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8화 (8/317)

# 8

튜토리얼 - 3층

"젠장, 뭐 이리 많아!"

"지원! 다른 성문에 지원을 요청해! 우리끼리는 오래 못 버텨!"

고블린의 습격은 예상보다 더 대대적이었다.

거진 1천에 가까운 수가 북문을 습격 해왔다. 성 전체의 방어 병력이 300명 남짓임을 감안하면 북쪽 성문은 정말 위기다.

북쪽을 담당하는 병력이 가장 많기는 했어도, 병사의 수는 100명에 불과했으니까.

1회차를 겪은 나로써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버티면 지원이 온다. 습격은 거의 북문에 집중되어 있기에, 타 성벽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북문에 지원을 할 것이다.

특히 기사들이 지원을 오기까지만 버티면 어떻게든 된다. 나름 전방인 멜리드 성은 작은 요새답지 않게 기사가 10명이나 되니까.

나는 우리 일행이 담당한 성곽 위쪽에 서서 파티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조건 지킵니다. 계획대로 최대한 버티죠. 서윤이는 우리가 놓치는 고블린이 없는지 잘 확인하고, 저와 김인실 씨를 제외한 인원은 돌아가며 돌이나 기름, 뜨거운 물 등을 최대한 받아 와주세요. 상황에 맞춰서 합류하고 성벽 위에서는 되도록이면 수성 물품을 쓰시고요."

기본적인 역할을 정하고, 병사의 조언으로 전투력이 부족한 인원은 최대한 수성을 위한 물품 보급에 힘쓰게 되었다.

일행은 한껏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겁먹은 기색이었지만, 공포에 떨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군에 원거리 공격을 할 만한 인원이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거리 공격은 숙련도가 중요하니까.

"키에에에!"

덩치 큰 고블린의 외침에 무장한 고블린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은 사다리를 이용하거나 도구를 이용해 성에 밧줄을 걸고 직접 기어오르는 인원까지 있었다.

주공격은 어디까지나 성문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궁수나 주술사로 보이는 인원은 성벽 위를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어느덧 우리 담당 구역까지 고블린들이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한껏 긴장된 표정의 일행.

나는 초반부터 기름이나 돌덩이를 많이 쓸 생각은 없었다.

성벽을 기어올라오는 고블린들이 위쪽에 손을 얹는 순간, 나는 메이스로 그들의 손등을 찍어버렸다.

"끼에에엑!"

고통에 찬 비명.

고블린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콰직! 쿵!

"끄에엑!"

그리 높은 성벽은 아니었지만 요새는 요새. 떨어진 고블린은 아래에서 올라오던 다른 고블린과 부딪쳐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갑옸까지 차려입은 전사이기 때문일까. 큰 충격을 받은 고블린 성벽 아래서 몸을 꿈틀거릴 뿐 다시 일어나지는 못했다.

"배운 대로 손을 노립니다. 사다리가 걸쳐지면 부수기는 힘듭니다. 되도록이면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버려요. 고블린의 규모가 크니, 아마 지원이 올 겁니다. 처음 말했던 대로, 최대한 버텨야 합니다. 한 번만 버티면 돼요."

4층에 가면 다른 미션이 주어진다. 사실, 미션 난이도는 더 높아지지만 지금에 비하면 오히려 낫다. 그때는 상태 창도 열리고 스텟 보정을 받으면 지금보다 나아지니까.

이번이 고비다.

나는 왼쪽을 주시하며 두더지 잡기를 하듯 연속적으로 고블린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런 내게 맞춰 김인실 또한 새로 얻은 둔기로 고블린의 손등을 마구 찍어댔다.

건틀릿을 낀 놈들도 있었기에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기를 쓰고 올라오려는 놈들을 몰아내고,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역시 김인실이나 다른 팀원들보다는 내 활약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다르다.

아군은 최대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화살 정도는 내 갑옷을 뚫을 수 없었고, 나는 화살을 무시한 채 올라오는 고블린들을 떨어뜨리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블린 주술사만은 경계해야 했다.

이 갑옷은 기본적으로 마법 방어력이 없고, 나 또한 상태 창이 개방되지 않아서 마법 방어력은 없는 수준이다.

저 날아다니는 불덩이를 맞았다간 그대로 사망이다.

내가 화살을 무시한 채 활약을 이어가자 일부 궁수들의 화력이 내게 집중되었다.

이대로 간다면 주술사의 어그로를 끌 수 있기에 나 또한 슬슬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왼쪽을 주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수성이 진행되고 있었다. 입구는 견고했고, 고블린들의 수는 천천히 줄어들고 있었다.

"끼에엑! 끼에에에!"

지휘관으로 보이는 고블린의 외침.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곧바로 주술사들의 공격이 성문으로 집중되었다.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주술사들의 화염 주문이 성문에 연속적으로 직격했다.

꿀꺽.

어느 병사가 성문을 바라보며 한껏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성문을 뚫리지 않았다.

은은한 푸른 빛이 성문을 감싸고 있었다.

"크하하하! 멍청한 고블린 놈들! 우리가 대비를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나! 이게 바로 대마법 방어진이다!"

누군가 크게 웃으며 고블린을 비웃었다.

멀쩡한 성문을 바라보며 지휘관으로 보이는 고블린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성문은 여전히 건재했다.

성문이 건재함에도 고블린들은 침공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고블린들은 성벽을 올랐고, 화살은 전장을 날아다녔다.

나는 점점 몸이 지쳐감을 느꼈다.

'…이제 곧이다. 이제 곧…!'

지원이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한 가지 위기가 남아 있었다.

주시하던 왼쪽. 과거와 똑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콰앙!

"끄으아아아아악!"

우리가 담당한 구역의 바로 왼쪽을 담당하던 병사들. 그들의 위로 정확히 고블린 주술사의 화염 주문이 직격했다.

일대의 병사들이 학살당했고, 큰 상처를 입었다.

"안돼에에에!"

한 병사의 비명이 위기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왼쪽이, 뚫렸다.

***

1회차에서는 이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뚫려버린 왼쪽에 당황했고, 서로 뭉치지 못했던 우리들은 하나같이 틈을 봐 기어 올라온 고블린들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한 곳이 뚫리자 그 틈에 고블린들이 올라와 자리를 차지했고, 곧바로 사다리가 걸쳐졌으며, 그 피해는 우리 구역을 비롯해 왼쪽을 초토화 시켰다.

사망자 30 이상.

전체 병력의 10%에 달하는 병사가 사망했고 성의 방어력은 큰 폭으로 하락하게 되었다.

그 피해는 우리 파티에게도 영향을 끼쳐, 결국 우리 파티원 중 한 명이 사망했었다.

뒤늦게 지원 기사에 의해 결국 방어는 성공했으나, 우리 일행은 이를 계기로 더욱 균열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나는 이미 상황이 이리될 것을 알고 있었고, 즉시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주하연! 내 쪽을 맡아! 수성 물자 아끼지 말고 퍼부어!"

존댓말을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예!"

다행히 주하연은 즉시 반응했고 나는 빠르게 왼쪽 구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주변은 불이 번지고 있었다. 주변 기름에 불이 옮겨붙어 뒤쪽 여유 공간이 부족했다. 고블린들은 앞쪽으로 올라오니, 뒤가 막힌 상황이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나는 즉시 가까운 고블린을 발로 밀어버리고 손만 보이는 고블린의 손등을 메이스로 찍은 직후 아직 남은 기름에 불을 붙여 아래로 쏟아버렸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

작열통. 그 끔찍한 고통에 고블린들의 비명이 미친 듯이 울렸고 나는 이쪽 구역에 남아있던 수성 장비들을 마구잡이로 던져댔다.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된다, 조금만!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쥐어 짜내며 무아지경으로 수성을 계속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고했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급하게 뒤를 돌아보자 완전 무장한 기사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맙다. 덕분에 희생이 줄어들었다.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지."

어느새 지원 온 기사와 병사들은 나 대신 성벽 위쪽을 틀어막았고, 끝내 성벽을 공략하지 못한 고블린은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3층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상태 창이 개방됩니다.]

[4층으로 이동합니다.]

미션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나는 흰 빛에 둘러싸였다.

***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전장이 아닌, 병사에게 배정 받은 내 방 안에 있었다.

[4층에 진입하였습니다.]

[4층의 시험이 부여됩니다.]

[4층의 시험]

-영주의 의뢰를 완수하세요.

-보상 : 다음 층으로의 이동, 스킬 슬롯 개방, 랜덤 스킬 카드 1장.

메시지 창을 훑어보고는 곧바로 치워버렸다.

영주의 의뢰라고 나오지만,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이 남았기 때문이다.

"상태 창"

[상태 창]

-이름 : 유신후

-나이 : 24

-LV. 1

-신체 능력

근력 : 11 민첩 : 11 체력 : 10 마력 : 0

-과거의 기록이 존재합니다. 불러오시겠습니까? (Y/N)

드디어 상태 창이 개방되었다. 아직 튜토리얼 단계가 낮아 스킬 슬롯은 개방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신체 능력이 개방된 이상 이제 탑의 보조를 얻을 수 있다. 신체 능력치 또한 한동안 빠르게 상승할 테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기록이 존재한다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가이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었다.

단지 관리자의 눈동자라는 것과 튜토리얼을 마치고 전직 시, 특전을 준비해 놓았다는 말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스스로 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탑에 내 1회차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저게 나쁜 상황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육체를 불러올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오산이다.

나는 곧바로 Y버튼을 눌렀다.

[과거의 기록을 복원합니다.]

[이레귤러 발생. 전체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일부 기록을 불러옵니다.]

"---큭!"

갑작스러운 고통.

전체 기록을 불러올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일부만을 불러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던 거니까.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고통에 옅은 신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전신을 쥐어짜고 혈관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끔찍한 느낌이 전신을 감쌌다.

나는 최대한 신음을 억눌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자 고통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기록을 수련자의 신체에 적용하였습니다.]

[정보 레벨이 개방되었습니다.]

나는 흐릿한 눈으로 메시지를 쳐다보았다.

정보 레벨.

나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정보 레벨!?"

상태 창을 다시금 열어보자 내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상태 창]

-이름 : 유신후

-나이 : 24

-LV. 1

-정보 LV. 60

-신체 능력

근력 : 31 민첩 : 29 체력 : 39 마력 : 15

미쳤다. 이건 제대로 미쳤다.

내 과거 60층 진입 당시 평균 능력치가 60대 중반이었다.

이정도만 해도 신체 능력이 나름 중상위권이다. 나는 처음 스킬 슬롯이 많았고, 운이 따라줘 스킬의 조합도 괜찮게 뽑힌 편이었기에 그 정도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도 나름 상위권에 해당했었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위권은 평균 70대에서 80대 초반의 능력치를 가졌고, 1군에 해당하는 진짜배기 정예 파티들은 80후반에서 90초반 정도의 능력치를 소유했었다.

랭커라 불리는 괴물들은 대부분 능력치가 100에 달했다고 말한다. 듣기로는 능력치가 100이 넘으면 더이상 표시가 되지 않는다고.

100에 가까울수록 수치 하나하나의 차이가 큰 만큼, 신체 능력치가 100에 달했다는 랭커들은 그 신체 능력만으로도 어지간한 1군 파티는 혼자 쓸어버릴 수 있는 괴물들이다.

물론 신체 능력이 강함의 전부는 아니었다. 거기에 스킬, 아이템, 본인의 직업과 직업 이해도, 전투 센스 등등 수련자의 강함은 이러한 요소들의 총합이다.

그러나 지금이 튜토리얼 4층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는 스킬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이정도의 능력치면 사실상 고블린 전사 수십은 상대할 수 있으며, 지금 장비까지 합한다면 100단위도 혼자 처리할 수 있을 터다. 가장 중요한 마력의 부족이 아쉽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10층 이후 있는 수련의 층까지….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탄탄대로로 보였다.

어쩌면 정말, 거인들을 지구에서 쫓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홀한 기분에 취해 상태 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쿵쿵. 덜컥.

거친 노크 소리가 내 정신을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미처 답하기도 전에 문이 덜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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