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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2화 (12/317)

# 12

튜토리얼 - 4층

처음 습격 사실을 눈치챈 것은 어이없게도 자고 있던 나였다.

성장한 신체 능력치는 감각에도 영향을 주었고, 이런 야전에서 습격을 당했던 수많은 경험은 수면 중에도 나를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런 젠장!"

원인을 모르겠다.

어째서 들킨 건가? 게다가 이건 우연히 일어난 일도 아니다. 작정하고 습격을 해왔다.

수는 대략 30남짓. 대부분이 전사 계급이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유신후 씨."

현재 불침번은 박남영과 남은주 둘이었다.

"악몽이라도 꾸신 겁니까? 하하."

나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습격, 습격입니다! 빨리 나머지 애들 깨워요!"

"네, 네? 습격이라니 무슨…."

내 재촉에 둘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젠장, 저기 저게 안 보인다는 말입니까?"

내가 가르킨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던 둘은 잘 모르겟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저기 도대체 뭐가…."

"…키에에…."

멀리서 들리는 고블린 특유의 소리.

"힉!"

남은주는 내 말이 사실인 것을 깨닫고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이럴 수가. 어째서…!"

박남영은 그래도 조금 나은 행동을 보여주었다.

빠르게 일행을 깨우기 시작한 것. 남은주도 곧바로 일행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장비를 벗고 자지는 않았다. 나는 즉시 무기를 꺼내 들고 모닥불을 꺼 버렸다.

하지만 늦었다.

고블린들은 우리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늘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달빛에 의지해 고블린들을 바라보았다.

"키에에?"

의아해하는 듯한 모습.

'우리를 알고 추적한 게 아니었나?'

그러나 당황한 기색은 잠시뿐이었다. 역시 몬스터답게, 자신들의 영역에 인간이 보이자 찢어지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단숨에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뭐, 뭐야!"

"꺄악!"

피곤한 기색의 일행은 몬스터의 습격에 무척이나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런 일이 있을 가능성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다들 신속하게 무기를 꺼내 고블린들에게 맞섰다.

카앙! 캉!

달밤 아래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블린 전사가 포함된 30마리가량의 무리. 솔직히 내가 과거의 신체 능력치였다면 아슬아슬한 상황이라 적당히 싸우다 일행과 빠지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상대할 만한 수였고, 나는 너무 압도적이지 않은 수준에서 신체 능력을 조금 드러내며 고블린들과 맞섰다.

"모두, 기본적인 원진을 만들어 버팁니다! 이놈들, 수는 그리 많지 않아요! 충분히 이길 만합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미리 빠져나가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나는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고블린들의 수를 줄여갔다. 고블린을 몇 죽이자 몸이 조금 가벼워짐을 느꼈다.

레벨 업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일행들은 놀라워하면서도 어딘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적당히 보여준 것이 정답이었다. 너무 압도적인 모습이 아닌, 나름 우리 일행들 수준을 약간 벗어나는 수준. 수치로 따지자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의 신체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리더! 좋아! 버티자! 곧 도우러 온다!"

김인실 은근히 나를 추켜세웠다.

우리를 둘러싼 고블린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조금씩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키, 키에에?"

"어딜!"

하지만 난 놓칠 수 없었다. 이대로 놓친다면 정보가 전해진다. 차라리 몰살시키고 다른 루트를 통해서 의뢰를 완수하는 것이 낫다. 시간이 촉박하겠지만 아직 기회는 있었다.

그때였다.

"키에에에!"

저 멀리서 또 다른 고블린 세력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20남짓의 숫자였지만, 전사 고블린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현재 남은 고블린은 15.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블린들이 이곳으로 계속 꼬이고 있었다.

"이런 젠장! 도대체 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일행들 또한 지원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우리 위치가 발각되었다.

나는 곧바로 일행들에게 외쳤다.

"빠져나갑니다! 여기선 안돼요! 일단 낮에 쉬었던 곳으로 빠져나갑니다!"

"오빠, 오빠는요!"

"곧 따라가! 일단 먼저 가!"

포위망은 반쯤 부서졌으니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내 지시에 일행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재차 내린 지시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단숨에 고블린들의 포위망을 부수고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우리가 도망가자 이제 10마리 남짓 남은 고블린들은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나는 보는 눈이 없어진 틈을 타 마력까지 사용해 신체 능력을 극도로 상승시켰다.

훅- 퍽!

"키, 키에?"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 옆에 있던 동료의 머리가 단숨에 폭발하자 전사 고블린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나머지 고블린들이 모두 죽기까지는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충분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음 반응을 봐서는 고블린들이 몰려오는 이유는 이곳에 인간이 있음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 우리를 목격한 고블린을 모조리 죽여 놓으면 다른 부락의 고블린들이 오더라도 반응이 조금은 늦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뭔가 사건이 있음을 알기는 하겠다만, 적어도 인간이 죽이고 튀었다는 생각은 못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여긴 자기들 영역 한복판이니까.

게다가 추격자들의 수를 줄이는 효과도 있었고.

나는 빠르게 일행이 떠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일행은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꺄아아아!"

"으악 그만, 그만오라고 씨발놈들아!"

일행은 또 다른 고블린 무리들과 전투 중이었다.

수는 15마리 남짓. 충분히 이길만한 수지만, 어둠이 일행을 방해했다.

벌써 세 무리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1회차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요한!'

요한이 무슨 수를 쓴 거다. 식량과 지도뿐만이 아니라 어딘가에도 제흐의 냄새를 묻혀 놓은 거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습격이라니… 낮의 경로를 추적당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알려질 정도면 제흐를 한 무더기는 쓰지 않고서야….

자세한 내용은 차차 확인하도록 하고 우선 일행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힘을 조금 더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또다시 밀려온다.

적게는 열, 많게는 마흔에 가까운 무리들이 사방팔방에서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인벤토리에서 요한이 준 식량을 일부 뿌렸다.

"신후씨, 지금 뭐하시는…!"

"이중 혹시 불침번 중에 인벤토리를 사용하신 분 계십니까?"

처음 발견한 부락이나, 중간 이동 시에 습격은 없었다. 아마 오늘 불침번 중에 누군가 꺼낸 물품이 문제였을 거다.

내 말에 일행은 당황했다.

그러자 남은주가 조용히 말했다.

"박남영 씨가 요한 씨에게 받았다며 벌레 쫓는 약을 모닥불 넣어 태웟어요. 무슨 말린 잎이었는데…."

젠장.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그, 그게 뭔 상관…."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블린 무리가 시시각각 늘어났다.

도대체 얼마나 태운 거지? 냄새가 얼마나 퍼졌길래… 주변에 있는 부족만 5개다. 일행에게 보여준 부족이 두 개 일 뿐. 게다가 제법 안으로 들어왔고 부족들 간의 거리도 가까워졌으니….

내심 나연 나서윤 자매만 데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과거 나연을 생각하면 그런 결정을 할 경우 나를 떠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제법 친해지긴 했어도,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아직은 괜찮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저를 따라오세요. 최대한 빠르게 이동합니다."

나는 결국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차라리 도망치는 것이 낫다. 의뢰 자체는 완수했다고 본다.

이 근처를 찍어주면 영주도 납득은 할 거다. 이대로라면 지하수로 의뢰를 못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깟 히든 피스나 요한 엿먹이기 보다는 나서윤이 더 중요했다.

외곽으로 빠지며 최대한 고블린들의 기척을 피해갔고, 어쩔 수 없이 마주칠 때는 최소한의 무리와 격돌했다.

나는 실력을 반절 가까이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10마리 남짓의 소규모 무리를 순식간에 학살하고 다시금 이동을 시작하자 주하연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신후 시는 어떻게 그렇게 강하시죠?"

"레벨 업과 마력 스텟의 힘입니다."

"…마력요?"

"제 마력 스텟이 5입니다. 최근에야 겨우 쓸 수 있게 됐는데, 마력을 쓰면 신체 능력과 감각이 증폭되더군요."

"마력을 어떻게 얻으신 거죠? 저도 레벨 업을 한 번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력은 0인데…."

"처음부터 마력이 3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요지부동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되더군요. 마력을 쓸 수 있게 되니 스텟 성장도 빨라서 5까지는 금방 올랐습니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훗날에도 들키지 않을 거짓말이었다. 아마 그때쯤 되면 과거의 나를 천재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본래 능력치는 함부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긴 했지만, 어차피 거짓 정보고 일행을, 정확히는 나연과 나서윤을 납득 시킬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신체 스텟 10대 후반 정도에 마력 5면 지금 수준의 전투는 충분히 가능하다.

일행이 바르게 외곽쪽으로 빠지던 와중이었다.

"으아악!"

일행 뒤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을 지른 사람은 박남영이었다.

그의 무릎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저격병!'

고블린 계통의 최상급 직업중 하나인 고블린 저격병이었다.

애초에 화살을 쏘는 궁사도 적은 마당에 저격병이라니….

어째서? 깊숙이 들어오긴 했지만 중심부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는데? 나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바닥의 돌을 주워 마력을 최대한 때려 부어 고블린 저격병의 얼굴을 향해 돌팔매질을 사용했다.

내가 던진 돌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고블린 저격병의 머리를 그대로 터뜨려 버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아있는 저격병의 육신이 쓰러진다. 비명도 없었다.

일행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별수 없었다. 부디 마력이라는 핑계가 잘 먹히기를 바랬다.

"으으으…."

나는 급하게 박남영을 업었다.

"계속, 계속 움직입니다. 시간 없습니다."

내 불길한 느낌은 맞아떨어졌다.

최대한 고블린들을 피해 움직이자 우리는 더이상 외곽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점점 더 숲속 깊숙한 곳을 향해 움직이게 되었다.

포위망이 구성되고 있었다.

아마 옷과 장비에 제흐 냄새가 배길대로 배겼을 텐데, 퇴로까지 막혔다.

탈취제도 많은 양은 아니었기에 겨우 하나나 둘 정도의 냄새만 지울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도망치는 와중 전투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고블린들이 횃불까지 만들어 숲을 밝히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침공당햇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한 모습이었다.

나는 속으로 수도 없이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정말로 나연 자매만 들고 탈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간 앞서 말했듯 나연 자매가 내게서 떠날 수도 있었다.

나는 결국 1회차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며 마지막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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