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미궁 돌입
"컹! 컹컹커어어엉!"
"힉!"
"이건…."
"와…."
"세상에…."
일행은 하나같이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우리와의 무력 차이에 그대로 겁먹었던 갈색 놀이 강력한 도발에 걸리자마자 부상이고 공포고 다 무시한 채 도발을 사용한 남은주를 향해 미친 듯이 짖으며 달려들었다.
물론 몸 상태가 멀쩡하지 않아 별것 아니기는 했지만, 남은주는 그 엄청난 기세에 순간적으로 겁까지 먹고 방패로 몸을 가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일행은 하나같이 스킬의 효과에 감탄한 표정이었다.
"이건 전투 중에 함부로 사용했다간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요?"
10층에서는 함부로 시도를 하지 못했다. 인간에게 걸렸다가 잘못하면 남은주가 죽을 수 있었다.
남은주의 신체 능력은 사제인 주하연보다도 약했기에 함부로 사용해보지 못했었다.
일행은 아직 체험하지 못했지만, 남은주 정도의 도발은 내게 소용이 없었다.
지성체가 도발에 걸리려면 필요한 조건은 레벨과 마력, 정신력 정도다.
남은주는 나보다 레벨도 낮았고 마력 능력치도 부족하며, 내 정신력은 남은주 정도의 도발에 걸릴 정도로 약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다. 시야에 자주 걸리고 귀찮은 느낌이 조금 들 뿐.
딱 그 정도의 효과다.
하지만 마력을 거의 쓰지 못하는 몬스터 종류나 시전자 보다 레벨이 낮고 지능이 부족한 몬스터의 경우 도발의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남은주가 지닌 스킬은 그냥 도발도 아니고 레어 스킬인 강력한 도발이다. 조건이 완화까지 되었으니 그 효과에 순간적으로 겁을 먹을만도 했다.
놀 입장에서는 자기가 죽어서라도 남은주를 죽여야 한다는 맹목적인 감정이 머리에 박혔을 거다. 도발이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겁을 먹겠지만.
이런 경우 자기방어까지 도외시하고 시전자에게 달려든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무척 도움이 될 거 같기는 한데…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요. 안 그래도 은주는…."
주하연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와 남은주를 슬쩍슬쩍 쳐다보는 것이,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그렇죠. 그래서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던 겁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예상이 적중했네요."
도발의 효과. 레어 스킬이 얼마나 뛰어난지 일행은 체감하기 시작했다.
나연이야 레어 스킬이 교감이다 보니, 레어 스킬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모를 수 있다.
지금 소환 가능한 정령은 최하급에 불과하고, 다른 스킬과 비교도 힘들었다. 나서윤이야 아직 이도류라는 패시브 스킬 말고는 마법 하나 쓰지 못해 더더욱 체감이 힘들다. 이도류만 해도 워낙 본인의 재능이 뛰어나다 보니 슈퍼 레어긴 한데, 솔직히 재능에 눌려 대단하다는 티가 잘 나지 않는다.
다친 사람도 없어 내 스킬을 써보지도 못했지만, 주하연의 굳건한 대지의 방패와 남은주의 강력한 도발은 다르다.
액티브 스킬인데다 레어 스킬.
10층에서 방패의 힘은 충분히 체감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나서윤이 마력을 쏟아부어야 겨우 부수는 정도. 마력-주하연은 신성력-차이가 두 배는 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렇듯 능력치가 명백하게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은 레어급 스킬이 보통이 아님을 증명한다. 특히 굳건한 대지의 방패는 물리 방어력은 어지간한 레어급 방패로는 비비기도 힘들고, 마법 방어력도 그리 약하지 않아 두 정령을 사용한 나연도 뚫지 못했을 정도.
게다가 이번에 보인 도발 스킬까지. 비록 일반 스킬과 비교해 보지는 못해, 상대적으로는 확인이 힘들어도 절대적으로는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할 수 있었다 보니, 일행은 내가 해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인지 새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마 15층 전에는 다른 팀들도 만날 텐데, 8층의 병신들이 아닌 우리를 착실히 따라오는 상위권 팀부터 차례로 만나게 될 거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최선두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수준이라는 것이 현재 얼마나 대단한 건지 제대로 체감하겠지.
남은주의 도발뿐만이 아니라 10층에서는 동료에게 쓰다 보니 제대로 위력을 내지 못햇던 나연의 바람과 불의 정령을 이용한 시너지나 성장한 육체 능력, 내 힐 스킬과 주하연의 굳건한 대지의 방패도 여러모로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정화야 현재 쓸 상황이 보이지 않았기에 여전히 봉인 상태지만.
갈색 놀에게 방어막을 걸고 스킬을 난사하거나 다치면 내 회복 스킬로 회복시키며 상처의 경과를 봐 효과를 간접 체험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자신들의 힘을 한계까지 사용해 본다는 상황을 맛볼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보니, 나는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힘을 체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었다.
대부분 만족할 쯤에는 잡혀 온 놀 중 하나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고 남은 하나는 삶을 포기했는지 회복을 시켜줘도 꼼짝도 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쯤 되니 일행들은 알게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듯했다.
'이제 와서 새삼. 지금까지 실컷 즐길 대로 즐겨 놓고는….'
그녀들은 자신들의 스킬과 능력치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을 명백하게 즐기는 기색을 보였었다.
내심 쓴웃음이 나왔으나 나는 감정을 숨긴 채 놀의 목을 쳐 마무리를 하고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충분한 경험이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신후 씨가 저희에게 해 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겠네요. 저희는 명백하게 지금 층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을 지닌 것 같아요."
사실이다.
"별말씀을. 동료인걸요."
나는 동료라는 말을 조금 강조했다. 이런 사소한 말 하나하나가 일행을 감싸는 족쇄가 될 테니.
"그럼 일단 빠르게 정리하면서 다음 층으로 향하죠. 솔직히 경험치도 별로 되지 않고, 이번 층에서 얻을 것은 별로 없어 보이네요."
"네. 알겠어요."
주하연은 일행을 대표해 내 말에 대답했다.
솔직히 말은 저래도 나는 고정 안전 구역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쪽 방향으로 일행을 계속 이끌었다.
하루 가까이 전투와 휴식, 이동을 반복했다.
식량이야 계속된 사냥으로 넉넉하게 챙길 수 있었다.
나중에는 맛없는 것은 조금씩 버릴 지경. 맛이야 거기서 거기긴 한데, 그래도 취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나름 건조식품이라도 과일, 고기의 종류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휴식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11층에서 우리의 수준이 높다고는 해도, 자는 틈에 고블린이나 놀들이 대량으로 습격하지 않을 보장은 없으니, 쉽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다수의 적에게 기습을 당했다간 나, 이제는 나서윤 까지는 어떻게든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머지는 안 된다. 아무리 청소를 끝냈다고는 해도, 한 공동에 뚫린 길은 최소 2개 이상, 평균적으로 3~4개는 된다. 언제, 어느 규모의 적들이 몰려올지 모른다.
무방비 상태에서 위치를 특정당해 모든 통로에서 한꺼번에 몬스터가 쏟아진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럴 경우 역으로 11층에 존재하는 수련자가 우리뿐이라는 것이 독이 될 수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도망친다고 해도, 한 번 쫓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쉽게 방심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신체 능력치가 높아져 일행은 적은 휴식으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몸이 되었으나, 그래도 온전한 휴식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우리는 아직까지 고정 안전 구역은 고사하고 일반적인 안전 구역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명백히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거의 헤집듯이 공동을 이동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동하는 과정 중에 하나라도 있을 법했는데, 나로서는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5일 안에 12층으로 올라가고 싶었으니까. 다른 수련자들과 만나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고 싶었다.
"이번엔 고블린이네요?"
그냥 고블린은 아니다. 전사 고블린은 기본이고 궁수와 저격병이 함께 있었고, 무리에 고블린 로드가 꼭 하나씩은 섞여 있었다.
수도 보통 한 공동에 놀이 열에서 스무 마리 정도 나오는 것에 비해 고블린은 거의 마흔 가까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제는 일행에게 어렵지 않은 상대다.
"놀, 고블린, 놀, 고블린…. 으휴."
나연은 이제 질린듯한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벌써 2일째 거의 잠을 자지 못했으니까.
버틸 수야 있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여성 진은 하나같이 예민한 상태였다.
그나마 나서윤이 덜한 상태. 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신체 수준 자체가 가장 높은 것이 도움이 된 듯했다.
물론 이들이 예민하다고 내게 짜증을 내거나 하지는 않지만.
일행은 나를 제외하고는 레벨을 하나씩 올린 상태였다.
튜토리얼이 끝났으니 이제는 공헌도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을 터다. 물론 이게 적용된다고 해서 엄청 큰 차이가 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태업을 하지 않는 이상에야. 그렇지 않았다면 키퍼를 하는 인원의 경우에는 경험치를 거의 못 먹는 상황이 되고 만다. 탑의 시스템이 그리 허술하지는 않았다.
이제 나서윤과 나연도 레벨 올리기가 쉽지 않을 거다. 갈색 놀은 아주 조금, 그나마 한 공동에 하나 정도 존재하는 고블린 로드 정도나 경험치는 주는 상태니까.
갈색 놀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지가 멀지 않았다.
'1-2'
다음 공동이다.
다음 공동이 내가 목표했던 장소였다.
이번 고블린은 숫자가 정말 많은 편이었다. 거의 백에 가까운 숫자. 하지만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고블린 로드를 죽일 테니, 서윤이는 주의만 끌고 키퍼 역에 집중해. 나연이는 주술사 견제 잊지 말고."
"네, 오빠."
"조심…후. 아뇨, 다녀오세요."
습관적으로 조심하라는 말을 내뱉던 주하연은 반복된 전투에 말하기도 지친 듯했다.
벌써 몇 번을 싸웠는데, 내가 저기서 다칠 일이 없다는 것은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규모의 전투에서 우리가 위험할 일은 없었다. 무방비 상태도 아니고, 규모가 엄청난 것도 아니다.
정 위험하면 자신의 대지의 방패도 있었고. 11층 수준에서 그녀의 방패를 깨는 놈은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 먼저 갑니다."
나는 곧바로 대지를 박차며 고블린 로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내가 달려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피의 길이 만들어졌고, 나는 단숨에 고블린 로드를 베어버렸다.
당황하는 고블린들. 진형이 무너진 이상 잔당 소탕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고블린 로드를 베어버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선 나서윤이 남은 놈들을 베어내기 시작했고, 주하연은 그런 나서윤에게 대지의 방패를 사용해 더 날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전투가 끝나자 피로에 지친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한 뒤 나는 조금 둘러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1-1 공동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는 메시지.
[안전 구역을 발견하셨습니다.]
[안전 구역은 몬스터가 침입할 수 없는, 수련자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입니다.]
[고정 안전 구역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최초로 안전 구역을 발견하셨습니다. 현재 관리자가 없습니다. 관리자로 등록하시겠습니까? Y/N]
나는 망설이지 않고 Y버튼을 눌렀다.
[관리자로 등록되었습니다.]
[11층 고정 안전 구역]
-관리자 : 유신후
아래에는 관리자 자격 박탈 요건이 보였다. '죽음'. 나는 그 항목을 무시하고 시선을 돌렸다.
곧바로 관리 목록이 떠오른다.
현재 입장 인원이나 입장 조건, 체류 시간 설정, 체류 시 규칙 설정, 추방 조건 등을 설정할 수 있는 창이 나타났다.
카르텔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말만 관리자지 이건 그냥 이 구역을 지배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죽지 않는 한, 관리자는 변경되지 않는다. 설령 내가 상층에 갔더라도.
나는 곧바로 설정을 시작했다.
입장 조건과 시간을 정하고 한 번 들어왔던 인원은 일정 시간 이후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제한한다. 중상 이상의 부상자는 체류 시간의 제한을 없애고 내부에서 파티원 이외의 사람과의 접촉을 금지했다.
규칙을 어기면 추방, 재입장에 패널티를 주고, 3회를 초과하면 영구 추방 설정을 적용했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과거와 같이 카르텔이 생겨나기는 비교적 어려울 터다.
다른 일반적인 안전 구역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니 억압을 해도 한계가 있을 터.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덩치가 되어 집단을 형성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개미굴과 같은 공동의 특성상 강자 하나둘이면 와해될 가능성이 높다.
다 같이 편먹으면 방법이 없겠지만, 정상인 집단도 뭉치면 되고 그들 중에도 강자는 충분히 존재한다.
내가 언제까지 남아 관리를 해줄 수도 없다. 다음 층의 고정 안전 구역도 먹어야 하고, 여기서 시간을 죽치다가는 우리 파티가 뒤처진다. 상층이 과거와 같이 쓰레기장이 아니길 바라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주요 전력의 강화다.
나는 설정을 마치고는 곧바로 쉬고 있는 일행을 향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