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5화 (5/317)

# 5

튜토리얼 - 2층

'잠재력… 최상?!'

순간 경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다행히 나연과 나서윤은 서로 파티를 구했고 그 대상이 나라는 것에 기뻐하는 와중이라 내 심정을 들키지는 않았다.

잠재력 최상. 이건 극히 드문 경우다. 가이아로부터 들은 바로는 최상의 범위는 가이아의 눈동자로 측정할 수 있는 최대치이며, 일정 수준 이상의 잠재력은 모두 최상으로 표기, 자세한 내용은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최상이 같은 잠재력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상이라는 수치는 최저라도 '상'은 가볍게 제치며 최상이라는 수치 자체가 엄청나다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잠재력 최상, 그중 밑바닥이라고 하더라도 그 잠재력을 모두 개화한다면 거인 하나둘 정도는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 그만큼 극히 귀한 경우이며 그 잠재력을 모두 계발하기도 쉽지 않다.

거기에 이곳은 탑. 그것도 수련을 위해 제작된 수련의 탑이다. 잠재력을 모두 개화사키고 아이템, 스킬 슬롯까지 적절하게 채우는 데 성공한다면 어지간한 대형 길드도 혼자서 쓸어버릴 수 있다.

내 추측으로는 과거 탑의 최상위 랭커들은 하나같이 잠재력 최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존재가 내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과거 튜토리얼조차 클리어하지 못했던 아이다. 잠재력 최상이 1회차에서는 튜토리얼에 묻혀버렸던 거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단 감정을 추스른 후 흥분으로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나서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반가워. 같이 파티를 하게 된 유신후야."

"…안녕하세요. 나서윤이라고해요. 중학교 3학년입니다."

"난 24살. 그냥 오빠라고 부르렴."

"네. 신후 오빠. 24살이면… 저희 언니랑 같은 나이시네요."

"아…."

나연은 나와 자신이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나도 관리자의 눈동자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고. 그러고 보면 나연 입장에서는 지금이 2회차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이런.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았었네요. 저는 유신후입니다. 24살이고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아. 네. 저는 나연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4살이요."

"동갑이군요. 말 놓죠. 어차피 한동안 같이 행동한다는데."

"아, 네. 아니 응. 앞으로 잘 부탁해. 신후야."

"이쪽이야말로."

간단한 통성명을 한 후에 우리는 곧바로 메시지가 시키는 대로 손을 잡고 있었다.

방금 파티를 맺었기 때문일까.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과거에도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았었고.

내가 파티를 구하자 곧바로 주변 사람들은 아깝다는 눈길을 보냈지만, 시간이 부족했기에 저들끼리 하나둘 뭉치기 시작했다.

이쪽은 셋. 그나마 남은 자리를 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는 사람마다 괜찮은 잠재력을 지닌 사람이 없었다. 나는 적당히 이쪽까지 4명이 되면 1인 파티가 생길 수 있어서 3명으로 한다는 말로 핑계를 댄 후 남은 시간을 버텼다.

시간이 되자 결국 모든 파티가 형성되었다.

[2층으로 진입합니다. 파티 인원들은 모두 손을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이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우리 파티는 2층으로 진입했다.

눈을 떴을 때 주위는 숲이었다. 벌써 저녁 무렵인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으악!"

"꺅!"

이동 직후 놀라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사 사람! 사람이다!"

한 남자가 무척이나 놀랍고 반갑다는 기색으로 외쳤다.

"아,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와, 진짜 혼자서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곧바로 함께 소환된 이들을 확인했다. 남자 하나가 홀로 떨어져 있었고 다른 쪽에는 여자 둘 남자 하나인 팀이 존재했다. 나는 곧바로 우리 파티를 제외한 다른 파티의 멤버가 지난번과 같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사이 메시지가 등장했다.

[2층에 도착했습니다. 2층의 시험을 부여합니다.]

[2층의 시험]

-2층에 존재하는 인간의 부탁을 들어주고 다음 층으로의 입구를 안내받으세요.

-보상 : 3층으로 이동.

-미션은 2층의 인원들에게 공유됩니다.

2층 내용은 별거 없었다. 사실, 이번 층은 별다른 시련도 없었고 난이도도 무척 낮았다.

튜토리얼답게 약간의 지식을 배우는 정도? 퀘스트를 들어주고 기본적인 장비를 지급받는다. 딱 그 정도의 미션이었다.

"부탁을… 들어주라고?"

홀로 소환된 남자가 중얼거렸다.

파티들은 서로 소환된 사람들을 바라보며 약간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경계하는 기색.

"…이게 뭐 어떻게 된 거죠?"

"나는, 나는 몰라요. 나도 1층 끝내고 2층으로 왔다구요. 1층에서 파티 인원수가 맞지 않다고 쫓겨나서… 저기, 같이 행동하면 안 될까요? 혼자서는 불안합니다. 최대한 협조할게요. 부탁합니다."

혼자 소환된 남자가 먼저 말을 꺼낸 저쪽의 파티에게 합류를 요청하고 있었다.

"…2층은 파티끼리 행동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절할게요. 어떻게 될 줄 알고요?"

여자의 거절에 남자는 절망 어린 표정으로 반론했다.

"2, 2층 미션은 2층 인원들에게 공유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메, 메시지가 그랬으니 맞을 겁니다. 그러지 마시고…."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나는 그들을 상대로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해 잠재력을 살펴보았다.

확인 결과 남자의 말을 거절한 여성, 주하연만이 잠재력 중상을 기록했고 나머지 인원은 평균적으로 중하 수준의 잠재력을 보이고 있었다.

'상'이상의 잠재력이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였다.

부스럭.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모두 말을 멈추고 한껏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모험가들인가?"

남자의 목소리.

부스럭부스럭.

서양인 외모의 한 중년 남자가 풀숲을 헤치며 걸어 나왔다.

미션 NPC. 요한의 등장이었다.

***

"모험가들인가? 길을 잃었나?"

요한이 우리를 향해 말을 걸었다.

다른 인원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한껏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대표해 요한의 말에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숲이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네요. 식량도 다 떨어졌는데…."

"역시 모험가들이었군? 나는 요한. 사냥꾼일세."

롤플레잉. 역할극. NPC와의 대화는 그것에 가까웠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고. 과거에는 이런 대화가 아닌 누구냐는 식으로 한껏 무지를 드러냈었고, 요한은 이상하다는 반응만을 보였었다.

내 말에 주위 사람들은 한껏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혹시 이 근처에 마을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쪽 근처에는 멜리드 성뿐이라네. 그리 멀지는 않지."

"다행입니다. 저… 초면이 죄송하지만 도움을 좀 요청해도 괜찮을까요?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지금 길도 잃고 식량도 부족해서…."

"무얼. 별로 어렵지도 않은 것을. 다 돕고 사는 거지. 내 자그마한 부탁만 들어준다면 얼마든지 안내해 주겠네. 정도에 따라 식량도 나눠주지."

"어떤 부탁입니까?"

"어려운 일은 아닐세. 그냥 여기 지도에 표시된 곳에 가서 제단 위의 잔 하나만 챙겨 오게나. 요새 성주 님께서 특이한 잔을 모으시거든."

[요한의 부탁]

-목표 : 요한이 건네준 지도에 표시된 버려진 신전에서 '모조 성배'를 가져올 것.

-보상 : 요한의 안내.

2층의 시험. 요한의 의뢰가 나타났다. 이 메시지에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오늘은 무리지. 곧 해가 지니 말이야. 그러니 오늘은 쉬고 내일 가져다주면 된다네. 대신, 오늘 잠자리는 내가 책임지고 해결해 주지."

"그렇다면 저희야 감사하죠. 알겠습니다. 그 일, 하겠습니다."

[요한의 부탁을 수락하였습니다.]

"하하. 고맙네. 최근 성에 식량이 부족해서 말이야. 위에서 할당량을 많이 걸어 놨거든. 덫 확인하기도 시간이 부족한데 이런 일까지 받아서 난감했었어. 덕분에 살았네."

"저희가 도움 받는 게 더 큰걸요."

나는 요한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말도 안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탑이라는 특성, 상대가 허상인 NPC라는 점이 이 상황을 성립하게 만들었다.

그룹 인원들도 메시지 창을 보며 이야기가 잘 된 것을 확인했는지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요한은 능숙하게 일행들과 함께 쉴 만한 장소를 찾아냈다.

일행과 요한까지 포함한 8명의 잠자리. 요한은 우리들에게 잠자리를 만드는 방법과 불을 피우는 요령을 전수했다. 처음에는 모험가라는 우리가 제대로 불도 못 피우고 잠자리도 제대로 못 만들자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모험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에 간단히 납득했다.

애초에 모험가가 숲에서 길을 잃었다고 말했으니….

나는 뻔히 아는 방법들을 다시금 배워야 했다.

우리들은 요한이 알려준 대로 각자의 잠자리를 만들었다. 우리가 배운 대로 잠자리를 만드는 동안 요한은 간단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별한 요리는 아니었고, 단순한 잡탕 수프였다.

"자, 다들 잠자리를 만들었다면 들게. 솔직히 맛은 자신할 수 없지만 말이야."

가볍게 웃은 요한은 우리에게 음식을 나눠 주었다.

사실 전투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고픈 사람도 많았기에 다들 말없이 음식을 받아먹었다.

다른 파티의 한 여성은 잡탕 수프를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흑, 흐윽…."

조용히, 최대한 소리를 죽여서. 그 울음이 전염되었을까. 나를 제외한 다른 인원들 또한 하나둘 눈물을 흘렸다.

요한은 그런 우리를 어떻게 보았던 건지 고개를 돌려주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요한은 곧바로 우리를 깨웠다.

요한은 하룻밤을 자신이 책임진다는 말답게 불침번까지 자신과 자신의 개를 이용하여 모두 서기까지 했다.

"그럼 이 지도대로 이동하면 된다네. 시간이 남거든 여기랑 여기, 여기에 있는 함정까지만 확인해 주게."

"네."

"정오가 되기 전에는 돌아오게. 성까지는 거리가 조금 되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네. 몬스터는 없지만, 늑대는 제법 많으니 조심하게나."

끄덕.

나는 요한의 충고에 진지한 얼굴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나를 선두로 지도를 따라 이동했다.

"…대단하시네요."

"네?"

어제 혼자인 남자의 합류를 거절했던 여성이었다.

"요한과의 대화요. 대단하던걸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고, 덕분에 미션도 손쉽게 얻었어요. 감사해요."

"운이 좋았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주하연이라고 해요. 저기 어제 가장 먼저 운 애는 남은주, 저 남자는 김인실이구요."

"언, 언니!"

"저는 유신후라고 합니다. 얘는 나연, 저 애는 나서윤입니다. 한동안 잘 부탁드려요."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장비부터가… 어떻게 그런 장비를…."

"운이 좋았습니다. 1층에서 티켓을 많이 모았거든요."

"…정말 대단하네요. 우리는 겨우 방패 하나 얻는 게 고작이었는데…."

"오, 오빠 덕분에 대부분 다 살아남았어요. 혼자서 20마리도 넘는 괴물들을 처리해서…."

"스, 스무마리요?"

나서윤이 갑작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딘가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견제인가?'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다. 실제로 과거엔 내가 그리 눈에 띄지 않았었고, 파티 분위기가 이렇게 평온하지 않았었다.

"하, 하하…."

내심 나서윤의 이런 개입이 반갑게 느껴졌다. 나연과 나서윤. 특히 나서윤은 꼭 잡아야 하는 인재다. 포섭 대상인 사람이 내게 접근한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경계심을 내비친다.

아마 자신과 언니를 지켜줄 사람에게 더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우선순위를 높이기 위한 행동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머, 동생인가요? 귀엽네요."

"아. 여기 나연이 동생입니다. 저랑은 어제 만나긴 했는데… 성격이 잘 맞나봅니다."

"그렇군요."

나는 다가온 나서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서윤은 조금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서윤의 작은 견제에도 주하연은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내가 혼자 고블린을 20마리 넘게 잡았다는 말에 특히 더 그런 기색을 비쳤다.

어느새 파티는 나와 주하연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 또한 반대하는 기색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우리들은 주변 경계를 잊지 않았다. 아직 태양이 내리쬐는 상황이기에 이전보다는 풀어진 느낌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어제 겪은 일은 분위기가 일정 이상 풀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그 덕분일까. 다행히 목적치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한 시간 남짓을 걸어, 우리는 지도에 표시된 버려진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