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튜토리얼 - 3층
NPC. 허상의 존재. 그러나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단지 인간과의 차이점이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죽어서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과 시스템의 간섭을 받는다는 것.
그 외에는 인간과 비슷하다. 친밀도가 높은 NPC와는 성관계도 가능한 데다 실제로 NPC를 죽이거나 강간하는 사건은 무척 흔했다. 그러나 역으로, NPC에게 당해 목숨을 잃은 수련자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그나마 과거 등장했던 복수자 NPC덕에 수련자들이 NPC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된 전환점이 생김으로써 수련자들이 서로를 단속해 무분별한 NPC살해나 강간이 상당히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었다.
즉, NPC도 말을 하고, 생각을 하며, 감정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NPC의 감정에 대해서는 내가 죽을 때까지 말이 많았지만, 나는 NPC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수련자들이 NPC를 함부로 대하게 된 시발점은 이 요한이라는 NPC때문이었다.
요한은 튜토리얼 2층부터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수련자들에게 좋은 정보와 보급, 간단한 퀘스트를 통해 다음 층으로 쉽게 안내하며, 나름 친절하고 다음 층에서도 쉽게 성에 들어가도록 도움을 주는 좋은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3층을 지나고 4층을 지나면서 서서히 요한은 본색을 드러낸다.
정확히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수련자들을 지원하고, 보급품을 넘겨주는 등 뒤에서 지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완전히 자신이 유리해지는, 더는 수련자가 상황을 뒤집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본색을 드러낸다.
그렇게 수련자들은 NPC 불신에 시달리고, 이후 만나는 NPC들을 경계하고 더 나아가서는 함부로 대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만든다.
1회차를 지내본 나는 그 사실을 알기에 이후 요한을 조심할 계획이었다.
요한으로 인해 본 피해는 지금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설마 요한이 2층부터 수작을 부릴 줄은 몰랐다. 시작은 3층부터일 텐데….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요한이 저지른 짓이다.
일단 요한이 늑대들의 습격을 모를 리는 없었다. 우리가 1회차보다 일찍 오기는 했지만, 그때도 적기는 하나 분명 한두 군데의 덫은 다녀왔기에 사냥된 이들이 없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중간에 습격은 없었고 공터에 도착 했을 때도 습격당하지 않았으며, 요한 또한 습격을 당한 흔적은 없었다.
애초에 그 정도 무리의 습격이면 요한은 살아남지 못한다. 1회차 때 공터에서 그런 습격을 당했다면 우리는 요한이 아닌, 요한의 시체를 공터에서 발견했겠지.
게다가 요한은 늑대의 습격이 끝나자마자 등장했다. 사냥꾼인 요한이 늑대가 이쪽으로 온 흔적을 모른다? 요한이 등장한 장소는 늑대가 숨었던 곳 들중 하나다. 이상한 점은 뿐만이 아니다. 1회차 당시 적게나마 들고 왔던 사냥감은 아예 없었고 표정 또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놀랐다기보다는 당황했다에 가깝다.
아마, 요한은 여전히 우리를 이용해먹을 생각이었을 거다. 그러나 과거와 다르게 우리는 분열하지 않았다. 나를 중심으로 뭉쳐 행동했고, 서투를지언정 한 팀으로 행동했다.
그게 문제였겠지. 그는 과거 분열된 우리들을 철저히 이용해 먹었다. 아마 늑대를 이용해 우리를 모두 죽일 생각은 아니었을 거다. 이런 숲에서 사냥꾼 일을 하는 그가 늑대들에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테니 늑대들을 쫓아낼 방법이 있을 터. 몬스터의 피만 준비해놔도 늑대 같은 짐승의 무리는 쉽게 쫓아낼 수 있다. 사냥꾼인 그가 무방비하게 숲을 다닐 리는 없었다. 우리 일행은 그런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기에 늑대 무리가 위협적이었을 뿐이다.
우리의 전력을 깎고 제 편한대로 이용해먹을 생각이었겠지.
그러나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내 갑옷은 상정 외의 존재일 테니까.
내막을 짐작한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춘 채 요한에게 말했다.
"늑대 무리가 습격을 해 왔습니다. 20마리 정도 되는 대규모 무리더군요."
"늑대가!? 세상에, 괜찮은가?"
"네. 다행히 덫에서 가져온 사냥감만을 노린 듯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요한 씨. 사냥감을 모두 빼앗겨 버렸습니다."
"아, 이런, 모두 말인가… 아니 괜찮네. 오히려 미안하군. 괜히 사냥감을 가져와 달라는 바람에 자네들이 모두 죽을 뻔했어."
요한은 짐짓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나는 이 말들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늑대들은 이놈이 유인 한 거다.
"그래도 이건 잘 챙겨 왔습니다. 이거 맞습니까?"
나는 모조 성배를 꺼내 요한에게 건넸다.
"오, 오오. 다행이군. 그나마 이게 있으니 체면치레는 하겠어. 고맙네."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빨리 성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늑대 무리가 가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야겠군. 알겠네 따라 오게나."
우리는 요한의 안내를 받아 다음 층으로 향하는 포탈로 이동했다.
그러나 요한에게 포탈은 그저 길로 보일 뿐인지 자연스럽게 포탈을 향해 걸어갔다.
일행은 처음 보는 포탈의 모습에 움찔했지만, 요한의 재촉에 포탈을 건넜고, 곧바로 3층으로 이동되었다.
[3층에 도착했습니다. 3층의 시험을 부여합니다.]
[3층의 시험]
-인간을 도와 고블린들의 습격으로부터 멜리드 성을 3일간 방어하세요.
-보상 : 상태 창 개방, 다음 층으로 이동.
3층에 도착함과 동시에 미션을 받았다.
일행들 또한 마찬가지인지 우리는 곧바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한동안 요한을 따라 걷자 얼마 되지 않아 멜리드 성에 도착했다.
멜리드 성은 작은 성채였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 튼튼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정지!"
문으로 접근하자 문지기로 보이는 병사가 우리를 막아섰다.
"크랑! 날세."
"요한 아닌가. 식량 구해 오랬더니 뭔 빈손에 입만 늘려서 왔나?"
"아니, 그래도 이건 가져왔다고. 오다가 늑대 무리를 만나 식량을 다 뺐겼어."
"…식량을 빼앗겼다고? 늑대 무리에게?"
크랑이라 불린 병사가 의아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그게 말이야!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네."
늑대에게 식량을 빼앗겼다는 말에 병사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요한의 말에 크랑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영주 님의 의뢰는 무사히 완수했군. 그런데… 이들은?"
"중간에 만났네. 모험가들이라던데, 중간에 사고를 당해서 길을 잃고 짐까지 몽땅 잃었다더군."
"그렇군. 신분증을 제시해 주겠나?"
"…짐과 함께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그렇다면 성으로 들여 보내줄 수 없어. 돌아가게."
크랑의 말에 되려 요한이 나섰다.
"자네, 어떻게 안 되겠나? 그래도 내가 데리고 왔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어. 절차라고."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떤가? 내가 신분을 보장하지. 대신 의뢰를 수행하게 하겠네."
"…의뢰?"
"최근 고블린의 습격이 잦지 않나. 덕분에 식량 사정도 나빠졌고… 어떤가? 이들을 고용하는 게? 최근 용병을 모집하고 있지 않던가?"
"흐음… 뭐 그렇다면야. 좋네. 자네가 보증을 하고, 의뢰까지 맡는다면야…. 어이. 모험가들. 어떤가? 이 제안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뭐. 좋아. 통과."
"하하. 고맙네 크랑. 내가 다음에 술 한잔 사겠네."
요한은 고맙다는 듯이 말하며 우리를 내부로 안내했다.
나는 요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덕분에 성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아닐세. 자네들 덕에 내가 이렇게 영주 님의 의뢰를 완수하지 않았나. 오히려 내가 고맙지."
요한은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신분증이 없으면 힘들지. 이곳 사람이 아니니 여기서 새롭게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는 없지만, 용병 등록은 가능하다네. 용병패면 신분 증명도 되고, 의뢰도 받아야 하니 바로 용병 등록을 하지 않겠나? 신분은 내가 보증을 서 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속 신세만 지는군요. 감사합니다. 요한 씨."
"아니, 아닐세. 애초에 크랑과 약속하기도 했고, 자네들이 의뢰를 수행해 준다면 성이 더 안전해지지 않겠는가."
요한은 웃으며 말했다.
1회차 때는 이런 요한의 도움은 하나같이 가뭄의 단비였었다. 탑의 메시지를 보면 요한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도 납득 할 수 있었고. 어디까지나 우리가 미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요한이 돕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이미 1회차에서 무수한 경험을 해 왔다.
의심을 갖고 바라보니,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요한의 핑계에 대한 크랑의 반응, 아무리 모조 성배를 가져다주었더라도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들의 신분을 보증하는 행동, 우리에게 일거리까지 주고 용병 등록을 돕는 등 상식적으로 어제 처음 만난 우리들에게 과할 정도의 호의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 성의 사람답게 요한은 용병 길드에도 아는 사람이 있었고, 손쉽게 용병 등록을 할 수 있었다. 최하급 F급 용병이긴 하나, 일단 용병패를 얻어 신분 증명이 가능해졌고, 약속대로 의뢰를 받아 북문의 수비를 맡게 되었다.
숙소, 식량까지 제공하는 의뢰였고, 하루 일당만 5실버에 달하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행은 그런 요한의 친절에 감사했다. 전투는 무서웠지만, 상대가 고블린이라는 말도 들었고, 무일푼에 신분증도 없는 현실에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북문이라는 말에 접수원이 반가워하는 모습, 굳이 북문을 콕 집어 말하는 요한의 말. 그리고 묘하게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는 모습까지. 게다가 몬스터 토벌이나 습격의 방어가 의뢰 내용인데, 일당 5실버는 무척 적은 금액이다. F급 용병임을 감안해도 그렇다. 애초에 이런 의뢰는 F급에게 잘 떨어지지 않는 의뢰지만.
아마 중간에 받아먹었겠지.
그래도 덕분에 나서윤까지 손쉽게 용병 등록이 가능했다. 현재 마력도 못 다루고 상태 창도 없기에 전적으로 요한의도움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니, 이 정도는 용납 못 할 부분은 아니었다.
단지, 앞으로도 과거처럼 우리를 더 이용해 먹는가가 문제다. 아니, 이용해 먹겠지. 그런 놈이니까. 7층까지는 요한의 얼굴을 봐야 하는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상태 창이 열리는 3층 클리어 이후부터 대비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해야 하니 머리가 복잡했다.
"그럼, 나는 어서 영주 님께 이 그릇을 드려야 해서 말일세. 나는 여기까지만 함께하지."
"그간 감사했습니다."
"아닐세. 종종 찾아오겠네. 다음에 보게나."
요한은 우리를 북문으로 안내하고는 곧바로 영주 성으로 향했다.
의뢰서를 전달하자 북문 경비병은 우리를 담당자에게 안내했다.
"자네들이 이번에 의뢰를 받은 용병들인가?"
"그렇습니다."
"…갓 등록했군. 전투 경험은 있나?"
"이전에 모험가였습니다. 고블린이나 늑대 등은 몇 번 상대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가. F급이라… 쯧. 별수 없지. 의뢰서에 나와 있듯이 적은 고블린이다. 대부분이 전사 계급으로 전사 고블린은 개개가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강한 데다 싸움에도 익숙하다. 만만히 볼 세력은 아니야. 아마 전투가 잦을 거다. 전투가 있는 날은 추가수당도 있으니 최선을 다하도록."
"알겠습니다."
"보즐리! 이들을 숙소로 안내하도록!"
"넵!"
병사를 통해 숙소와 식당을 안내받고, 전투 시 우리가 가야 할 위치까지 확인받은 뒤, 일행은 모두 내 방에 모였다.
나는 모인 인원들을 향해 말했다.
"3층 미션이 방어인 만큼, 3일 안에 적어도 한 번의 습격은 있을 겁니다."
"…그럴 거 같아요."
주하연은 내 말에 동의했다.
"최대한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죠. 방어를 해야 하지만, 여기 병사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이 전사 계급이라는 말을 봐서는 1층의 고블린보다 강할 겁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1층부터 계속 위험한 거 같아요. 뜬금없는 전투나, 2층에서는 그냥 물건만 가져오면 될 줄 알았는데 늑대의 습격도 받았고…."
"그래서 그런데, 아무래도 기본적인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일행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동의했다.
나는 내가 생각한 진형을 이들에게 설명했다. 진형이라고 해 봐야, 내가 앞장서고, 뒤에서 받쳐줄 인원, 협력할 인원 등의 단순 배치에 불과했다. 우리가 담당한 구역은 성곽 중 한 곳인 만큼, 최소한 어떻게 싸울지 약속을 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니 필요한 과정이었다. 과거 8명일 때도 여기서 한 명이 죽었었다. 그렇기에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싸워야 할 위치를 다시 확인하는 등 준비에 열을 올렸다.
첫날, 이튿날도 습격은 없었고, 일행은 강박증을 겪듯 계획을 확인하고 연습하는 것을 하루종일 반복했다. 언제 습격이 올지 모르니 무리는 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 일당을 이용해 병사 하나를 꼬셔 우리 훈련을 돕도록 했다. 내가 회귀한 사실을 숨겨야 했고, 혼자서 6명을 담당하기보다는 경험 많은 병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 안전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셋째 날. 예상대로 고블린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