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튜토리얼 - 4층
아침에 잠에서 깨자 여성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침대에 남은 작은 흔적만이 어젯밤 있었던 일을 기억할 뿐이었다.
단 하룻밤의 관계.
별다른 미련은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나서자 하나둘 사람들이 일어나 식당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같이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은 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우선 갑옷을 지급 받고 하루 푹 쉬도록 합죠. 내일 오전부터 영주 님의 의뢰를 해야 하니까요."
일행의 반대는 없었다.
우선 나는 요한이 말했던 장소로 가 입구를 지키는 병사에게 영주 님께서 우리들에게 포상을 내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아, 자네들이군. 기다리고 있었네. 자 어서들 오게나."
병사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확실히 어제 우리 일행의 활약(정확히는 거의 내 활약이었다.)은 인상 깊었고 위기를 틀어막은 일등 공신이었으니까.
"여기 장비품 중에서 맞는 것을 찾아 입고 나가면 된다네."
창고 안에는 방어구가 한가득 있었다. 대부분이 가죽 갑옷이고 일부는 플레이트 흉갑이나 투구, 체인 메일도 일부 보였다.
일행은 곧바로 장비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남자 둘은 금세 자신에게 맞는 방어구를 찾을 수 있었지만 여성진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여성용 방어구는 수가 적었고, 사이즈를 맞추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나서윤은 덩치도 작고 성장도 조금 덜 된 상태라 상황이 더 좋지 못했다. 결국 여성진은 가죽 갑옷 위주로 방어구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아직 능력치가 부족한 만큼, 무거운 장비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기에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지급받은 방어구의 방어력을 살펴보자 평균 2~3 수준, 일부 플레이트 흉갑의 경우에는 5에 가깝게 나온 것도 있었다.
현재 내 장비의 수준이 엄청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까 말했듯이 오늘은 휴식입니다. 각자 알아서 행동하시면 됩니다. 내일 의뢰가 있으니, 컨디션은 꼭 조절하시길 바랍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서윤이 내게 다가왔다.
"오빠. 오늘 뭐 하실거에요?"
"내일 의뢰 때문에 준비할 게 있어. 시장 쪽으로 갈 생각이야."
"시장요? 저희도 시장에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여성진은 아무래도 옷과 생필품 몇 가지가 필요해 쇼핑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니, 괜찮아. 옷보다 더 필요한 게 있거든."
"…그런가요."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지. 미안하다."
내가 사과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나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다음에는 꼭 같이 다녀요!"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여성진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성진이 내게 다가왔다.
"신후 씨."
"무슨 일이시죠?"
"그게 말입니다… 요한 님한데 들었는데…."
홀로 소환되었던 남자, 박남영이었다.
"좋은 데가 있다고 하더군요. 낮에도 여는 데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요. 어떻습니까? 남자끼리. 인실 씨는 같이 가기로 했는데."
그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손장난을 보여주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진짜로 볼 일이 있거든요."
내 말에 박남영은 아쉽다는 기색이었으나 재차 권하지는 않았다.
"그거 아깝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일행이 모두 떠난 이후에야 나는 시장으로 향했다.
우선 차례로 가죽 세공점과 화장품 가게, 약초상, 모험가 상점 등을 차례로 돌며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탈취제와 몬스터의 피로 만든, 짐승 쫓는 약품을 구입했다.
탈취제는 만약을 위해서, 짐승 쫓는 약품은 2층에서와 같은 짐승의 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도 만약을 위한 약초와 고약, 붕대, 간이 텐트나 부싯돌 등을 준비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식량을 잔뜩 구입했다.
요한이 말했던 성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식량은 정말 비싼 편이었다.
그마저도 물량이 많지도 않았고.
필요한 물품을 모두 구매하자 가진 돈의 거진 절반가량이 소모될 지경. 대부분이 식량 가격이었다.
인벤토리가 부족하자 나는 곧바로 골드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인벤토리를 확장했다.
이 방법은 8층에 가서야 알게 되는 기능이지만, 1회차의 기억이 있는 내게는 익숙한 방법이었다.
초반에는 골드를, 나중에는 귀중한 보석 등을 사용하고 거기서 더 용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특수한 방법이 필요했다.
아직까지는 골드 확장도 다 못하는 상태. 소지금이 고작 10골드 남짓이라 한참은 남았다.
인벤토리에 식량을 가득 채우자 혼자서 3달은 더 버틸 양이 준비되었다.
인벤토리를 일부 확장하고 식량을 비롯한 물품을 구입하자 어째 10골드 넘게 존재했던 돈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여전히 돈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는 정말 쉬웠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비가 되었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자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무렵, 나는 어이없는 것을 발견했다.
한 NPC의 머리 위로 보랏빛 느낌표가 떠올라 있었다.
보라색 느낌표. 나도 모르게 머릿속 생각이 입으로 흘러나왔다.
"…무슨 히든 퀘스트가 여기서 나와?"
튜토리얼 4층. 1회차에서 소문으로도 듣지 못했던 튜토리얼 히든 퀘스트를 길을 걷는 와중 발견해버렸다.
***
히든 퀘스트.
단어 그대로 숨겨진 퀘스트다. 특정 상황이나 타이밍이 맞는 경우에만 나타나며, 상황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져도 히든 퀘스트가 요구하는 정보 레벨이 없다면 히든 퀘스트가 등장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괜히 히든이 붙는 것이 아니다.
난이도는 퀘스트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단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보상이 끝내준다는 것.
아무리 쉬운 히든 퀘스트라도 그 보상은 어지간한 1군 파티들도 탐낼 정도.
정보 레벨을 계승했을 때 정말 기뻤던 것도 이러한 히든 퀘스트를 선점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뻔히 알아도 퀘스트를 발견할 수도, 수행할 수도 없는 퀘스트. 그림의 떡이다.
나중에야 알려지는 정보 레벨의 중요성을 1회차를 겪은 나는 이미 알고 있었고, 최대한 빠르게 성장해 정보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그게 계승되었다. 솔직히 능력치 계승보다 이 정보 레벨의 계승이 수십, 수백, 아니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득이다.
아마 내가 아는 히든 퀘스트들을 모두 독점하면 나 스스로가 랭커가 될 가능성도 존재했다.
아무튼 그 정도로 히든 퀘스트는 귀중하며, 하나같이 끝내주는 보상을 자랑한다.
그런 히든 퀘스트가 튜토리얼에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회차때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이거 실화인가?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머리 위 느낌표가 떠 있는 NPC를 바라보았다.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이미 취할 대로 취했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는 다리 한쪽이 없었다.
나는 당당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합석해도 됩니까?"
"응? 넌 뭐야?"
"용병입니다. 이번 북문에서 활약한…."
자기자랑은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필요한 경우에도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 아아! 그 영웅님이 그쪽인가?"
묘하게 비꼬는 어조.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무려 히든 퀘스트를 위해서다.
"영웅까지는 조금…."
"아니, 아니지! 이거 영웅을 만났으니 한잔해야지! 자, 같이 마시자고!"
그는 단숨에 나를 술을 마실 핑계로 만들어버렸다.
취한 상대와 친해지는 것은 정말 간단했다.
장기적인 친분은 필요 없었다. 튜토리얼의 특성상 히든 퀘스트라도 장기 퀘스트는 아닐 터. 이런 상황에 술은 정말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싸구려 술을 더 주문했고, 그는 내가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한스. 술 취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 그는 입이 가벼웠고, 어느새 한잔 두잔 대작하던 그는 자신의 인생 한탄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래 봬도 과거에는 잘! 나갔단 말이지! 그때 그 사건만 없었어도! 내가 이리 살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으휴, 또 시작이군."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피해갔다. 유명한 놈인가 보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과거 내가 말이야! 영주 님의 의뢰까지 직접…."
그의 한탄은 간단했다. 한때 잘나가던 건축가였는데, 영주의 의뢰를 받아 한 창고를 수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근데 수리할 창고가 위치가 기밀이었는지 눈을 감고 한참을 이동한 끝에 도착했더랜다. 알고 보니 소문으로만 들었던 영주의 비밀 창고였던 것이다. 자재와 사람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그의 지휘 아래 창고는 완벽하게 수리가 되었다.
그 공을 인정받아 성의 지하수로 보수 공사 또한 맡았는데, 우연히 영주의 비밀 창고와 이어지는 문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술 5병을 그에게 더 먹여야만 했다.
그는 중간중간 멈칫하며 제정신을 차리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는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NPC다.
정보 레벨의 무서운 점이 이것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비밀을 지키려고 했으나, 결국 내게 계속해서 정보를 뱉어냈다.
술에 취한 타이밍, 그의 수준을 압도하는 정보 레벨. 정보 레벨 60은 고작 4층의 NPC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빌어먹을 몬스터만 아니었어도! 그것만 아니었어도!"
"무슨 몬스터 말입니까?"
"언데드, 언데드다. 언데드가 있었어!"
그는 공포에 빠진 표정으로 벌벌 떨었다. 나는 그의 빈 잔에 다시금 술을 채워 넣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벌컥벌컥.
그는 급하게 술을 들이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문이었다. 과거에 폐쇄되었으나 시간이 흘러 드러난 문으로 보였지. 문에 새겨진 문양은 무척이나 익숙한 문양이었다. 그래, 영주 성의 비밀 창고에 있던 문양과 완벽하게 똑같은 문양이었어. 나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영주 성의 비밀 창고에는 비밀 탈출로까지 있었던 거야! 비밀 창고는 영주 성 지하, 그보다도 더 아래 있었고, 여느 영주 성이 그렇듯 비밀 탈출구가 존재했지. 그 통로가 비밀 창고로부터 시작되어 지하 수로로까지 연결되었던 거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나는 이게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지! 오래된 문.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과거의 기술에 불과했어. 문을 여는 열쇠를 만드는 것을 어렵지 않았다. 나는 준비를 마친 채 비밀 창고에 잠입했다. 하지만…. 빌어먹을! 폐쇄된 이유가 있더군. 비밀 통로에는 언데드가 존재했다!"
"어떤 언데드입니까?"
"리자드맨! 리자드맨의 언데드였다. 평범한 언데드가 아니야. 어지간한 기사보다 강할 거다. 솔직히 살아난 것이 신기할 정도였지. 문을 닫았지만 늦었어. 언데드는 이미 빠져나왔고 나는 힘겹게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도망치는 와중에 리자드맨의 공격에 다리를 다쳤지. 다리를 치료하지 못했어. 신관들도 고개를 젓더군. 천천히 썩어갔고, 끝끝내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이 열쇠를 항상 갖고 다니지. 이게 내게 남은 전부거든.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었어. 그저 지하 수로의 슬라임과 렛맨에게 당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고, 다리 병신이 된 나를 영주는 더이상 고용하지 않았지. 덕에 지금은 이 꼴이야. 아니, 어째서 내가 이런 말을 네게 하는 거지?"
그는 술을 병째 들이켰다.
제법 큰 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걱정은 없었다. 아마 다른 NPC에게는 자세한 내용은 들을 수 없이 그저 술주정으로만 보일 테고, 정보 레벨이 부족한 수련자는 내용을 들어도 알 수 없다.
히든 퀘스트가 괜히 히든 퀘스트가 아니었다.
정보를 모두 얻자 나는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돈. 돈이다. 이 퀘스트의 보상은 막대한 금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내 계획 중 하나는 큰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것도 10층 이전에. 그를 위해 필요한 정보는 알고 있었기에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금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특히 지금 시점에 얻은 이 정보는 돈도 돈이지만, 요한을 역으로 엿먹이는 기회로 이어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한층 더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더욱 기쁜 사실은 5층 퀘스트 내용은 지하수로 청소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어지는 한스의 쓸데없는 술주정을 적당히 들어주고, 술을 몇 병 더 사주었다.
그는 기뻐하며 기절 직전까지 술을 퍼먹었고,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정신을 잃었다.
"비밀, 이거 비밀인데… 자네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이거 비밀…."
나는 정신을 잃고 테이블에 엎어진 그를 깨우는 척하며 품에 있는 열쇠를 훔쳤다.
[비밀 열쇠]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열쇠다.
-정보 개방 : 히든 퀘스트 - 멜리드 성의 비밀 창고로 연결된 통로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이다.
어차피 훔쳐 가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아니, 술을 10병도 더 마셨는데 과연 기억이나 할까? 어쩌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난리를 칠지도. 내 알바는 아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