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11화 (11/317)

# 11

튜토리얼 - 4층

숙소로 돌아가자 제법 늦은 시간이었다.

예상보다 자기절제를 잘 한 건지 아니면 매 미션마다 왔었던 위기에 경각심을 가진 건지 모든 일행은 나보다도 일찍 돌아왔다.

남자 일행은 어느새 형님 동생 하며(김인실이 동생이었다.) 시시덕거리고 있었고, 여자 일행은 각자 구입한 옷들로 갈아입은 채였다.

애초에 일급이라고 해 봐야 일당 5실버 남짓이고 기간도 짧았기에 여러 옷을 사기는 무리였을 터였다.

아마 저게 한계였겠지.

일행이 모인 김에 저녁은 다 같이 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다들 컨디션을 조절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는지 식사가 끝나자 곧바로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나 또한 오늘은 생각할 것이 있었기에 내 방으로 찾아온 나서윤을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

미안하다는 눈빛의 나연에게 대강 고개만 끄덕여주고 침대에 누웠다.

4층, 5층의 계획은 대강 세워 두었다. 운 좋게 히든 퀘스트까지 발견해 의도치 않은 복병까지 생겼으니, 요한을 엿먹이고 최대한 이득을 뽑아내는 일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대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 행도잉 바뀌고 요한의 대응마저 바뀐 지금, 어떤 불의의 일격이 날아올 줄 모른다. 그렇기에 최대한 내 정보를 감추고 이번에 얻은 계승 또한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이번 층은 더욱 중요하다.

왜냐면, 1회차 과거. 이번 층에서도 사망자가 나왔고, 바로 그 사망자가 나서윤이었기 때문이다.

***

아침이 되자 계획대로 정찰을 나갈 채비를 마쳤다.

요한은 우리에게 보급품을 건네며 말했다.

"식량과 약초, 붕대를 조금 넣어 놓았네. 그리고 이건 지도일세. 기본적인 정보와 과거 고블린들의 부락이 있던 위치를 표시해 놓았다네. 물론 이동했을 테니 참고만 하게나."

[멜리드 성 주변 지도]

-멜리드 성 주변을 표시한 지도. 과거 고블린 부락이 위치했던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정보 개방 : 이상한 냄새가 난다.

정보 레벨 덕에 기존의 정보에 추가 정보가 표시되었다.

이상한 냄새. 과거의 경험으로 추측했던 것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한 번 더 확인하자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약한 제흐의 냄새가 배어있다.

제흐. 몬스터, 특히 고블린들이 좋아하는 꽃이다. 야생에서만 자라는 탓에 희귀한 걸로 알고 있다. 무척 맛있다나? 인간에게는 별로 맛있지 않기에 인기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5일 후에 뵙겠습니다."

"영주 님도 기대하고 계신다네.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네."

요한과 나는 서로의 내심을 숨긴 채 웃으며 헤어졌다.

성 밖으로 나서자 일행들의 긴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어쩌죠? 무작정 돌아다녀야 하나요?"

사실 모험가란 것도 꾸며낸 말에 불과했고 용병이라곤 등록한 지 3일 된 현대인이 고블린의 흔적을 조사하고 그들 부락의 위치를 추적, 정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일행들은 조금 불안한 듯했다.

"우선 표시된 곳을 가 볼 겁니다. 무슨 흔적이라도 있기를 바래야죠."

나는 애써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같이 소환된 내가 추적술이나 정찰에 익숙하다면 의아하게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적당히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10개 이상의 부락을 찾아 보고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1회차에서 발견한 고블린 부락의 수는 10개가 넘었었다. 아예 대규모로 부락이 몰려있었으니까.

괜히 3층에서 천 단위의 고블린이 몰려온 것이 아니다.

이미 고블린들은 대규모 부락을 형성했다.

미약한 제흐의 냄새. 이 냄새 때문에 1회차에서는 정찰하는 내내 습격을 당했다.

어떻게 위치를 알았는지 아무리 도망치고 숨어도 찾아오더라니….

지도뿐만이 아니었다. 살펴본 바에 따르면 식량과 약초에서도 추가 정보가 확인되었다. 본래 이런 식량이나 약초들은 정보 레벨이 일정 수준이 되지 않으면 정보 창이 나타나지 않는다. 특별한 아이템이 아닌 이상 모든 아이템에 정보 창이 나오지는 않기에 현재로선 내가 아니면 식량과 약초 등은 확인이 불가능했다.

소모품을 모두 소모하고 마침내 지도까지 잃고 나서야 습격이 그쳤다.

워낙 가져온 정보의 중요도가 크기도 했었고, 대강의 루트를 외운 덕에 다음 층으로는 이동했지만… 아마 대강의 루트를 알 수 없었다면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나는 우연을 가장하여 가장 최근에 이동한 부락의 위치를 찍었다.

대부분의 식량과 물품은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과거에는 서로 일정량을 나눠 갖다가 사망자가 발생하자 인벤토리의 물품을 영영 잃어서 공동으로 관리했었다. 애초에 신뢰도 부족했으니까.

그러나 이번 회차는 다르다. 팀은 하나로 연결되었고, 리더는 나였으며 충분한 신뢰를 얻었기에 손쉽게 인벤토리에 물품을 모두 보관할 수 있었다.

이러면 지도만 처리하면 된다.

나는 곧바로 지도에 탈취제를 사용했다.

[멜리드 성 주변 지도]

-멜리드 성 주변을 표시한 지도. 과거 고블린 부락이 위치했던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추가 정보가 사라졌다.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숲을 향해 나아갔다.

의뢰는 순조로웠다. 어느덧 4층의 시련. 일행들은 하나같이 긴장감을 흐뜨러트리지 않았고, 조용히 서로의 역할만을 해내었다.

처음 찍은 위치까지 가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별다른 위기는 없었다.

출발 다음 날. 부락에 도착하자 내 기억대로 가장 최근에 이동한 부족이었기에 비전문가가 봐도 알 수 있는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고블린들이 철저하게 흔적을 지울 이유도 없어서 우리는 쉽게 흔적을 추적할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네요."

첫 부락을 발견했을 때, 주하연이 저도 모르게 말을 흘렸다.

"그러게요. 이런 행운이 계속된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죠."

사실, 이 부락은 시작에 불과하다. 가장 외곽의 부족이고 조금만 안으로 파고들면 여러 부락이 모여 거대한 마을을 형성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미약한 제흐의 냄새에 이끌려온 고블린들이 우리를 발견했고, 대 추격전이 시작되었었다.

"일단 하나 찾았으니 좀 떨어져서 쉬도록 하죠. 오다가 봤던 큰 바위 근처에 계십시오. 식사는 돌아가면서. 저는 일단 주변을 더 확인하겠습니다."

"아, 그럼 저도 같이…."

"아뇨. 일단 혼자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요. 여기, 일단 식량입니다. 먼저 드시고 계세요. 제법 시간이 걸릴 겁니다."

요한이 준 음식 대신 내가 따로 준비한 음식을 건넸다. 애초에 비슷비슷한 모양이고, 약간 신경을 써서 준비한 만큼 일행이 알아채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어제도 눈치채지 못했고.

어차피 식량은 육포를 비롯한 건조식품들이다. 야외에서 제대로 음식을 먹기는 힘들기 때문에 간단한 건조식품으로 식사를 때우고 있었다. 어차피 의뢰는 5일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의뢰니까.

나는 핑계를 대며 따로 정찰을 위해 일행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감춰두었던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주변을 뛰어다니며 확인했다.

식량 조달을 위해 사냥, 채집을 하는 놈들이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고작 고블린따위에게 들킬 정도로 내 경험이 얕지는 않았다. 간단히 그들을 피해 처음 발견한 부락을 지나쳐 숲속 더 깊은 장소로 향했다.

'역시.'

과거와 똑같았다.

점점 많은 부락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만큼 돌아다니는 고블린들의 수가 많아졌다. 점점 안으로 들어가자 이제는 전사 계급이 직접 정찰을 하는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사냥이 아닌 정찰. 나는 목표 지점에 거의 다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피해 일정 깊이 이상 들어가자 나무들이 벌목되어 크게 공터가 된 공간이 튀어나왔다.

대 부족.

거진 10개 이상의 부족이 뭉친 대규모 부락. 이 부락 하나만 알려도 충분히 다음 층으로 향할 수 있는 업적이다.

게다가 오가며 발견한 부락만 해도 5개는 넘는다.

주변까지 합한다면 별써부터 의뢰를 완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오히려 초과했다.

나는 내가 지나온 루트를 확인하며 최대한 안전하게 이동할 방법을 생각했다.

이것만 발견해 보고한다면 나서윤은 손쉽게 5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

제대로 의뢰를 완수한 뒤 나서윤을 무사히 다음 층으로 보낸다.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시간이 제법 지났기에 슬슬 돌아갈 시간이었다. 마음 같아선 혼자 지도에 표시하고 일행과 함께 확 돌아가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증거가 빈약하다. 나는 더 좋은 루트를 고민하며 일행이 있을 곳으로 복귀했다.

"오셨군요. 좀 늦어셨어요."

"걱정을 끼쳤나 보군요."

내 복귀에 일행들은 반색한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늦은 덕분에 다들 불안한 마음이 든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처음부터 계속해서 내가 일행을 이끌었으니까. 어느새 나는 파티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었다.

"부락을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

"네에?"

내 말에 나서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우연이었어. 아무래도 이번 부락을 지도에 표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까 부락이 더 있더라고. 왠지 이 일대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나는 가볍게 추측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럼… 이 근처에 부락이 더 있다는…?"

"네. 그럴 것 같네요. 안으로 들어가면 부락이 더 있을 수 있으니 조금 더 진입할 예정입니다."

"잘하면 금방 끝내고 돌아갈 수 있을지도…."

김인실은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사냥하는 고블린들의 수가 제법 되었어요. 들키지 않고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음 층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없었다.

우리는 내 인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들어가도 부락은 나오지 않았다. 빙빙 돌아가기도 했고, 앞서 행동했을 때는 내 신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움직였던 거니까.

다들 지쳐갈 무렵 내가 말했던 새로운 부락이 보였다.

"…정말이군요. 제대로에요. 이대로 간다면 얼마 가지 않아 5개를 모두 채우겠는걸요?"

주하연의 말에 김인실이 동의했다.

"확실히 그럴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사냥을 마친 고블린들이 더 깊숙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최소 하나 이상의 부락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의뢰가 무사히 완수될 기미가 보이자 파티는 하나같이 기쁜 기색이었다. 기세를 타 더 안으로 진입해 부락을 두 개 더 발견하자 다들 힘든 가운데도 표정이 밝았다. 나는 일행을 조심스럽게 유도했다.

이대로 하나 더 발견하면 그대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안 될 일이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기에 일행은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지도와 1회차 기억을 더듬어 괜찮은 공터 하나를 휴식 장소로 정했다.

주변을 확인하자 확실히 고블린들이 오가는 흔적도 없었고 동물들의 흔적이 조금 있는, 괜찮은 장소였다.

일행이 자리를 잡고 주변의 흔적을 지운 뒤 작은 모닥불을 켰다. 위험할 수 있어 되도록이면 불을 피하고 싶었지만, 밤의 숲이 춥기도 하고 짐승이 달려들 수도 있기에 불은 필요했다. 적당히 불빛을 가려 범위를 줄이고 모닥불을 중심으로 일행이 둘러앉아 간단한 음식을 먹었다.

"이제 하나만 더 찾으면 돼요!"

나서윤은 무척 기쁜 기색이었다.

"그러게.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오전에 나가도록 하자."

나는 나서윤의 말을 웃으며 받아주었다.

힘들 만도 했다. 아직 체력이 부족하니까. 현재 나서윤의 체력은 8. 관리자의 눈동자로 살피자 과거 7에서 하나 오른 상태였다. 상태 창이 개방된 것도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 잠재력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래도 현재 체력 수준은 우리 일행 중 가장 부족했지만.

불침번 순서를 정한 뒤 일행은 내일을 기약하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요한은 생각보다 용의주도했다. 무난하게 의뢰를 마칠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일이 꼬여버렸다.

이른 새벽. 다수의 고블린들이 우리를 습격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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