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튜토리얼 - 7층
유격전은 계속되었다. 3일째에 이어 4일 째에도 수색대를 사냥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확실히 가까이 확인해 본 마을은 이미 대비가 되어 있었고, 주변에 정찰하는 놈들도 배치되어 있어서 빠른 시간 안에 지원이 오는, 유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족스러운 결과다. 이런 상황이 오래되면 될수록 병사들의 집결이 늦어지고, 그러면 성을 공격하는 시간이 짧아지니까. 기사들의 입장에서는 베스트다. 나로서도 제법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습격이 대비된 마을을 공격하는 것보다야, 수색대를 잘라 먹는 것이 경험치 효율이 더 좋았으니까.
어느덧 내 레벨은 9에 도달해 있었고, 일행은 레벨 8이 되어 있었다.
나는 벌써 고비에 돌입해 있었다. 9에서 10을 찍기는 정말 힘들고, 10에서 11찍기는 더 힘들다. 몬스터의 질이 오르면 모를까, 여기서 상대하는 것은 대부분 고블린 전사와 궁병. 그나마 존재하는 저격병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8이었을지 모른다.
레벨이 올랐으면 더 강한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데, 억지로 슬라임을 잡아서 레벨업 하는 기분이다.
이마저도 11이 한계. 11이 되는 순간 고블린 전사나 궁병 종류는 더이상 경험치를 주지 않는다.
극히 적은 저격병이나, 아직 잡지 못한 주술사,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블린 로드만이 경험치를 줄 거다.
우리는 현재 4일째 사냥을 끝마치고 추적대를 따돌린 상태로 마지막 내가 숨었던, 절대 들키지 않을 장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딘데 이렇게 멀리 가는가?"
"강 상류입니다. 더 위로 가야 합니다. 제법 깊은 곳이거든요."
"…도대체 거길 어떻게 확인한 거지?"
"저번 정찰 때, 마지막까지 남아서 미끼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때 유인한 방향이 상류였죠. 다른 파티원들은 강을 따라 하류로 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절 쫓던 고블린들이 어느 경계선을 기점으로 두려워하며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혹시 몰라서 더 들어갔었는데… 운이 좋았죠."
"흐음… 그대가 자신하는 장소라. 무척이나 궁금하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내 자신 있는 발언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묵묵하게 따라왔다.
어제 쉰 장소가 장소인 만큼, 이번에는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어제 쉰 장소가 하필이면 고블린들의 외부 식량 저장고였다.
고블린 부락이 커지고 대 부족을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몇몇 부족이 외부에 따로 만든 듯한 장소였다.
상납을 위해서인지, 저들이 쓰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고, 알 필요도 없었지만, 고블린 습성이 이기적이다 보니 이런 장소는 대게 다른 부족원들이 모르는 장소에 있기 마련이다. 알면 저 위험한 줄 알면서도 필요하면 훔칠 놈들이니까. 그렇다 보니 각 부락의 우두머리급이 아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부 식량 저장고의 위치를 잘 모른다.
1회차 하층에 고블린 로드가 존재하는 연합 부족은, 확실히 저런 것들이 있기에 습성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 그 정보를 요긴하게 써먹었다.
단지, 식량 저장고가 무척이나 더럽고, 인간이나 동물들의 시체가 제대로 가공되지 않은 채로 마구잡이로 쌓여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잔인한 외향도 그렇지만, 악취와 벌레가 특히 최악이었다. 며칠 머물렀다간 없던 병도 생길 지경.
그 끔찍한 환경에 나서윤은 토악질을 했고, 남은주는 정말 이런 곳에서 자야 하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그 정신무장이 단단한 기사들마저 알게모르게 동공이 흔들렸을 정도니, 얼마나 끔찍한 장소였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그래도 덕분에 하루는 잘 보냈지만.
고블린들이 두려워했던 경계선을 지나자 기사들은 눈치챈 듯, 즉시 멈추라는 신호를 전해왔다.
"이건… 마기가 아닌가?"
"알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나도 느꼈으니까. 1회차에서는 꺼림칙한 기운이라는 것밖에 몰랐지만, 경험이 생긴 지금은 안다.
오히려 나는 튜토리얼에 존재하는 기사들이 마기를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위험하네.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어. 마기를 쓰는 존재는 마족이나 마수들. 거기다 이 거리까지 마기가 느껴질 정도라면… 절대 이길 수 없다네. 오우거 피하겠다고 드래곤 아가리에 들어갈 수는 없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미 죽었습니다."
"…뭐?"
"가 보시면 압니다."
나는 미심쩍어하는 이들을 이끌고 마기가 느껴지는 중심부로 향했다.
커다란 동굴. 그 입구에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마수의 시체가 존재했다.
"…이럴 수가…."
거대한 마수의 뼈무덤. 마기는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가죽과 고기는 모두 삭아, 뼈만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저 아래까지 마기가 느껴진다.
생전 얼마나 무시무시한 마수였을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기사들조차 이 마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듯했다.
'베히모스.'
과거 이 뼈 중 일부를 인벤토리에 넣어 위로 향했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된 이름이다. 베히모스의 뼈라고 했던가.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고 삭을대로 삭은 뼈는 가치가 없었다. 손만 대도 부스러질 정도였으니까. 저 흘러나오는 마기도 이제는 막바지다.
죽은 지 수천 년은 되었을 거라고.
"이 장소면 고블린들은 절대로 오지 못합니다."
"…그렇겠지. 마기가 느껴지는 장소로 고블린이 기어들어 오기에는 그들의 천성이 겁쟁이니까."
기사들은 알만하다는 표정이었다.
"자네도 어지간하군. 마기가 느껴지는 장소임에도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잠시 보고는 곧바로 빠져나왔습니다. 이걸 보고 고블린들이 더는 추적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었거든요."
기사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안전은 확보되었군. 여기를 바탕으로 움직인다면 조금 더 고블린들을 막아낼 수 있겠어. 게다가 영주 님이 주신 스크롤도 있으니…."
스크롤. 마법이 담긴 일회용 종이 쪼가리다. 찢으면 주문이 발동되고 내부에 저장된 마법이 튀어 나간다. 영주가 비밀 창고가 아닌, 다른 곳에 보관해 둔 몇 안 되는 보물 중 하나.
저주의 계약서가 이런 시골 귀족에게 있는 것도 신기한데, 중급 마법이 담긴 스크롤까지 갖고 있다. 보통의 시골 귀족 가문은 아니었던 듯했다.
아니, 어쩌면 고블린들의 수 때문에 난이도가 너무 높은 만큼 조금이나마 균형을 맞춘 걸지도. 나는 본래 존재하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벤트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성이 살아남는 엔딩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까지 잡은 수색대는 총 700정도일세. 정말 예상 이상의 성과군."
만약 아공간과 내가 알고 있는 휴식 장소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삼 일째에 위치가 발각되고 보급이 안 되어 오늘 전멸했을 거다. 그것을 감안해도 기사의 무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괜히 고블린의 세력이 커지기 전까지 이 일대의 패권을 인간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는 어렵습니다. 저들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어요. 이제는 우리도 정면으로 부딪치기 벅찬 수입니다."
"그렇지."
"이제는 전멸 대신 치고 빠지는 행동을 계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끄덕.
이제는 급습을 통해 고급 병종과 궁수들만 치고 빠지는 행동을 반복할 때였다.
그날을 기점으로 5일째부터는 나를 제외한 파티원은 퇴로 확보를, 나를 비롯한 기사들은 궁수와 저격병 위주로 사살하며 뒤로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 병력의 질을 조금씩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위기가 반복되었다. 일부만 죽이고 도망친다는 것은 그만큼 남은 이들이 우리를 쫓기 쉽다는 것이고, 이곳은 고블린들의 영역인 만큼 금세 지원이 오고는 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사냥. 하루에도 수십번의 위기를 겪었다. 미리 퇴로를 확보하고, 나무를 쓰러뜨려 도망칠 길을 파놓고 때로는 강을 타고 하류로 도망쳤으며 때때로는 쉼터의 위치 노출을 각오하고 경계선으로 도망친 적도 있었다.
그렇게 8일째가 되었을 무렵 우리는 하나같이 몸이 상처 투성이었고 체력은 한계에 가까웠다.
그래도 성과는 충분했다. 내 레벨은 10에 도달했고, 파티원의 레벨은 9였다. 이것만 해도 다음 층에서 만날 타 파티들을 앞설 것임을 알 수 있었다. 1회차 당시 8층에서 최고 레벨은 8, 평균 레벨은 5~6에 지나지 않았다.
'아슬아슬하네.'
더이상 사냥을 이어나가기는 힘들었다. 하루는 쉬어줘야 할 때. 9일째는 휴식을 취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아직 사냥할 기간은 10일 이상 남았다. 이 기간 안에 내가 11에 도달할지도 미지수다.
이제는 정말 더럽게 경험치를 안 주니까.
나는 물에서 빠져나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번 회피는 마침 강에 가까웠던 만큼 4층에서처럼 강을 이용했다.
물론 아예 하류까지 갈 수는 없다. 복귀도 해야 하니까.
'오늘은 그냥 외부 창고 하나 찾아서 거기서 쉴까?'
다시 베히모스의 둥지까지 돌아가려면 한세월이다.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기겁했을 생각을 지우며 뭍으로 기어 나온 일행을 바라보았다.
"큰 상처 입으신 분 계십니까?"
"…다행이 없군.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네."
"어휴, 고블린 놈들. 강 따라서 궁병들이 화살 쏠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활 성능이 조금만 더 좋았어도 반은 죽었을 거다. 예상했으니 강을 이용한 거지만. 그래도 오늘은 묘하게 추적대가 적었다는 느낌이더군. 딱 우리가 반격하기는 힘들 정도였…."
의문을 표하는 코리의 말을 나서윤이 끊어버렸다. 무척이나 급박한 목소리로.
"오빠! 하연 언니 다쳤어요!"
"뭐?"
나는 급하게 주하연을 향해 달려갔다.
"아, 아니에요, 조금 스쳤어요. 괜찮아요 신후 씨."
"뭔 소립니까. 봐요."
주하연의 어깨에 화살이 긁고 지나가 찢어진 상처가 보였다.
꿰멜 정도는 아니지만, 감염이 되면 좋지 못하다. 지혈제와 소독제를 이용해 상처를 씼고 우선 붕대를 감아주었다.
"…여전히 지극 정성이군."
"전 아직도 그 둘이 왜 저런 대장을 배신하고 요한 따위에게 붙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인실과 박남영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저도 이해가 안 갑니다. 선배님."
사실 파티원들을 비롯해 기사들조차 상처가 없는 인원은 없었다. 오죽하면 오늘의 전투에서는 이전에 다리를 다친 남은주는 빠졌을 정도. 지금은 베히모스의 둥지에서 쉬고 있었다.
경험치 손해가 있기는 하겠지만, 다리를 다친 인원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9만 해도 충분하긴 하니까. 아마 2~3일 정도는 쉬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어딘선가 다수의 무리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흠칫.
우리는 곧바로 몸을 숨겼다.
나는 곧바로 나연에게 지시를 내렸고, 나연은 즉시 정령을 이용해 정찰을 시작했다.
잠시 후 나연에게 들은 말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고블린들의 병력이, 대 부족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류 위치는 대 부족일 텐데…. 어째서?'
우리가 방해를 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부족의 병력은 대 부족에게 합류하고 있었던 와중이었다.
중간에 확인한 바로는 대 부족에 모인 병력은 5천 이상. 이미 반절 이상이 모여있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설마….
나는 피곤한 와중에도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상처 입은 주하연에게는 미안했지만 일행을 이끌고 즉시 대 부족이 보이는 언덕으로 향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그 많던 병력들이 이미 대 부족에게서 벗어나 있었다.
고블린들은 우리가 시간을 끌려 한 것을 눈치 챘던 걸까. 그들은 자신들의 병력이 덜 모이더라도 더 빨리 습격하는 것을 선택했다.
***
나는 대다수의 병력이 빠져나가 빈틈 투성이인 수색 망을 돌파해 베히모스의 둥지로 돌아왔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빨리 돌아가고 싶어 했으나, 나는 곧바로 반대했다.
우린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빨리 알려야 한다! 저들이 이대로 쳐들어가면…."
"영주 님께서는 바보가 아닙니다. 분명 정찰대를 보내 놨을 겁니다. 그 정도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면 금방 알아채실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사들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하지만 의견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야 한다. 우리는 멜리드 성의 기사. 위기의 순간 성 밖에 있을 수는 없어."
"아직 고블린들이 많습니다."
"우리 임무는 시간을 끄는 것이지 고블린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닐세. 최근 우리들의 활약이 뛰어나 그간 고블린 전사만 천을 훌쩍 넘게 죽였네. 하지만 이제는 한계야. 더는 힘들다네."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내일 쉴 예정이었고.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지금 상태로 돌아가면 체력이 부족하긴 할 거다. 하지만 그래도 성에서 하루 정도 쉰다면 어떻게든 다시 싸울 수 있을 터. 게다가 이들은 기사다. 개개인의 무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자체적으로 지휘관 역할도 할 수 있는 이들. 돌아간다면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막아섰다.
"도대체 왜 막는 건가? 우리는 충분히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역할을 해내었네. 이제는 자리로 돌아갈 때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네가…."
"아직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도대체 뭘 할생각인가?"
"대 부족. 거기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어째서? 이미 병력은…."
"반절 정도 되는 인원이 공격을 갔고, 저희가 많은 수를 줄이긴, 했지만 그래도 2~3천가량의 병력이 남습니다. 후속 부대를 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걸 막아야 합니다."
"…우리들끼리 대 부족을 습격하면 개죽음일 뿐일세. 우리가 만전의 상태라도 마찬가지야. 대체 무슨 소리를…."
레보는 말을 하다 말고 뭔가를 느꼈는지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의 끝. 그곳에는 코리가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코리의 가슴팍, 그곳에 숨겨진 스크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