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전직
신화급?
나는 한참 웃는 에파토스를 무시한 채 곧바로 스킬을 확인했다.
[탑의 축복(신화)]
-효과 : 초기 스킬 슬롯의 개수를 2배로 늘린다.
단 한 줄짜리 효과. 하지만 그 단 한 줄의 효과가 이상했다. 미친 거 아닌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킬 창을 열었다.
[스킬 슬롯]
고유 스킬 : 이중 계약(신화).
스킬 목록
-탑의 축복(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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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초기 슬롯의 2배. 내 초기 슬롯 개수는 6이니 총 슬롯의 개수가 12개가 된 거다.
한 자리는 탑의 축복이 차지했으니 11개. 이 개수만 해도 1회차 랭커였던 대마법사와 같은 수다.
나는 한참의 시간이 걸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에파토스에게 물었다.
"…이렇게 퍼줘도 괜찮은 겁니까?"
피식.
에파토스는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 상대가 누군 줄 잊었나? 그 정도로도 부족하다네."
거인. 그것도 왕자급.
나는 순식간에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이 정도가 되지 않으면 가족을 구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수준이다. 내 목표는 탑을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구하는 것. 이거에 기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괜히 내가 보모 짓까지 해가며 나서윤을 키우고 세력을 만들 구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군요. 1회차에서 듣도 보도 못했던 스킬을 얻다 보니 잠시 흥분했었나 봅니다."
"이해한다네. 확실히 이런 지원을 받는 경우는 탑의 역사에서도 드물었지. 그러나 명심하게. 이런 지원을 받은 회귀자는 자네 혼자만이 아닐세. 그러고도 그 회귀자가 성공했던 적은 손에 꼽아."
끄덕.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나는 곧바로 무료로 주는 스킬을 선택하고는 돈을 투자해 스킬들을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무료로 주어지는 스킬은 고작 1개. 그 외 스킬을 추가 구매하려면 한 개의 스킬당 100골드라는 거금이 필요하다. 현재 나를 제외하고 수련자들 중에서 하나라도 추가로 스킬을 구할 수 있는 존재는 정말 손에 꼽을 터. 내가 3층의 시련을 훌륭하게 클리어하고 4층에서 영주에게 추가로 보상받은 돈이 고작 10골드였다.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고도 여기서 구입할 수 있는 스킬은 모두 일반 등급. 전설 등급 이상의 스킬이 아니면 스킬을 덮어써 지우지 못하니 이런 행동은 훗날 독이 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스킬 슬롯을 비우는 방법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오로지 재능 있는, 스킬 슬롯이 많고 정보를 아는 자들만이 가능한 방법. 동시에 무지막지한 돈이 드는 만큼 알면서도 감히 시도하기 힘든 방법.
스킬 합성이 존재했다.
스킬 합성은 동 등급의 스킬만이 가능하며, 스킬 합성이 성공 시 숙련도는 초기화된다. 만약 정보가 틀렸다면 돈만 날리고 스킬은 그대로. 정보가 정확했다면 스킬은 합성 된다. 물론 합성한 이상 숙련도는 초기화. 합성한 스킬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존재했다. 합성 시 레시피가 정확하다면 스킬 등급이 상승하기도 한다. 일반+일반 스킬이 레어 스킬이 되기도 한다는 뜻. 한 때 이런 이유 때문에 스킬 합성은 로또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스킬 합성의 문제는 배운 스킬들로만 가능해 정확한 정보와 많은 돈, 그리고 여유의 스킬 슬롯이 있지 않는 이상 엄두가 나지 않는 방법이라는 거다. 나는 현재 어느 정도 예외 상황이지만.
나는 곧바로 스킬 합성을 시작했다. 5가지 무기술과 방패술을 선택해 구입, 익힌 이후 '웨폰 마스터리'라는 스킬을 획득했다. 5개 이상의 슬롯이 필요해 익힌 이가 많지 않은 기술. 반대로 검만 쓰는 이들은 '검술'처럼 단일 무기술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편이 보정이 더 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 하지만 나는 무기술, 방패술, 스태프를 대신해 오브까지 써야 하는 만큼 웨폰 마스터리가 더 나았다. 범용성의 문제였다. 게다가 이런 마스터리 스킬은 경지만 높아지면 레어, 슈퍼레어를 넘어 전설까지도 가능한 성장형 스킬인 만큼 슬롯 하나가 아쉽지 않은 스킬이다. 문제는 가격. 이 스킬을 하나 얻는데 2천 골드 이상이 들어갔다는 것이 문제다. 금화 대신 보석으로 대체가 되지 않았다면 나 하나 스킬 합성도 다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곧바로 힐 계열을 합성해 레어 스킬 '대 회복'과 '육체 정화'스킬을 획득했다. 총 사용한 금액은 무려 5천 골드. 고작 스킬 셋을 합성해 일반 등급의 웨폰 마스터리와 레어 스킬 대회복, 육체 정화를 얻는 대가가 무려 5천 골드다. 레어 스킬끼리 합성했다간 1, 2만 골드로 끝나지 않는다.
본래 이 두 가지 스킬을 얻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슬롯이 늘어난 만큼 이야기가 달라졌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계획을 수정, 3개의 스킬을 추가했다. 물론, 나중에 전설 스킬로 지워버릴 거지만. 나는 늘어난 스킬 슬롯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슬롯이 부족해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전설 스킬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우선 여기 까지군."
예산이 부족하다. 더이상 내게 썼다간 일행들에게 투자할 돈이 부족했다. 이제 일행들에게 투자한다면 우리는 확실하게 선두로 중충에 진출할 수 있다. …중층은 35층을 통과한 다음에나 갈 수 있는 만큼 한참 남았지만.
이제는 더 해봐야 내게 도움이 될만한 스킬은 없었다. 3개면 충분하다.
"끝났는가?"
"네. 끝났습니다. 다른 애들은 언제쯤 옵니까?"
"네가 보모 짓을 한 덕에 그 팀의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 내일이면 클리어하겠지."
끄덕. 그간 시간이 남는다.
나는 무기를 꺼내 스킬 훈련을 시작했다.
1회차의 경험. 그 덕에 웨폰 마스터리 레벨을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 하루. 허공에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레벨 2에 도달했을 정도.
보정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자 에파토스의 말대로 내 일행이 10층에 도달했다.
***
"오빠아아아아아아!"
격한 환영.
내가 이미 도착해 있는 모습을 보고는 나서윤이 날듯이 내게 안겨왔다.
이정도 까지 격하게 반가워할 줄은 몰랐기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 어어…?"
"오빠, 오빠아아."
내 당황한 모습에 나서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품에 얼굴을 부벼댔다.
…적당히 선을 긋기로 했던 기억이 떠오른 나는 나서윤을 품에서 가볍게 떨어뜨렸다. 물론 겉으로 티가 나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내 마음의 경계선에 불과하니까.
"오빠?"
나서윤은 아쉽기도하고 의문스럽기도 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자연스러운 말. 나서윤은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오빠! 괜찮아요! 오빠는요?"
그제서야 생각났는지 나서윤은 내 몸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나도 괜찮아. 생각보다 할 만했어. 에파토스 님이 내가 클리어할 수 없는 곳을 추천하지는 않으셨거든."
"아, 저희도 쉬웠어요! 게다가 마력도 엄청 올랐구요. 엄청 세 졌으니 다음에는 오빠를 제가 지켜줄 수 있을 거예요."
피식.
그런 날이 언제쯤 올까. 내 늘어난 스킬 슬롯과 육체적 잠재력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날이 오기를 기대할게."
"네!"
나서윤의 격한 반응이 끝나자 따라온 일행들이 피곤한 가운데도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신후 씨는 다르네요. 저희는 넷이서 깼는데도 불구하고 신후 씨가 먼저 도착했어요."
"신후야, 어디 안 다쳤지?"
역시 자매. 나연은 다시금 내 몸을 살폈고, 나는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주하연의 말에 대답했다.
"저 말고는 여러분이 다입니다. 충분히 빠르셨어요."
"그래. 충분히 빠르다.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내 말에 플로어 마스터, 에파토스 또한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객관적으로 사실이기도 하고.
"서윤이가 날아다녔죠. 정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더라고요."
"보상은 괜찮았습니까?"
"네. 마력 능력치가 올랐어요. 은주는 1, 저는 3. 나연이는 4. 서윤이는…."
"저는 7이요!"
7? 어마어마하다. 최상급 잠재력은 역시 격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최대가 5라고 알고 있었는데, 간단히 뛰어넘는다.
남은주는 조금 기가 죽은 표정이었다. 아마 재능의 차이를 느꼈겠지. 보상은 기여도순이 아니었다. 아직 그런 기능은 개방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들어오는 경험치가 같은 테니, 그녀도 눈치챘을 거다. 이건 단순히 재능 때문에 갈린 거란 걸.
나는 분위기를 환기할 겸 10층에 대해 아는 내용을 풀었다. 그러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같네요."
주하연의 말. 내가 1회차 시절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게임처럼 죽어도 살아나지는 않겠지만요."
"신후 씨는 이미 직업을 얻으셨나요?"
"네. 극적인 변화까지 얻었죠."
고유 스킬 덕에 직업이 2개라는 것과 스킬 슬롯이 늘어났다고만 대강 밝혔다. 계속 숨기기 힘든 문제다. 직업이 2개라는 점은 마검사 같은 복합 직업이 있는 이상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거짓된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히든 클래스요?"
"네. 그런 게 많더군요. 제가 하나를 그걸 골랐는데, 솔직히 별로입니다."
[열 세 번째 꽃이 자신이 내린 직업은 후지지 않다고 외칩니다!]
나는 간단히 간접 메시지를 무시하며 말했다.
"게다가 1층에서 스킬 합성 레시피를 얻었습니다. 이거, 엄청 도움이 됩니다. 제가 해 봤는데, 스킬의 수준이 달라지더군요."
"스킬 합성이요?"
"스킬 여러 개를 합쳐서 더 좋은 스킬을 만드는 겁니다. 슬롯이 많이 필요하고 돈도 많이 들어서 힘들기는 한데… 해 보니 정말 대단하더군요. 근데 이게, 레시피가 일반 스킬 밖에 없어서… 솔직히 히든 클래스를 선택해 봤는데 그것보다는 일반 직업을 선택해 스킬 합성을 하는 것이 더 낫겠더군요."
"나중에는 히든 클래스가 낫지 않을까요?"
당연한 의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나를 지원해 줄 플로어 마스터, 에파토스가 존재했다.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네."
에파토스는 나를 지원하며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플로어 마스터는 수련자들을 위해 조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이 필요한데, 이 경우 내가 대부분 말하고 에파토스는 확인만 해주면 된다. 이러면 조건이 훨씬 완화된다. 그래도 대가는 필요하기에 나는 에파토스에게 정보료로 보석 일부를 건넸다.
"히든 클래스도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네. 솔직히 직업을 얻는 이유는 다 스킬 때문이지. 레시피에 나오는 스킬들은 하나같이 훌륭하다네. 내게 의견을 묻는다면 신후 군의 말을 따르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해주지."
에파토스의 지원. 애초에 그는 내 편이다. 게다가 나는 회귀자. 내 의견을 따르는 게 좋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다. 이들을 속일 생각은 없으니까.
나는 솔직히 조금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히든 클래스를 선택해도 나쁠 것은 없다. 그렇다고 가이아의 우선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이들의 마음을 꽉 잡고 있는다면 그녀들이 나를 떠날 가능성은 낮다. 그렇지만 지구의 현실을 안다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는 일. 나는 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싶었다.
애초에 히든 클래스 따위 필요 없다. 나는 회귀자. 그 이상으로 만들어줄 능력이 충분했다.
"나는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할게요."
"…나도.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으니까."
나서윤과 나연. 두 자매는 별다른 고민 없이 내 말을 따르기로 했다.
솔직히 목표의 90퍼센트는 이룬 기분이었다.
'내가 이제껏 한 짓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내심 만족스러웠다.
"…하긴 신후 씨가 우리에게 손해되는 짓을 하지는 않겠죠."
주하연도 나 자체는 믿는 듯했다. 그저 내가 얻은 정보가 확실한지가 문제였을 뿐. 에파토스의 지원을 얻은 이상 주하연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파티 장님이 하자는 대로 할게요."
남은주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이 일행중 가장 적다는 것을 알고는 더 소심해진 듯했다.
자신이 살려면 파티에, 특히 내게 빌붙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게 전보다 더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행의 직업과 스킬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직업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쉬웠다. 나연은 정령사, 나서윤은 우선 마법사로, 주하연은 스킬 때문에라도 사제를 선택하게 했으며, 남은주는 전사 말고는 선택할 직업이 없었다.
이후 계획했던대로 스킬을 합성하기 시작했다. 시간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주머니가 텅텅 비었지만.
돈을 출처를 궁금해하는 일행에게 던전에서 얻었다는 말로 대강 얼버무렸다.
나는 그녀들의 직업과 스킬을 배분한 후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