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4화 (4/317)

# 4

튜토리얼 - 1층

내게 말을 건 사람은 중년 남성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왠지 뭐라고 할지 짐작이 간다.

"그, 저기 말이야. 그거, 방어구 티켓? 그거 남는 것 좀 나눠주면 안 될까?"

나는 고개를 모로 꺾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나는 더이상 호구처럼 살고 싶지도 않았고, 지금 시점에서는 내가 갖는 게 제일 효율이 높았다. 무엇보다 어차피 2층가면 헤어진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것을 베풀 이유가 없었다.

"함께했지 않은가. 사람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젊어서 잘 모르나 본데, 사람이 나누면서…."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죠. 제가 나서서 20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죽일 때, 당신은 뭘 했습니까? 그때는 보상이고 뭐고 일단 사람들이 위기에 처해서 싸운 겁니다만?"

"…보상을 줄지 모르지 않았나. 알았으면 같이 싸웠겠지."

"하. 어이가 없네. 고블린들이 사람을 죽이는데 보상이 없어서 안 싸웠다고요?"

"자, 자네가 뭉쳐서 버티라면서!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그거야 다들 싸우기 힘든 상황이라 그렇게 말한 거고요. 아저씨 정도면 나서서 싸웠어야지. 다른 사람들 피해 보는데 구경만 한 주제에 뭘 했다고 내걸 나눠달라는 겁니까?"

"다, 다음에는 나도 제대로 싸우겠네. 그러니 거 방어구 좀…."

웃기는 양반이다. 어디에나 있었다. 이런 사람. 그나마 내 활약을 지켜봤기 때문인지 큰 소리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눈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확실히 방어구가 있다면 위험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도 이 사람은 방어구 주면 싸우겠다는 말이라도 하지, 다른 사람들은 내 뒤에 숨을 생각일 거다."

앞서도 말했지만, 내 기억에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거절합니다. 이제 1층 끝났다니까 아마 더 있겠죠. 2층에서 열심히 하시죠."

"거 학생 너무하네! 20장도 넘게 먹었잖아! 그거 좀 나눠주면 다 같이 더 싸울 수 있다니까!"

중년 남자가 거절당하자 구경하던 구경꾼 중 하나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이건 뭐… 물에 빠진 거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겁니까?"

내가 보상을 위해 열심히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이들은 모른다.

이들이 보기에 나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위기를 앞서 해결한 사람이다. 자기희생을 한 사람으로 보일 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티켓을 내놓으란다.

"갚아 준다니까! 거 나이도 어린 놈이…."

"학생 아니고요, 나이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더는 상대해 줄 가치가 없군요. 꺼져요. 말 높여주는 것도 여기까지니까."

나는 난입자를 향해 말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싸워. 직접 챙겨. 달라고 징징거리지 말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뭐라 반박하려던 난입자는 곧바로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에 입을 닫았다.

[2층 이후는 파티로 행동하며 파티 최소 인원은 1명, 최대 인원은 4명까지입니다. 함께 할 인원끼리 손을 잡고 계시면 됩니다.]

[5분 후 이동합니다.]

"…뭐?"

난입자는 메시지에 말이 막힌 듯했다.

피식.

파티 행동. 최대 4명. 생존자가 25명이며 4명씩 파티를 맺으면 6파티가 완성된다.

한 명은 혼자.

사실 2층 이후로는 6~8명 정도의 인원이 함께 움직이므로 최소 2파티는 같이 행동하지만, 이들은 그걸 모른다.

혼자 남겨지면 혼자서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만했다.

게다가 봤으면 알 거다. 생존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누구인지. 살려면 누구에게 붙어야 하는지.

난입자는 우X르급 태세 전환을 선보였다.

"그, 어… 저기, 학생. 아니, 청년. 미, 미안하이. 내가 방금 험한 일을 겪어서 감정이 격해져서 그랬어.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

나는 난입자의 말을 무시한 채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티켓 20장을 사용했다.

곧바로 내 인벤토리에 모험가의 두꺼운 가죽 갑옷 세트가 나타났고, 개봉과 동시에 5피스의 갑옷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모험가의 두꺼운 가죽 갑옷(상의)]

등급 : 일반

-여러 몬스터의 가죽을 훌륭한 솜씨로 가공하여 뛰어난 장인이 만들어낸 가죽 갑옷. 어지간한 철보다 튼튼하며 무척 질기고 가볍다. 모험가를 위해 만들어진 만큼 내구도가 무척이나 높다.

방어력 : 15

방어력 15. 일반 등급의 어지간한 철 방어구는 방어력 10을 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가죽 갑옷은 무려 방어력 15다.

이정도면 어지간한 화살도 뚫을 수 없는 데다 무게마저 가벼우니 지금으로써는 최고의 방어구라 볼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갑옷들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착용하기 시작했다.

티켓을 얻은 사람들 또한 방어구를 선택했지만, 대부분이 1장인 만큼 내 갑옷에 비하면 하나같이 초라한 외형이었다. 모험가 가죽 갑옷 세트를 입은 내 모습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내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다들 내 파티에 들어오고 싶을 테니까.

내가 갑옷을 모두 걸치자 곧바로 난입자가 내게 다가왔다.

"저, 저기 말이야… 이보게. 그 파티…."

나는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곧바로 주변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

"저기요! 저, 저랑 파티좀!"

"저, 저 정말 잘 싸울 수 있어요! 저랑 파티해 주세요!"

"뭐든지, 뭐든지 하겠습니다! 부디 저랑…!"

사람들은 내가 마치 동아줄이라도 된다는 듯이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파티를 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사람들은 하나둘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헤치며 티켓을 얻어 방어구를 걸친 사람 셋이 내게 다가왔다.

"저희랑 같이 파티를 짜지 않으시겠습니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저는 김철우라고 합니다. 현재 파티 인원은 3명입니다, 당신께서 와 주신다면 딱 4명이죠. 저희 파티는 고블린을 쓰러뜨려서 3명 모두 방어구를 하나 이상 장착했습니다. 저는 두 장. 그쪽에 비하면 한참 모자랍니다만… 짐은 되지 않겠습니다. 같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김철우라는 남자는 적당히 예의를 차리며 내게 말했다.

나는 그와 그의 파티원을 향해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했다.

[정보 - 김철우]

나이 - 30

잠재력 - 중상

현재 심리 상태 - 기대, 불안

[정보 - 김은용]

나이 - 21

잠재력 - 중하

현재 심리 상태 - 자신만만

[정보 - 박영훈]

나이 - 29

잠재력 - 중

현재 심리 상태 - 불안, 초조

잠재력 중상, 중하, 중.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기억에 남은 얼굴이기도 하다. 과거 살아남은 사람 중에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튜토리얼 이후 본 적은 없었다. 그때는 부상이 무척 심했었으니까. 과거와는 다르게 팔다리는 멀쩡하니, 이번 회차에서는 튜토리얼 정도는 깰 가능성이 높았다.

잠재력이 중상이니까.

같이 갈 이유도 없었고. 나는 지금 당장 쓸만한 전력보다는 미래에 쓸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솔직히, 튜토리얼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클리어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거절합니다."

"…예?"

"제가 없으셔도 충분히 헤쳐나가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과 함께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앞으로 어떤 난관이 있을지 모릅니다. 짐이 되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부디 다시 한번…."

"아뇨. 괜찮습니다."

내 단호한 말에 김철우는 많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

"형님! 싫다고 하잖아요! 그냥 우리끼리 가요!"

김은용이었다.

"아니, 하지만…."

"뭘 어째요. 싫다는데. 우리끼리 가야지. 괜찮아요. 아까도 잘했잖아요. 다른 사람이라도 구해 보죠."

"…그래. 알겠다. 그럼. 앞으로도 무사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김철우 씨도요."

김철우는 아쉽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내가 그들을 거절할 거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다시금 용기를 얻은 인원들이 내게 파티를 요청했지만, 나는 그들 모두를 거절했다. 일부는 미인계라도 쓸 모양인지 유혹하는 모습까지 보였지만, 피투성이인 몸으로 그래 봤자….

나는 모든 요청을 단호하게 물리쳤다.

그러자 한참 뒤에 있던 나연이 힘겨운 기색으로 내게 다가왔다.

"저, 저기…."

"네?"

"그… 이런 말씀 드리기 어려운데…."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파티 하자구요?"

"…네."

"알겠습니다."

"…네?"

"하죠. 파티."

내 허락에 나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감, 감사합니다! 저기, 그런데, 저… 제가…."

"동생이요?"

"…네."

"뭐, 아까 봤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동생이랑 같이 합류하셔도 됩니다."

내가 흔쾌히 허락하자 나연은 오히려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냥, 그쪽 동생 보니까… 지구에 있는 제 동생이 생각나서 그런 것뿐이에요."

"아…."

나연은 어딘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진하네.'

앞서 나섰던 자기희생에 가까운 행동 덕분에 신뢰가 생겨 쉽게 믿는 듯했다. 사실은 보상을 노린 의도적인 행동이었지만.

사실 나는 그녀의 마법사로써의 재능과 잠재력 '상'을 탐내는 상태다.

앞서 1회차의 나를 앞섰던 모든 사람은 지구를 버리고 다른 차원을 선택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그렇기에 나는 그들이 아닌 다른 팀원을 모으고 싶었고, 잠재력 상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그녀를 훌륭한 마법사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단지, 주연이 되기에는 부족할 뿐.

과거의 1군 파티 수준, 아니 스킬 슬롯과 능력치 상태에 따라서는 그 이상 갈 수도 있었다. 1회차의 자신만 해도, 그렇게 호구짓을 한 후에도 결국 60층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단지, 나보다 더 뛰어난 이들에게 수많은 보상을 뜯겼기에 그리되었을 뿐. 잠재력 상이 무시받을 수치는 아니다.

부족하면 다른 사람을 선택하면 그만이고. 무엇보다 내가 기억하는 나연은 배신 따위는 없는, 무척 믿을만한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동생을 무척 사랑하는 만큼, 그녀의 동생만 잘 대해주면 더욱더 끌어들이기 쉽다.

내 허락에 나연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절대, 절대 짐이 되지 않게 노력할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나를 이끌고 그녀의 동생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서윤아! 서윤아! 파티 구했어!"

그녀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작은 몸집의 여자아이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녀의 동생을 바라보며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했다.

[정보 - 나서윤]

나이 - 16

잠재력 - 최상

현재 심리 상태 - 걱정, 불안, 안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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