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두 번째
나는 급하게 밀려오는 불꽃을 향해 마주 달려 들어갔다.
솔직히 구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화살을 맞고 죽었을 수도 있었다.
주변의 고블린들이 불꽃에 겁먹고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틈에 코리처럼 고블린들을 밟고 날아가 코리에게 접근했다. 곧바로 그를 들쳐 매고는 기사들과 함께 도망쳤다.
등 뒤를 따라오는 불길.
수없이 많은 고블린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지르는 비명을 뒤로 한 채, 대 부족을 벗어났다.
습격 이후, 이틀을 내리 쉬어야만 했다.
대 부족은 흔적도 없이 다 타버렸다.
동시에 죽은 고블린의 수가 수천이다.
대부분이 일반 고블린이긴 했지만, 아마 대 부족이 복구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터다.
이번 침략을 막는다면 몇 년의 기회가 생기겠지.
그 안에 토벌을 해야 할 터다.
코리는 살릴 수 있었다. 정말 아슬아슬했지만. 시체라도 건져올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목숨이 붙어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으려고?
이곳저곳에 화살을 맞아 위험한 상태였다.
빠르게 돌아가 지혈을 해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이틀 뒤 체력을 조금 회복한 상태로 성에 돌아갔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난 뒤였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조금 회복하고 성으로 가고 싶어 했으나, 그건 불가능하다. 진짜 체력이 방전에, 수천의 고블린에게 둘러싸여 당한 상처가 한둘이 아니다. 사기급 갑옷을 입은 나조차 갑옷이 가리지 못한 부분에 이곳저곳 상처를 입었는데,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풀 플레이트 메일도 아니고, 기동성을 위해 가죽 갑옷을 입은 상태다. 멀쩡할리가 없었다.
게다가 코리는 겨우 목숨만 건진 상태다. 코리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차라리 사제를 데리고 와야지.
성에 들어와 들은 소식으로는, 고블린들이 뭔가를 기다리는 듯했다고 한다. 게다가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고.
이유는 간단했다. 대 부족이 무너졌다. 중요 보급처 중 한 군데인 대 부족이 무너지고, 보급 계획이 꼬였을 터다. 게다가 지원군도 오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오래 싸우지 못하고 후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고블린 로드가 자신의 부족의 상태를 봤을 때 어떤 심정일지 궁금했다.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승리한 인간의 피해도 만만치 않으니까. 성 주변의 마을들은 하나같이 반파, 성 또한 멀쩡하지 못했으며, 사상자는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승리했다.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활약을 듣고 전말을 파악한 영주는 곧바로 전투의 피로를 풀 시간도 없이 일부 정예 병사와 사제를 투입, 고립된 코리와 주하연, 남은주를 구하기 위한 별동대를 보냈다.
급하게 움직인 덕분에 어렵지 않게 그들을 구해 오는 것은 성공했다.
이후 우리는 영주의 앞에서 치하를 받았으며, 기사들과 함께 영주가 직접 하사한 훈장과 포상금을 수령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야기로만 들었던 업적을 획득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멜리드 성의 구원자]
-튜토리얼 7층. 멜리드 성을 구원한다는, 극악한 난이도의 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자유 능력치 포인트 5p 증정(100미만의 능력치만 상승 가능합니다.).
…미쳤군.
이러니 업적을 얻으려고 발버둥 치지. 여기에 더해 메시지에는 보이지 않지만, 경험치까지 주는 모양이다. 레벨까지 올랐다.
"…업적?"
"와…."
모두 업적을 얻은 듯했다. 하지만 확인해 본 결과, 공헌도가 존재하는 듯했다. 나는 5p를 얻은 데 비해, 나연과 나서윤은 2p, 주하연과 남은주는 1p를 얻었다.
사실 1만 해도 귀하긴 하지만.
퀘스트 클리어까지 남은 시간은 7일 남짓.
우리는 그간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영주는 우리를 극진히 대접했다.
과거 사과의 의미로 내주었던 귀빈실을 다시금 내주었으며, 매 끼니는 없는 재료를 쥐어짜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 노력했고, 마을과 성의 복구를 위해 바쁜 와중에도 매일 우리를 찾아와 식사와 담소를 나누었다.
코리를 비롯해 부상입은 이들은 신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꾸준한 치료를 받아 사실상 별다른 문제가 없게 되었으며, 여성 진들에게 호의까지 베풀어 신관에게 기부를 더 해 흉터마저 지워주었다.
나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나와 일행의 상태 창을 확인했다.
[상태 창]
-이름 : 유신후
-나이 : 24
-LV. 12
-정보 LV. 60
-신체 능력
근력 : 32 -〉 34 민첩 : 33 -〉 35 체력 : 40 마력 : 21 -〉 31
-자유 능력치 : 5(100미만)
아직 튜토리얼이라 조금 보정이라도 받아서 30대 능력치는 조금 성장했고, 마력은 무려 10이나 올랐다.
하지만 40대인 체력은 변함이 없었다. 40이후로는 능력치 성장이 눈에 띄게 느려지는 만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상태 창]
-이름 : 나연
-나이 : 24
-LV. 11
-신체 능력
근력 : 13 민첩 : 11 체력 : 16 마력 : 21
-자유 : 2(100미만)
나연은 마력이 한 단계 더 상승했다. 체력은 여전히 16. 정령사인 만큼, 마력이 가장 중요하고 체력 또한 무시하면 안 된다. 눈에 띄는 점은, 업적 덕분에 레벨 11을 달성했다는 것. 무척이나 좋은 오산이었다.
[상태 창]
-이름 : 나서윤
-나이 : 16
-LV. 11
-신체 능력
근력 : 19 -〉 20 민첩 : 23 체력 : 20 -〉 21 마력 : 19 -〉 20
-자유 : 2(100미만)
나서윤은 끝내 근력과 마력마저 20대에 돌입, 그사이 체력은 21까지 올리는 미친 성장을 보여줬다.
아마 혼자서 주하연과 남은주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녀 또한 레벨 11을 달성해서 나를 기쁘게 했다.
[상태 창]
-이름 : 주하연
-나이 : 26
-LV. 10
-신체 능력
근력 : 13 민첩 : 11 체력 : 14 마력 : 8
-자유 : 1(100미만)
[상태 창]
-이름 : 남은주
-나이 : 22
-LV. 10
-신체 능력
근력 : 11 민첩 : 10 체력 : 13 마력 : 6
-자유 : 1(100미만)
주하연과 남은주는 여전히 레벨 10에 머물렀다. 하긴, 마지막 대 부족 습격에 가담하지 않은 만큼 당시 그녀들의 레벨은 9. 업적 덕분에 10을 찍은 듯했다.
아마 아슬아슬했을 거라 생각한다.
10만 해도 충분하다. 1회차에서는 9도 없는 형편이었으니까.
나와 나서윤 때문에 그녀들의 능력치가 낮아 보이지만,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무척이나 대단한 거다.
대부분 8층에 도착한 수련자들은 평균 능력치가 10이 안된다. 마력은 대부분 갓 각성해 1이고, 신체도 대부분 적은 사람은 7, 높은 사람은 12정도가 한계다.
그런데 가장 능력치가 낮은 남은주가 평균 10을 자랑한다.
게다가 레벨도 10인 만큼, 훈련에 따라 빠르게 능력치가 상승할 터다. 문제는 남은주의 잠재력이 '하'라는 것. …그나마 주하연은 중상이라도 되지, 남은주는 벽이 빠르게 올 거다.
남은 기간은 나도 일행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충분히 고생을 했으니까.
"오빠, 훈련해요!"
"신후 씨, 오늘은 쉬는 거에요?"
"신후야, 뭐해? 시간 돼? 마력 운용좀 더 알려줄 수 있어?"
"파티장 님, 민첩은 어떻게 해야 올리죠?"
…하지만 파티원들이 날 가만두지 않았다.
탑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제대로 체감한 만큼, 자신의 발전이 멈추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 터다.
그 남은주가 나한테 훈련을 부탁했으니….
나는 그녀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게다가 신세를 진 성의 병사들과 우리와 함께 정찰을 떠났던 기사들, 성을 지켰던 유일한 기사, 길라함 경까지 우리의 훈련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남은 일주일을 훈련에 치여 보냈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파티원들이 내게 찾아왔다.
"…정식으로 말하고 성을 떠나고 싶다고?"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나도 그러고 싶어."
"다음 층도 여기면 어쩌려고?"
"…왠지… 아닐 거 같아."
그녀들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다음 층은 이제 멜리드 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로 향한다.
확실히 이번 습격을 제외하면 멜리드 성 주변에는 더이상 큰 위협은 없다. 있다면 성이 망하지.
그러니 새로운 장소로 갈 거라는 예측이었다.
실제로 틀리지 않고. 근데 만에 하나, 여기를 기점으로 활동해야 하는 거면 무지 쪽팔릴 텐데, 그런 생각은 안 하나?
나는 어차피 사라질 공간, 무척이나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힘든 것도 아니고.
나는 영주를 찾아가 내일 떠날 예정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영주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어째서? 대접이 부족했던가? 대체 왜…."
"아공간을 얻었던 시련과 관련된 일입니다. 길을 떠나야만 합니다. 저희도 여기에 남고 싶지만…."
곤란하다는 내 표정에 영주는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더 붙잡았지만, 내가 이미 너무 오래 머물렀다 말하자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알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래도 내일 송별회는 열 생각이네. 그것까지 마다하지는 말게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마저 거절했다간 말을 꺼낸 이유도 없었고, 영주의 면도 상한다.
이래 봬도 훈장까지 얻은 영웅이다. 그런 자를 그냥 보냈다간… 솔직히 허상이라 생각하기에 별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은 모르니까.
내가 알려주는 것도 이상하고 .
곧바로 우리가 떠나야 한다는 소식이 성에 파다하게 퍼졌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방문을 받아야만 했다.
"그냥 성에 같이 있지 그러나."
"시련 때문이라 별수가 없습니다."
"쯧, 그거 포기는 못 하나? 아공간 좀 없어도 괜찮네. 우리가 충분히 대접하지. 자네들은 우리 성의 영웅이야."
"…그게 저희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일행들 또한 나보다는 못 하지만 수없이 많은 곤란한 일을 겪고 있었다.
일부 병사는 그녀들에게 청혼까지 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들은 내 뒤로 대피했고, 나만 더욱 피곤해졌다.
다음 날이 되자, 화려한 송별회가 열렸다.
성의 상태가 좋지 않아 화려하진 않았지만, 수많은 주민들과 함께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 부족한 부분을 사람들로 채웠다.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축제를 연다. 민심을 달래는 기초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우리가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까지 알려, 명분까지 만들었다.
우리가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쉽지만, 잡을 수 없기에 성민들은 즐거운 분위기로 우리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송별회가 끝나갈 무렵, 영주는 나를 따로 불렀다.
"…혹시 내년, 아니 내후년이 좋겠군. 2년 뒤에 이 성에 한 번 더 들러줄 수 있는가?"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2년 후, 저 고블린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생각이라네."
영주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게 해야지. 자네와 기사들의 활약으로 중심 부족이 다 타버리고 다수의 고블린이 죽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일이지. 언젠가 다시 커진 채로 우리 성을 위협할 게야. 그러니 나는 2년 동안 힘을 길러 고블린들을 토벌할 생각이라네. 그때, 부디 그대들이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
…….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숙고하는 척했다. 어차피 튜토리얼은 허상. 우리가 떠나는 시점에 사라지는 공간이다. 인스턴트 던전처럼, 클리어한다면 없어질 추억. 멜리드 성과, 멜리드 영주, 이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NPC는 튜토리얼의 개수만큼 존재한다. 그렇기에 별생각 없이 대답하려는 순간.
[히든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영주의 머리 위에는 보라색 느낌표가 떠 있었다.
히든 퀘스트를 의미하는, 그것이.
***
히든 퀘스트는 상황이나 타이밍이 맞아야 하고, 히든 퀘스트가 요구하는 정보 레벨이 필요하다.
첫 번째 히든 퀘스트, 한스 때는 그가 술에 취해 있었다. 그 정도만 되도 내 정보 레벨 덕에 히든 퀘스트가 떴지만, 지금은 달랐다. 진짜로, 정직하게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나타난 히든 퀘스트다. 물론, 정보 레벨이 있으니 히든 퀘스트라는 것도 알 수 있게 된 거지만.
나는 첫 번째 히든 퀘스트는 받지 않았다. 퀘스트를 충분히 유도해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정보 레벨을 바탕으로 정보만 빼먹고 버렸다.
애초에 내가 먼저 접근했고, 퀘스트의 보상보다는 영주의 보물을 빼앗는 것을 선택했다.
만약 내가 한스를 유도해 히든 퀘스를 받아 냈다면 어땠을까.
히든 퀘스트의 보상은 그 층의 보상을 뛰어넘는다. 20층의 히든 퀘스트라 치자, 보상이 아이템이라고 할 때, 그 아이템의 능력은 20층이 아닌 30층 수준의 아이템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극히 드문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20층 히든 퀘스트라고 해서 50층 수준의 아이템이 나오지는 않는다. 즉, 층의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애초에 나는 한스의 히든 퀘스트 보상은 끽해야 보물의 일부를 받는 다, 정도로 예측했다. 그럴 만했다. 한스는 그거 말고는 내게 줄 게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런 퀘스트는 딱히 업적도, 탑이 대신하여 보상을 주는 경우도 아니다.
그래서 높은 정보 레벨을 바탕으로 퀘스트 정보만 빼냈다. 보물 창고를 독식했고, 그를 바탕으로 인벤토리를 늘리고도 남을 금화와 보석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영주의 경우는 달랐다. 어디까지나 그로부터 받던가, 시스템이 보상을 해 주겠지.
게다가 정보 레벨을 바탕으로 빼낼 정보도 없었다. 진짜 말한 저게 다였으니까.
나는 고민했다.
이걸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는가? 이 튜토리얼이 유지되는 건가? 어차피 히든 퀘스트고 나발이고 우리는 8층으로 향한다. 이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2년 후에… 7층에 올 수 있다고?'
어쩌면, 아니,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선택은 당연했다.
거절하면 끝. 수락하면 뭔가 있다.
나는 곧바로 수락하며 말했다.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시련 중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살아만 있다면 2년 후에 다시금 이 성을 방문하겠습니다."
"…고맙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네."
[히든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멜리드 성을 위하여]
-멜리드 성의 영주, 스페레스는 2년 후 고블린들을 몰살시켜 버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런 그를 도와 고블린들을 쓰러뜨리자.
-조건 : 2년 후 나타날 초대 메시지에 응할 것. 자신을 제외한 4인과 동반 이동할 수 있다.
-동행이 현재 파티원인 나연, 나서윤, 주하연, 남은주일 경우 보너스가 지급된다.
-보상 : ???
-소환까지 남은 시간 730일
히든 퀘스트 답게 보상이 물음표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과연 7층으로 이동한 후 퀘스트를 끝내면 곧바로 원래 층으로 이동하는가? 였다.
만약 아니라면….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히든 퀘스트를 수락한 이후, 나를 비롯한 일행은 8층으로 이동되었다.
8층은 또 다른 파티들과 만난다.
7층을 클리어한 인원들이 뭉쳐 새롭게 파티를 구성해 덩치를 키우거나, 그걸 무시한 채 따로 활동하거나, 굳이 같이 다니지는 않더라도 친하게 지낼, 말하자면 인맥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덩치를 불리고 이름을 날리는 파티들이 훗날 길드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부터 덩치를 크게 불릴 생각은 없었다. 그건 나중의 일이다.
내가 8층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곳이 처음으로 '플로어 마스터'를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었다.
그를 위해 레벨을 올리고 준비를 해왔다.
그런데 설마, 8층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경우가 생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와! 여자다! 여자가 넷이나 돼!"
"그것도 엄청 예쁜 년들이야! 근데 남자는 하나네?"
"아냐, 잘 봐 셋이야. 근데… 둘이 다 죽어가네?"
"뻔하지 뭐, 저것들, 요한한테 당했겠지. 병신 새끼들."
"흐음… 남자는 필요 없지. 어이, 너. 그래 너 말이야 너. 여자들 놓고 꺼져. 특별히 살려주지."
'뭐 이딴….'
무법자들. 훗날 그리 불릴 이들.
나는 시작부터 만난 어이없는 병신들을 바라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