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튜토리얼 - 5층
"히야아아압!"
콰앙!
겁을 떨치려는 듯 강한 기합을 내지르며 언데드 리자드맨의 공격을 맞섰던 남은주였지만, 스텟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다.
"꺄아아!"
단숨에 방패가 작살나고 몸이 크게 뒤로 밀린다. 주하연보다 심각하다. 아예 뒤로 나뒹굴어 버렸다.
나는 곧바로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후퇴!"
일행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이었다.
"나연! 그거 쏘지 마! 바로 후퇴해!"
"무슨 소리야!"
"어차피 안 통해! 내가 혼자 싸울 테니까 모두 다시 돌아가!"
"위험해! 아까 힘으로 밀렸었…!"
쾅! 채앵! 훅!
리자드맨은 우리의 대화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곧바로 나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고 나는 회피 후 연속적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검으로 막은 뒤 3번째로 들어오는 공격을 물러나며 피했다.
3연격.
나는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어그로 관리가 안 돼! 오히려 방해야! 밖으로 나가! 나가서 던전을 클리어해!"
"뭐?"
"아까 들어올 때 봤잖아! 던전 클리어하면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현재 진행도는 94%. 공략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넷이 힘을 합치면 한두 시간이면 가능하다. 거리가 좀 있기는 하지만 두어 군데만 청소하면 되니까.
"혼자서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어! 나가서 던전 끝내버려!"
"그, 그건…!"
실제로 내 말은 틀리지 않았다. 던전을 나가려면 입구로 돌아가서 나가던가 아니면 어떤 이유로 시스템이 관할하는 던전에서 파티원이 고립될 경우, 던전을 클리어하면 빠져나올 수 있다. 숨겨진 공간을 굳이 클리어하지 않아도 진행도 100%는 달성할 수 있다. 물론 여기까지 클리어하면 보너스가 붙지만.
하지만 이들은 그런 경험이 없기에 모른다.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인지 이들은 하나같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거 말고는 방법 없잖아! 그냥 가! 버티는 거라면 몇 시간이고 가능해! 나 알잖아! 우리 하룻밤 내내 도망도 쳐봤다고!"
나는 연속적으로 리자드맨의 공격을 피하면서 버티는 거라면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였다.
웃긴 소리다.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상대로 몇 시간이고 버틴다고? 전문 탱커도 힘든 일이다.
"안돼, 오빠! 이번에도, 이번에도…!"
"이런 젠장! 파티장 명령이야! 당장 후퇴해!"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일행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일까. 나서윤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물러나죠. 빨리,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 낫겠어요. 어차피 우리는 방해에요."
주하연이었다.
"꼭, 버텨요. 두 시간, 아니 한 시간 안에 다 처리하고 올 테니까."
주하연의 말에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 전에 죽여놓을 테니 천천히 해도 돼."
"…빨리할 테니 기다려요."
내가 없을 때는 주하연이 리더다.
주하연은 발길을 떼지 못하는 인원들을 추슬러 빠르게 통로를 빠져나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일행의 기척이 완전히 느껴지지 않을 무렵.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좀 낫네. 다른 애들 언제 키운다냐."
독식하기 정말 힘들다. 이런 연기도 벌써 두 번째고. 나연이 빨리 탑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서의 도덕은 탑에서는 방해다.
그나마 정신적인 면은 주하연이 제일 낫다. 잠재력이 좀 더 높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리자드맨을 바라보았다.
리자드맨은 계속 공격에 실패했지만 언데드답게 기계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공격을 해왔다.
하지만 패턴은 이미 충분히 파악했다.
돌진 공격, 뒤돌며 칼 휘두르기, 회전하며 꼬리 공격과 마지막으로 3연격. 물론 게임 같은 게 아니니 그 외에도 평범한 여러 공격이 있지만, 언데드는 생전의 습관대로 움직이는 버릇이 있다.
그만큼 주로 사용하는 패턴만 파악하면 공략이 쉽다.
내가 뒤로 크게 뛰자 리자드맨은 돌진하며 공격을 해왔다.
"읏차."
나는 가볍게 피하며 옆구리를 칼로 그어버리고 이어서 뒤돌며 칼을 휘두르자 속도에 맞춰 뒤를 돌며 등을 긁어 버렸다.
이어지는 꼬리 휘두르기.
나는 가볍게 피하며 그 경로에 검을 들이댔다.
촤악!
내 근력과 괜찮은 칼의 성능, 게다가 리자드맨의 공격 속도까지 합쳐지자 간단하게 꼬리가 절단되었다.
일방적인 농락.
이제까지 가까스로 상대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에휴. 귀찮게 하네."
리자드맨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언데드는 끝까지 나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3연격 패턴.
내려치고 2회 휘두르기. 나는 그 공격 타이밍에 맞춰 역으로 3번의 공격을 성공시켰다.
전투는 오래가지 않았다.
리자드맨은 목과 팔, 꼬리를 비롯해 갖가지 신체가 분해되어 꿈틀거리는 모습이 되었다.
"더럽게 안 죽네."
나는 리자드맨의 분리된 머리를 부숨으로써 꿈틀거리는 육신을 멈추게 만들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리자드맨의 육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한 장의 티켓이 남았다.
동시에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레벨이 올랐군?'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티켓을 주웠다.
[중급 방어구 교환 티켓]
"…호오?"
중급 방어구 교환 티켓. 튜토리얼에서 얻었던 방어구 교환 티켓 10장 정도의 가치를 지닌 티켓이다. 물론 사용 시 나오는 물품은 다르지만. 더 다양하고 품질이 좋다.
무척이나 좋은 보상이다. 예상치 못한 수입이라고나 할까? 방어구 교환 티켓 2장을 4층에서 써서 조금 아쉬웠는데 이걸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티켓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빠르게 안쪽으로 향했다.
안쪽에는 특이한 문양이 양각된 문 하나가 존재했다.
"찾았다."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열쇠를 꺼내 문의 홈에 갖다 박았다.
끼익- 철컥.
곧바로 열리는 문.
나는 안쪽 통로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이 통로에 언데드 리자드맨이 있었다고 했다.
혹시 뭔가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시간이 조금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피며 이동했다.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이 무색하게도 통로는 텅텅 비어있었다. 구불구불한 통로를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아까와 같은 문이 존재했다.
철컥철컥.
완전히 잠긴 문. 하지만 이번에도 열쇠를 사용하자 간단하게 열렸다.
안쪽으로 문을 당겨 열었지만, 문 앞은 완전히 흙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폐쇄된 통로.'
아는 벽에 귀에 대 반대편의 기척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마력으로 강화한 예민한 신체는 벽 너머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나는 신체를 강화해 흙을 빠르게 파냈다.
흙벽은 두껍지 않았다. 하지만 흙벽을 다 파내자 돌로 된 벽이 나오는 바람에 더는 파지 못했다. 다시 한번 벽 너머의 기척을 감지하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기에 무력으로 벽을 부숴버렸다.
쿵! 쿵! 콰앙!
벽은 무척이나 튼튼했지만, 계속된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다.
비밀 창고.
제법 소란을 피웠는데도 아무런 일이 없다.
위치 자체가 극비라 지키는 이들도 없다. 나는 창고 내부로 침입했다.
"…와우."
창고는 제법 큰 편이었다.
쌓여있는 상자를 열자 안에는 은화와 금화가 가득했고, 한쪽 벽면에는 최고급 보석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금화만 4천 골드가 넘었고, 보석들 가격까지 합하면 이 창고의 보석과 금화는 총합 만 골드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는 수십 개의 아티팩트와 가치 있어 보이는 골동품들이 엄청난 공간을 차지하며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빈 공간이 보였다.
-아르멜리드아 왕비의 목걸이
-생명의 반지
-멜리드를 수호하는 검
"…이미 다녀갔네?"
텍만 있을 뿐 비어있는 자리.
저 세 가지 물품은 요한이 챙겨 갔다. 저 중 생명의 반지는 우리 파티원들 중 한 명의 방에서 나올 거다.
요한이 던져 놓을 거거든.
우연히 방을 청소하는 하녀의 손에 의해 발견된다.
어처구니없는 누명.
저 물품이 발견되자 이게 자신의 비밀 창고에 있던 물품임을 깨달은 영주는 곧바로 이 비밀 창고로 찾아오고, 사라진 물품을 눈치채곤 던전을 클리어한 우리를 곧바로 체포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우리가 어떻게 이걸 훔쳐?
하지만 가보중 하나인 멜리드를 수호하는 검을 잃어버린 영주는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우리를 고문하며 물건들을 어디로 빼돌렸냐고 외쳐댄다.
그리고 우릴 주도적으로 고문한 것이 바로 요한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연과 주하연은 고문이라는 이름 하에 강간을 당하고 온갖 모욕적인 일을 겪는다.
다행히 6층은 생존 미션이라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다들 그 모욕과 고문을 어떻게든 견뎌 냈지만….
'다음 층도 생존 미션이었지.'
그래, 그게 문제였다.
위치도 변하지 않고 다시금 고문이 이어진다.
여기서 나연은 모진 고문과 끔찍한 치욕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주하연은 자살은 아니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중간에 사망한다. 차라리 4층에서 죽은 남은주가 나을 지경.
이 과정에서 김인실은 기회를 틈타 홀로 탈출한다. 결국, 고블린 손에 죽었지만.
빠드득.
그때만 기억하면 돌아버릴 것 같다.
고블린들이 제때 쳐들어와 줘서 망정이지…. 오히려 먼저 탈출한 김인실은 죽었고 되려 내가 살아남았다.
그게 아니었으면 나도 거기서 죽었을 거다. 결국 이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은 인원은 나 혼자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와 달라졌다.
던전 클리어 시간이 무척 짧아져 영주가 다시 오기 전에 내가 여기 도착했다.
요한이 이미 다녀가긴 했지만, 예상했던 바고, 오히려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나는 곧바로 금화와 보석을 인벤토리에 쑤셔 넣고는 인벤토리를 엄청나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 많던 금화와 보석이 소멸한다.
그리고 내 인벤토리는 이 창고를 몽땅 담을 만큼 거대해졌다.
[더이상 인벤토리를 확장할 수 없습니다.]
보석의 질이 매우 좋았기 때문일까. 인벤토리를 더이상 확장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되었다.
이 이상 확장하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역시 귀족.'
시골 변방의 영주라곤 해도, 자신의 영지를 가진 귀족이다. 재력이 제법 괜찮았다.
아티팩트는 별거 없었다. 하층의 아티팩트도 별반 좋은 것이 없는데, 튜토리얼의 아티팩트다.
하나같이 영 쓸모없는 기능들이었다.
'돈만 많은 놈이군.'
정보 레벨을 바탕으로 골동품들을 살펴보자 절반 이상이 쓰레기였다.
내가 가져다준 모조 성배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가치있는 골동품들-몇 개 없었다-을 챙기고 나머지는 남겨 놓은 채 아티팩트를 조작했다.
'여기를 지우고 여기를 마력으로….'
과거 마탑에서 돈을 주고 배웠던 기술.
나는 마력으로 특수 조작한 아티팩트를 골동품들이 잔뜩 쌓인 공간에 집어 던진 후 구석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자 잠시 후.
콰아아앙!
아티팩트가 폭발했다.
"휘유! 위력 죽이는데!"
아티팩트 폭탄. 일종의 기술이다. 스킬 슬롯을 차지하는 종류는 아니지만, 아티팩트 내부를 특수한 방법으로 조작해 망가뜨리면 일회용 폭탄이 된다.
정말 위급한 순간에 사용하는 기술. 주요 장비는 이딴 식으로 사용하면 안 되지만, 던전 등에서 드랍되는 쓸모없는 아티팩트들을 폭탄처럼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
나는 곧바로 창고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고 밖으로 나가며 내가 진입한 통로마저 아티팩트 폭탄으로 폭파시키기며 생각했다.
'어디 한번 좆되 봐라 빌어먹을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