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튜토리얼 - 6층
[던전 공략이 완료되었습니다. 입구로 이동하시겠습니까? Y/N]
던전 통로를 완전히 무너뜨리자 곧바로 던전 공략 완료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일행이 공략을 완료한 듯했다.
이 통로가 지하수로로 연결됐다는 것을 발견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리게 만들었으니 충분하다.
나는 우선 버튼을 누르지 않고 내가 무너뜨렸던 벽마저 아티팩트 폭탄을 터뜨려 무너뜨림으로써 완전히 입구를 막아버렸다.
콰쾅!
'좋아. 일단 입구는 다 막았으니까….'
나는 즉시 Y버튼을 눌러 입구로 이동했다.
시야가 하얗게 물들며 공간이 뒤틀린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입구에 서 있었다.
"오빠!"
"신후 씨!"
"신후야!"
"파티장 님!"
넷이 한 번에 나를 불러댄다. 크게 걱정했었는지 소환된 나를 향해 순식간에 접근했다.
"어디 안다쳤어?"
나연이 다가와 내 몸 여기저기를 살핀다.
"안 다쳤어. 내 방어력이 몇인데 다칠까 봐? 괜찮다니까?"
"…바로 안 오셔서 걱정했어요. 정말 무슨 일이 있으신 줄 알고…."
"아뇨, 별다른 위기는 없었습니다. 한창 공격을 막는 도중이라 여유가 없었습니다. 크게 물러나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군요."
멀쩡히 돌아오기도 했고, 현장에 있던 내가 그렇다는데 딱히 뭐라 할 이유도 없었다. 내 설명에 일행의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아, 되도록이면 이 몬스터 얘기는 하지 말죠. 어차피 다음 층으로 갈 거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잖습니까? 살아 돌아온 방법을 설명하기도 힘들고요."
굳이 꼬투리를 줄 필요는 없었다. 이미 내가 입구를 막긴 했지만, 일행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다음 층, 다다음 층 미션은 모두 생존 미션이라 일정 시간 이상 버텨야 하니까.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주하연은 곧바로 동의 의사를 표했으나, 나연은 꺼림칙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다음 토벌 때는…."
"이거 던전이잖아. 만약 우리가 나갔는데 그 벽이 복구되면 어쩌려고? 게다가 복구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설명을 요구하면 거기에 언데드를 두고 우리끼리 빠져나온 방법을 설명하기가 힘들어. 그리고 어차피 발견해도 기사 정도면 충분히 상대 가능해. 그냥 묻자."
던전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이 던전의 경우는 연계된 시련에 영향을 주기에 복구가 안 된다. 그래서 내가 벽을 무너뜨린 거고.
그녀는 어딘가 꺼림칙한 표정이었지만, 내가 리더이기도 했고, 내게 워낙 신세를 진 게 많은 데다 어디까지나 자신과 자신의 동생에게마저 이익이 되는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동의했다.
'슬슬 나오나….'
나연의 성가신 성격. 은근히 착하다. 1회차와는 다르게 내가 파티를 주도한 만큼 그녀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슬슬 나와 친해지고 여유가 생기자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조금 더 험한 꼴을 보고 탑에 적응했으면 했다.
착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여유가 있고 자신의 이익을 확실하게 챙긴 이후에 조금 부려야 한다. 그 정도라면 오히려 그녀의 성격이 장점이 될 수 있었다.
만약 함부로 상대를 걱정한다고 조금씩 베풀었다간 순식간에 따라잡히고 역으로 당한다. 실제로 내가 그랬었고. 지구를 위한답시고… 에이 그만하자.
탑을 진행하고 강한 이들만이 남게 될수록 쓰레기들의 함량이 증가한다. 자신의 이득은 철저히 챙기고 지켜야 한다. 그게 설령 정보 한 조각이라도. 이 경우 우리가 정보를 공개해도 득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손해지. 나연은 조금 더 경험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나가 볼까."
지금쯤이면 생명의 반지가 발견되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요한이 더 크게 엿 먹고 우리에게 더 이득이 될지 생각하며 던전을 나섰다.
***
화악!
포탈을 통해 밖으로 이동하자 과거처럼 병사들이 포위해 오는 모습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확인 안 된듯하다.
동시에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5층의 시험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6층으로 이동합니다.]
던전을 나옴과 동시에 이미 일행은 6층에 도착해 있었다.
치료를 받는 두 놈도 아마 그 자리에서 그대로 6층으로 이동했겠지.
이번 던전을 통해 레벨과 능력치를 성장시키지 못했으니 아마 점점 힘들어질 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 낫지 못할 것을 뻔히 아는데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었고, 영주의 의뢰를 미룰 수도 없었으니까. 물론, 미룰 수 있다고 해도 미룰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6층의 시험이 부여됩니다.]
[6층의 시험]
-7일간 생존하세요.
-보상 : 다음 층으로의 이동, 마력 상승의 영약.
드디어 나왔다. 마력 상승의 영약. 이거 덕택에 7층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곧바로 인벤토리를 살펴보자 근력과 체력의 영약이 지급 되어 있었다.
[근력의 영약]
-사용 시 능력치 근력을 무조건 '1'상승시킨다.
-거래 불가
[체력의 영약]
-사용 시 능력치 체력을 무조건 '1'상승시킨다.
-거래 불가
이 영약들은 아껴 놓아야 한다. 과거에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했지만, 이건 묵혀 놓을수록 가치가 상승한다. 아이템 설명만 봐도 알 수 있다. 능력치 1을 무조건 상승시킨다. 같은 수치 1이라도 16에서 17이 되는 것과 70에서 71이 되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으니까.
이론상 능력치 99일 때 사용하는 것이 최고 효율이다.
능력치는 100까지 표기되니까. 그 이후로는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101은 표기가 되지 않으니 능력치 상승이 되지 않는다. 저건 수치를 올려주는 것이니까.
100을 초과한다는 것은 일종의 시스템이 정한 한계를 초월한다는 뜻. 시스템이 정한 한계를 초월하는데 시스템을 쓸 수는 없다.
보상이 제대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뒤, 우리는 보고를 위해 담당자를 찾아갔다.
나와 동료가 등장하자 담당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벌써 다 끝냈는가?"
"네. 다행히 저희 수준에서 쉽게 끝낼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찌 고작 다섯이서 그 넓은 지하 수로를 3일 만에…."
그는 어딘가 의심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가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저희는 확실히 임무를 마쳤으니까요."
"하긴. 우리 성을 위해 자네가 한 공헌이 얼마인데 이런 의심이라니… 미안하군."
"아닙니다. 어쨌든 필요한 절차니까요. 제대로 한 바퀴 돌았으니 아마 남은 놈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지. 어차피 아무리 토벌해도 결국 다시금 나타나는 놈들이니까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그리 죽이고 죽여도 다시금 나타나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더군. 어디서 솟아나나?"
'잘 아네.'
솟아난다. 벽 뒤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공중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그냥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갑작스레 리젠되지만. 물론, 시스템이 관장하는 공식적인 '사냥터'나 던전만 그렇다.
지금 생각해도 탑은 게임과 현실이 뒤섞인, 정말 기묘한 곳이다.
"그래 고생했네. 그럼 우리 쪽에서 확인을 하는 동안 가서 휴식을…."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응?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우리는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노년의 남성이 정갈한 옷차림으로 서 있었다.
갑작스런 노인의 등장에 담당관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인사했다.
"집사님? 여기는 어쩐 일로…."
"아, 여기 이분께 볼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저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유신후 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만…."
"의뢰를 나갔다고 들었는데, 빨리 돌아오셨군요."
"어렵지 않은 임무였습니다. 영주 님의 배려 덕분이죠. 그런데 누구신지…?"
"아, 제가 실수를 했군요. 저는 이 성의 집사인 쥘르라고 합니다."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유신후입니다."
비록 그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지만, 예의상 이름은 한 번 더 밝혔다. 나는 그가 어떤 이유로 나를 찾아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요한이 빨리도 움직였군.'
"이번에 유신후 님의 일행이 의뢰를 나간 사이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잠시 저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일이라뇨?"
나는 짐짓 시치미를 떼었다.
"여기서는… 밝히기가 조금 그렇군요."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는 쥘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따라가죠. 저 혼자 가면 됩니까?"
"아뇨, 죄송하지만 일행분들도 함께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행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곧바로 동의하는 의사를 표했다.
"그럼 따라 오시죠."
우리는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번에… 유신후 님의 방에서 아티팩트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아티팩트가요?"
"네."
"저는 그런 거 없습니다. 제 짐은 멜리드 성에 오기도 전에 숲에서 다 잃었거든요. 그 전에도 아티팩트는 애초에 없기도 했구요. 제 갑옷도 제 전 재산을 바쳐 산 건데 아티팩트라니…."
나는 간단하게 선수를 쳐 버렸다.
"그러십니까… 그런데 그 아티팩트에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그 아티팩트는, 영주 님의 것입니다. 아티팩트에, 영주 님 가문의 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설마 제가 훔쳤다고 보시는 겁니까?"
"성을 몇 차례나 위기에서 구해준 영웅에게 할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긴 합니다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늘 낮에 방을 정리하던 하녀가 발견한 아티팩트는 육체를 회복하는데 특화된 생명의 반지니까요."
육체를 회복하는.
나는 단숨에 쥘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챘다.
'이게 이렇게 연결되나?'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내가 생명의 반지를 훔쳐 파티 원들을 회복해 주려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전혀 그럴 생각은 없었고, 실제로 비밀 창고에서 본 아티팩트들의 성능은 하나같이 허접했다. 내가 망설임 없이 폭탄으로 사용할 정도. 차라리 하급 사제가 쓰는 회복 주문이 더 효과가 있을 거다.
"…그 아티팩트가 저희 일행을 고칠 수 있을 만큼 뛰어납니까? 아니, 애초에 제가 그런 행동을 할 놈으로 보였다니…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의뢰를 해 왔다고 생각해 왔는데요."
"…으음…."
과거에는 다자고짜 감옥에 갇힌 데 반해, 이번 회차에서는 무려 응접실에서 집사가 직접 이야기를 한다.
아직까지는 비밀 창고에 가보지 않은 모양이다.
'타이밍이 아슬아슬했네.'
조금만 늦었으면 영주가 먼저 확인을 했을 터다. 그러면 계획이 조금 꼬인다. 하지만 내가 먼저 창고를 박살 내고 턴 덕분에 효과가 극대화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일행이 다치고 하루 만에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의뢰 준비로도 바빴고요. 제가 이 성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반지고 뭐고 그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다치자마자 제가 어떻게 그걸 알고 훔쳐서 방에 숨기겠습니까? 게다가 의뢰를 하러 가는데 그걸 방에 놓고 간다니… 말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잠시 노집사를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그 전에 훔쳤다면 더더욱 안 쓸 이유가 없습니다. 진작 썼다면 저희 파티원이 그렇게까지 다치진 않았겠죠. 앞뒤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으음…."
내 말에 노집사는 일리 있다는 듯 침음성을 흘렸다.
그때였다.
콰앙!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열리고 한 남자가 응접실로 들어와 외쳤다.
"큰일, 큰일입니다 집사님!"
"…무슨 일입니까? 도대체 뭔 일이길래…."
노집사는 남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영, 영주 님께서 진노를…! 지, 지금 급하게 집사님을 찾고 계십니다!"
'창고에 다녀왔군.'
나는 일이 재밌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