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튜토리얼 - 7층
상황을 완전히 인지한 기사들은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 터다. 포기하고 싶었을 거고, 절망에 허우적거려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얻기 위해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숲 전체에 불을 놓는 것은 어떻습니까?"
"불가능하다네. 애초에 그 정도 규모의 불을 놓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고. 저들이 바보처럼 당하기만 하진 않겠지. 누군가를 중심으로 뭉칠 정도니 말이야."
"게다가 그런 짓을 했다간 멜리드 성의 멸망을 조금 미루는 것에 지나지 않아. 숲이 없으면 겨울은 어떻게 나고 식량은 어디서 구할 건데? 우리는 농지가 부족해."
"병사들이 모두 몰려와도 이기긴 힘듭니다. 차라리 뭉치기 전에 치는 것도…."
"허황된 생각이다. 성민과 주변 마을 사람을 모두 끌어모아도 이기긴 힘들다. 장비도, 식량도 부족하고 애초에 숲에서 훈련도 안 된 민간인을 이끌고 고블린과 싸우자고? 턱도 없는 소리. 만에 하나 이겨도 영지의 멸망은 확정이야."
"감정적으로는 싸워라도 본다는 것에 찬성하고 싶지만, 솔직히 해결 방법으로는 좋지 못한 거 같네."
"이럴 시간에 빨리 성으로 달려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영주 님께 소식을 알리고 대비를 한다면…."
"…나는 솔직히 대비를 한다고 멸망을 피할지 모르겠군… 시간은 열흘 남짓에 불과한데 그 정도 준비를 해서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대화는 거의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웠다. 그들은 하나같이 생각나는대로 허황된 의견을 내뱉었다.
그래도 다른 점이라면 꾸준히 반박을 한다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계속해서 의견을 낸다.
솔직히 저런 생각이라도 한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절망하지 않고 그 시간에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대단한 정신력이다.
문제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힘든 상황이다보니, 해결 방법이란 것들도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다.
아예 지금에 이르러서는 숲에 가까운 마을 중 하나에 의도적으로 불을 내 길목을 차단하고는 미끼가 되어 타 영지로 유인하자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제흐를 이용하면 될지도 모른다나?
…만 단위의 고블린이 병신도 아니고 될 턱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들이 열심히 대화하는 곳에 끼어들었다. 마침 내가 생각했던 의견과 상당수 일치하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어떤 의견이 말입니까?"
그들은 갑자기 회의(…)에 끼어든 내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의견을 구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걸까, 그만큼 인정하만한 사람이기 때문인 걸까.
"유격전 말입니다."
"…고작 300남짓의 병력으로 만 단위의 고블린에게 유격전이라니…. 성공 확률은 낮고 위험은 너무 크네. 오히려 방어전이 나을 것 같군. 의견은 고맙지만…."
솔직히 성은 알 바 아니다.
어차피 성은 허상. 튜토리얼에서 나는 내 이득만 챙기면 된다.
"아, 오해하고 계시는군요. 제가 말한 유격전은 저희들 만으로 치루는 걸 말하는 겁니다."
"…음?"
내 말에 더 어이가 없어진 걸까. 기사들은 하나같이 뭔 개소리냐고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당했다. 이들을 이용해 유격전을, 그러니까 게릴라전을 펼치면 그만큼 엄청난 경험치 획득과 빠른 스텟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위험하긴 하다. 삐끗하면 다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지만 나와 기사들이 힘을 합치면 목숨 정도는 부지할 수 있는 계산이 섰다.
영주에게 부탁해 기사들을 빼 온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NPC는 경험치를 먹지 않으니까.
"…애초에 유격전이라는 것은 적 지역 내에 협력자가 있어야지만 가능합니다. 저희들끼리 아무런 도움도 없이 유격전이라뇨. 불가능합니다.
진중한 표정을 지은 리타프가 기사들을 대표해 내게 유격전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했다.
"왜 협력자가 필요합니까?"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일단 가장 중요한 보급이 원활하게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체력은 유한하니 지치면 쉴 공간이 필요하고, 세력 차이가 압도적이니 쉬는 와중에 절대 들켜선 안 됩니다. 이런 것은 유격전을 펼치며 가능한 행동들이 아닙니다. 싸우는 와중에 보급을 어떻게 하고 도망치는 와중에 휴식 공간을 어떻게 몰래 만든단 말입니까?"
리타프의 말에 나는 웃으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보급은 해결되었군요."
의아한 표정을 짓던 기사들은 곧바로 깨달았다는 표정이 되었다.
보급. 즉 식량이다. 현대도 아니고 게릴라전에 총알 같은 소모품이나 화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 가장 중요한 보급은 어디까지나 식량이다. 어차피 유격전을 한다고 해도 7층 클리어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이 되지 않는다. 기사들도 고블린들이 완전히 모이기까지 측정한 시간은 10일 남짓. 즉, 현재로써 보급이 필요한 것은 식량과 물이 전부다. 그리고 아공간이 있는 이상 휴대가 불편한 일정 수준 이상의 물과 식량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식량은 이번에 넉넉하게 받아온 덕에 아직까지 보름치는 남아 있습니다. 제가 따로 챙긴 것도 있으니 그보다는 깁니다. 물도 넉넉하구요."
게다가 물은 루트만 잘 짜면 중간 보급도 가능하다.
"…확실히 생각지 못했던 점이군요. 하지만 여전히 위험합니다. 저희가 아무리 고된 훈련을 했다고 해도 10일 이상 쉬지 않고 싸우지는 못합니다."
그건 그렇다. 내가 1회차 시절, 상층에 겨우 들어갈 수준이었을 때도 그건 불가능했다.
뭐 만만한 놈들이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신체 스텟이 있으니 설렁설렁하면 어찌어찌 될지도.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적이라면 열흘이 뭔가. 하루도 제대로 못 싸울 터다.
전투는 그만큼 피로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그것도 방법이 있었다.
"저번에 돌아다니면서 숨거나 쉴 만한 공간을 많이 봐 두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여기랑 여기가…."
나는 곧바로 지도를 펼쳐 일행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단 말입니까?"
"네. 걱정이 되시면 한 번 다 둘러 보시겠습니까? 하루 정도면 다 둘러볼 것 같은데."
사실 도망치는 것은 문제기 되지 않는다. 몇 시간이고 들키지 않는 것이 문제지. 상대가 작정하고 수색하면 수색하는 병력의 수가 적게 잡아도 수천 단위다. 물론 들킨다고 해도 한 두 번 도망치는 것은 가능하다. 문제는 그게 누적되었을 경우, 피로가 쌓이고 결국 지친 끝에 몰이당해 죽는 거다.
나는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한 장소들을 몇 군데 알고 있었다.
1회차에서의 기억을 참조해서 2개. 이번 회차에 도망치면서 발견한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세 장소 정도면 돌아가면서 쓴다고 가정할 때 영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특히 1회차에서 내가 3일간 썼던 장소는 정말 꿀이었다. 절대 들키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에 더해 정찰하기 좋은 나연의 정령도 존재한다. 마력을 쓰지 못하는 대부분의 고블린은 정령을 보지 못하니까.
상대가 고블린이라는 것도 우리에게는 유리한 점이었다. 고블린은 몬스터들 중에서 겁이 많은 개체에 속한다. 자신들이 얕보는 개체나 사냥감이라면 그 흉성을 드러내지만, 상대가 강력해 자신들이 이기기 힘들거나 죽을 게 확실하다면 이기적인 본성을 손쉽게 드러낸다.
아마 꾸준한 유격전을 통해서 부락들을 학살하고 중간에 끊어 먹으며 혼란을 일으킨다면 수색이 조금씩 소극적이 될 테고, 우리가 들킬 확률은 더 줄어든다. 거기에더해 병력이 집결하는 시간 또한 무한정 늘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나갔다간 죽는다. 또는 비어있는 부락이 전멸당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가 퍼진다면 병력 집결은 10일이 아니라 20일, 30일이 걸릴 수도 있다.
내 설명을 들은 기사들은 잠시 숙고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른 말도 안돼는 작전들 보다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요."
솔직히 이것도 말이 안돼는 작전중 하나다. 다만, 인벤토리의 존재와 우리들의 수준이 고블린을 압도한다는 점, 그리고 1회차의 기억을 가진 내가 안전한 장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기에 시도할 수 있게 되었을 뿐.
"그렇다면 바로 제가 말씀드린 장소들을 한 번씩 확인하시겠습니까?"
"아니,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의 말이니 믿네."
역시 공적은 세우고 봐야 한다. 레보는 곧바로 내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설마 유격전을 이 인원으로, 그것도 저 대규모 병력을 상대로 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전장이 저들의 홈그라운드라니…."
그러면서도 이 상황에 유격전이 가능하고, 실제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에 스스로 어이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한 명은 돌아가야만 합니다. 성에 소식을 전하고 모든 인원을 총동원해 성을 지켜야만 하니까요."
그러나 곧바로 툴라가 레보를 향해 문제를 제기했다.
확실히 그렇다. 이들 입장에서는 정보를 전해야만 한다. 어디까지나 유격전을 치르는 것은 시간을 끌고 혼란을 일으켜 성에 하루라도 더 대비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니까.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외곽부터 치면 되니까. 내 말에 툴라는 유격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만 해결된다면 자신 또한 의견에 찬성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코리였다.
"레보 님을 제외하면, 속도 자체는 제가 가장 빠르니까요."
"으음…."
사실이었는지 딱히 반박은 없었다.
결국 기사들은 유격전에 찬성했고, 모두 처음 들어왔던 외곽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럼 다녀오지.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네."
"다시 합류하는 장소는 이틀 뒤인 2번째 합류 지점에서입니다. 혹시 모르니 3일째까지 거기서 쉬도록 하죠."
"알겠네. 만약 그 이후에도 내가 오지 않는다면 떠나도 좋네."
나는 떠나는 코리에게 이 장소푸터 2번째 휴식 장소까지 길이 표시된 지도를 건넸다.
그러나 코리는 바로 떠나지 못했다.
조금 망설이더니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이런 말이 실례가 될지는 모르지만, 자네가 원한다면 몇몇 인원은 내가 데리고 성으로 복귀해줄 수도 있네."
몇몇 인원.
누구를 말하는지는 명백하다. 아마 나를 제외한 내 파티원들을 지칭하는 말일 터다.
나는 즉시 반대했다.
"괜찮습니다."
"음… 솔직히 말하지. 이 작전은 너무 위험하네. 죽을 가능성이 높아. 사실, 그대들은 이정도만 해 줘도 충분하네. 애초에 의뢰는 정찰까지였네. 이렇게까지 위험을…."
나는 그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만일, 제 파티원들이 빠진다면 보급에 차질을 빚을 겁니다. 아공간이 단숨에 4개가 줄어드니까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들은 하나같이 마력을 각성한 몸.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아공간이 줄어드는 것까지 감수하고 말한 걸 거다. 그러면 유격전에 차질을 빚기는 하겟지만, 덜 먹으면서 버티면 닷새 이상은 싸울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터. 본인이 갖다 오는 동안 물을 제외한 식량은 어느 정도 챙겨올 수도 있으니 열흘은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하루 한 끼식 먹고 물은 중간에 강에서 보급하면서.
그만큼 이들이 우리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고, 조금이나마 갚고 싶은 마음에 이런 말을 꺼냈음을 안다.
하지만 혼자 경험치 먹을 거면 왜 이들을 끌고 왔겠는가? 그냥 혼자 싸우고 말지. 내 몸 하나는 얼마든지 건사할 수 있었다. 고블린을 상대로 한 달간 유격전? 충분히 가능했다.
"…그대들을 무시하려던 것은 아니었네."
"호의로 해 주시는 말이란 것,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끄덕.
코리는 더이상 권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성을 향해 빠르게 질주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남은 일행을 향해 말했다.
"그럼,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계획했던 7층 NPC버스 운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