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튜토리얼 - 7층
정찰을 마치고 나뉘었던 일행들은 이미 야영 준비가 얼추 되어 있었다.
적당히 눈에 띄지도 않았고 주변에 부락도 없어 오늘은 편하게 야영을 할 수 있을 듯했다.
아마 내부에서는 이렇게 넓은 지역은 찾기 힘들 터.
외곽에도 이 정도인데, 내부는 얼마나 고블린 투성이일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헥, 헥."
"고생했다. 서윤아."
"헥, 아뇨, 으헥, 오빠, 헥, 랑, 후, 같이 가서 좋았어요. 후우, 다음에도 지금처럼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할걸. 아직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농담을 하자, 나서윤은 급하게 반응했다.
"아, 아니에요! 별로 안 힘들어요! 그러니까 놓고 가지 마세요!"
"그래그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서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지간히 의지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나연보다 나한테 더 의지하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나연이 우선이겠지만.
조금은 긴장을 풀어 연한 분위기인 나와 나서윤과는 다르게 기사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들이 이런 분위기라 내가 나서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을 한 거지만.
나서윤과는 다르게 나는 그들을 위해 굳이 긴장 풀게끔 말이나 행동을 유도하지 않았다. 내 목적을 위해서라면 저들이 조금 더 위기감을 느끼고 긴장하는 게 도움이 되었으니까.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돌아온 기사들을 바라보며 야영과 내 파티원들의 보호를 위해 남았던 기사, 코리는 이유를 물었다.
코리를 위해 동기인 툴라가 나섰다.
"…최초로 발견한 부락 주변에서 네 개의 부락을 더 발견했어."
"…일 났군."
상황을 단숨에 이해한 코리의 표정마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우선은 식사를 하시고 푹 쉬셔야 합니다. 내일부터는 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그때부터는 잘 때도 긴장을 풀기 어려우니까요. 정찰 기간을 더 원하신다고 하셨으니, 아마 진짜 강행군이 될 겁니다."
"…알겠네. 다들, 오늘은 푹 쉬도록. 이건 명령이다."
"네, 알겠습니다. 레보 선배님."
막내인 리타프가 대표로 대답했다.
레보의 말에 다른 셋도 억지로 표정을 풀고는 최대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서 하나같이 조용히 인벤토리에서 꺼낸 육포로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불침번을 지정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행이 9명인 만큼 둘씩 짝지어서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가장 강한 레보-사실은 내가 제일 세지만-가 혼자 서고 나와 나연이 한 조가 된 것을 제외하면 일부러 기사와 일행이 한 팀이 되도록 조를 편성했다. 기사들이 불침번을 서는 모습을 통해 보고 배우라는 뜻이기도 했고, 일행끼리 불침번을 세우기는 조금 불안했다. 이전에야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나서윤은 나와 함께 서고 싶은 듯했으나, 나는 일부러 나와 나연을 한 조로 편성했다.
나서윤과 대화가 많았지만, 그 때문에 나연과는 대화가 부족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나와 자매가 같이 있으면 나서윤이 맨날 달라붙는 바람에 같이 있어도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나서윤이 1순위이긴 하지만, 나윤 또한 꼭 팀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녀를 위한 성장 계획도 있으니까. 다른 누군가와 포지션이 겹치기 힘든 희귀한 정령사, 그중 잠재력 상급이면 희귀도 만큼은 최상급 잠재력에 못지않다. 실력 면에서는 잠재력 최상급이 더 낫겠지만, 정령이 성장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일종의 복권이랄까.
순서는 제비뽑기로 정했기에 세 번째에 걸려버렸다.
첫 타임은 주하연과 리타프였다. 우리는 우선 잠자리에 들었다. 애매한 시간이라도 푹 쉬어야 한다. 휴식은 정말 중요했다. 시간이 생길 때 반드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도 탑에서는 무척 중요한 기술이다.
잠이 든 것도 잠시, 어느새 내 불침번 시간이 다가왔다.
두 번째 차례였던 레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레보 님?"
"일어났나. 자네 차례일세."
"아, 고생하셨습니다. 나연은 제가 깨우도록 하겠습니다. 쉬십시오."
"알겠네. 고생하게."
레보는 곧바로 수면을 취하러 갔다. 준비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야외에서는 일정 수준의 무장을 한 채 잠이 드니까.
나는 일어나서 우선 나연을 깨웠다.
"나연아, 나연아?"
"응…응? 신후…?"
"어, 우리 불침번 차례야."
"아, 응. 알겠어. 바로 갈게."
나연이 일어나는 동안 나는 모닥불을 확인했다.
혹시 모르니 장작을 조금 더 넣은 후에 불빛을 잘 가리는지 확인하고 있자, 나연이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한동안 주변을 불을 쬐며 주변을 경계하던 와중, 나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신후야."
"응?"
"우리 괜찮을까?"
"…무슨 소리야?"
"요즘… 불안해져서."
'…지쳤나.'
나연은 정신적으로 지친 듯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자신이 보살펴야 할 대상도 존재하고 탑에 온 뒤로는 하나같이 위기투성이였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위기를 찾아가는 중이다. 물론, 가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오기에 별수 없이 가는 거지만.
확실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마 나연 말고 주하연이나 남은주도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정신적으로는 점점 몰리고 있을 터다. 과거의 나도 그랬으며, 나서윤도 예외는 아닐 거다. 그러니 더욱 내게 의지하려고 드는 것일 거다. 그나마 나서윤은 나연과 나라는 존재 덕에 가장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있을 거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나와 나연의 부담이 커진다는 뜻. 나야 1회차 경험 덕에 다른 이들보다는 이런 일에 훨씬 익숙하다. 그러나 나연은 달랐다.
아마 실시간으로 정신이 구석으로 몰렸겠지.
"서윤이도 있으니까 이러면 안 돼는거 아는데… 솔직히 너무 힘들어…."
"…그래."
"…물론 제일 힘든 건 너겠지만 말이야."
나연은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사실 위험할 때는 네가 거의 나섰었지. 처음 고블린들이랑 싸울 때 제일 먼저 나섰고, 늑대에게 포위되었을 때는 네 기지로 빠져나갔고… 성에서도 그렇고… 정찰 때도, 지하 수로에서도, 요한 때문에 누명을 썼을 때도 네가 제일 앞장 섰었어. 알아. 너한테 이러면 안 된다는 거. 그치만… 나 너무 힘들어…."
나는 기사들을 살폈다. 다행히 모두 완전히 잠들어 있었다. 확실히 기사인 만큼, 휴식을 취해야 할 때는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나는 그들이 잠든 것을 슬쩍 확인한 뒤 나연에게 말했다.
"글쎄… 내가 제일 나섰다고 해서 네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 나는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한 거야.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까."
"…너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
"글쎄? 그런가?"
"그럼. 이런 상황에 힘들면 얼마든지 말하라니… 나는 나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데… 네가 서윤이를 많이 돌봐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겁나."
"너는 잘하고 있어. 내가 없었어도 잘했을 거라 믿어."
"…글쎄, 그럴까? 지구에서도 그러지 못했는걸…."
나연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나연의 곁을 묵묵하게 지킬 뿐이었다.
여기서 뭐라고 더 말해 봐야 역효과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아마 이 시간이 지나고 난 뒤면 그녀는 내게 더 친밀함을 느낄 것이다.
'차근차근 알아봐야겠네.'
더 가까워지면 지구에서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겠지. 그 정도 사이가 되면 아마 내 곁을 떠나기는 어려울 거다.
올라갈수록 탑의 현실은 천천히 보게 될 터. 나는 그녀가 변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내게 기대게 만들어 내 곁으로 끌어들일 거다.
1층에서 3층까지 클리어하는 데 일주일 정도가 걸렸고 4층을 클리어하는 데 1주일 조금 안 걸렸다. 5층에서는 3일간 휴식과 던전을 가기 위한 준비를 했었고, 던전을 클리어에는 준비 기간과 마찬가지로 3일이 걸렸다. 6층은 아예 1주일간 생존이었다. 1층에서 7층까지 오는 데 걸린 기간은 다 합쳐 봐야 한 달 남짓. 함께한 기간 동안 겪은 일이 일이다 보니 농도는 높지만, 절대적인 기간은 7층에서 보낸 기간을 합쳐야 겨우 한 달 정도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경쟁자도 없는 마당이니까.
그 뒤로 나연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불침번 교대 시간이 다 되었을 무렵, 그녀는 내게 한 마디 말을 건넸다.
"…고마워."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차례인 남은주를 깨우기 위해 자리를 떴다.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나연의 얼굴은 모닥불 불빛 때문이었는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어제 내가 말했던 예정대로 빠르게 내부로 침입했다.
갈수록 고블린 부락의 수는 많아졌고 돌아가는 길이 예상 이상으로 길어졌다.
1회차에서는 이 무렵에는 여전히 고문을 당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는 마력도 쓰지 못하는 고블린들.
우리는 유유히 그들을 피해 마침내 해가 지기 전에 대 부족을 시야에 넣을 수 있었다.
압도적인 크기.
대 부족은 이전보다 더 더 확장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레보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레보 뿐만이 아니다. 코리와 툴라, 리타프마저 반쯤 절망에 찬 얼굴이었다.
"…과거보다도 더 커졌습니다. 뭉치는 속도가 보통이 아닙니다. 이래서는…."
내 말에 기사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 곳의 고블린들만 해도 3천은 넘을 것 같습니다. 주변까지 합하면 5천은 그냥 넘겠습니다. 레보 님. 이건… 답이 없는데요?"
"주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끌어들여서 대대적인 방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 하는 준비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닥치는대로 식량을 모으고 준비를 해도 위험합니다. 다른 영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누가 돕겠나. 주변 영지들은 하나같이 적대적인 놈들뿐이지. 기회를 틈타 침략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도 서로 견제하느냐고 침략은 하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이대로 무너지면 다음은 자신들 차례인데…."
한참 대화를 나누던 기사들은 곧바로 나를 향해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주변 또한 더 확인해야겠네. 도대체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 대략적이라도 알아야 하겠어. 부디 여기에 집중되어 있기를 바라지만…."
레보는 말을 하면서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온 길만 해도 만난 부족이 한둘이 아니다.
아마 저길 중심으로 주변을 다 확인하면 일 만을 훌쩍 넘는 고블린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그중 쳐들어오는 고블린의 수만 해도 수천이 넘으니, 전투 병력을 제외해도 우글우글할 거다.
이미 거의 해가 진 상태였기에 하루를 더 쉰 후, 다음 날 다시 정찰을 재개했다.
예상대로였다.
1회차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고블린 부락들을 모두 합한다면 그들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멀리서부터 천천히 고블린들이 조금씩 뭉치고 있었다.
예상되는 병력의 규모는 1만.
병력 집결에 걸리는 시간은 10일 남짓.
기사들은 멜리드 성의 멸망이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