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7화 (17/317)

# 17

튜토리얼 - 5층

다음 날이 되자 간단한 식사 후 사냥이 재개되었다.

식사는 여전히 건조식품. 환경도 더러워서 다들 비위가 상했는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을 내가 억지로 먹였다.

배고프면 전투가 힘들다.

다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힘겹게 육포를 먹었다.

"…따뜻한 음식이 그립다…."

남은주의 중얼거림.

이해는 간다. 힘들게 탈출해서 따뜻한 밥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이런 지하 수로라니. 나야 익숙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나는 어제 정했던 루트를 바탕으로 진행 속도를 조절했다.

"찌익!"

"히얏!"

나서윤은 전투를 지속할수록 왜 그녀가 잠재력 최상인지를 몸소 증명했다.

"…서윤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네…."

"…부럽다."

주하연과 남은주는 이제는 익숙하게 양손의 검을 다루는 나서윤의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눈부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시선을 잡아두면 곧바로 옆으로 이송해 렛맨의 하체를 공격, 기동력을 깎고 나를 무시하는 놈들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는 그들의 어그로를 자연스럽게 내게 넘기면서 빠져나간 놈들을 추적해 처치하거나 다른 놈들의 기동력을 깎는 작업을 반복한다.

내가 전문적인 탱커가 아니고, 스킬도 도발 스킬은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작업이긴 하다.

대충 어그로가 끌리면 나연이 슬라임을 처치하고, 마력이 남을 경우 우리를 지원한다.

나는 최대한 방어만 하면서 나서윤이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었다.

막타는 주로 나서윤이 치도록 만들었다.

생명체를 죽이는 경험은 많이 해 두는 것이 좋다.

나서윤이 생명체를 죽이는 것에 망설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지하 수로에 막 입장했을 때도 이미 고블린과 전투를 조금은 했던 만큼 아주 어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 전투가 끝난 후 미미하게 손을 떨었던 것을 보면, 아직은 거부감이 남아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틀째인 지금, 그 망설임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적응이 무척이나 빨랐다.

"…슬슬 역할을 조금씩 바꾸죠. 이번에는 서윤이가 키퍼로 넘어가고 주하연 씨가 근접 딜러 겸 서브 탱커 역할을 수행하도록 합시다."

모두 경험을 쌓기는 해야 하니까.

나서윤이 제일 급했을 뿐, 이들도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좋은 시간은 끝인가요?"

"언젠가는 끝이 오는 법이죠. 제가 보기에 괜찮아졌다 싶으면 남은주 씨랑 교대하게 되실 겁니다."

"이런. 열심히 해야겠네요."

가벼운 농담에 주하연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틀째에 던전의 70퍼센트를 청소했고, 일행은 환호했다.

남은 진행도는 30%.

주하연은 1층부터 충분히 전투에 참여했던 만큼 저녁 무렵에는 내가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되었고, 남은주와 자리를 교체했다.

남은주는 시간도 늦었기에 2번 정도의 전투를 치뤘는데, 미숙한 모습을 많이 보여 키퍼들이 혹사당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나는 그녀가 실수해도 일정 이상의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언니, 서윤아… 미안해… 내가 잘 못 해서…."

"아니 괜찮아 은주야. 왜 나도 처음에는 많이 흘렸잖아. 응?"

"이정도는 괜찮아요. 언니."

사실 주하연은 남은주만큼 흘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남은주는 계속해서 갈군다고 잘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남은주는 겁이 너무 많았다.

지적을 해도 잘 바뀌지 않았고.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녀의 재능은 낮았고, 이제는 신체 능력마저도 우리 일행 중 가장 부족했다.

내일이면 던전을 나갈 듯한 상황이었고, 비밀 창고의 위치는 어느새 가까워져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나는 힘들어하는 남은주를 용서 없이 내 옆에 세웠다.

"저… 잘 못 하는데 그냥 키퍼를 하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키퍼를 경험 없는 사람이 하게 둘 수는 없어요.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남은주 씨, 아시지 않습니까. 탑은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남은주 씨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어요."

틀린 말은 아니다.

남은주도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알고는 있을 터였다.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시고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해 보죠."

"…네."

나는 일부로 남은주를 옆에 둔 채 전투를 이어갔다.

그래도 남은주는 하나씩 하나씩 배려하며 가르치는 내 모습에 고마워하면서도 수도 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해서 자신감을 계속 잃어갔다.

나중에는 후열을 대피시키거나 일부로 렛맨 일부를 남겨 남은주의 경험을 쌓도록 돕기까지 했다.

열성적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 얘가 트롤링이라도 해서 파티가 아작아면 어쩐단 말인가?

어느새 비밀 창고 근처까지 와 있으면서도 나는 일부러 뱅뱅 돌며 그녀의 수련을 도왔다.

점심때가 지나고 저녁 무렵이 되자 남은주는 그럭저럭 쓸만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딜러 역할을 불가능해 보였기에 탱커 역할을 중점적으로 가르친 게 효과를 보였다. 반복해서 훈련 같은 실전을 반복하자 능력치도 상승해 그럭저럭 1인분은 하게 되었다.

근접 딜러적 소양까지 키워주려면 3일은 더 붙어야 하겠지만, 굳이 그런 역할까지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성격적으로도 안 맞았고. …솔직히 탱커도 겁이 많으면 불리하긴 하지만, 지금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 난이도도 낮았고.

나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곧바로 우연인 척 전투 중 벽으로 렛맨을 밀어붙였다.

쿠쾅!

내가 렛맨을 밀어붙인 벽이 부서지며 렛맨이 벽 안으로 파고들었다.

[숨겨진 공간이 드러납니다.]

"찌이익!"

일행, 특히 남은주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야 익숙해져 가는데, 갑작스럽게 변수가 나타났으니까.

나는 검으로 벽 안으로 넘어진 렛맨을 처리하며 외쳤다.

"우선 빨리 정리합니다!"

대충 일행들이 파티 플레이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변수가 나타났다는 핑계로 나는 곧바로 딜러 역할까지 수행, 단숨에 전투를 종료했다.

"와…."

"…신후가 최선을 다하면 진짜 쉽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신후씨는 진짜 대단하네요. 서윤이도 대단하지만 역시 신후 씨에 비하면…."

"오빠 대단해…."

특히 내게 기초적인 전투를 배운 만큼, 남은주, 주하연, 나서윤은 더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야 그냥 뭣도 모르고 놀랐겠지만, 지금 내가 한 일은 자신들이 해야 할 교범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깔끔한 어그로 관리와 신속한 처리, 급하게 처리하면서도 동선은 전혀 겹치지 않았고 흘린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연이 정령 마법을 쓸 타이밍을 유도하기까지.

전투가 이렇게 쉬웠나 싶을 정도일 거다.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벽이 무너질 줄이야… 지도에도 없는 공간입니다."

내가 지도를 보여주며 말하자 일행은 감탄했던 표정을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들었다.

"메시지 창도 떴어요. 숨겨진 공간이라고.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여기 꼭 가야 할까요? 어차피 지하 수로만 청소하면 될 거 같은데…."

현재 진행도는 94%. 공략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굳이 여길 가지 않아도 5층의 시련은 던전 공략이고, 의뢰도 이렇게까지 구석구석 청소하란 말은 없었으니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통로는 무척이나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기에 여성 진은 하나같이 꺼림칙한 기색이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통로.

"뭐가 있을지 모르긴 하지만… 솔직히 이 던전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위험할 것 같지도 않고, 가봐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던전인 만큼 뭔가 좋은 보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확실히, 이 던전은 난이도가 낮은 것 같기는 해요."

일행은 성장했다. 이제 평균 레벨은 6. 능력치 또한 쑥쑥 성장하고 있었다.

나서윤처럼 엄청나진 않았지만, 전부 들어올 때보다 눈에띠게 강해져 있었다.

"그럼… 가보죠. 뭐, 솔직히 방금 신후 씨 실력이면 별로 걱정할 것은 없을지도요."

주하연의 너스레에 일행은 하나같이 웃는 표정이 되었다.

"그럼 들어가 보죠."

나는 앞장서서 통로로 들어갔다.

통로는 그리 길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들어가자 점점 공간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미미하게 무너진 흔적들이 보인다.

스르르--

흠칫.

나는 곧바로 뒤편의 일행에게 정지 신호를 보냈다.

무언가가 끌리는 소리.

나는 일행을 뒤에 두고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갔다.

어두운 공간.

횃불의 범위 밖이었다.

찰박. 찰박.

물을 밟는 소리가 들려오자 일행들도 슬슬 누군가가 이쪽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꿀꺽.

일행의 긴장된 기색이 느껴진다.

파티원들은 하나같이 무기를 꼬나쥔 채 앞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불빛의 범위에 다가온 녀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검은 비늘, 썩은 살점.

한쪽 눈알은 없었고 움직임은 느리다.

몸 이곳저곳 파인 살점들이 보인다. 상처 때문에 보이는 내부 또한 비늘처럼 새까만 모습이었다.

언데드 리자드맨이었다.

"흡!"

징그럼고 흉측한 모습에 여성 진이 숨을 삼키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스릅.

일정 거리를 둔 리자드맨은 잠시 멈추는 듯했다. 하지만.

"끼아아아아아!"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남은주씨, 물러나요! 셋이서 키퍼를 봅니다! 적은 하나!"

나는 곧바로 리자드맨이 휘둘러오는 녹슨 쿠크리를 향해 마주 검을 휘둘렀다.

까앙!

강한 힘. 견딜 만 하다. 하지만 나는 일부로 살짝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젠장! 힘이 세!"

대략 20대 후반 정도 수준의 근력이다.

게다가 속도도 빠른 것을 보면 우리 파티 정도의 실력으로는 아슬아슬하다. 아마 내가 없었다면 하나나 둘 정도는 여기서 크게 다치거나 최악의 경우 죽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대로 이정도라면 파티원이 한 대나 두 대 정도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신후야!"

나는 나연의 외침에 곧바로 옆으로 크게 뛰었다.

"카사! 파이어 볼!"

훅- 쾅!

나연의 정령 마법이 언데드 리자드맨의 머리에 제대로 적중했다.

대다수 언데드의 약점은 화(火)계통과 성(聖)계통의 속성 공격. 하지만 현재 나연의 수준이 너무 낮은 게 문제였다.

"끼아아아아!"

되려 분노만 키웠다.

리자드맨은 이 마법이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단숨에 나연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괜찮다.'

나는 다급한 모습을 연기하며 리자드맨을 따라 달렸다.

"끼아!"

리자드맨은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녹슨 무기를 크게 휘둘렀다.

"흡!"

앞을 막은 사람은 주하연.

자세를 잡은 그녀는 살짝 달려들며 힘이 덜 실리게끔 방어했다.

괜찮은 기술이다.

하지만 능력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쾅!

"꺅!"

단 한 번의 공격에 방패가 반쯤 파손되며 주하연이 뒤로 크게 튕겨졌다.

그녀는 두세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언니!"

남은주가 다급하게 주하연을 부르며 리자드맨의 경로를 차단했다.

'제법.'

겁쟁이지만 이럴 때는 한다. 다행히 훈련의 성과가 나왔다.

"히얏!"

나서윤이 공격한 틈을 놓치지 않고 리자드맨의 다리를 베었다.

촤악! 팅!

튜토리얼 단검은 리자드맨의 가죽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숏소드가 다리에 상처를 낼 수 있었다.

"끼아아!"

리자드맨은 곧바로 나서윤에게 반격했지만 나서윤은 예상했다는 듯 빠르게 물러나 공격을 피했다.

나는 곧바로 리자드맨의 뒤통수에 검을 휘둘렀다.

쉭!

리자드맨의 반응은 언데드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내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두어발자국 걸어 공격을 피하고는 뒤로 무기를 휘둘러 왔다.

'이새끼 언데드 맞아?'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하고는 리자드맨의 다리를 공격하려 했으나 꼬리로 반격해오는 모습에 곧바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리자드맨은 공격에 실패하자 앞을 막고 있던 남은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그로 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다.

마치 제일 약한 곳이 이곳이라는 듯, 남은주를 향해 무기를 휘둘러왔다.

"이야아압!"

남은주는 겁을 떨치려는 듯 힘찬 기합을 내뱉으며 리자드맨에게 맞서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