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튜토리얼 - 9층
[미약한 중력의 대검]
-등급 : 레어
-뛰어난 마도사가 튼튼한 대검에 대강 마법을 인챈트해 완성했다. 대검 자체가 무척이나 튼튼하고 인챈트를 대충했다고는 하지만 마도사의 실력이 뛰어나 괜찮은 마법 무기가 되었다.
-공력력 : 22
-옵션 : 타격 순간 마력을 소모해 무기의 무게를 약간 올린다. 발동 시 공격력 2 상승.
지금 내 검보다 공격력이 좋기는 하지만, 공격 속도가 떨어지고 세심하게 쓰기도 힘들다. 게다가 크기도 커 다루기도 불편하다. 하지만 대검을 다뤄본 경험이 없지는 않았고, 현재 내 근력 수치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앞으로 나올 놈들은 덩치가 크니까.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전신을 예민하게 만든 이후 문으로 들어갔다.
화륵.
팟.
나는 감각이 시키는대로 몸을 움직였다.
마법으로 만든 불덩이가 날아오고 주변이 강하게 빛나며 다시금 시야를 가린다.
아까와 비슷한 수법. 나는 눈을 감은 채 간단히 파이어 볼을 회피했다.
펑!
내가 피해낸 공격이 뒤쪽에서 폭발한다.
나는 곧바로 마력이 강해지는 곳을 향해 뛰었다.
펑! 퍼엉!
그런 와중에도 끝없이 마법이 날아온다.
위에서, 옆에서, 심지어는 뒤에서마저.
나는 빠른 속도로 공격들을 회피했다.
수정 바로 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순간.
파각!
대지에서 돌로 된 창이 솟아오른다.
그러나 내가 더 빨랐다.
다른 놈들이면 모를까, 내 신체 수준이면 이정도 급습에도 반응할 수 있다.
즉시 급정지. 곧바로 몸을 틀며 돌의 창을 피해낸다.
동시에 대검을 휘둘렀다.
훙.
타격 직전, 옵션이 발동하고 손목과 어깨에 가해지는 압력이 증가한다. 하지만 큰 무리는 아니다.
40대의 체력. 고작 이정도 무기를 다루지 못할 몸뚱이가 아니다.
콰장!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울리고 동시에 마법 함정들이 정지한다. 발사될 기색이 보이던 불꽃이 사그라들고 사방팔방 빛나며 눈을 뜨기 힘들게 만들었던 빛이 꺼졌다.
주변은 침묵에 잠겨 들었다.
눈을 뜨자 완전히 깨져버린 중앙의 수정이 보인다.
곧바로 진행도가 나타났다.
[진행도 11%]
"…아니 그 새끼 이거 어떻게 깬 거지?"
아무리 첫 번째 방이 제일 어렵다고 해도, 이건 난이도가 너무 높다. 고작 레벨 12가 이걸 깼다고? 오크야 함정을 역이용했다고 해도, 도대체 이걸 어떻게? 100번 양보해서 키메라 오크가 너무 멍청해서 고기 방패를 해 줬다고 치자. 눈이 안 보이는데? 마력을 이용해 눈을 보호하려면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 나야 할 수는 있지만, 감각만으로 충분해서 하지 않았고. 고작 튜토리얼에서 눈을 보호하는 연습이 필요한 상황은 없었으니 어지간한 천재거나 미리 내용을 알아야 하는데… 그놈은 그 정도 천재가 아니었고, 회귀자도 아니었을 터. …심안 스킬이라도 있나?
가능 하려면 오크가 마법을 다 막아주고 눈을 보호하면서 함정을 다 피해 수정에 접근한 뒤 조바심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의심하며 마지막 함정을 피해야 한다.
오크가 모든 함정을 다 막아주는 기적의 희생 플레이를 하지 않는 이상에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난 일이다. 아무래도 혼자 있다 보니 잡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메시지 창을 치워버린 후 눈에 보이는 세 개의 문을 바라본다.
왼쪽, 정면, 오른쪽.
1회차 당시 이 던전을 깼던 놈은 여기서 빙 돌고 돌아 외곽부터 다 깨고 중앙 방으로 향했다고 알고 있었다. 중앙 문 살짝 열어보고는 기겁해서 주변부터 돌았다던가? 배치가 3x3의 9칸 형식이라고 들었다.
외곽은 그저 그렇고, 중앙 홀이 첫 번째 방 못지않게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방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튜토리얼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라 놀랐을 뿐.
'…그래도 랭커들은 9층에서 이곳에 버금가는 곳들을 클리어했었지.'
새삼 랭커들이 얼마나 괴물인지 깨닫는다.
쉴 시간은 없었다. 그들보다 부족한 재능으로 이 탑을 올라가야 한다.
나는 곧바로 중앙 홀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로 어려워 봐야, 지금의 나는 현시점에서 최고 수준의 수련자다. 못 깰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 문을 열자 덩치 큰 다섯 마리의 키메라와 드넓은 홀, 그리고 딱 봐도 엄청난 수의 함정이 눈에 띄었다.
애초에 함정도 아니다. 그냥 대놓고 오지 말라고 해 놓은 듯 사방팔방에 마법이 생성되는 모습이 보인다.
"…진짜 그 새끼 이거 어떻게 깼지?"
피잉!
곧바로 날아오는 화살. 나는 몸을 틀어 화살을 피했다. 그리고는 잡생각을 지우고 상황에 집중했다.
키메라 다섯은 첫 번째 방의 오크 키메라와는 다르게 사족 보행의 모습이었다. 늑대와 사자, 표범 등 동물 위주로 합성되어 일단 사족 보행이긴 하지만, 등 위가 기괴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고, 그 위로는 고블린인지 오크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인간형 상체가 합성되어 있었다.
"그, 어어어."
온몸이 이곳저곳 기워진 누더기였다. 내 일행들이 봤다간 기겁할 외형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저런 놈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눈을 돌릴 만큼 수행이 얕지는 않았다.
두 번째 화살이 날아오기 전에 몸을 날렸다.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즉시 마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방의 마지막에야 나왔던 대지의 창은 내가 걷는 족족 나타났고, 벽과 천장에서는 얼음덩이와 불화살, 중간에 터져 파편을 흩날리는 돌덩이까지 마구잡이로 날아왔다.
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독화살과 작은 침과 같은 물리적인 함정까지 섞여 내가 지나친 장소를 폭격한다. 내가 조금만 느리거나 멈칫거리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공격들.
물론 물리적인 공격은 방어구에 막힐 확률이 높긴 했지만, 마법 공격은 다르다.
정말 끔찍한 공간이다. 마법사 본인은 뭔 생각으로 이딴 곳을 만들고 여기에서 살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함정을 돌파하고 중앙에 가까워지자 곧바로 키메라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속도는 생각보다 느리다. 하기사, 등에 저딴 걸 달고 움직이니 움직이기 쉬울 리가 없었다.
저들의 공격 수단은 인간형 상체의 팔들이 휘두르는 창과 하체의 동물형 키메라의 이빨 정도로 보였다.
아무래도 이 던전을 만든 마법사는 마법 함정이나 본인의 마법 실력에 비해서 키메라 만드는 실력이 부족했던 듯했다.
나는 함정을 돌파하며 대검에 마력을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키메라들의 다리를 베어버렸다.
"끄으, 아!"
속도의 차이가 심하다. 키메라들은 내 공격에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이어서 다시금 저격해오는 마법을 피해 다른 키메라들도 차례차례 다리를 베어 기동력을 모조리 상실시켰다.
그리고는 중앙의 수정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중앙 홀의 수정은 첫번째 방의 수정에 비해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하지만 그래 봐야 수정. 나는 마력을 집어넣은 대검의 면을 이용해 야구 배트를 휘두르듯 수정을 쳐 버렸다.
콰직.
수정은 내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린 수정.
곧바로 마법 함정들이 작동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감각이 전해주는 정보를 통해 이전 수련자가 여길 깰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했다.
중앙 홀의 수정을 깨자, 중앙 홀의 함정뿐만 아니라 내 감각 안의 다른 방에 있는 마법 함정 몇 개도 작동을 멈추는 것을 느꼈다. 아마 수정이 서로 방마다 영향을 주는 듯했다.
"…그렇군."
다른 방을 먼저 돌면 중앙 방의 함정 또한 약해지거나 일부 사라지겠지. 지금 내가 한 행동은 대놓고 최고 난이도를 깡으로 깨 버린 거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첫 번째는 운이 좋으면 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지만, 중앙 홀은 아니었다. 튜토리얼 수준의 수련자는 도저히 깨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게 설령 랭커일지라도. 내가 업어 키운 나서윤이었더라도 이건 불가능했다.
피식.
어차피 알아도 똑같이 했을 일이었다. 일행이 지금 내 행동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매달리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흠칫.
"…벌써 정이 들었나."
그럴 만도 하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신경 쓰면서 애지중지한 게 몇 년 만인가? 아니, 1회차에서도 없던 일이다. 내가 호구처럼 길드에 갖다 바치기는 했지만, 파티원들끼리는 적당한 선을 유지했으니까.
이렇게 노력을 들이고 금이야 옥이야 키웠는데 정이 안 들 수가 있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선을 그어야겠군."
솔직히 두려웠다. 그들과 친해지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정에 휘둘릴까 봐 두려웠다.
이번 회차는 마지막 기회다. 있는지도 몰랐던, 마지막 기회. 정을 느끼는 것은 좋다. 그래.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다. 다른 이들보다 지금 일행을 조금 더 아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거기에 휘둘리면 1회차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까봐 그게 두려웠다. 정을 붙이고 그게 심해져 이들에게 호구처럼 대하면? 내가 휘둘리면? 지구는? 지구의 내 가족은?
그래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내가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번 회차,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버리는 거다. 그걸 잊어서는 안됬다.
선을 지키고 탑에서의 행동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쏟아부어야 한다. 계획적이고, 이용해야 할 것은 이용하며, 방해되는 것들은 치워야 한다.
나는 가족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피어오른다. 내가 과연, 끝날 때까지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가 아냐. 해야 하는 거지."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머지 방은 예상대로 간단했다.
마법 함정은 거의 무력화 되어 있었고, 물리적인 함정과 키메라 몇몇이 전부였다. 그나마 키메라를 만드는 장소로 보이는 곳에 제법 다수의 키메라가 포진해 있었던 최고 수준이었을 정도. 이 방은 키메라를 합성하는 곳인 만큼, 마법 함정이나 물리 함정이 없었기에 나로서는 여기가 오히려 더 편했다.
마지막 방을 향하자, 그곳에는 키메라도, 함정도 없었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침대 위로 보이는 백골.
아무래도 거주 공간이었던 듯했다.
저 백골은 아마 마도사였을 터.
책상 위로 보이는 낡은 책이 보였다.
나는 그 책을 펼쳐 보았다.
-나는 오래 살고 싶었다.
일기인 듯했다.
동시에 실험 일지이기도 했다.
허접한 키메라 합성 과정과 오히려 연단 쪽이 더 잘 되었던 것. 그래서 키메라 연구를 중단하고 연단 쪽에 전념한 내용들이 주르륵 기록되어 있었다.
오래 살고 싶었던 마도사는 그걸 위해 여러 실험을 했던 듯했다.
리치는 되고 싶지 않았다나?
일기 마지막 부분에는 끝끝내 연단은 성공했지만, 반쪽짜리라며 괴로워하는 말을 끝으로 일기가 끝나 있었다.
아마 이후 하루하루 절망하며 죽어 갔거나, 마음의 정리를 마치고 편히 죽었거나 둘중 하나일 터다.
그다지 감흥은 없다. 이미 해골이 된 이에게 감흥을 가져 뭐하겠는가? 아니, 기왕이면 후자가 좋을지도. 나한테 완성된 영약을 준거나 다름없으니까.
거주 구역에도 수정은 존재했다. 그것을 깨트리자 곧바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진행도 100%]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9층의 시험을 완료하였습니다.]
[10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Y/N]
내가 미쳤는가? 곧바로 N버튼을 눌러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는 일기에 쓰여진대로 책상 서랍을 뒤졌다.
그러자 곧바로 목갑이 손에 잡혔다.
목갑을 열자 둥근 영약이 보였고, 손을 대자 정보 창이 튀어나왔다.
[마도사의 염원이 담긴 영약]
-등급 : 전설
-불노장생을 원했던 마도사가 연구 끝에 만들어낸 영약. 섭취 시 마력 회로를 청소하고 신체 전반을 강화한다.
-효과 : 모든 능력치가 '2'상승하고 잠재력이 상승한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전설등급 영약. 이번 던전 최고의 보상이다.
모든 능력치를 생각하면 나중에 먹어야 하나, 잠재력 상승은 그 이상의 효과를 지녔다. 아니, 잠재력 상승에 비하면 능력치 상승이 사소할 정도다. 내 상급 잠재력이 최상급 잠재력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상급에 가까운 상급은 될 터.
몇 안 되는 잠재력을 올려주는 영약이다.
과거 이 영약을 먹었던 놈은 그리 재능 넘치는 놈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수준의 던전을 클리어한 이상 조금 상향 평가를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녀석의 재능 수준은 잘 쳐봐야 중급.
하지만 우연찮게 이 던전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 녀석은 한때 재능있는 전사로 이름을 날렸었다.
사용하는 스킬들을 바탕으로 추정한 놈의 초기 스킬 슬롯의 갯수는 약 3개 정도. 만약 내 생각대로 심안이라도 있었다면 4슬롯. 그리 대단치 않다.
게다가 신체 스텟이 그리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력 하나만큼은 상당히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마력을 바탕으로 한때 뛰어난 근접 전사로 이름을 날렸었다. 물론 중간부터 재능의 한계를 드러냈고, 그는 도태되었다. 거기서 더 악착같이 올라가려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거기서 더는 탑을 올라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훗날 그가 자신이 전설급 영약을 먹었던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있다며 이 일화를 풀었기에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뿐. 그는 나와 잠시 파티를 했었고, 오래지 않아 다른 파티에서 죽었다.
'어쩌면, 중앙 홀은 이것을 소화한 이후에 도전했을지도 모르겠네.'
이 영약은 마법사와 사제에게, 아니 그냥 탑을 오르는 수련자라면 누구든지 얻고 싶어 하는 영약일 터다.
나는 곧바로 영약을 섭취하지 않고 다시 중앙 홀로 나갔다.
아직 하나 남았다. 1회차의 그놈은 한때 재능 있는 전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보다 다른 것으로 더 유명했다.
다음 기연을 챙길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