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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5화 (15/317)

# 15

튜토리얼 - 5층

똑똑.

"…누구세요?"

"나야. 신후."

벌컥!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오빠!"

"신후? 무슨 일이야?"

나서윤은 나를 격하게 반겼고, 나연 또한 의아해하는 듯했지만 무척이나 반가운 기색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누군가의 방을 찾아간 적은 처음인 듯했다.

하도 먼저들 찾아와서 갈 일이 없기는 했지만.

"아아. 이번에 스킬 슬롯이 생겼잖아."

"아. 응."

"전력 파악을 하고 싶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번에 그… 두 명이나 전력 이탈을 했으니까. 안타깝긴 하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지…."

미래에는 이런 정보 오픈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아주 오픈을 안 할 수는 없었지만, 슬롯 개수나 자세한 스킬 설명은 되도록 피했다. 모든 스킬과 능력치를 낱낱이 분석 당하면 실력이 떨어지는 인원에게도 죽을 수 있었으니까.

내 말에 나연과 나서윤은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응…. 그렇지…."

나는 둘을 향해 말했다.

"나는 일단 스킬 슬롯이 6개더라. 고유 스킬은 사제 스킬을 2계통 배울 수 있는 능력이래. 랜덤 스킬 카드에서 일반 스킬인 근력 강화가 나왔고. 너희는 어때?"

거짓이다. 마력을 이용해 근력을 강화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속일 수 있기에 한 말일 뿐. 스킬 카드는 아직 쓰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배울 생각도 없고. 나는 미래에 배울 스킬들을 모두 정해 놓았다. 게다가 첫 스킬은 랜덤 성격이면서도 자신의 잠재력에 맞는, 가장 적합한 스킬이 나오는 만큼 아껴 놓으면 나중에 필요한 스킬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그 외에는 전부 사실을 밝혔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둘은 확실히 끌어 들어야 하는 만큼, 나중에 들킬 가능성이 높은 거짓말은 피하고 싶었다. 고유 스킬의 등급은 고의로 누락했지만.

그러나 나와는 다르게 얘들은 스킬 카드를 쓸 필요가 있었다.

자신과 적합한 스킬, 즉 자신과 잘 맞는 직업을 미리 알 수 있게 해주는 기회니까.

게다가 마법사인 나연은 적어도 6개, 아니 7개 정도의 스킬 슬롯이 필요하다. 한 계통 특화라면 3~4개로도 가능하지만, 그랬다간 여러모로 부족한 마법사가 되기 쉽상이다. 한 계통 특화에 1군 수준이 되려면 6슬롯, 1계통 특화에 1계통을 서브로 놓으려면 7슬롯은 필요하다.

나연이 입을 열었다.

"아직 스킬 카드는 안 써봤어. 하지만… 확실히 전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말에 동의해. 바로 써 볼게."

"저, 저도요. 바로 써 볼게요."

둘은 허공에 손짓하기 시작했다.

바로 관리자의 눈동자를 써도 상관은 없지만, 우선 듣고 나서 쓸 생각이었다.

"어… 응…. 그게…."

둘은 스킬 카드를 사용한 뒤 뭔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뭔데 그래?"

"그… 레어 등급의 정령 계약이라는 스킬이 나왔어…."

뭐?

"…너 고유 스킬이 뭐야?"

"'정령 친화력'인데? 등급은… 슈퍼레어네."

'마법사가 아니었나?'

내 과거 기억에 따르면 나연은 불덩이를 날렸….

'아차!'

불덩이를 날리는 것은 굳이 마법사가 아니라도 가능하다.

내 과거 인식이 굳어져 그랬을 뿐, 고블린 주술사도 주술로 불덩이를 날렸고, 정령사도 가능하긴 하다.

불의 정령과 계약하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이 당시 나는 마력 능력치도 개방을 못 한 상황이었으니… 5층에서 정령의 모습을 아예 보지도 못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마법사라고 생각할 만도 했다. 정령사는 엄청, 엄청나게 희귀한 직종이니까.

'하필이면….'

아니, 방법은 있다. 어쩌면 이게 나을지도.

"슬롯, 스킬 슬롯은 몇 개야?"

"7개."

7개. 충분하다. 사실 정령사는 극히 희귀하지만, 그렇다고 정령사가 좋은 직업은 아니었다.

정령 자체는 무척 강하다. 상급 정령 수준만 되어도 1군 파티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랭커보다는 좀 부족할지 몰라도 상급 정령 셋이면 어지간한 랭커도 전투를 피한다. 최상급 정령은 개개가 어지간한 거인보다도 강하다.

하지만 종족이 문제다. 인간은 정령 친화력 스킬이 있어도 한계가 명확하다.

엘프라면 모를까, 인간은 상급은커녕, 중급 정령과도 계약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내가 아는 한 정령사의 숫자는 100명도 안 되는, 진짜 희귀한 케이스였다.

그러나 단 한 명. 정령사임에도 1군 파티의 멤버가 된 이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리 능력치가 높지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고대 정령.'

고대 정령. 4대 속성에 속하지 않는, 특이 케이스의 정령이다.

고대 정령은 등급이 없고, 정령사와 함께 성장하는 성장형 정령이다. 그는 이 정령을 성장시켜 중급 수준의 정령으로 키워 냈다.

그의 마력 능력치가 부족해 더이상 성장시키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의 재능이 출중했다면 어쩌면 유일한 정령사 랭커가 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정령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제법 오래 걸리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른다.

스킬 슬롯도 7개니까.

"그렇군. 서윤아, 너는 어때?"

"그게… 제 고유 스킬은 마력 친화에요."

마력 친화. 마법사의 기본 조건 중 하나다. 그게 고유 스킬이라고? 슬롯 하나를 아낀 것과 마찬가지다.

'마법사인가? 잠재력 최상급 마법사면….'

"등급은?"

"그, 전설…."

미친. 순간적으로 '대마도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전설… 와 서윤아, 너 진자 대단한다. 스킬, 스킬은 뭐야?"

"그게… 스킬은… 이도류(二刀流)라고…."

엥?

"이도류?"

"네. 양손 검술이래요. 등급은… 슈퍼레어에요."

슈퍼레어급 양손 검술. 극히 희귀한 스킬이다.

근데 하필이면 고유 스킬은 마법사에게 유리한 스킬인데 튜토리얼 랜덤 스킬 카드가 이도류 스킬을 줬다고?

앞서 말했듯 튜토리얼 랜덤 스킬 카드는 자신과 가장 적합한 스킬 중 하나를 준다.

즉, 나서윤은 양손 검술에 재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고유 스킬이 마력 친화라는 얘기는….

'마검사.'

나서윤은 마검사의 재능이 있었다.

'하필이면!'

마검사와 같은 두 개의 직업이 섞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잠재력은 한계가 있다.

초기 잠재력은 정해져 있고, 레벨도 위로 갈수록 올리기 어려워지며, 랭커도 최대 레벨인 100을 찍은 인간이 없다고 알고 있었다. 게다가 두 개의 직업이 섞인 만큼 수련도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해서 무척이나 힘든 직업이다. 대부분 이도 저도 아닌 이가 되기 십상이다.

애초에 이런 하이브리드 직업 중에 1군에라도 속한 인원은 진짜 극소수.

딜탱, 마검사, 두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성기사 등은 하나같이 망한 직업이다. 나처럼 특별한 경우라면 모를까….

아니, 내가 최대한 작정하고 스킬 트리를 짜주면 가능하다. 게다가 최상급 잠재력이다.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스킬 슬롯은? 슬롯 개수가 몇 개야?"

"그게…."

나서윤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어딘가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 12개요…."

"…뭣?"

나는 순간적으로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뭔 소리인가? 나는 즉시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했다.

[정보 - 나서윤]

-이름 : 나서윤

-나이 : 16

-LV. 3

-신체 능력

근력 : 5 -〉 10 민첩 : 13 -〉 16 체력 : 7 -〉 8 -〉 11 마력 : 2 -〉 10

[스킬]

고유 스킬 : 마력 친화(전설)

스킬 목록

-이도류(二刀流)(슈퍼레어)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없음

미친.

관리자의 눈동자로 상태 창과 스킬 슬롯을 확인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서윤을 손에 넣은 것은 진짜 대박이라고.

***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나연의 정령 계약을 지켜보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아니나 다를까 나연은 최하급 불의 정령과 계약했다.

최하급 정령인 만큼, 위력은 약하겠지만 불덩이 정도는 던질 수 있었다.

그래도 속성 공격이다. 엄청난 도움이 될 터였다.

그에 비해 나서윤은 아직 제대로 이도류를 다룰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게, 고작 레벨 3이다. 전투라고는 최근 몇 일간 겪은 게 다고, 그마저도 무기 두 개 들고 설친 적은 없었다. 스킬 숙련도가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애초에 이도류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스킬이기도 하고.

하지만 신체 능력치와 마력 능력치의 상승은 미친 수준이었다.

슬롯 12개에 최상급 잠재력. 그녀는 확실히 전무후무한 마검사 랭커가 될 자질이 있었다.

나는 나서윤의 스킬 트리를 계산했다.

스킬 슬롯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배울 버프들까지 합하면 정말 검술과 마법에 둘 다 통달한, 제대로 된 마검사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둘과 헤어져 다른 사람들의 스킬 또한 알아보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별거 없었다. 대부분 2~3슬롯의 스킬 슬롯과, 별로 특이할 것 없는 고유 스킬을 갖고 있었다.

그나마 잠재력이 중상이었던 주하연이 특이했는데, 스킬 슬롯도 5슬롯에 고유 스킬이 무려 슈퍼레어 수준의 '신앙심.'

스킬은 일반 등급의 스킬 '기도'였다. 집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고 한다.

당장은 쓸모가 없지만, 10층에 도착해 사제로 전직, 회복 계열 신과 계약하면 괜찮은 힐러가 될 자질이 있었다. 물론,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던 만큼, '개종'을 잘 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되겠지만. 의외로 과거의 신앙심을 버리지 못해 사제로써 성장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았다.

기도는 신성력을 빠르게 채워주고 신성력 스텟을 올려주기도 하는 아주 좋은 스킬이니까.

게다가 이 스킬은 성장형 스킬. 숙련도를 채우면 스킬 등급이 상승한다. 조건도 간단하다. 일정 수준의 레벨과 신성력 스텟만 달성하면 되니까.

파티의 수준을 알아보고 특히 나연 자매는 끝까지 데려갈 생각이라 이들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을 흘렀고 우리들은 의뢰의 보상으로 각자 맞춤 무기를 주문했으며, 3일 정도 걸린다는 대답을 받았다. 다음 날, 요한이 성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성주의 의뢰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요한은 나를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미안하네! 내가 준 벌레 쫓는 약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고 들었네. 설명이 부족했어… 설마 한 번에 다 태울줄은…. 조금씩 태우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설마 그 정도 상식도 모를 줄은 몰랐네! 정말 미안하네."

"…정말 벌레 쫓는 약이 맞긴 했습니까?"

"물, 물론일세! 내가 준 것은 분명 벌레 쫓는 약이라네!"

그는 강하게 잡아뗐다.

증거라도 남았으면 모르겠는데, 멍청한 박남영이 다 태워버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증거를 가져와도 실수라고 하며 버티면 외부인인 우리보다는 요한의 편을 들어줄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가벼운 벌을 받고 풀려날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가 공을 세운 만큼, 우릴 고용 하는 데 영향을 끼친 요한의 평판도 올랐으니까.

"…이런 상황에 미안하지만, 영주 님께서 의뢰를 하셨다네. 지하 수로를 청소해달라는 의뢰일세."

"저희 파티원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두 명은 아예 용병 일을 하기 힘든 상태구요."

원하던 의뢰가 왔지만, 나는 앓는 소리를 냈다. 덥석 받기에는 실제로 우리 파티 상황이 썩 좋아보이지 않았으니까.

"걱정 말게, 지하 수로의 몬스터는 렛맨과 슬라임 정도일세. 렛맨이야 고블린 수준인 데다 슬라임의 산성을 막을 수 있는 무기도 빌려줄 터이니 어렵지 않을걸세. 아마 자네 혼자서도 가능할 수준일 테지. 지금 자네들의 정보 때문에 병사들을 빼기 힘든 상황이라네. 그래서 자네들에게 부탁하는 게야. 솔직히 미안하긴 하지만, 성주 님께서도 무척 급하셔서 어쩔 수 없네. 보수는 넉넉히 지급될 걸세. 다시 이런 소식을 들고 와서 정말 미안하네."

곧바로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지하 수로 청소]

-영주는 최근 고블린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 그들의 침공을 대비하는 중이다. 병사 인력이 부족한 영주는 믿을만한 용병인 당신의 파티에 지하 수로 청소를 의뢰했다.

-목표 : 던전 지하 수로 클리어.

-보상 : 개인당 1골드.

"…알겠습니다."

[의뢰를 수락하셨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직 무기를 받지 못해서 그러는데, 무기를 받고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2일 후에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게나. 그런 힘든 일을 겪었는데, 바로 가라고 할 정도로 성주 님이 매정하시지는 않다네."

…지금 시점에 이런 의뢰를 갖고 온 시점에서 매정하다고 할 만하지만, 말을 삼켰다.

일행에게 사실을 전하자 어딘가 분한 표정들을 지었지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애초에 5층의 시련은 던전을 클리어다. 하긴 해야 했다.

맞춤 무기를 얻자, 박남영와 김인실을 제외한 파티원들은 곧바로 지하 수로의 입구에 섰다. 시련은 공유되는 만큼, 우리가 깬다면 그들도 다음 층으로 나아갈 수는 있을 거다.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나는 일행을 대표해 Y버튼을 눌렀고, 우리는 던전 내부로 이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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