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6화 (26/317)

# 26

튜토리얼 - 7층

영주의 승인을 얻은 나는 곧바로 일행들을 이끌고 쥘르와 함께 창고로 향했다.

"보름치 이상의 식량과 식수를 원합니다."

"음…. 식량 사정이 좋지 못한데… 어째서입니까?"

"정찰 기간은 닷새 정도로 주문하셨지만, 저로서는 최소로 잡아도 7일. 최장 15일 이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 길게 말입니까?"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기사분들과 함께 가는 만큼, 정찰은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장담만 하기에는 제가 봤었던 고블린들의 수가 만만치 않았으니까요. 만약 최악의 상황이 되어 고립이 된다면 결국 보급이 문제가 될 겁니다. 사실, 기사분들이 별동대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 아닙니까?"

"음…."

노집사는 침음을 흘렸다.

"아시다시피, 실력으로는 기사분들은 고블린들이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위험하면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단지, 수가 문제가 될 뿐이죠. 저희가 같이 가는 것도 고립될 시 탈출로의 확보가 힘들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기사분들은 그쪽 지형을 잘 모르니까요. 게다가 기사분들끼리는 가져갈 수 있는 식량과 식수는 한정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공간이 있습니다. 휴식이 문제지, 식량과 식수는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죠. 그걸 이용하면, 고립된다고 해도 몇 날 며칠을 버티다 기회를 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노집사는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내가 말했던대로, 기사들의 실력은 고블린들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다.

고블린의 적정 레벨은 1. 전사 고블린은 끽해야 3~4. 강한 개체도 5가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기사들은 여기가 아무리 하층보다도 아래인 튜토리얼이라고 해도, 레벨로 따질시 10이상의 존재들이다.

능력치도 평균 20은 될 거다.

그런 그들이 고블린들에게 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변수는 저격병 정도. 그마저도 지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죽지 않으리라.

결국 그들이 죽는다면 원인은 체력의 부족. 차륜전으로 사망하는 것 정도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간다면? 인벤토리의 힘으로 식량과 식수가 한계 이상으로 들고 갈 수 있으며, 우리 개개인도 전부 마력을 각성한 이들에, 이미 정찰마저 성공해 대략의 길마저 알고 있다. 차륜전이 되어도 어떻게든 빠져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내 말에 노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힘들어도 챙겨 드려야죠.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찰 기간은 제가 안내하겠지만, 기사분들의 의견을 따를 예정이니, 걱정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 오히려 기사들이 더 정찰을 하자고 할 것을 예상했다.

현장에서 날아온 정보를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일행의 인벤토리와 내 인벤토리의 빈공간 일부를 식량으로 더 채워 넣었다.

일행의 빈공간과 비슷한 공간만 채웠기에 우리 일행 다섯과 기사 넷 총 9명이 보름 남짓 먹을 분량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내 아공간 속 식량은 남은 보름을 더 보내고도 남았으니까.

최악의 상황이 되어 고립된다고 해도 30일간 버티면서 먹을 것은 충분했다.

그 외에도 야영 도구나 지도 등 필요한 물품을 모두 보급받았다.

기사들 또한 준비를 해야 했기에 출발은 다음 날로 미뤄졌다.

다음 날 오전.

기사 넷과 일행이 정문에 모였다.

먼저 도착한 우리는 전신 갑옷이 아닌, 가벼운 무장을 한 기사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익숙한 얼굴이 둘, 별로 보지 못했던 얼굴이 둘 있었다.

나는 일행을 대표해 기사들 앞에 나섰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입니다. 레보 님. 이번에는 좀 덜 위험한 상황이라 다행이군요."

피식.

기사 레보. 과거 3층에서 열심히 성벽 위에서 싸울 무렵 뒤늦게 찾아와 내게 수고했다고 말했던 기사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대들을 연행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군."

"그거 다행입니다. 그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툴라 님."

"이럴 수가, 툴라 선배가 저런 농담을? 이거 정말 신기한 일인데요?"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쾌한 성격으로 보이는 기사가 말했다.

"툴라 선배랑 레보 선배는 농담이라곤 절대 안 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레보 선배가 웃게 만들고 툴라 선배가 농담을 하게 하다니 역시 유신후 님. 대단합니다!"

"…그게 대단한 겁니까?"

"그럼요! 제가 막내긴 한데, 이제껏 레보 선배님이 웃는 모습은 손에 꼽힐 정도고, 툴라 선배의 농담은 오늘 처음 들었단 말입니다!"

쿵!

"으악!"

"그만해라 리타프. 체면 좀 지켜.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아, 코리 선배! 아픕니다! 머리를 때리면 어떻게 하십니까?"

"맞아도 싸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호들갑부터 떠는 게냐?"

"아차차, 그렇네요. 유신후 님, 소개는 처음입니다. 저는 리타프, 멜리드 기사단의 막내입니다. 이번 원정, 잘 부탁드립니다."

"…정찰입니다만…."

"뭐, 정찰이나 원정이나요. 목숨 걸고 가는 것은 똑같죠 뭐."

유쾌한 성격의 기사였다.

"나는 코리라고 하네. 그런 일을 겪고도 영지를 위해 이런 위험을 감수해 준 점에 경의를 표하지."

"아, 아닙니다. 영주 님께서도 저희 같은 용병을 위해 저주의 계약서라는 귀물을 써 주셨는데, 이 정도 보답은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네를 보면 정말 이제껏 만나왔던 용병과 모험가는 뭐였는가 싶군. 자네 같은 이가 용병이라니… 정말 아깝군, 아까워."

툴라는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툴라 선배가 극찬을…."

"그만해라 리타프."

"네. 그러죠 레보 선배님."

또다시 호들갑을 떨려는 리타프를 향해 레보는 조용히 경고를 날렸다. 이중 최고참이 레보 인지, 리타프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막내가 리타프, 최고선임이 레보, 코리와 툴라는 동기 정도로 보였다.

나는 그런 기사들을 향해 계획된 일정을 소개했다.

"기본적으로 5일 정도 안에 정찰을 끝낼 계획입니다. 우선 저희가 갔던 루트를 통해 최단 루트로 파고들어 대 부족을 먼저 확인할 계획입니다. 아무래도 대 부족을 중심으로 몰려올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확실히 그렇겠지. 이제껏 주기적인 토벌로 중심이 생기지 못했기에 그들의 세력이 작았던 것이었으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고블린이 아무리 약해도 몬스터는 몬스터라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지. 이번에만 잘 헤쳐나가면 앞으로 아무리 영지 상황이 좋지 못해도 주기적인 토벌을 할 계획이라네."

"네. 확실히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대 부족을 확인한 이후로는 그 주변을 돌면서 얼마나 많은 부족이 존재하는지 한 번 확인할 계획입니다. 그들이 뭉치는 속도를 보면 대략적으로 공격할 타이밍이 나올 테니까요."

내 말에 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계획이네요. 아아, 부디 5천은 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위로 가면 아무리 저희 성이 튼튼해도 위험하거든요."

상시 운용하는 병사가 고작 300남짓. 성 내부에 거주하는 인간은 수천 단위. 위기 상황인 만큼, 성 내 거주민들은 하나같이 징집되어 방어전에 투입될 거다. 그렇게 되면 장비는 모자라도 수는 부족하지 않다. 문제는 성 내부에 식량이 많지 않다는 거다.

포위된 상태로 오래 전투가 끌리면 아마 성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거다.

게다가 마을 밖의 인원을 성으로 받아들이면 더 최악의 상황이 될 거고.

그마저도 5천이 넘어가면 방어전도 제대로 치루지 못 하겠지만. 수성전이 훨씬 유리하다고는 해도, 애초에 상시 유지 중인 병사가 300이다. 수만 많을 뿐. 영민들이 얼마나 잘 싸울지 모르겠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잘 부탁하겠습니다, 유신후 님."

"저희야 말로요 리타프 님."

우리는 속도를 좀 내서 숲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다르게 다들 체력은 10이 넘는 상황.

마력도 모두 개방한 만큼 체력적인 문제는 없었다.

그런 우리들을 보며, 전원 마력을 개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사들은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그 미소 한 번 보기 힘들다는 레보마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니, 일행이 얼마나 특이한 경우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NPC기준에서 일 뿐, 수련자들은 튜토리얼에서 살아만 남으면 마력을 개방하는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훈련은 부족하지만, 다들 재능이 있군. 마력을 개방한 인원이 다섯이라니… 게다가 넷이 여성. 정말 대단해."

"저도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이거야 원, 아무리 영웅이라고는 해도, 용병분들에게 질 수는 없죠."

"너는 더 노력해야 하는 게 맞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군."

"아, 너무하십니다, 툴라 선배."

가벼운 잡담. 다행히 그들도 나를 제외한 일행의 체력이 좋지는 못해, 속보를 하면서 말을 했다간 체력이 금방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는지 일행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아무리 튜토리얼이라도 기사는 기사. 그들은 단숨에 일행이 마력을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순식간에 눈치챘다.

빠르게 이동한 보람이 있어, 숲에 도착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숲에 들어가는 순간 기사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 가벼운 모습을 보였던 리타프마저 푲을 지은 채 발소리를 죽여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부터입니다. 주변의 경계를 나누죠. 제가 정면, 기사분들은 뒤와 양옆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왼쪽을 하겠습니다."

리타프는 이제까지 보였던 장난스러운 모습을 지운 채 진중하게 대답했다.

"내가 오른쪽을 하지. 코리, 네가 뒤쪽 하는 게 어때?"

"그러지."

다른 방향을 각자 결정하는 기사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머지 일행을 향해 말했다.

"레보 님, 전체적으로 부탁드립니다. 너희도 긴장 놓치지 마. 기사분들이 한 방향을 집중적으로 해 주신다고 해도, 긴장을 놓아선 안 돼. 저번에도 죽을 뻔했던 것 잊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나는 일부로 일행을 향해 말을 놓고 편하게 말했다.

"네 오빠."

"알겠어."

"네, 파티장 님."

"네, 신후씨."

각양각색의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부터는 말을 되도록 삼갑니다. 제 손에 집중해 주세요. 수신호를 통해 대부분의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영주를 통해 내가 리더임을 확인받은 상황인 만큼, 기사들을 향해 거리낌 없이 말했다.

기사들도 나를 인정한 상태. 그들은 군말 없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금 출발한다는 신호를 보낸 후 곧바로 숲으로 돌입했다.

과거 지났던 루트가 아닌, 더 가까운 길을 선택해 안으로 침입한다.

나는 망설임 없이 길을 찾아 움직였다. 첫 부락을 발견하기까지는 과거에 걸렸던 시간의 반의반도 걸리지 않았다. 과거에는 빙 돌아가야 했으나, 이번에는 거리낌 없이 지름길을 선택했고, 이전과는 다르게 전원이 마력을 개방한 상황. 가장 느린 남은주의 속도에 맞춘다고 해도 마력이 없던 때와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쉿.

나는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를 보낸 후, 조심스럽게 부락이 있는 위치를 가리켰다.

이렇게 빨리 부락을 발견할 줄을 몰랐기 때문일까. 기사들은 진중한 가운데도 놀란 기색이었다.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고블린들은 마력이 없으니 우리보다 훨씬 느리겠지만, 그래도 이 부락과 성까지의 거리가 하루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 사실을 눈치챈 기사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심스럽게 부락으로부터 멀어지자 침중한 기색의 레보가 조용히 말했다.

"이리 가까운 곳까지 고블린의 세력이 늘어났다니… 몬스터란 족속은 하나같이 얕볼 수가 없군. 대 부족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고블린들의 속도라면 하루 반나절 걸릴 거라 예상합니다. 저희들은 오늘 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고 가정하면 점심이 지나서 도착하겠군요. 하지만 다른 고블린들의 눈을 피해야 하니, 아마 저녁 무렵에나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정찰할 필요가 있겠네. 닷새로는 부족하겠군."

"식량은 보름 치를 받아 왔습니다. 필요하다면 더 늦을 수 있다는 말도 전했으니, 최대한 꼼꼼하게 하고 가는 게 좋겠죠. 정찰 기간은 기사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했습니다. 원하시는 만큼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그런가…. 우리보다 그대가 더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었군. 닷새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역시 직접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다른가. 우리가 고블린들을 너무 얕봤군."

침중한 기색의 레보.

다른 기사들 또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오늘은 더이상 움직이기 힘듭니다. 안쪽으로 파고드는 대신 주변을 돌면서 확인하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다시 한번 잘 부탁하지."

전투는 없을 예정이었기에 일행을 임시로 반으로 나누었다.

만약을 위해 코리와 나연, 주하연과 남은주를 야영지를 준비하도록 시켰고, 나서윤과 나, 나머지 기사 셋이서 속도를 내 더 많은 방향을 정찰했다.

나서윤을 포함한 이유는 나를 제외하고는 마력이 뛰어나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마 나와 기사 셋의 움직임을 따라오려고 기를 쓰다 보면 체력과 마력이 조금씩 더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초반인 만큼 성장이 빠를 터. 기회가 있을 때 더 굴려야 했다.

이전에 왔을 때보다 부락이 더 늘어있었다.

처음 발견했던 부락 주변에만 다섯 부락이 더 있었다. 외곽이 이 정도라면 내부는 얼마나 심각할지를 예상한 기사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만 갔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생각했던대로 더 뽑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두근거렸다.

'NPC 버스 한 번 타 보자.'

내가 7층에서 마지막까지 뽑아먹으려고 하는 것.

그것은 바로 NPC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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