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튜토리얼 - 7층
이 숲에 고블린 부락은 몇 개나 될까?
정답은 알 수 없었지만, 내 예상으로는 100개는 가볍게 넘는다였다.
한 부락에 최소 수십, 보통은 100마리 정도의 고블린이 존재한다. 물론 작은 부락 기준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한 부락에 2~300마리 정도의 고블린이 거주하는 부락도 흔하다.
가장 큰 고블린 부락, 대 부족은 500마리 이상의 고블린이 거주하는, 아주 커다란 부락 5개 정도가 합쳐진 크기였다.
최소 2~3천 마리가 거주할 만 하다.
물론 이들이 모두 전투 병력인 것은 아니다. 1층에서도 봤지만, 보통의 고블린은 그리 강하지 않다.
성인 남성이면 충분히 상대 가능하고, 전투가 능숙하다면 두셋도 상대할 수 있다.
물론 전사쯤 되면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남성은 쉽게 이길 수 없지만.
하지만 한 부락에 전사가 몇이나 될까? 작은 부락에서는 서넛. 많아도 열이 되지 않는다.
나는 초반 습격에서는 되도록이면 고블린을 놓치지 않았으면 했다.
일단 일행의 레벨을 높이고, 그에 따라 잠재력이 늘어난 일행이 전투를 통해 능력치를 상승시키길 바랐으니까. 물론, 언제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작은 부족이기에 가능한 것.
그래도 실제로 첫날 우리가 습격한 열 개의 부족은 생존자가 단 하나도 없었다. 완벽한 학살.
주변에 존재하는 고블린들도 모두 쓸어버렸으니 아마 첫날부터 우리의 습격이 알려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첫 날 전투가 끝나고, 내가 알린 휴식처가 아닌, 완전히 외부로 물러나 따로 야영을 하게 되었다.
하루 정도는 괜찮았다. 외곽이기도 하니까.
"처음은 예상보다 쉽군요."
확실히 우리 스펙에 비하면 외곽의 고블린은 약해 빠졌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우리가 방심하고 외부 영지들의 견제에 대응하게 만든 이유기도 했네. 이런 놈들 조금 방치해 봐야 얼마나 되겠냐고 생각했었네. 덕분에 이 꼴이 나 버렸지만."
상위 계급의 고블린들이 마구 출현하고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덕분에 성의 식량 사정도 악화, 게다가 주변 습격도 잦아져 물류도 막혀버렸다. 피해가 구르는 눈덩이마냥 커져갔고, 현재에 이르렀다.
첫날은 외곽에서 합을 맞추고 부락을 학살하는 연습을 했다. 되도록 놓치지 않고 많은 수를 죽이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다행히 기사들은 과거 토벌 경험이 많았기에 우리에게 괜찮은 조언을 해 주었고,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해졌다. 어렵지는 않았다. 입구를 막고 내부를 휘젓는 방식이었으니까.
레보를 비롯한 기사들은 외곽보다는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나 또한 레보의 의견에 동의했다. 경험치가 안 된다. 어차피 오늘의 전투는 기본적인 합을 맞추기 위한 목적이 크기도 했고, 애초에 코리와 약속한 쉼터는 더 깊숙한 숲속에 존재한다.
다음 날은 기사들의 의견대로 곧바로 내부로 진입했다.
둘째 날부터는 모든 고블린을 학살하기가 힘들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한 부락당 존재하는 고블린의 수가 점점 늘어났기 때문. 하나둘 고블린들을 놓치기 시작했다.
"오늘은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더 많은 부락을 습격합니다. 내일부터는 이리 쉽게 습격하기는 힘들 겁니다."
기사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바로 파티원의 상태를 살폈다.
나는 되도록 외곽을 돌면서 도망치는 이들을 상대하거나 파티원들의 지원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계속되는 전투이긴 했으나, 아직 체력이 남아있을 테고, 마력도 그다지 소비하지는 않았으니까.
대부분을 기사들이 처리하고 경험치를 주워 먹는 만큼 아마 레벨 업은 빠르게 될 터다.
내 말에 따라 습격 속도를 올렸다.
조금 놓치더라도 더 많은 고블린을 학살한다. 특히 전사를 비롯해 상위 계급인 궁병, 더 나아가 가끔 보이는 저격병 등은 절대로 놓치지 않게 신경을 썼다.
"키에, 키에에에!"
우리들의 빠른 습격에 고블린들이 저항했지만, 기사 셋에 그에 준하는 실력을 보이는 나, 그리고 마력을 각성한 수련자 넷이다.
고블린들의 저항은 한계가 있었다. 뜨거운 핏물이 부락을 덥혔다.
파티원들은 뭉쳐서 잘 싸우고 있었다. 가운데 나연을 두고 주하연과 남은주가 앞뒤를 오가며 최대한 어그로를 끌고 방어한다.
그러면 나서윤이 어그로가 더 끌린 쪽을 돕고 나연에게 흘러가는 적 또한 처단하며 발 빠르게 움직닌다.
"크에에에!"
기사들의 학살에 겁먹고 도망치던 고블린들은 그들의 도주를 방해하는 여성 진을 그냥 두지 않았다.
대부분을 맡아준다고 하더라도 내부 마을 고블린들의 수는 2~300마리. 입구에 선 채 최대한 방어하는 나연 일행이 상대하는 고블린은 40마리 이상이었다.
"서윤아! 여기! 여기좀 도와줘!"
"네! 금방 갈게요!"
"하연 언니! 떨어져요! 파이어 볼!"
콰쾅!
"키에에에!"
'생각보다 잘 싸우는군.'
아무래도 지하 수로에서 넷이서 싸워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되는 듯했다.
그들의 레벨을 확인하자 어느새 레벨 7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직도 레벨 8.
어느덧 내 레벨에 근접해 있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약한 몬스터들을 상대로는 경험치 효율이 떨어지는 만큼, 아마 7층이 끝날 무렵이면 레벨은 모두 같아지겠지.
그래도 하나라도 높은 레벨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되로록이면 10이상. 기왕이면 11이 되었으면 했다. 8층과 9층은 레벨이 제법 중요하니까.
하지만 고블린을 상대로 레벨 11이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래도 수가 많으니 기대는 하겠지만.
전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성 진 넷이 40마리 정도의 고블린을 쓰러뜨릴 무렵에는 기사 셋이서 200에 가까운 고블린을 학살한 뒤였다.
"몇 정도가 도망쳤지?"
"열이 안 됩니다. 전사 이상은 모두 죽였습니다."
"고생했네. 우리가 많이 흘렸는데 용케도 처리했군."
입구가 막히자 고블린들은 담을 넘어 미친 듯이 도망쳤고,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8명이서 모든 고블린을 막을 수는 없다. 현재 신체 능력으로는 그게 한계다.
"그럼 10분 정도만 쉰 후 바로 다음 부족을 치겠습니다."
끄덕.
둘째 날. 우리가 무너뜨린 고블린 부족은 12부족. 제법 무리한 대가였다. 최대 한 시간 안에 한 부락을 전멸시킨다. 빠를 때는 30분 만에 한 부락을 쓸어버린 적도 있을 정도였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다 퍼붓는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시간이 흐르고 무너지는 부락이 많아질수록 동요하는 고블린들의 모습과 대응이 점점 빨라지는 모습을 볼 때 이미 연락이 전해지고 있는 듯했다.
아마 내일부터는 오늘의 반도 무너뜨리기가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도망치는 데 쓰기 시작하겠지.
방비가 튼튼해지고 병력이 파견 될 거다.
고블린들도 아주 바보는 아니니까. 나는 해가 질 무렵이 되자 곧바로 습격을 멈추엇다.
"여기까지입니다. 오전에 약속했던 장소로 가야 합니다."
"…그렇군. 벌써 이리되었는가? 오늘 몇 부족을 무너뜨렸지?"
레보는 온몸이 붉은 피로 도배 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원, 전부 피투성이의 모습이었다. 물론, 자신들의 피는 없다시피 했지만.
"12부족입니다. 레보 선배님."
"12개라… 쯧. 내일부터는 쉽지 않겠군."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예상대로면 내일은 끽해야 오늘의 반 정도의 성과밖에 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중앙 부족에서 병력들을 파견하기 시작할 테고요. 차라리 기회가 된다면 부락 대신 소규모 병력은 역으로 쓰러뜨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코리 님도 합류할 예정이니까요."
"그래. 그것도 좋겠지."
부락 자체를 쓸어버리는 것이 공포나 혼란을 주기는 더 좋지만, 병력 자체를 줄이면 우리에게 느껴지는 실질적인 위협이 줄어든다.
특히 계속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고블린들 중에는 자신들이 뭉쳐도 안 된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할 테고, 그게 넓게 퍼진다면 우리이게 훨씬 유리하다.
나는 과거 대 부족을 내려다본 언덕 아래쪽으로 향했다. 이 주변을 확인하자, 익숙한 동굴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1회차 당시 숨었던 동굴로, 하루 정도 머물기에는 괜찮은 곳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여기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내가 당시에 발견한 것도 우연이었으니까. 물론, 오래 쓸 곳은 아니지만.
동굴은 입구는 좁은 데 비해 내부는 무척 넓다. 물론 넓다고 해도, 사람 10명 정도가 들어차면 꽉 차는 수준.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라 일행은 동굴 내부에 감탄했다.
"오빠는 어떻게 도망치면서 이런 곳도 찾았어요?'
"우연이었어. 너무 쉬고 싶어서 미친 듯이 주변을 확인했는데 그때 눈에 띄었지. 물론, 쉴 상황이 아니라 발견해도 못 썼지만,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생각보다 넓기도 하고."
"대단하시네요. 그 상황에…."
일행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얼굴을 살며시 찌푸렸다.
동굴 내부에서 불을 피울 수는 없었다. 나는 일행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되도록이면 식사 후에 빠르게 휴식을 취합니다. 내일부터는 힘들어질 거에요. 어제오늘 날뛰었고, 무너진 마을들은 저들의 경각심을 키울 겁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그렇겠지. 이제 시작이지. 과연 우리가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지. 부디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네."
"저희는 살아 돌아갑니다. 걱정 마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곧바로 나는 식량과 물을 분배했다.
일행은 잡담 없이 식사를 마친 후에 불침번을 정하고 교대로 잠에 들었다.
스스슥-.
새벽 무렵.
불침번을 막 마치고 교대해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기묘한 소리에 곧바로 잠에서 깨어났다.
'발소리.'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다.
최대한 죽인 발소리.
현재 불침번은 툴라와 남은주였다.
곧 툴라도 발소리를 들었는지 곧바로 무기를 움켜쥐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곧바로 남은주에게 신호를 보냈고, 남은주는 빠르게 다른 일행들을 깨웠다. 일련의 행동이 조용하고 자연스러웠다. 일행들이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바로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모두 깨워 버렸군."
이른 새벽, 지친 표정의 코리가 돌아왔다.
"코리 님? 벌써 오신 겁니까?"
"그래. 최대한 뛰었지. 영주 님도 뵙고 왔다네."
"성은… 어떻습니까?"
"난리가 났지. 자네가 정보를 가져왔을 때도 그랬지만, 구체적인 규모를 알게 되자 곧바로 영주 님께서 비상령을 선포하셨네. 성 외부 마을들까지 끌어들여 최대한 준비를 하실 모양이야."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래도 멸망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영주 님께 이런 걸 받아 왔다네."
나는 그가 꺼낸 물품을 보고 계획을 조금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
3일째 되는 날. 지친 코리의 체력을 위해 오후 무렵에야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예상대로 고블린들은 경계를 강화하고 순찰병을 늘린 데다가 추적대까지 조직되어 있었다. 예상보다 즉각적인 반응.
이미 무너졌던 지역 주변으로 몇몇 추적대가 조직되어 흔적을 찾고 있었다.
물론 고블린들은 추적 기술이 부족하고, 어느 정도 흔적은 지웠기에 쉽게 들키지는 않겠지만.
"예상 이상이군요. 대응이 빨라요. 벌써 추적대라니."
"쉽지는 않겠군."
"…어제 도대체 얼마나 날뛴 겁니까?"
"그다지? 대략 고블린 2천 마리 남짓 죽였을 뿐이네."
"…2천? 2천을 죽였단 말입니까?"
코리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무리했다네. 뭐, 대부분이 일반 고블린이라 숫자만 많을 뿐이지만 말이야. 전사 계급 이상은 500도 안 된다네."
실제로 그랬다.
쳐들어온 고블린은 전원 전사 이상. 그게 1만이다.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일 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체 병력의 5%다. 아무리 경계가 느슨한 틈을 노렸다고는 하지만 미친 성과였다.
게다가 아무리 일반 고블린들이라고는 해도, 죽은 수가 수인 이상, 영향이 있긴 할 거다.
"그나저나 저거 숫자 적은 것 같습니다. 툴라 선배님."
"…그런 것 같군. 어제 그렇게 날뛰었는데 고작 저거라고? 고블린들이 우리 실력을 잘못 판단한 것 같은데?"
추격대는 분명 상급 병종들이었다.
최소가 전사 계급. 일반 고블린들 몇이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지만, 몇 되지 않았다.
수도 그리 적은 것은 아니다.
150마리는 되었으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비빌만한 수는 아니었다. 당장 코리를 제외한 기사 셋만 나서도 저 정도는 처리 가능하다.
단지, 몸이 멀쩡하기가 힘들 뿐. 아마 자잘한 상처도 누적되고 체력도 뚝뚝 떨어질 거다. 어제처럼 고블린 부락 12개 격파 같은 미친 짓은 불가능하다.
"나연아, 주변은 어때?"
"저들 말고는 없어."
"…치는 게 좋겠네요."
"역시 그런가?"
저들을 처리하면 그만큼 수색망에 구멍이 뚫린다. 그만큼 위치가 들킬 확률도 높긴 하지만, 어차피 망은 점점 좁혀지게 되어 있다. 미리미리 줄여 놓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오히려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전력 면에서는 부락을 습격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다.
"주하연 씨, 방어 위주로 버티세요. 부락 때와는 다릅니다.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닌 생존을 우선으로 두세요. 생존입니다. 잊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갑니다."
내 신호에 맞춰 우리들은 수색대를 습격했다.
유격전 3일째. 우리는 부락 대신 역으로 수색대를 잡아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