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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 지구를 선택했다-2화 (2/317)

# 2

튜토리얼 - 1층

[수련의 탑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허공에 떠 있는 메시지. 나는 멍하니 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정말 회귀했네.'

나는 지구의 유일한 관리자, 가이아와의 계약을 떠올렸다.

'시간을 멈춘다고 했지. 그동안 경험을 쌓으라고.'

그를 위한 안배까지 준비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솔직히 포기하고 싶었다. 이 탑을 다시 오르라니…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

가족.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버린 가족을 되살리기 위해서.

잠시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나 말고 다른 인원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으악! 여기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괴물이! 괴물이! 하늘에서 괴물이…!"

"여긴 어디야?"

"살려주세요! 저기요!"

그것도 하나같이 패닉에 빠진 모습으로. 과거의 나 또한 별다를 바 없었다.

주변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잠옷 차림으로, 누군가는 상처 입은 모습으로 소환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그랬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한 채 조용히 읊조렸다.

"상태 창."

[아직 개방되지 않은 기능입니다.]

역시 아직은 안 되나?

그렇다면….

'관리자의 눈동자.'

이건 탑이 준 스킬과는 다르게 관리자 가이아와의 계약으로 얻은 기술이다. 스킬 슬롯도 소모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아직 튜토리얼을 깨지 않아 탑의 기능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유일한 스킬이었다. 단지, 가이아가 지구의 관리자다 보니, 지구인들에게만 사용 가능하다는 한계점이 존재하지만.

나는 곧바로 과거 작은 인연이 있던 사람 중 하나에게 관리자의 눈동자를 사용했다.

[정보 - 나연]

나이 - 24

잠재력 - 상

현재 심리 상태 - 불안, 초조.

심플한 정보 창이 튀어나왔다. 여기서 상태 창과 스킬 슬롯이 개방되면 그 정보들마저 들여다볼 수 있다.

아직 개방되지 않은 기능이기에 대략적인 정보밖에 알 수 없었다.

잠재력 상.

내 잠재력이 상이다. 특별한 기연이 없다면 딱 과거의 내 수준이 한계인 사람.

스킬 슬롯이나 초반 스킬 운에 따라서는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기는 하지만.

'저 정도 사람이었나.'

과거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을 아는 만큼,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사람들을 살필 시간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짬을 내서 확인을 해야 한다. 쓸 때마다 정신력이 고갈되고 피곤해지기에 과도하게는 안 될지 몰라도, 앞으로 만나는 인원에게 써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만의 파티를 짜야 하니까.

고향은,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혼자서 구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그런 만큼 동료의 존재는 필수 조건이다.

나는 가이아와 계약을 하며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었다.

과거처럼 호구같이 살지 않겠다고.

이제는 고향의 구원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가 짊어졌다. 그런 만큼 이제는 과거처럼 스킬도, 아이템도, 던전을 비롯한 무수한 기회도 절대로 남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무조건 지지할 파티원에게만 일부 나눠 줄 뿐이다.

내 편을 만들고 나 또한 무수히 성장해야만 한다. 나는 내 잠재력과 스킬 슬롯이 몇 개인지까지 알고 있다 보니, 스킬도, 아이템도, 던전도 무엇이 필요한지 설계가 가능했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직업… 인가.'

과거 자신은 전사였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사제가 돼야만 한다.

가이아의 안배는 자신이 사제여야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만큼, 직업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다.

확실히 사제는 재능이 가장 덜 필요한 직업이고 관리자가 작정한다면 그만큼 지원을 받기 쉬운 만큼 확실히 도움이 되기에 나 또한 전직에 동의했었다. 그리고.

'사제라고 꼭 후방에만 있으란 법도 없고.'

미래의 계획을 한참 생각하는 도중에 메시지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련의 탑은 여러분들의 성장을 위해 수많은 것들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탑을 오르세요. 끝까지 오르신다면, 원하는 세계로 가실 수 있습니다.]

그래. 저 멘트. 예전에 저 멘트에 속았다.

끝까지 오르면 원하는 세계로 간다. 여러 설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특히 우리는 저것을 지구로 갈 수 있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귀향(歸鄕). 그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알아들었었지. 그게 대다수의 수련자들이 생각하는 답이었다.

[10층까지는 튜토리얼 구간입니다.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띠링.

[1층의 시험]

-당신이 수련의 탑에 오를 각오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세요.

-목표 : 고블린 30개체 살해

-보상 : 2층으로 이동. 인벤토리 개방.

[무기가 지급됩니다. 선택하세요.]

-낡은 한 손 검.

-녹이 슨 메이스

-조잡한 양손…

주르륵.

여러 메시지 창이 시야를 가렸다.

연속된 메시지 창의 향연에 주변이 어느새 조금 조용 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게 뭐야!"

"수련의 탑? 이게 뭔데? 집으로 돌려 보내 줘!"

"이런 거 몰라요! 그냥, 그냥 집으로 보내주세요! 엄마!"

"고블린? 그게 뭔데? 살해라니… 지금 장난하냐? 이거 누구야? 누가 이딴 거지같은 장난을 치는 거냐고!"

나는 주변의 소란을 무시하고 곧바로 무기를 선택했다.

여기 소환된 인원은 대략 30. 그리고 고블린 또한 30이라고 한다. 사실, 반이 남자고 그들 중 열 이상이 성인인 만큼, 고블린 30은 무서운 적이 아니다. 무기까지 지급 해주니까.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인원은 전투가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 그렇기에 과거, 여기서 살아남은 인원은 채 10명이 되지 않았었다.

그만큼, 전투는 경험이 중요하다.

내가 무기를 선택하자 곧바로 환한 빛무리가 내 손 앞에 나타났다. 빛무리는 곧바로 뭉쳐져 내가 선택한 무기의 형상으로 빚어졌다.

[녹이 슨 메이스]

-관리가 잘 되지 않은 메이스. 어느 정도 균형은 잡혔지만 대장장이의 솜씨가 그다지 좋지 못했는지 모양이 조금 일그러져있다. 다행히 철의 질이 좋은 편이고 기본적인 솜씨는 있었는지 무척이나 단단하다.

공격력 : 2

메이스. 과거 내가 주로 사용한 무기는 아니지만, 지금 신체 능력을 생각하면 이게 최선이다.

내가 메이스를 소환하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저게 뭐…."

"무, 무기?"

"빛이 무기로 변했어…."

갑자기 떠오른 빛과 빛이 무기로 변하는 모습에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확실히 지구는 과학이 지배했고, 마나도, 마법도 없는 세계였으니까.

그때였다. 무언가 긁히는 듯한 괴음이 주변에 울렸다. 내가 무기를 소환한 것이 시작인 것처럼 곧바로 고블린들이 한 무더기 소환되었다.

"키에엑?"

우리들의 맞은편.

녹색 난쟁이들은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깜짝 놀랐는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게다가 그들 입장에서야 눈앞에 갑자기 30명에 가까운 인간 무리가 나타난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몬스터. 이성보다 야성의 지배를 받는 이들이다.

고블린들의 출현에 인간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과 움츠러든 모습, 겁먹은 기색을 내비췄고, 고블린들의 감각은 그런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단숨에 인간들이 단순한 사냥감이라고 인식했고, 기쁨에 찬 괴성을 지르며 인간들의 무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키에에에!"

"괴물! 괴물이다!"

"으엉! 엄마! 엄아아아아!"

"도망쳐어어!"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틈에 섞여 움직였다. 어차피 혼자서는 30마리에 이르는 고블린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었다. 경험이 있더라도 내 신체는 막 탑에 입장했을 무렵의, 전혀 단련되지 않은 평범한 몸이었으니까. 현재로써는 대여섯이 한계. 그러니 고블린들이 조금 흩어지게 둘 필요가 있었다.

일단 잠재력이 높았던 나연의 주위를 조심스럽게 돌며 다른 사람들을 관리자의 눈으로 확인했다.

'중, 하, 중하, 중, 최하, 중상….'

하나같이 잠재력이 부족한 사람들 투성이었다.

10명쯤 확인했을 때는 이미 정신이 지쳐버린 상황이라 더는 쓰기가 힘들어졌다. 그사이 하나둘 사람들은 고블린에게 죽어갔고, 일부 인원은 급하게 무기를 소환해 맞서기 시작했다.

"저리 꺼져! 이런 괴물 난쟁이 새끼들이…!"

한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선택한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키엑!"

한 고블린이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났다. 그에 자신감을 가진 남자가 크게 외쳤다.

"다들 무기를 선택해! 이 새끼들 사실 별거 아니…!"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고블린들은 남자가 무기를 휘두르며 동료를 상처입히자 곧바로 주변 고블린들이 합세해 남자를 집중 공격했다.

"이런 젠장! 으, 으아! 으아악! 괴물, 괴물새끼들이…! 도와, 도와줘! 이봐! 도망치지 말고…!"

잠재력 중상. 그럭저럭 나쁜 재능은 아니었지만, 아쉽게도 거리가 제법 멀었다.

그렇다고 나연을 포기하고 구하기 위해 달려들기에는 조금 아쉬운 수준. 나는 남자를 포기하고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으아아악!"

남자는 결국 고블린들의 손에 갈가리 찢어져 죽었고, 사람들은 공포에 빠져 더 멀리 도망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칠 수 없었다.

투명한 막이 일대를 감싸고 있었고, 도주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열어! 열어줘! 열어달라고!"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요!"

"흐어엉!"

"키에에에!"

나는 주변의 비명과 고블린들의 기쁨에 찬 괴성을 무시한 채 내게 달려오는 고블린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메이스를 돌렸다.

붕붕.

앞서 보았던 설명대로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혔는지 묵직한 느낌이 기분 좋았다.

"뭐, 원한은 없지만…."

달려오는 고블린 한 마리.

도망을 포기하고 자세를 잡는 나를 보며 고블린은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나 또한 완전한 사냥감으로 보는 모습이었다.

"이것도 퀘스트라."

나는 그런 고블린을 향해 힘차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퍼억!

수박 깨지는 소리. 달려들던 고블린의 관자놀이에 크게 휘두른 메이스가 제대로 적중했다.

고블린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대로 절명했다. 깨진 머리에서는 뇌수가 흘렀으며 내 몸에 붉은 피가 조금 튀었다. 하지만 나는 피를 닦는 대신 조금 뻐근한 느낌이 드는 어깨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후우… 제대로 휘둘렀는데 이 느낌이라니… 몸뚱이가 정말 약해 빠졌네. 언제 단련한담."

과거의 내 몸이지만 저절로 혹평이 흘러나왔다. 손목도 조금 욱신거리는 게, 조금 더 신경 써서 휘둘러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준비 운동이라도 할 걸 그랬나?

단숨에 고블린 하나를 해치우자, 동족의 혈향에 고개를 돌린 고블린들이 죽어버린 동족의 모습에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고블린들을 슥 훑어보았다. 수는 여섯 마리.

움찔.

씨익.

다른 사냥감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그들은 조금 위기감을 느낀 듯했다.

나는 가볍게 웃어주며 다시금 메이스를 들고 위협적으로 흔들어 대었다.

훙, 훙!

"키에에에에!"

그런 내 모습이 도발로 느껴졌던 것일까, 주변의 고블린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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