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튜토리얼 - 2층
"여기인가요?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이?"
"그런 것 같습니다."
"…으스스하네요."
주하연은 조금 으스스하다는 듯이 말했다.
신전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묘하게 나무로 지어진 작은 교회 같은 느낌이었다. 과거에는 신전이라고 해서 파르테논 신전 같은 모습을 상상했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모습에 묘하게 실망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최대한 조심해서 들어가죠."
내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된 기색을 비쳤다.
선두는 내가 맡았고 내 바로 뒤는 주하연, 맨 뒤는 검과 방패를 든 김인실이 맡았다.
홀로 소환되었던 남자, 김중헌은 무기라고는 검 한 자루 뿐이었고, 나연 나서윤 자매도 무기는 고작 단검에 불과했기에 중앙에 서게 되었다.
과거에는 죽은 이들의 무기를 챙겼었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1층에서 내가 쓸어버렸기에 나연과 나서윤은 자신들이 선택했던 단검 말고는 든 것이 없었다.
티켓 2장은 따로 쓸 일이 있어서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 내가 아니었으면 나연과 나서윤은 제법 무시를 당했을 터다.
끼이익.
모두 적당히 자리를 잡자 나는 조심스럽게 신전의 문을 열었다.
관리가 되지 않은 나무문은 약간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신전 내부는 지저분했다. 버려진 만큼 인간의 손을 떠났기에 거미줄이 가득했고 빛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문을 열자마자 제단까지는 뻥 뚫려 있어 위험이 없다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애초에 작은 교회 느낌의 건물인 만큼 그리 넓지도 않아서 내부 확인이 어렵지는 않았다.
습관적으로 천장까지 꼼꼼히 살펴본 나는 천천히 신전 내부로 들어갔다.
"…별다른 위험은 없어 보이네요."
내 뒤를 따라 들어온 주하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흠… 저거, 저거 같은데요? 요한 씨가 가져오라고 한 그릇."
김인실을 밖에 두고 망을 보게 한 후 모든 인원이 신전 내부로 들어왔다.
별다른 위험은 없었기에 삐걱이는 바닥을 밟으며 천천히 제단에 접근했다. 조심스럽게 그릇을 손에 들자 간단한 상태 창이 나타났다.
[모조 성배]
등급 : 일반
-제례를 위해 만들어진 모조 형태의 성배. 예술적 가치가 높다.
…이름은 버려진 신전에 건물은 교회 같은 모양, 제기는 성배라고? 다시 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혼종이었다. 아니, 교회랑 성배는 이상할 게 없나? 애초에 탑은 지구의 상식이 어긋나는 부분도 많기에 특별한 경우는 아니지만.
확실히 요한의 부탁 퀘스트에 필요한 물품, 모조 성배가 확실했다.
"이거 맞네요. 메시지가 떴어요. '모조 성배'라고. 의뢰 내용이랑 일치합니다.
"이게… 그렇네요. 확실해요."
내가 건네준 모조 성배를 확인한 주하연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물품을 확보하자 우리는 빠르게 신전을 빠져나왔다. 으으스한 분위기였고, 더는 있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1회차에 비해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일까. 예상보다 일찍 성배를 손에 넣었고, 덕분에 덫 확인도 가능할 듯했다.
우리는 요한의 부탁대로 지도에 표시된 덫들을 확인했고, 걸린 동물들을 인벤토리를 이용해 모두 챙겨 놓았다.
사슴이나 멧돼지가 덫에 걸려 죽은 모습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런 장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인 만큼, 어쩔 수는 없었다.
덫을 확인하고 처음 요한과 헤어진 야영장에 도착했다.
아직 요한은 오지 않은 듯했다.
"우선 덫에 걸린 동물들을 꺼내 놓죠."
"…으… 나중에 꺼내면 안 될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인벤토리가 우리들만의 기술이면 성가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제 요한이 인벤토리를 쓰는 모습도 못 봤구요. 우선 꺼내 놓는 게 좋겠어요."
내 말에 다른 사람들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벤토리에 저장된 동물들을 꺼내 한 장소에 몰아놓고 우리는 휴식을 취했다.
과거에는 이렇게 일찍 끝나지 못했었다. 이렇게 쉽게 파티들이 융화되지도 못했었고, 날카로운 분위기 덕에 이동 속도도 느리고 의견도 갈려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잡아먹었었다.
오히려 요한이 먼저 도착할 정도.
다행히 이번 회차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파티가 융화되어 날카로운 분위기 없이 손쉽게 의뢰를 통과하는 듯했다.
해가 가장 높이 뜰 무렵, 요한과 약속한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부스럭.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가운데 들려온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는 순간.
"요한 씨?"
주하연은 요한의 이름을 불렀고.
"이런, 적이다!"
나는 저것이 요한이 아님을 단숨에 알아챘다.
"크릉!"
늑대가 습격 해왔다.
***
나는 재빨리 무기를 꺼내며 생각했다.
'과거에는 이런 습격은 없었는데?'
그런 의문과 동시에 파티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수한 사냥감의 시체가 늘어났고,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다.
덕분에 주변에 피 냄새라도 퍼졌는지, 늑대 무리가 사냥감을 목표로 습격한 듯했다.
"이런 젠장!"
습격해 온 늑대는 20마리 남짓.
제법 큰 무리였다.
이쪽의 전력이 부족한 상황.
탑의 늑대는 오히려 고블린보다도 위험하다. 고블린처럼 인간형도 아니고, 오히려 고블린보다 덩치도 더 크고 힘도 세다.
그중 한 늑대가 나서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안돼!"
나연은 급하게 나서윤을 감쌌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녀는 그저 나서윤 대신 죽겠다는 듯, 그녀를 몸으로 감쌌을 뿐이었다.
내 신체 능력은 부족한 상황. 하필이면 약간 떨어진 장소였기에 반응이 늦었다.
내가 달려가면 늦는다. 생각보다 행동이 빨랐다.
나는 단숨에 손에 든 메이스를 늑대의 얼굴로 집어 던졌다.
"깨갱!"
고통에 찬 울음.
제대로 회전한 메이스는 정통으로 늑대의 머리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늑대는 공격을 포기한 채 뒤로 물러났고, 그 틈에 나는 단숨에 나연의 앞을 막아섰다.
"신, 신후야…."
"물러서. 다들 뭉쳐요! 안으로, 빨리!"
이럴 때는 바닥으로 떨어진 내 신체 능력이 너무 아쉽다. 하다못해 마력이라도 쓸 수 있었다면 이런 습격 따위 진작 알아챘을 텐데.
상태 창마저 열리지 않은 현재는 마력도 신체 능력도 한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내 방어구가 현재로써는 사기급인 이상 내가 죽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을 지키기는 힘들다. 특히 나서윤은 살려야 한다. 기껏 발견한 때타지 않은 최상급 잠재력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파티원들은 하나같이 겁먹은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고블린은 흉측하게 생겼더라도 어린 아이 정도의 크기다. 그에 반해 늑대의 크기를 보라. 지구의 늑대만 해도 위험한데, 탑의 늑대는 어깨높이가 1m가 가뿐히 넘었고, 몸길이는 2m가 넘는다.
저 덩치에서 나오는 위압감은 차라리 지구의 호랑이와 비슷했다.
나는 늑대들을 관찰했다.
'…저들의 목표는 사냥감일 거야. 굳이 우리를 죽일 필요는 없어. 저걸 모두 내주면 어떻게든….'
늑대는 영리한 생물인 만큼, 사냥감을 내주면 그냥 갈 확률이 높았다.
"모두 왼쪽으로 천천히 이동합니다. 동물 사체들로부터 멀어져요. 그냥 갈 수도 있어요."
내 말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일행은 천천히 왼쪽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예상은 맞았는지 늑대들은 회수해온 시체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아 보였다.
일부 늑대들이 이동해 사슴이나 멧돼지의 사체를 입으로 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우두머리로 보이는 늑대를 노려보았다.
우두머리 늑대 또한 내가 가장 위험하다는 판단을 했는지 이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무언의 합의가 이행되나 싶은 순간.
"컹컹컹!"
아까 나서윤을 습격했던 늑대가 달려들었다.
나는 곧바로 앞으로 나서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캥!
명중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맞지 않았다. 애초에 고블린과 다르게 늑대는 조금 더 터프했고, 속도도 빨랐다.
곧바로 늑대는 내 팔을 물었다.
으득.
강한 압박감. 대게 이정도면 약한 방어구는 찢어지거나 하다못해 강한 치악력에 팔이 뭉개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방어구는 이 시점에서는 사기적. 간지럽지도 않았다.
나는 내 팔을 문 늑대를 똑바로 바라보며 메이스를 크게 휘둘렀다.
퍽!
컹!
퍽!
끼잉!
퍽!퍽! 콰직!
내 연속된 공격에 늑대는 결국 머리가 으깨져 사망했고 나는 늑대의 사체를 발로 차 살짝 밀어내며 우두머리를 노려보았다.
그동안 다른 늑대는 나를 경계하며 사냥감들을 모두 회수했다.
그러자 한동안 죽은 늑대의 사체를 바라보던 우두머리는 긴 하울링을 내뱉었다.
아우우우우우-
공격 신호인가 아니면 물러가겠다는 뜻인가.
나는 긴장한 모습으로 늑대들을 살폈다.
다행히 후자였다.
늑대들은 물러갔고 우두머리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늑대의 사체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우두머리는 죽은 늑대의 사체를 회수했고, 공터를 떠났다. 아마, 내가 만만해 보였다면 우리마저 죽여 시체를 끌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늑대가 떠나고 한참이 지난 후.
그제서야 파티원들은 하나둘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하하."
"후우…."
그들도 알았다. 탑의 늑대들은 고블린과 비교할 수 없는 포식자라는 것을.
자신들이, 죽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흑… 으헝…."
긴장이 풀리자 새삼 무서워졌는지 나서윤은 나윤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괜찮아 서윤아. 걱정 마. 언니가 지켜줄게… 응?"
"으허헝…."
달래는 나연의 눈에도 조금이지만 눈물이 맺혀 있었다.
"…조용히 합시다. 또 늑대가 오면 어쩌려고? 이제는 사냥감도 없다고."
김인실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조용히 할게요. 서윤아. 서윤아 그만 울어. 응?"
나는 그런 이들에게 다가갔다.
"서윤아."
"흑… 오, 오빠…."
"그만 울어. 응? 걱정 말고. 또 와도 어떻게든 지켜 줄 테니까."
"오빠아…."
나서윤은 어느새 내 품에 파고들었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위기 상황이긴 했지만, 잘 넘어갔다.
"…덕분에 살았어요. 신세를…."
주하연이 내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순간, 다시금 수풀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힉!"
흠칫!
다들 경기를 일으키면서도 순식간에 무기를 꼬나쥐었고, 나서윤은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번에는 다행히도 요한이었다.
"아… 요한 씨…."
요한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요한의 조금 어색한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의아한 감정이 들었고, 과거 1회차 요한의 행적을 생각하자 순식간에 깨달았다.
'빌어 처먹을.'
1회차. 요한. 그의 이름 앞에는 보통 수식어가 하나 붙는다.
배신자 요한.
최초로 만나는 NPC이자, 최초로 우리 지구인들, 수련자들을 엿먹이는 쓰레기.
과거 최상급 잠재력을 지닌 나서윤과, 상급 잠재력을 지니고 마법까지 사용했던 나연을 튜토리얼에 묻어버린 원흉이자, 나를 제외한 다른 파티원들을 모두 죽게 만든 악랄한 존재.
그가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