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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36화 (36/317)

# 36

튜토리얼 - 8층

"흐아아압!"

뒤로 물러난 우두머리와 다르게 먼저 말을 걸었던 남자 셋이 달려온다.

나는 그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푹!

"끄악!"

어차피 느려 터진 놈들. 개개가 남은주보다도 약하다.

이들은 그들 중에서도 아래.

레벨도 6 남짓에 능력치는 평균 7~8사이.

가장 약한 이들이다.

어깨를 가볍게 벤다. 아직, 아직이다. 나는 조금 자제하고 있었다.

곧 기회는 온다.

쉭- 쉭!

하나같이 느릿한 공격.

나는 공격을 피하며 역으로 빈틈을 파고들었다.

어색한 검 놀림을 하는 놈들만큼 쉬운 놈들은 없다.

공격하면서 빈틈이 너무나도 많았다.

퍽! 콰직!

"크헉!"

검 손잡이, 팔꿈치, 폼멜 등을 이용해 머리와 명치, 옆구리 등을 찍는다.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그들이 쓰러지는 동안, 우리를 포위하려 드는 이들을 향해 나서윤이 달려들었다.

"이얍!"

양손에 든 두 자루의 검.

과거 한 손에는 단검을 들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숏 소드는 괜찮았지만, 작은 격노는 나서윤에게 조금 크다. 그러나 그 압도적인 공격력과 높은 신체능력은 그 어색함마저 지워버린다.

쾅! 서걱!

"으악!"

"뭐, 뭐야!"

단숨에 나서윤이 밀치고, 15라는 높은 공격력을 이용해 방어구째 상대를 갈라버린다.

물론,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처가 깊다.

"뭐 이렇게 세! 괴물이잖아!"

"씨발! 그렇다고 칼이 안 들어가냐! 다 죽여!"

'안 들어가는데?'

내 방어구의 방어력은 무척이나 높다. 이 방어구를 뚫으려면 나서윤이 들고 있는 작은 격노에 마력을 집어넣어 베던가 아니면 마법사라도 데리고 와야 한다. 검으로 뚫으려면 방어구의 빈틈을 노려야 하는데, 이들 실력에 그게 될 리가 없다. 내가 직접 대 주지 않고서야.

전투는 일방적이다. 우리는 상대를 손쉽게 유린했다.

그들은 나와 나서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나는 치열한 전투를 하는 척하며 상대 진영에 조금 깊숙하게 들어갔다.

그 빈틈을 노린 이들이 나연을 비롯한 세 명에게 다가갔다.

나연은, 아직도 저들을 공격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

"견제라도 해! 금방 해결하고 갈 테니까!"

내 말에 이상함을 느낀 우두머리가 쓰러진 자신의 일행을 살핀다.

그는 곧바로 눈에 이채를 띠었다.

"제대로 덤벼! 저놈들, 사람 죽여본 적 없어!"

주변을 살펴본 이들은 곧바로 표정이 변했다.

"뭐야, 버진(virgin)이었어?"

"하하! 그랬단 말이지!"

곧바로 이들은 적극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큭!"

나는 일부러 당황하는 척,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달려들면서도 의심하는 듯했으나, 내가 확실히 밀리기 시작하자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대놓고 방어를 도외시하는 공격.

"몸만 큰 어린애 아닌가!"

"하하! 멍청한 놈! 실력이 좋으면 뭘 해? 정신 상태가 썩었는데!"

"글러 먹은 새끼!"

그들의 비웃음을 들으며 나는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착실히 그들의 공격에 굳이 맞아 가며 몸에 상처를 늘렸다. 갑옷이 가리지 못한 부분을 굳이 갖다 대면서 피륙에 옅은, 피만 많이 나는 상처를.

"갑옷이 뭐 이리 튼튼해!"

"젠장, 밀어붙여!"

나서윤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서윤은 오히려 더했다.

"괴물 같은 꼬맹이! 이 오빠가 제대로 교육시켜주지!"

"하하! 그냥 항복 하는 게 어때? 내가 잘…."

하지만 그들의 착각이었다.

나서윤은, 다른 일행들과는 달랐으니까. 내 몸에 피가 나는 것을 목격한 나서윤은 곧바로 상대하던 놈들의 팔을 날려버렸다.

"끄아아악!"

"뭐, 뭐야! 미, 미친!"

어디까지나, 목숨은 빼앗지 않았다. 나연이 무서워할 것을 아니까. 하지만 팔은 이미 내가 날린 적이 있었고, 그렇기에 따라 한 듯했다.

"오빠!"

"서윤아!"

그러나 그건 나서윤의 실수였다.

아니, 반쯤 내가 의도한 바였다.

뒤쪽은 완벽하게 무방비가 되었고, 10명이 넘는 인원들이 후열을 습격했다. 전위로써 실격인 모습.

"흐아아!"

"잡아! 이년들 잡으라고!"

나와 나서윤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신체 능력. 그들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듯이 후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인질이라도 잡을 셈인걸까.

저건 확실히 위험했다. 나연이 제대로 정령 마법을 쓰지 않는다면, 후열은 무너진다. 그러나 나연이 정령 마법을 쓴다면, 역으로 적들이 반드시 죽는다. 정령 마법을 그리 세심하게 쓰기에는 나연의 실력이 모자랐다.

"아… 아아!"

"이런…!"

"으, 으아아!"

나연은 어찌할 줄 몰라했다. 주하연은 당황한 표정이었고 남은주는 공포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휘둘렀다.

"하, 하하! 이겨, 이길 수 있어! 조금만…!"

"끄아아아악!"

저들이 위험헤 처하는 순간, 나는 나연과 함께 굳은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싼 놈들의 팔다리를 날려버렸다.

그 비명에 겁먹은 후열쪽은 더더욱 절박하게 달려들었고, 마침내 남은주가 밀리기 시작했다.

"언, 언니! 언니! 제발, 제발 마법 써 줘요, 나,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마법. 그 말에 후열을 공격하던 놈들은 더욱 다급해졌다. 마법이 사용되면 정말 끝장이니까.

그사이 나는 나와 나서윤을 둘러싼 놈들의 포위를 풀어냈다. 팔다리가 날아다니자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병신이 된다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공포에 질렸다.

"서윤아! 조금만 버텨!"

"네!"

나는 단숨에 후열로 달려갔다.

"꺄악!"

결국 밀려버린 남은주가 넘어진다.

남자는 마무리를 위해 검을 휘두르지만, 남은주는 필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결국 남은주를 죽이지 못하겠는지, 남자는 곧바로 방패 위로 몸을 던졌다.

"꺄아아악!"

남은주의 위를 덮친 남자가 그녀의 방패를 밀어내고 몸 위로 올라탄다. 그러더니 곧 검을 내리찍을 듯한 모습을 취한다.

나는 마력을 더해 속도를 높였다. 동시에 나연을 쳐다보았다.

나연의 시선은 마침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겠지. 머리가 하얘진 상태일 거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일부로 굳은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병신같은 년이라고 생각했다. 암 덩어리다. 재능만 없었다면 나서윤만 데리고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시선을 돌려 남은주를 공격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정말 찰나의 순간. 나는 뭔가를 다짐한 듯한 표정을 만들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연은 무엇을 느낀 걸까.

"안--돼!"

곧바로 정령이 소환되며 마법이 사용된다. 목표는 남은주를 깔아뭉갠 남자. 위력이 좀 약하다. 어떻게든 줄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내 검이 남자의 목을 가른다.

펑!

남자의 목 없는 신체가 뒤로 밀려 넘어졌고.

툭.

남자의 잘린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나는 다시금 나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한껏 일그러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되도록.

나연은 내 얼굴을 보며,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시 입을 앙다물며 몸을 돌렸다.

그 뒤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

전투가 끝나고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결국, 일행 모두는 사람을 죽였다.

주하연은 내 2회차 첫 살인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자신이 상대하던 남자의 목을 그었다.

피가 미친듯이 솟아올랐고, 남자는 곧 쓰러졌다.

남은주도 마찬가지였다. 공포에 질렸지만 적은 많다. 그녀는 내게 훈련 받은 대로, 일어서서 후열을 지켰다. 그 과정에서, 결국 그녀는 한 명의 사람을 죽였다. 그녀는 엉엉 울며 상대의 심장에 검을 박아넣었다. 그러나 운 것과는 별개로,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나서윤은 더 빨랐다. 내가 사람을 베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자신 또한 손을 더럽혔다.

나를 제외하고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것은 나서윤, 그리고 나연이었다.

내 학살을 바라보던 나연은 결국 정령을 사용, 남은 이들을 죽여버렸다.

그녀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향해 나서윤이 달려왔다.

"오빠, 괜찮아요?"

"…그래. 괜찮아. 너는 어디 다친 데 없어?"

"다친 데 없어요! 근데, 오빠는, 어떻게 해…."

내 몸은 피투성이였다.

큰 상처는 하나도 없지만.

"괜찮아. 이정도는. 큰 상처는 없어. 네가 다치지 않았다니, 다행이다."

나는 나서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피 묻은 손을 바라보며 멈칫거렸다.

그러자 나서윤이 되려 내 손을 잡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렸다.

나는 일부러 조금 손을 떠는 모습을 보였다.

"괜, 괜찮아요. 오빠. 힘들면 말해요. 나, 왠지 금방 강해지니까. 다음에는 내가 다 할게요. 이제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피식.

나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새 후열 세 명이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고마워요 신후 씨. 이번에도 신세를 졌어요. …살인은… 신경 쓰지 말아요. 저들이 먼저 한 거니까…."

"아뇨.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저런 이들투성이입니다. 언젠가는… 경험해야 할 일이었어요. 이번에 물러났다면, 더 많은 이들의 습격을 받았을 겁니다."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손이 떨리는 것을 감추지는 않았다.

"…고, 고맙습니다. 파티장 님… 덕, 덕분에 살았어요…."

"…아뇨. 되려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더 빨리 손을 썼어야 했어요."

"…미안해."

나연이었다.

"뭐가?"

"…너무… 나만 깨끗하려고 했어. 너도… 힘들 텐데."

"네가 나쁜 게 아냐. 그냥… 여기가 이런 거지. 우리가 좀 더 강해지면, 조금이라면, 힘든 사람들 도와줘도 돼. 오히려 미안하네. 약해서."

나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아니었으면 벌써 죽어도 진작 죽었을 거야. 이제는… 말 잘 들을 테니까."

"애냐? 의견 있으면 말해도 돼. 내가 독재자도 아니고."

"아냐. 내가 너무 어린애 같았어. 세상이 그렇게 바른 곳만은 아니라는 거 알면서도… 앞으로는… 그냥 시키는대로 할 테니까."

마침내 꺾였다. 그녀는 이제 탑에 적응하겠지. 이제는 살인도 차차 익숙해질 테고, 다른 사람들과 선을 긋기 시작할 거다.

의심하고, 조심하겠지. 물론 완전히 꺾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조금 휘는 정도면 된다.

"더 강해지자. 힘든 사람을 외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응."

"물론, 우리가 최우선이니까. 남 돕는 것도, 너나 서윤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하는 거니까."

"…응."

작은 희망. 이 희망이 그녀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거다.

"우리는요?"

"물론, 두 분도 포함이죠."

"…아닌 거 같은데?"

"자, 빨리 고블린 로드를 잡으러 가죠."

그렇게, 일행은 탑에 익숙해져 갔다.

***

고블린 로드는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나서윤은 날 지키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듯 적극적으로 전투에 나섰다.

그래봤자, 아직 실력 차이가 많이 난다. 솔직히 따라잡혀줄 생각이 없기도 했고.

서브 퀘스트를 완료한 채 마을로 복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에파토스가 찾아왔다.

나는 예의 그 결계를 친 채 원하는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일행을 향해 말했다.

"9층은 따로 갈 거야."

"…네?"

"너희 넷이랑 나랑 각자 갈테니까."

"왜요! 오빠 왜요!"

"던전을 추천받았는데, 따로따로 가야 할 것 같아. 4인용이랑, 1인용 던전이야. 내가 빨리 강해지고 싶다니까, 나한테 딱 맞는 던전이 있다고 하시네."

에파토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표정을 관리했다.

"싫, 싫어요! 오빠, 같이 가요!"

"…저도 반대에요."

"저, 저도요!"

나연 또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우리, 빨리 강해져야 하잖아. 이 던전이 좋기는 좋은데, 진짜 어렵다더라. 1인용 이기도 하고. 걱정 마. 더 강해져서 10층에서 보자."

"오빠, 하지만, 하지만!"

"걱정 마. 너희 던전도 진짜 좋은 곳이고, 충분히 깬다고 했어. 그러니까, 응?"

그녀들이 가게 될 곳은 버려진 무덤. 최하급 스켈레톤이 굴러다니는 곳이다. 언데드인만큼 상대하기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나연도 있고 각자 능력도 괜찮은 만큼 어렵지는 않을 터다. 여기가 중요한 게, 던전 중심까지 클리어하면 그곳에 저장된 마력이 수련자들에게 흡수된다.

재능에 따라 다르지만, 최저 2, 많게는 5 이상 얻는 이도 있다고 한다. 이정도 보상은 흔치 않다. 상급 던전이다. 나연은 정령사, 나서윤은 마검사가 될 예정인 만큼 마력이 중요해 이곳으로 골랐다.

반대하는 여성 진을 겨우겨우 설득해가면서, 10층에서 꼭 만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랬다.

어떻게 장담하냐는 말에 에파토스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정도는 알아도 될 정보로 판단한 듯했다.

나중에는 저걸(!?) 어떻게 믿냐며 날뛰는 나서윤을 혼내기까지 해야 했다.

처음으로 내게 혼난 나서윤은 결국 내 말을 따라 따로 던전을 가게 되었다.

"좋아. 그럼 10층에서 보자. 먼저들 가."

"…네. 오빠. 꼭, 꼭 봐요. 10층에서."

"…네 말 잘 듣기로 했으니까. 10층에서 봐."

"필요한 일일 테죠, 신후 씨?"

"물론입니다."

"그렇겠죠… 먼저 갈게요."

"10층에서 뵐게요. 파티장 님."

"그래요 그래."

나는 일일이 그들의 말에 대답을 해준 후에야 그들을 보낼 수 있었다.

얼마만큼 그들이 날 의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잡았나…."

나는 너무 과하게 날 의지하게 만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이게 최선이다. 난 나연 자매를 놔 줄 생각이 없으니까.

"그런 것 같군. 그나저나, 드디어 둘이 되었군. 참 힘들어."

"후…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 자네. 자네는 어디의 용사지?"

"…네?"

"시치미떼지 말게나. 자네, 누군가와 이미 계약하고 들어오지 않았는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 확신에 찬 목소리.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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