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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5화 (25/317)

# 25

튜토리얼 - 7층

전멸을 예고하는 내 말에 일행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제서야 위기감이 느껴지는지 일행의 기색이 일변했다.

"확실히… 엄청난 수였어요. 그들이 모두 밀려온다면…."

주하연은 4층에서 보았던 고블린들의 대 부락이 떠올랐는지,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남은주는 조금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싶은 듯했다.

"아니, 아니야. 은주야.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봐. 생각해 봐. 이제껏 해 왔던 시험 중에 만만한 게 있었어?"

기억해보면 만만한 미션이 없었다. 1층에서는 전투라곤 해 본 적도 없는 현대인들이 뜬금없이 무기 들고 고블린과 싸워야 했고, 2층에서는 늑대가 습격을 해왔다. 3층에선 바로 옆 성벽이 점령당할 뻔하고, 4층은 최악, 두 명이 장애를 얻었고 모두 죽을 뻔했다. 5층은 쉬운 던전이었지만 뜬금없이 언데드 리자드맨을 만났으며 6층은 요한의 꾀에 모두 누명을 뒤집어쓰고 죄인이 될 뻔했다.

생각해보면, 나를 제외한 다른 인원들에게 탑은 정말 지옥일 거다.

…사실 탑은 좋은 곳인데… 지구의 상황이 막장이다 보니 탑도 이런 것뿐이다. 강한 인원을 뽑을 필요가 있으니까. 탑은 재능있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대가를 안겨주는 곳이다.

'뭐 나도 과거에는 탑을 현세에 강림한 지옥 같은 거로 여기긴 했으니까. 도긴개긴인가.'

"그럼 어떻게 해? 여기서 걔들이 쳐들어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 거야?"

"쳐들어오면 막아야겠지. 그런데 봤던 놈들의 수를 봐. 아마 모든 부족을 통일하면 수천 단위의 고블린이 몰려올 거 같은데… 여기가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봐?"

정확히는 만이 넘는다. 내가 살아남은 것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성의 모든 시민이 도망치고, 죽어가는 와중 그들을 미끼 삼아 힘겹게 빠져나왔으니까.

6층의 보상인 마력의 영약으로 마력을 깨우지 않았다면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터다.

나는 생각난 김에 마력의 영약을 확인했다.

[마력의 영약]

-사용 시 능력치 마력을 무조건 '1'상승시킨다.

-거래불가

이 영약을 사용하는 최고의 방법은 타 영약과는 다르게 두 가지다.

하나는 타 영약과 마찬가지로 능력치 99일 때 사용하는 것. 다른 하나는 마력 능력치가 0일 때 사용하는 것이다.

과거 내가 두 번째 경우였다.

나는 곧바로 일행에게 물었다.

"혹시 영약 쓰신 분?"

"…아뇨. 아직은 능력치가 잘 오르길래 쓰지 않았어요."

"나도 그래. 안 썼어."

"저도요 오빠. 안 썼어요."

"…저도… 하연 언니가 쓰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좋은 선택입니다. 저도 요새 느끼고 있거든요. 능력치가 오를수록 능력 편차가 큰데, 최근에는 잘 안 오르더군요. 나중에 진짜 오르지 않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말했다.

"마력 능력치, 아직 0이신 분 계십니까?"

내 말에 주하연과 남은주가 손을 들었다.

"그럼 마력의 영약은 사용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레벨이 다들 몇이시죠?"

"6이에요."

다른 일행의 레벨은 나와 다르게 동일했다. 내 레벨은 8로, 정찰 당시 남아서 고블린들을 학살한 것과 홀로 남아 언데드 리자드맨을 죽인 것이 차이를 만들었다.

"마력이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레벨이 6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력 스텟이 0이라면… 일단 1을 만들어 수련을 통해 상승시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예상 대로면 이번 층은 위험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미리 훈련을 할 필요가 있겠어요."

"이번에 저는 영주에게 부탁해 기사들을 지원받아 정찰을 가볼 생각입니다."

"네?! 왜 그런…."

"안 돼요, 오빠!"

"가야 합니다. 만약 고블린들이 예상대로 습격을 해 온다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성을 버리고 도망쳐 숲에서 한 달을 버틸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

"그러니 되도록이면 빨리 마력 능력치를 올리는 게 좋습니다. 정 안되면 저 혼자 기사들과 다녀올 예정입니다."

"저도, 저도 갈 거예요!"

"…위험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난 괜찮으니까."

"오빠도 위험해요! 어떻게 오빠 혼자 보내요!"

"맞아. 그건 나도 반대야. 신후야, 넌 너무 혼자 짊어지려 해."

"…혼자 아니라니까. 기사 지원받을 거라고. 영주도 받아들일걸?"

"…일단 알겠어요. 마력의 영약을 사용할게요."

나와 나연 자매가 가볍게 의견 충돌을 일으키자 주하연이 중재했다.

"하루라도 빨리 익숙해질 테니, 같이 가요. 아무리 기사들과 함께라도, 혼자 가시는 것은 저도 반대니까요."

"…맞아요."

남은주는 아닌 거 같다. 위험한 곳으로 가고 싶지는 않겠지.

하지만 대세에 따르기로 한 듯했다. 확실히 마력은 탐나는 것 같았고. 누가 안 그러겠냐마는, 일행 중에서는 남은주가 가장 자신의 안위를 신경 쓰는 편이다.

게다가 생각하는 것이 대강 보인다. 가고 싶지는 않지만, 나하고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럴 만도 하다. 내가 해온 게 있으니까. 그녀가 보기에 내가 있는 장소가 제일 안전한 곳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둘을 향해 말했다.

"그럼 우선 마력을 각성시키죠. 마력 각성 이후에는 마력 운용에 대해 교육을 해드리겠습니다."

아마 별로 필요는 없겠지만. 몇 가지 팁을 주는 게 다일 거다. 괜히 0에서 1을 갈 때 마력의 영약을 먹는 것이 최고 효율 중 하나인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재능이 부족해도 이렇게 사용하면 기초적인 마력 운용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나도 1회차에서 마력의 영약을 먹고는 즉시 마력을 쓸 수 있었고, 덕분에 살아남았으니까.

이는 탑 밖에서는 불가능한 재주로 안다.

물론, 고급 운용이나 응용 쪽으로 가면 재능과 노력이 매우매우매우 중요해지지만. 특히 압도적으로 재능이 중요하다.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좋은 스승이라도 있지 않은 한,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주하연과 남은주는 곧바로 마력의 영약을 섭취했고, 한동안 눈을 감고 명상이라도 하는 듯하더니 이내 일어나서는 곧바로 마력을 사용해 신체를 강화했다.

"…이게 마력이군요. 대단해요… 확실히 엄청나요. 고작 1인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니… 한순간이지만 능력치가 두 배 가까이 증폭 가능할 것 같은…."

사실이다. 지금 능력치가 끽해야 10대에 불과하니까.

나중 가면 그보다 더한 증폭률을 경험한다. 물론 그때 가면 마력도 많이 필요하고, 신체 능력치가 높아지는 만큼 수치상 두 배 같은 무지막지한 체감은 불가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력을 이용하면 신체 능력치가 증폭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 우선, 제가 마력을 운용하면서 얻은 팁을 조금 풀도록 하죠. 우선 신체 능력 강화시에는…."

나는 사용하면서 자연스렵게 알게 될만한 팁들을 그녀들에게 베풀었다.

나연과 나서윤은 이미 알고 있는 기초적인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각성한 둘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될 터였다.

간단한 팁을 전하고 이틀 정도는 푹 쉬며 그간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었다. 가벼운 훈련 또한 잊지 않았다. 막 마력을 각성한 두 명이 마력 사용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었고, 나연 자매 또한 실전 감각을 잊지 않도록 훈련에 참가시켰다. 이 둘 또한 얼마 전까지는 일반인이었으니까. 조금만 쉬면 알게 모르게 쉽게 풀어진다.

그동안 영주는 우리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영주뿐만이 아니라 성 내부의 병사나 하녀 하인, 심지어는 기사들도 우리를 대함에 있어 조심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주의 명령도 있었겠지만, 본인들도 꽤나 미안해하는 듯했다.

한동안 좋지 않은 소문이 났었다나? 우리를 욕하지 않은 이들이 적을 지경. 끝까지 믿은 이들은 자랑하고 다닌단다.

그리고 3일째가 되자, 나는 곧바로 영주를 찾아갔다.

이런 일은 미루면 좋지 않다. 1회차 당시에는 아마 보름쯤 되어 쳐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열흘 만에 뚫렸다.

나는 하인의 안내를 받아 영주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똑똑.

"무슨 일인가?"

"유신후 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모셔라."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영주와는 곧바로 만날 수 있었다.

집무실에는 노집사와 영주가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요한과 나머지 둘에 대해 보고를 하는 중이었던 듯했다.

나를 안내한 하인은 노집사와 영주에게 인사를 한 후 물러갔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흠… 솔직히 아직 가보를 찾지 못해 안녕하지는 못하다네. 그래서 말인데, 진짜 아공간 안쪽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계약서가 증명했듯이, 아쉽지만, 방법은 없습니다. 저희도 얻은 지 오래되지 않은 기술이라…."

"그렇군…. 아 오해하지는 말게.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새로운 방법이라도 발견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괜히 물었던 거니까. 그래. 나를 보자고 한 용건이 무엇인가?"

"아, 기사분들을 빌렸으면 해서 말입니다."

"기사들을?"

내 부탁에 영주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다.

무례한 부탁이다. 기사란 영주의 핵심적인 무력이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 기사를 빌려달라니… 아마 다른 사람이었으면 크게 욕먹고 성에서 쫓겨났을지도.

"으음…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은 언제 고블린들이 쳐들어올지 몰라서 한창 바쁘다네. 이번에 전수 조사 건 때문에 대비가 미흡해."

영주는 내 무례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험한 말 없이 부드럽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 때문입니다. 영주 님."

"…무슨 소리인가?"

"이번에 요한 때문에 준비가 어렵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제가 기사분들과 함께 다시 한번 정찰을 나가고자 합니다."

"…뭐라?"

영주는 내 제안에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불쾌함을 감추고 새삼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내 제안은 영주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크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이로운 제안이다.

나와 함께 간다면 확실히 전력을 파악할 수도 있고, 언제 저들이 올지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정보의 중요성은 이루 말하기가 힘들 만큼 영주도 생각은 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나 다른 병사나 기사가 따로 간다면 위험할 가능성이 높았다.

숲은 이미 고블린들의 영역이나 다름없으니까. 안 그래도 병력이 부족한 마당에 그 위험한 임무를 내리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함께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래뵈도 목숨을 걸고-정확히는 나는 안 죽을 자신이 있었지만- 이미 한 번 정찰을 성공한 전적이 있는 사람이다. 경험 있는 용병이 같이 가 준다면 정찰 성공 확률은 대폭 상승한다.

영주 입장에서는 불감청고소원이었을 터다. 우리에게 진 죄도 있고, 세운 공도 파다한데 어떻게 다시금 그 위험한 정찰을 의뢰할 수 있을까?

물론 성의 안위가 달린 만큼 한 열흘 정도 극진히 대접하고는 면목 없어 하면서도 얼굴에 철판 깔고 결국 의뢰를 하긴 했겠지만.

근데 그걸 내가 먼저 말한 거다. 영주가 고마워할 만 했다.

옆에 있는 노집사도 '어찌 내가 이런 사람을 의심했단 말인가!' 싶은 얼굴로 감격하고 있었다.

"저주의 계약서는 무척이나 귀하다고 들었습니다. 고작 용병인 저를 위해 그런 귀물을 써 주셨는데, 성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쉬기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용병단 만으로는 도저히 정찰이 불가능해 기사분들을 지원받고 싶습니다."

내심 말하면서도 최고의 핑계라고 생각했다.

"…정말, 정말 고맙네. 솔직히, 우리가 부탁을 하면 했지 자네들이 나설줄은 몰랐어. 하하… 다른 것은 몰라도 자네들을 데리고 온 것만큼은 저 씹어먹을 요한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군."

차가운 인상이 녹아내린 영주는 봄볕과 같은 얼굴로 말했다.

"기사들을 빌려달라고 했던가? 얼마든지 빌려주지. 의뢰 대금도 아주 후하게 쳐주겠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여기 쥘르에게 말하게나. 전적으로 지원하겠네. 부디 살아서 돌아오게 꼭 좀 부탁하겠네."

"맡겨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계획 대로군.'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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