는 아니다. 하루에 10개도 넘게 가볍게 청소한다. 우리라면 아무리, 아무리 늦어도 5일이면 위로 향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이렇게 생기는 거였구나."

나연은 멍하니 눈앞에 생긴 푸른 통로를 바라보았다.

계단으로 이루어진 통로. 제법 높은 경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디 정해진 장소가 아니라 일정 갯수 이상을 클리어하면 생기는 걸까요? 아니면 방이 정해져 있나? 이 방의 번호가…."

1-22.

1-1처럼 뭔가 직관적으로 있을 것 같은 숫자는 아니다.

"모르겠네요… 그냥 랜덤인가? 설마…."

그 설마가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단 하루 만에 포탈을 탄 이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몬스터의 수준 때문에라도 충분히 사냥을 한 후 레벨과 능력치를 올리고 나서야 다음 층으로 향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그렇다고 아예 나오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으니, 꾸준히 사냥만 한다면 두어 달에 한 번은 포탈을 발견한다. 게다가 다음 층으로 향할 수준이 된다면 슬슬 이번 층의 몬스터들은 상대가 수월하다는 뜻이고, 그만큼 사냥하는 속도가 빨라지니 수준이 되고 마음만 먹으면 한 달 남짓이면 다음 층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애초에 논외인 상황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곧바로 다음 층으로 향했다.

[12층에 진입하였습니다.]

예상대로 11층의 고정 안전 구역의 관리자 권한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11층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1-1구역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이곳 또한 1-1구역에 고정 안전 구역이 존재했고, 설정은 11층과 마찬가지로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2개의 고정 안전 구역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었다. 1회차에도 2개까지 먹은 놈이 있기는 했었다. 3개는 없었지만. 다음 층까지 손에 넣으면 최초다.

11층은 12층에 비해 몬스터의 수준이 높아지지는 않았지만, 수가 증가했다.

덕분에 남은주의 스트레스 지수가 미친듯이 상승했고, 동시에 그녀 자신은 알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빠르게 베어내고 어그로를 끈다고 해도, 수가 100단위가 넘어가면 모든 어그로를 동시에 끌 수는 없었다.

슈퍼 레어 이상의 도발 스킬에는 광역 도발도 존재하긴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없는 스킬이다.

그런 상황에서 후열, 나연과 주하연에게까지 도착하는 몬스터가 하나도 없었다. 남은주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는지, 동시에 탱커로써, 키퍼로써 무척이나 정확한 판단과 행동을 했다는 증거였다. 전투 때마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더니 어그로 관리 요령을 훔친 듯했다. 가끔씩 물어보기도 했었고.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보였다.

덕분에 남은주의 기여도가 폭증했고, 그녀는 꾸준히 대지의 방패를 쓴 주하연과 비슷한 속도로 레벨업을 한 번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나를 포함해 모든 일행의 레벨이 같아져 버렸다. 경험치는 12레벨에 가장 오래 머문 내가 제일 많겠지만.

일행들의 능력치도 조금씩 올랐고, 무엇보다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있었다.

어느덧 12층에 온 지도 3일이 지났을 때, 개인적으로는 11층보다 조금 느려진 감이 있어서 내일쯤 보지 않을까 싶었던 다음 층으로 향하는 통로가 등장했다.

나는 진짜 이번 통로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다음 층은 몬스터가 변한다. 고블린이 홉 고블린으로, 갈색 놀은 붉은 놀로. 제대로 경험치를 주는 이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최근 내 능력치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기는 했다. 육체의 잠재력만큼은 영약 덕분에 상승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레벨의 보조가 없으면 무척이나 느린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반가울 수밖에.

그러나 동시에 놀라운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11층의 고정 안전 구역에 수련자가 입장하였습니다.]

우리를 제외한 선두 그룹.

그들이 마침내 미궁에 발을 디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