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튜토리얼 - 5층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최초로 던전 - 지하 수로에 입장하셨습니다.]
[특전 - 3일간 획득 경험치가 200% 증가합니다.]
지하 수로. 무난한 던전이다.
솔직히 난이도 자체는 지금 내 수준이면 혼자서 깰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획득 경험치 200% 증가, 그러니까 3배가 된다면 효율이 괜찮은 편이다.
렛맨과 슬라임이 그다지 강하지 않지만, 3배쯤 되면 고블린보다 훨씬 효율이 좋으니까. 현재 층이 5층이 되었지만, 그래 봐야 아직 튜토리얼. 더 강한 몬스터는 찾기도 힘들다.
내 레벨이 아직 7에 불과하기도 하고.
나는 요한에게 전달받은 지도를 펼쳤다.
"지하 수로인 만큼, 내부는 제법 복잡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
"그러게요. 지도만 봐도… 지도를 잃어버리면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어요."
주하연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한 번 다 훑어야 돼. 그게 의뢰니까. 그래도 특전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했으면 좋겠는걸."
내 말에 일행은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했다. 지하수로는 어두 컴컴한 데다 횃불에 의지해야 한다.
습하고, 냄새까지 나는 장소에 오래 있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일행은 나 빼고 4명 다 여자다. 더 싫어할 만 했다.
"우선 이동하자. 불은 나랑 나연이가 든다. 나야 방어구도 튼튼하고, 나연이는… 알지?"
끄덕.
나연은 한동안 집중하는 듯하더니 계약한 정령의 이름을 외쳤다.
"카사!"
후륵.
작은 불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령을 소환만 하고 있는 거라면 그리 많은 마력을 쓰지 않기에 미리 소환 해두기로 약속했었다.
"뭐, 뭐죠? 실패한 건가요?"
"네? 여기 있는데요?"
"어… 안 보이는데…."
정령은 마력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저도 보입니다만… 아무래도 마력이 있어야 정령을 볼 수 있나 봅니다. 저도, 서윤이도 마력 능력치가 있어서요. 나연이랑 서윤이 둘 다 이젠 마력을 사용도 할 수 있습니다."
"…세 분 다 마력을 쓸 수 있다라… 이번 의뢰는 조심하면 무난하겠네요."
마력의 힘은 4층에서 충분히 느꼈을 터다. 질투할 법도 한데, 자신들이 안전해졌다는 사실에 더 기뻐하는 듯했다.
과거에는 친하지 않아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몰랐는데, 생각보다 둘 다 성격이 괜찮았다.
"일단 이동하죠.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나를 선두로, 서윤이는 나보다 약간 대각선 뒤로 섰다.
이도류 스킬을 얻은 만큼, 이제는 전위로써 하나씩 배울 필요가 있었다.
나연은 걱정했지만, 탑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음인지 반대하지는 않았다.
주하연과 남은주는 후위인 나연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겼다.
내가 메인 탱커-사실 딜러로써의 능력도 내가 제일 세다-, 나서윤이 근접 딜러나 서브 탱커 역할을 소화하고, 나연은 메인 딜러 역할을, 나머지 둘은 후열을 보호하는 키퍼 역할이다.
키퍼를 둘씩이나 둘 필요는 없지만, 둘은 마력도 개방하지 못한 이들이라 나연이 걱정되어 그리 두었다.
우리는 슬라임의 산성에 저항할 수 있는 무기를 하나씩 허리에 차고 있었다. 불이 약점인 슬라임은 나연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만약을 위해 받아둔 상태.
일행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과연 청소할 때가 된 던전 답게, 오래지 않아 몬스터와 조우했다.
"찌직!"
다수의 렛맨과 슬라임 셋.
나는 곧바로 일행에게 말했다.
"렛맨은 저와 나윤이가 처리합니다. 두 분은 우리가 놓치는 애들을 막아 주시고, 나연아, 너는 슬라임을 중점적으로 처리해."
일행은 고개를 끄덕여 내 말을 잘 들었음을 표현했다.
나는 곧바로 앞으로 달려들었다.
탱커 역할을 하는 이상 먼저 오는 놈들을 틀어막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현재 내 능력치쯤 되면 오히려 앞에서 휘저어주는게 낫다.
나는 나서윤을 각별히 신경 쓰며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랫맨들의 뒤통수를 공격했다.
"찍!"
나는 정찰 의뢰 보상으로 받은 주문 제작된 검을 휘둘렀다.
[제련된 강철 롱소드]
-등급 : 일반
-사용자의 신체적 조건에 맞춰 특별 제작된 롱소드다. 제법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느껴진다.
-공격력 : 8
-옵션 : 수련자 '유신후'가 사용시 공격력 +2
공격력 10짜리 무기. 그것도 롱소드의 공격력이 10이다.
일반 무기치고는 무척이나 높은 공격력이다. 튜토리얼에서 썼던 메이스의 공격력이 2임을 생각하면, 단순히 계산해도 공격력이 5배 증가한 것.
검과 둔기라는 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 능력치에 이 정도 무기면 내가 현재 착용한 방어구도 뚫어버릴 수 있다.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서윤이와 나를 발견한 렛맨이 급하게 기습을 알렸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푹!
"찍…."
한 번의 공격에 목이 꿰뚫린 렛맨은 절명했고, 다른 렛맨들이 급하게 방어 태세를 갖췄다.
나 혼자 다 쓸어버리는 것은 쉽다. 하지만 지금 전투는 나서윤을 교육하는 목적도 있는 만큼, 최초로 죽인 놈을 제외하고는 나는 되도록 시선을 끌고 방어만 하기 시작했다.
물론, 입은 쉬지 않았다.
"나서윤, 너무 느리다! 더 빨리 움직여! 그 정도 속도로 움직이면 되려 우리 동선이 꼬인다!"
평소 잘해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나는 실전인 만큼 일부로 엄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이편이 신뢰를 주기 더 쉬우니까.
"네!"
"전투중엔 대답하지마! 빈틈을 노려! 넌 스킬 있잖아! 그건 재능이 있다는 뜻이야! 어색하게 움직이지 마!"
나서윤은 아직 성장이 덜된 편이었기에 리치가 긴 검을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물론 여자인 만큼 지금 나이대에서 커봐야 얼마나 더 크겠나 싶긴 하지만.
게다가 아직 능력치상 무거운 무기는 힘들기도 했기에 나는 다른 꾀를 내었다. 한 손에는 튜토리얼 단검을, 다른 한 손에는 주문 제작된 숏소드를 들도록 했다.
굳이 두 검의 길이가 같을 필요가 없기도 했고, 이편이 더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도 이도류는 발동되며, 숙련도가 쌓이니까. 나중에 리치가 다른 검을 든다고 해도 숙련도가 쌓이면 금세 적응하니 하루라도 빨리 숙련도를 쌓아야 했다.
내가 나서윤을 가르치는 사이 후열의 나연은 슬라임을 노려 정령 마법을 사용했다.
"카사, 파이어 볼!"
과거에는 파이어 볼이라고 외치며 손을 휘젓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그다지 경계할 인원이 없기 때문일까, 정령 이름까지 외쳐가며 정령 마법을 사용했다.
확실히 정령을 숨기면 위기 상황에 도움이 되긴 했으니까. 최하급이라 거리는 짧아도 위기를 감지해 주기도 하고, 정찰도 가능은 하다. 이런 사실을 숨겼던 것도, 과거에는 믿을 놈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1회차와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와 나서윤의 활약에 렛맨은 후열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만큼 편해진 나서윤은 집중해 슬라임을 노릴 수 있었고, 나는 나서윤을 이끌며 슬라임에게서 최대한 멀어졌다.
쾅!
쾅!
작은 폭발.
꿈틀꿈틀. 푸스스스스!
하지만 슬라임에게 이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괴로워하듯 몸을 떨더니 핵이 파괴된 건지 곧바로 흩어지며 죽어버린다.
잡히면 험한 꼴을 보는 슬라임. 하지만 우리 파티에게는 슬라임의 천적이 존재했다.
푹푹!
"찌, 찌익…."
나서윤의 마지막 공격을 끝으로 첫 번째 사냥은 무사히 끝났다. 나서윤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조금 떨고 있었다.
키퍼 역할인 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구경만 했다.
파티인 만큼 경험치는 일부 나눠 먹기에 상관은 없었지만.
"…쉽네요."
"방심은 위험합니다."
"알아요. 하지만… 슬라임은 정령 마법에, 렛맨들은 두 분을 뚫지도 못했으니까요. 이거, 버스 타는 기분인데요?"
피식.
"두 분이 뒤에서 버티고 있으니 안심하고 싸우는 겁니다. 게다가 아직 초입이지만 나중 가면 뒤에서 올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풀지 마세요."
"네, 신후 씨. 걱정 마세요."
주하연은 조금 자신감이 떨어진 것 같았지만,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가 끝나고 자리를 뜨려고 하자, 렛맨과 슬라임의 시체가 빛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앗!"
이들은 모르겠지만, 던전은 숲과는 달랐다. 던전의 몬스터들은 1층의 고블린들 처럼 죽으면 드롭 템을 남기고 시체가 소멸한다.
드롭 템은 슬라임의 정수뿐이었다.
애초에 1회차에서도 그랬다. 렛맨 하나같이 거지인지 주는 게 없었다.
[진행도 3%]
"…던전은… 특이하네요…."
일행은 동요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서 내부로 진입했다.
루트를 대강 지정한 뒤, 차례차례 전투를 이어갔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공략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던전의 30%에 가까운 부분을 청소했다.
움직이면서 서서히 합이 맞아떨어지고, 자신감도 붙어서 공략 속도가 빨라졌다.
만약 나연의 마나량이 충분했다면 더 빨리 끝낼 수도 있었지만, 아직 나연의 마력 스텟이 많이 부족했다.
소환 유지에 드는 마력이 얼마 되지도 않는 데 카사를 중간중간 역소환을 해야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관리자의 눈동자로 나연을 살펴보자, 레벨은 5, 마력은 7이었다.
던전 효율이 좋아 고작 30%공략을 끝냈을 뿐인데 벌써 레벨이 5다. 입장 전 레벨이 나서윤과 같은 3이었음을 생각하면 벌써 레벨이 2나 올랐다.
공략이 끝날 쯤이면 7은 되어 있지 않을까?
나도 그때쯤이면 8은 넘었겠지.
우리는 쉴 만한, 물이 적고 안전한 장소를 정한 후 야영용 텐트를 쳤다.
"…이 속도면 3일 안에 깔끔하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걱정했는데, 영주 님이 그래도 쉬운 일을 주기는 했네요."
나연과 주하연이 나누는 대화에 남은주가 끼어들었다.
"그, 그래도 너무했어요.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의뢰라니…."
"탑이 문제죠. 탑이…. 어쩌다 갑자기 끌려와서…."
소환된 시각이 한국은 새벽이었던 터라, 거인이 침공한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한동안 이들은 지구가 어떤 꼴인지 알지 못한다. 소문이 나긴 하지만 대부분 불신한다.
중층에 가서, 타 국가 인원들과 만나며 알게 되겠지.
그만큼 동양 쪽 인원들은 서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인원보다 절실함이 부족해 개발이 늦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여성 진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내게 살짝 엉겨있는 나서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시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들을을 피해 영주의 비밀 창고를 털어먹을 수 있을까?
내심 자연스럽게 이들과 갈라질 방법이나 위기를 연출할 방법을 고심했다.
던전 난이도가 너무 낮다. 내가 없어도 최대한 안전하게 사냥하면 여성 진 넷이서도 클리어 자체는 가능하다. 시간이 엄청 걸리지만. 그만큼 어려운 던전이 아니었다.
자는 동안에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불침번을 버리고 갈 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없는사이에 뭔 일이 있을 줄 알고. 내가 없는 상황에 렛맨과 슬라임이 기습하고, 자고 일어나느라 반응이 늦었다간 우리 파티가 전멸할 수도 있었다.
정말 애매했다.
…결국 머릿속에 생각나는 방법은 하나.
나는 인벤토리에서 한스에게서 훔쳤던 열쇠, 그리고 같이 있기에 챙긴 지도를 꺼냈다.
'언데드 리자드맨.'
그것밖에 없다. 위기를 연출할 대상은. 이 던전에 보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고민하는 동안, 어느새 피곤해졌는지 나서윤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만 자죠. 일단, 초번은 제가 서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다들 피곤하기도 했기에 초번은 그냥 내가 서기로 했다. 사실 초번이 편하기도 하고, 고민을 끊고 싶지 않았다.
일행들 또한 별다른 반발 없이 잠자리로 향했다.
나는 지도를 들여다보며 내일 있을 토벌 루트와 위기를 연출할 방법을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