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3화 (3/317)

# 3

튜토리얼 - 1층

여섯의 고블린이 내게 달려 들어왔다.

"키에에에!"

이전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싹을 제거한다는 심정일까. 반항의 의지를 애초부터 꺾으려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앞서 말했다시피 본래라면 우리 쪽의 전력이 우위다. 겁을 먹어서 그렇지.

솔직히 이제껏 본 인원이 10명 남짓인데, 처음 본 나연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이들이 왜 2회차인 내 기억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별다른 특징이 없으니까. 그냥 겁먹고 도망, 반항도 제대로 못 해, 무기를 선택조차 못 하고 죽어버린 인원도 존재했다.

퍽!

나는 내게 달려든 고블린들을 향해 마주 달려나가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나를 둘러싸려는 기색이 보이기에 적극적으로 상대하기로 한 것.

둘러싸이면 지금 신체 능력으로는 상처 없이 상대하기가 힘들다. 현재 회복 수단이 없는 만큼 치명적인 상처는 내 계획에 차질을 줄 것이다.

고블린들은 단검을 무장한 상태인 데다 손톱에도 가벼운 독성이 있기에 신경 써야만 했다.

"키엑!"

내가 한 녀석의 골통을 부수는 동안 다른 녀석이 빈틈을 파고들어 왔다.

"읏차."

그러나 예상했던 모습.

내가 신체 능력이 급락했다고 해도, 경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가볍게 회전하며 메이스를 크게 휘둘렀다.

붕- 퍼억!

"그륵."

고블린의 키가 내 허리높이다 보니, 머리가 때리기 딱 좋은 위치라 나름 편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둘을 해치우자 고블린들이 슬슬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몬스터. 최하급이라도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였다.

"키에에에에!"

단검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달려오는 고블린.

나는 달려오는 고블린의 속도를 계산하며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우드득-

챙그랑!

"끄에에에엑!"

고블린이 찔러오는 단검을 타이밍에 맞춰서 메이스로 쳐버리자 손이 부서진 채 울부짖는 고블린. 나는 고통에 울부짖는 고블린의 머리통을 부숴 고통에서 해방해 준 뒤, 곧바로 다른 고블린에게 달려들며 하나씩 하나씩 고블린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와."

어느새 도망치던 인간들도, 그들을 쫓던 다른 고블린들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어려움 없이 고블린을 죽여버리는 내 모습에 잔인함도 잊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탄스러운 모습이었다.

자신들을 죽이는 괴물을 처리하는 인간.

나는 여섯 고블린을 모두 처리한 후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무기를 소환하고 뭉쳐서 버티세요! 버티기만 하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내 외침에 사람들은 하나둘 무기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무기를 든 채 고블린을 상대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눈치채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성인 남자면 고블린 한 두 마리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씨, 씨발! 이, 이 새끼들 진짜 별거 아니잖아?"

"죽, 죽어! 죽어어어!"

손쉽게 고블린을 상대하는 모습에 드디어 다른 사람들 또한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대로 죽거나, 싸운다.

사람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 뿐이다. 물론, 내 말에 따라 여전히 무기만 소환한 채 뭉쳐서 견제만 하는, 즉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다행이군.'

본래 사람들에게 무기를 들라고 외친 이유가 견제만 할 뿐 되도록이면 고블린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기에 내심 만족스러웠다.

이번 1단계에서 20 이상의 고블린을 혼자서 죽이는 것이 목표였기에 부디 사람들이 고블린을 최대한 적게 죽이기를 바랬다.

사람들의 분위기가 반전되자 어느새 고블린들 또한 슬슬 기색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하나둘 뭉치려는 기색을 보였다.

그것을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뭉치면 혼자서 20 이상의 고블린을 죽일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내 주변의 고블린은 모두 죽였다. 한동안 같이 다니기로 결정한 나연은 위험할 일이 없으니 빨리 하나라도 더 고블린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몸을 움직였다.

곧바로 아직 무기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 사람을 공격하는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 키에에!"

내가 달려들자 고블린은 겁먹은 기색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신장 차이가 큰 만큼 달리는 속도는 내가 훨씬 빨랐다.

퍼석!

"끄르르."

한 방에 한 마리.

나는 뭉치려는 고블린들을 빠르게 정리해 나갔고, 다른 사람들 또한 내 모습에 용기를 얻어 다른 고블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키에에에!"

"죽어! 죽어!"

"오, 오지마! 오면 죽여버릴 거야!"

어느덧 주변은 난장판이 되었다.

세력을 형성한 사람들은 하나둘 가까워지며 덩치를 불렸고, 그런 이들은 고블린들 또한 피해갔다.

그러자 반대로 공격을 위해 뭉쳐서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다. 목숨이 아까운 것은 아는지 두셋씩 뭉쳐서 하나 떨어진 고블린을 노리는 치졸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저 정도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나로써는 그냥 처박혀있기를 바랬지만.

그들이 하나둘 떨어진 고블린만을 노리거나, 사람들끼리 뭉치기를 원할 때 나는 네다섯 마리가 뭉친 무리를 향해 겁 없이 달려들었다.

두어 번은 맞상대하던 고블린들도, 어느새 내가 접근하면 하나둘 흩어지거나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는 여유롭게 학살을 해낼 수 있었다.

연속된 전투. 몸은 피곤했지만, 그 끝에 있을 보상을 아는 만큼 최대한 효율적으로 고블린들을 상대해 나갔다.

"키에, 키에에에…."

어느새 고블린들의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으며, 전투의 승리는 인간의 몫이 되었다.

"우, 우와아아아!"

내가 마지막 고블린을 처치했을 때, 사람들의 환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들의 환성을 들으며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이런 환성을 받은 적이 언제더라….

피식.

저열한 감정이 조금 남아있었다는 것에 작은 웃음을 흘리며 나는 나연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아, 아… 네.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나연은 파리한 표정으로 내게 인사했다.

"천만에요.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고 살아야죠."

'나연. 정의로운 성격이고… 마법사였었지.'

과거 튜토리얼에서 불덩이를 쐈었다. 아마 파이어볼이었겠지. 지금은 안되지만, 마법사는 귀한 만큼 제법 대우해 줄 필요가 있었다. 밑준비라고 해야 할까? 나중까지 함께 할지는 스킬 슬롯의 개방과 상태 창의 능력치를 보고 결정해야겠지만.

마지막 고블린을 처치한 후 시간이 조금 지나자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미션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존자는 25명. 그 짧은 시간에 5명이 사망했다. 몸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은 인원도 조금 있고.

과거에는 7명이 살아남았던가? 그중 몸이 성한 녀석은 두어 명이 다였고.

절반 정도의 인간이 죽은 후에야 사람들이 들고일어났고, 치열한 혈투 끝에 승리해 살아남았었으니까.

"우웩."

"흑, 어헝, 집에 보내줘…."

"씨발, 씨바아아알."

클리어했다는 메시지에 사람들은 하나둘 주저앉기 시작했다.

나연 또한 파리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보아 다들 정신적인 충격이 큰 듯했다.

제자리에 토하는 인원도 있었고, 울부짖는 사람도, 그저 거친 욕설만을 희미하게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제 어쩌지…?"

그때였다. 고블린들의 시체가 빛나기 시작했다.

"어, 어어…?!"

그런 모습에 사람들이 당황했지만 다행히 나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고블린들의 시체는 입자가 되어 사라졌고, 그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얇은 사각형의 종이 한 장씩이 떨어져 있었다.

마치, 죽인 몬스터를 죽이고 아이템을 드랍하는 것처럼. 저들이 허상이라는 증거다.

'나왔군.'

나는 내 눈에 파랗게 빛나는 티켓들을 살펴보았다. 22장. 내가 죽인 고블린들의 숫자다. 기를 쓰고 무리해가며 고블린들을 죽인 보람이 있었다.

[정산이 시작됩니다.]

[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

[방어구 교환 티켓이 배부됩니다. 방어구 교환 티켓은 사용 시 방어구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뭐?"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 사이에 눈치 빠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곧바로 땅에 떨어진 티켓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찌릿.

"으앗!?"

[소유주가 아닙니다.]

티켓 위에 나타난 홀로그램 메시지. 동시에 티켓을 향해 손을 뻗었던 사람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티켓에게서 멀어졌다.

히죽.

나는 곧바로 티켓들을 향해 나아갔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거나 소유권을 박탈당한다. 시간이 넉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빨리 챙기는 것이 좋다.

내가 다가가 티켓을 손에 쥐자 밀려났던 사람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바로 다른 티켓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살펴본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뜻을 이룬 사람은 몇 없었다.

"이게 뭐야! 왜, 왜 가질 수가 없는데!"

"나도 싸웠다고!"

나를 제외한 몇몇 인원은 푸르게 빛나는 것이 어떤 뜻인지 눈치를 챈 듯 티켓을 주웠지만, 인원은 몇 되지 않았다.

나는 22장의 티켓을 회수한 뒤, 티켓을 살펴보았다.

[방어구 교환 티켓]

-튜토리얼에서 사용 가능한 방어구 교환 티켓이다. 사용할 시 방어구를 선택해 받을 수 있다.

-여러 장 사용 시 조금 더 좋은 방어구를 얻을 수 있다.

-방어구는 인벤토리로 전송된다.

나는 곧바로 티켓을 사용했다.

[방어구를 선택하세요]

-얇은 고블린 가죽 투구

-얇은 고블린 가죽 갑옷(상의)

-얇은 고블린 가죽 갑옷(하의)

-얇은 고블린 가죽 건틀릿

-얇은 고블린 가죽 부츠

-고블린의 낡은 방패

방어구 5피스에 방패까지. 총 6피스. 즉, 6장이면 풀셋트를 맞출 수 잇다. 하지만 이름만 봐도 영 부실해 보이는 방어구다. 고작 이걸 위해 20장이 넘는 티켓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사용."

방어구를 선택하지 않고 다시 한 번 티켓을 사용하자 내용이 추가되었다.

-두꺼운 고블린 가죽 투구 (2장)

-두꺼운…

피식.

나는 다시금 티켓을 사용하자 점점 방어구의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두꺼운 고블린 가죽에서 얇은 홉 고블린 가죽으로, 얇은 홉 고블린이 두꺼운 홉 고블린 가죽으로 다음은 놀 가죽을 넘어 이제는 철로 된 왕국 병사 갑옷까지 나왓지만, 나는 무시한 채 계속해서 티켓을 사용했다. 계속해서 티켓을 사용해도 7장, 즉 왕국 병사 갑옷에서 더 나은 갑옷은 나오지 않았지만 무시한 채 티켓을 계속 사용했다. 마침내 15장, 즉 소환된 고블린 중 절반에 해당하는 수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티켓을 사용하자 모든 목록이 사라지고 하나의 목록만이 나타났다.

-모험가의 얇은 가죽 갑옷 세트

히든 피스.

초반 기여도가 절반이 넘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초반에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방어구중 하나.

하지만 여기서 5장을 더 사용하면….

-모험가의 두꺼운 가죽 갑옷 세트

가죽이 두꺼워진다. 아이템 등급은 여전히 일반이지만… 방어력이 레어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가죽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강철 방어구보다 방어력이 뛰어나다. 무게도 훨씬 가볍고. 신체 스텟이 거지 같은 지금 시점에서는 이 가벼운 무게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만약 내가 혼자서 30장을 모두 얻었다면….

'레어 방어구 세트를 먹었겠지.'

솔직히 조금 아쉽지만, 별수 없었다. 전투로 인해 머리끝까지 피가 몰린 상태에서 다른 이들이 구경만 할 리는 없었고, 내 신체 능력으로는 이게 한계니까.

그래도 튜토리얼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다.

내가 웃으며 모험가의 두꺼운 가죽 갑옷 세트를 선택하려는 순간.

"이보게, 학생."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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