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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39화 (39/317)

# 39

전직

나는 거주 지역을 나가 중앙 홀로 돌아갔다.

내가 두 번째로 클리어한 장소.

홀의 중앙, 수정이 있던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는 바닥을 향해 대검을 힘껏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쩌저적.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 마력이 깃든 무기, 거기에 옵션으로 무게까지 올린다. 그 위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단숨에 바닥에 금이 퍼졌다.

하지만 단 한 번에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나는 이어서 두 번, 세 번 대검을 이용해 부서져라 바닥을 내리쳤다.

연속된 충격. 데미지가 바닥에 쌓이기를 여러 번. 마침내.

콰드득. 콰아아앙!

바닥이 무너져 내렸고, 숨겨져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숨겨진 공간이 드러났습니다.]

메시지가 떠오르며 내가 정확히 찾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동시에 드러나는 바닥 아랫 부분. 만약 수정을 모두 깨 놓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마법이 발동했으리라.

그리고 곧바로 떠오르는 황금과 보석의 동산.

이거다. 이걸 원했다.

이게 있어야지만 10층에서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 물론 멜리드 성에서 챙긴 금화와 보석이 남아있기에 없어도 어떻게 되긴 하겠다만, 그래도 있으면 더 좋다는 것은 변함없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고, 현질은 어디에서나 진리였다.

나는 인벤토리 가득 금화와 보석을 쓸어 담았다.

가능한 최대로 확장된 인벤토리의 상당 부분이 금화와 보석으로 채워졌다.

인벤토리에 저장된 금화는 약 1만 골드 수준에, 보석은 1천 알이 넘는다. 아무리 가치가 낮은 보석이라도 10골드 이상의 가치.

영주 성의 비밀 창고와 비교하면 여기가 골드와 보석이 더 많다. 물론 멜리드 성의 비밀 창고의 보석은 하나하나가 최고급 보석이라 전체 가치는 저쪽이 더 높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히는 나도 감정을 하지 않아서 모른다. 멜리드 성의 보석 일부는 이미 인벤토리 확장에 쓰이기도 했고.

최저로 잡아도 내 재산은 2만 골드.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1회차의 그놈은 유명한 호구로 통했다.

이 많은 재산을 그는 훗날 도박으로 탕진한다.

미친 새끼.

지금 생각해도 병신이다.

인벤토리를 금화와 보석으로 한계까지 확장하고도 돈이 최소로 잡아도 수천 골드는 남는다. 나는 그걸 멜리드 성의 비밀 창고에서 해결했지만, 그놈은 아니니까.

근데 그 많은 돈을 몽땅 도박으로 날려먹은 거다.

초반에 재능 있는 전사로 이름을 날리는 데 일조한 것은 마력과 최고 수준의 장비였다.

그렇게 잘나가는 모습을 보이다가 매일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고 중층에 이르러서는 이 많던 돈을 모조리 탕진한다. 참고로 그가 1회차에서 이 던전에 대해 처음 말했던 장소가 도박판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재능의 한계를 절감. 죽을 때까지 도박질 하다가 몸까지 팔아서 그대로 고기 방패로 인생을 마감했다고 안다. 그 팔리기 직전일 때 그와 파티가 되었었다. 그가 도박쟁이라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헤어졌지만.

아무튼 그래도 덕분에 던전 하나 챙겼다. 그것도 아주 대박으로.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괜찮은 장소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영약을 섭취했다.

꿀꺽.

영약은 혀에 닿자 물처럼 녹아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크윽."

격한 고통이 전신을 내달린다.

몸 안의 마력 회로가 뜨겁게 달구어졌고, 내부의 근육과 뼈가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재 내 몸은 현대인의 썩은 신체에 시스템의 보정이 들어간 상태.

몸을 완전히 가꾸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 영약은 그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여주고, 잠재력에 능력치마저 상승시킨다.

게다가 과거 그놈의 예를 본다면 마력 회로까지 깨끗해져 앞으로 마력 능력치의 성장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나는 그놈처럼 도태될 생각이 없으니 더욱 높은 곳으로 향할 거다.

한동안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몸이 영약을 모두 받아들이기를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때.

울컥.

입으로 뭔가가 올라왔다.

푸학!

끈적하고 더러운 검은 덩어리.

뿐만 아니다. 전신 모공에서도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니, 이건 어디서 많이 들어본 현상인데. 뭐 그건가? 벌모세수?"

그 옛날 무협지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었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탑 중층을 넘어가면 무공이 존재하긴 한다. 탑에는 수많은 판타지가 존재하니까. 그런데 탑에서 무공이라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무튼 무공이란 게 존재하는 만큼, 환골탈태나 벌모세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었다. 진짜 드물고 드문 경우라 그렇지. 그 드문 경우를 내가 겪을 줄은 몰랐다만.

나는 곧바로 영약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마력을 돌리자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웅웅웅--

벌떼가 우는 듯한 소리가 몸 안을 울린다. 확연히 달라진 마력 감응력과 튼튼해진 마력 회로, 그로 인해 한 번에 쏟아부을 수 있는 힘의 총량과 마력의 효율이 이전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마력으로 인한 감지의 효율이 증가해 범위부터가 확 달라진 게 느껴진다. 게다가 범위 내의 환경을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모된 마력을 회복하는 속도조차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서서히 마력이 회복되고 있었으니까.

낮은 능력치긴 하지만, 이전에 비해 두 배는 되는 효율을 보이는 듯했다.

이 순간 육체의 잠재력만큼은 최상급 부럽지 않았다.

과거 이 영약을 차지했던 놈은 이런 몸을 갖고 그 수준의 실력밖에 보이지 못했단 말인가? 애초에 잠재력이 너무 낮았나?

새삼 랭커란 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껴진다.

랭커란 놈들은 하나같이 이정도의 몸뚱이를 갖고 있다는 뜻 일 테니까.

여기에 본인의 재능마저 더해진다면….

왜 랭커 하나하나가 일인 군단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마력뿐만이 아니다.

뻣뻣했던 관절과 딱딱했던 근육이 부드럽게 풀렸고, 평범했던 몸뚱이가 어느새 근육질로 변해 있었다.

키가 극적으로 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관절의 가동 범위나 육체 자체의 내구력, 유연성, 밸런스 등이 총체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몸을 만들려면 지구에서는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했겠지. 그마저도 노력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있을 터.

그것을 영약 하나로 해결했다. 이건 벌모세수도, 환골탈태도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변화 그 이상, 과장 좀 보태면 진화라고 해도 다를 게 없었다.

전설급 영약. 찾으러 온 보람이 있었다.

나는 몸을 씻은 뒤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어차피 나서윤을 비롯한 여성 4인방이 던전을 깨려면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으니 시간은 넉넉했다.

나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마법사의 방으로 향했다.

준비할 것들이 있었다.

나는 내 지식의 일부를 마법사의 연구 일지처럼 보이게끔 위조했다. 한참 공을 들여 만족스러울 만큼 서류들을 작성한 후에야 던전을 벗어나 10층으로 향했다.

***

[10층에 진입하였습니다.]

[튜토리얼의 마지막 층, 전직소에 도착하셨습니다.]

[10층은 직업을 선택하는 장소입니다. 직업과 스킬을 얻은 후 플로어 마스터를 통해 11층에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튜토리얼의 마지막 층.

10층에 도착했다.

1회차와 달라지지 않은 모습.

10층에 도착한 인원은 내가 처음인 듯 아무도 없는 을씨년스러운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npc조차 없다.

오로지 각 전직소 안의 제단을 통해서 전직을 하고, 스킬을 얻는 장소일 뿐.

여기서 전직을 한다면 기본적으로 스킬 1개를 선택해 무료로 증정받을 수 있다. 이후 스킬은 돈을 주고 사거나 스스로 따로 구해야만 한다.

나는 곧바로 전직을 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플로어 마스터, 에파토스가 나타났다.

"한창 바쁘실 텐데요?"

"그래도 와야지. 여기가 더 우선이거든."

인사나 안부 대신 가벼운 잡담을 걸었다. 어차피 헤어진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에파토스는 별말 없이 잡담을 받아주었다.

"그나저나 꽤 오래 걸렸네? 하루도 안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아, 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보상도 챙기고, 영약도 먹고, 자료도 만들고…."

영약이라는 말에 내 몸을 살피던 그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오, 과연 전설급 영약이라는 건가… 육체 하나는 끝내주는군."

하드웨어의 성장.

에파토스는 그 잠재력을 단숨에 알아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료를 만들었다는 내 말에 무슨 뜻인지를 눈치챈 듯 쓴웃음을 지었다.

"거, 보모 짓도 쉬운 일이 아니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있습니까. 으휴. 떠먹여주기도 정말 힘듭니다."

"뭐, 힘내라. 그게 다 그대의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아니겠나."

1회차의 지식을, 같이 소환된걸로 아는 내가 마구 떠들어 봐라. 일행은 바보가 아니니 단숨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터다.

내가 아는 정보를 푸는데도 이런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도 충분히 성과는 있었습니다."

"…대충 뭘 할지 알만하군. 하기사. 신경 쓸 만 하지. 여기가 튜토리얼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기는 하니까."

여기는 향후 수련자들의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 장소다.

처음 길을 잘못 들었다간 수정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부분은 포기하고 말 정도. 잠재력을 이상한 곳에 투자했다가는 되돌리지도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수련자가 되기 십상이다.

이곳은 게임이 아니니 능력치를 재분배할 수도, 스킬을 초기화할 수도 없다.

처음부터 분명한 계획을 세우고 선택해야만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제 막 튜토리얼을 끝낸 수련자들이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

힌트 자체는 조금씩 받는다. 고유 스킬이나, 랜덤 스킬 카드 등으로. 하지만 막연하다. 나나 주하연, 나연 같은 경우는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경우가 훨씬 적은 경우다.

나서윤만 봐도, 이도류에 마력 친화다. 나야 마력 친화가 마법사의 필수 스킬중 하나임을 알기에 그녀가 마검사 적성이라는 것을 알지, 몰랐다면 직업을 그냥 마력계 검사 정도가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채 이도류 검사로써 밀고 나갔을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그녀에게 뜰 전직 가능 리스트에는 전사와 검사, 마법사가 나올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았다.

근접 직군이니 가장 기초적인 전사, 이도류 스킬 덕에 검사, 마력 친화 덕분에 마법사. 이렇게 셋은 거의 확정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 내 간섭이 없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마법사가 나와도 무시할 뿐일 터다. 인간은 이런 선택의 과정에서 대부분 안정적인 선택을 하려 하지, 영문도 모르는 것에 쉽게 목숨을 걸지 않는다.

정보는 한없이 부족한데, 그렇다고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고작 튜토리얼을 막 클리어하는 인원들.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재능을 제대로 개화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뭐, 나나 우리 파티는 해당 사항이 없게 만들 테지만.

"그럼 우선, 애들이 오기 전에 먼저 직업좀 선택하겠습니다."

어차피 첫 직업은 정해져 있지만.

"그렇게 하도록."

나는 곧바로 가까운 전직소의 제단으로 향했다.

그러자 곧바로 메시지 창이 등장했다.

[수련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 목록을 불러옵니다.]

1. 사제

2. 전사

3. 황혼의 마검사

4. 그림자 암살자

5. 태양의 전사

6. 사신의 추종자

7. 극지의 사냥꾼

8. 바람의 마도사

무수히 나타나는 수많은 리스트.

그 기괴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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