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173화. 최후의 결전(2)
그 시원스런 욕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비트칸이었다.
아벨이 있는 곳에 방어 마법진 및 마도구들로 도배를 하고 이제 올라온 것이었다.
그 욕설에 순간 아군, 적군 구분 없이 전장戰場 전체가 고요해진다.
엄마 젖이나 더 먹어야 할 어린 꼬맹이가 날아 올라와 감히 대륙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제국의 황제에게 ‘어디 개X끼가 죽으려고 환장했냐?’고 망발을 지껄이다니.
피식―
그런데 의외로 크리스찬은 화를 내기보다는 그 어린아이가 귀엽다는 듯이 양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솔직히 그의 입장에서는 비트칸과 에디린, 그리고 12성 검사인 마고스와 10 서클 쥬디스, 네 사람 모두 전력을 다해 합공을 해도 자신 한 명을 상대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크리스찬은 비트칸의 악에 받친 도발이 그저 귀여울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용서할 생각은 없었으니.
크리스찬은 그 아름다운 미소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지우고는 성벽 위에서 자신을 부들대며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비정한 목소리로 자신의 마지막 뜻을 전한다.
“항복할 생각하지 말아라. 네놈들은 앞으로 있을 찬란한 에브니아 대륙의 역사의 본보기가 될 것이니.”
그리고는 자신의 백마를 돌려 동맹군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시작하라.”
크리스찬의 명이 떨어지자 먼저 시작을 알리듯 마력포들이 쏘아졌다.
펑―! 펑―! 펑―! 펑―! 펑―! 펑―!
엄청난 장관이었다.
황금빛 마력포탄들이 황금빛 찬란한 긴 꼬리를 그리며 미스라임의 너덜너덜해 보이는 성벽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갔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비를 하지 않았을 미스라임이 아니었다.
마력포탄에 반응해 즉각 그들이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었던 미스라임의 대마력포용 방어막 무니티오가 펼쳐졌다.
위잉―!!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제국의 마력포는 미스라임의 무니티오에 엄청난 충격파와 공간의 일그러짐을 그려냈지만 거기까지였다.
준비된 마력포들이 모두 쏘아졌지만 무니티오의 위용은 여전히 견고했다.
모든 마력포탄이 막히고 다시 재충전에 들어간 제국의 마력포들을 보고는 반 국왕이 그제야 소리쳐 명을 내린다.
“이제 우리 차례다! 쏴라!”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쎄에에에에에에에에엑―!
이번 역시 장관이었다.
마치 눈덩이 같은 새하얀 마력포탄들이 새하얀 꼬리를 그리며 날아갔다.
미스라임의 마력포탄들은 누가 봐도 제국의 그 무시무시했던 마력포탄보다 한 수 위라는 느낌이었다.
정말 누가 봐도 엄청나게 강하다는 느낌으로 동맹군의 진영으로 날아갔다.
우우우우우우우웅―!
물론 제국도 이에 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위잉―!
곳곳에 세워진 방어막을 펼쳐질 대마력포 방어 타워에서 마력들이 뿜어져 나가며 미스라임의 대마력포 방어막 무니티오와 같은 거대한 방어막이 펼쳐진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하지만 역시 미스라임의 마력포들과 방어막이 한 수 위였다.
아무리 세계 최강국 제국이라 하더라도 마법에 특화된 마법 강국 미스라임의 기술력에는 따라가지 못했었다.
마력포도, 방어막도 한 수 아래다 보니 순식간에 동맹군의 방어막에 균열이 만들어진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적―!
오래지 않아 그 방어막이 깨어진다.
쨍―!
방어막이 깨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크기의 검은 물체들이 튀어나온다.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동맹국이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병기들, 드래곤의 뼈와 살로 만든 플레시 골렘들이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이 플레시 골렘들은 제국의 황궁을 수호하던 골리앗과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됐다.
“저것들을 조준해!”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방어막이 깨졌기에 그들의 진영에 쏘아 엄청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저것들을 막지 않는다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드래곤의 뼈와 살로 만들어진 이것들은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다.
사실 플레시 골렘들은 너무나 귀한 것들이어서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각 국가에서 숨겨두고 꺼내 쓰지 않았었다.
코렌트와 바일의 국왕들도 아벨이 없을 때 지금이야말로 미스라임을 박살 낼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미스라임도 그들이 플레시 골렘들을 쓸 거라고 예상했었다.
“충전!”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다시 마력을 충전시킨다.
동맹군의 마력포들보다 그 충전시간이 2배는 빨랐다.
“겔루를 준비시켜라!”
미스라임의 대표 전투 골렘인 얼음 골렘, 겔루도 출격을 기다린다.
기긱―! 기긱―! 기기기긱―!
출격할 준비를 마쳤지만 겔루들을 벌써부터 성벽 아래로 내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성벽 위에서 플레시 골렘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쿵―! 쿵―! 쿵―! 쿵―! 쿵―!
천지를 울리는 플레시 골렘들의 발걸음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당장 저 빌어먹을 당당함을 짓밟아 뭉개고 싶었지만, 반 국왕은 확실하게 맞출 수 있는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그제야 발포 명령을 내린다.
“쏴라!”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콰직―! 빠지지직―! 콰지직―!
온몸에 발진 같은 소름 돋는 굉음들이 울려 퍼졌다.
휙― 휙릭― 휙― 휙리릭―
플레시 골렘들의 머리통과 팔다리가 부서지고 잘려 날아가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골렘의 핵이 부서지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골렘들은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쿵―! 쿵―! 쿵―! 쿵―! 쿵―!
그러한 난장판인 가운데서도 멀쩡하게 살아남아 뛰어오는 플레시 골렘들이 무려 백이었다.
그만큼 그 수가 많았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것들이 이제 코앞이었다.
이제 얼음 골렘들 겔루들이 그것들을 맞이할 때가 됐었다.
쎄에에에에에엑―!
미스라임의 마법의 집합체인 얼음 골렘들, 겔루는 결코 약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 무게만 약 1톤이었는데, 그 엄청난 무게로 엄청난 높이의 성벽에서 떨어지는 중력의 힘을 받아 하나당 하나의 플레시 골렘을 피떡으로 만든다.
콰쾅―! 콰쾅―! 콰쾅―! 콰콰쾅―!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
그럼에도 여전히 전투가 가능한 플레시 골렘들이 있었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그 수가 굉장히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시무시한 위용을 펼친다.
콰쾅―! 쾅―!
살아남은 겔루들과 플레시 골렘들은 서로 두 손을 맞잡고 힘겨루기를 한다.
빠직―!
역시 정공正攻에서는 플레시 골렘을 이길 수가 없다. 마주 잡은 겔루의 손가락들이 박살이 나면서, 손이 자유로워진 플레시 골렘들은 하나둘씩 겔루들의 심장을 박살 낸다.
마력포들과 겔루의 첫 번째 기습공격으로 줄일 수 있는 플레시 골렘들의 수는 모두 줄였었다. 더는 마력포들과 겔루들로 줄이기는 어려웠다.
그 모습을 본 브릴튼 기사연합국의 총지휘관인 카르타고의 영주 조르조 톨로이가 침음성을 흘리며 반 국왕에게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음…… 괜찮겠소……?”
그 짧은 물음에 모든 게 함축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이제 제국의 마력포들도 충전을 끝내고 미스라임을 향해 쏘아대기 시작했다.
위잉―!
다시 한 번 무니티오가 발동하고 그것을 막았지만 무니티오 역시 한계가 있었다. 언젠가 깨어질 게 분명하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 광경을 바라보며 반 국왕이 말한다.
“괜히 미스라임이 제국 다음의 강대국인 게 아닙니다.”
“……?”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걱정 마시지요. 우리도 저것들을 갖고 있으니. 저 빌어먹을 화신체라는 것들 때문에 아끼는 것이지.”
“……?!”
그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미스라임도 플레시 골렘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한 판단이십니다!”
브릴튼 기사연합국의 수장들도 이제는 화신체라는 존재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은 드래곤 10마리의 힘을 낸다고 했으니, 분명 그들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된다면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었다.
반 국왕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빌어먹을 것들이 인세人世에 더는 영향을 못 끼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주신 아그네스가 우리 편이니 분명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개 돌려 성녀 다프네를 바라본다.
솔직히 그녀가 아니었다면 화신체들에 의해 용사 아벨뿐만 아니라 사나, 그리고 자신까지, 이 성벽에 있는 모두가 죽을 게 분명해 보였다.
‘주신 아그네스가 이때까지는 인세에 개입하지 않아 왔지만……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이제는 그도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주신主神이라는 이름에 스스로가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일 테니.
물론 이러한 미스라임의 생각을 크리스찬과 다른 화신체들이 모를 리 없었다.
게리가 그들의 생각을 비웃는다.
“킥― 저것들이 꼼수를 쓰는군.”
이스마일 역시 마찬가지로 어이없다는 듯이 비웃는다.
“그러게 말이야. 플레시 골렘 따위가 우리에게 상대가 된다 생각하나 보지?”
반면 아마라는 비웃기보다는 자신들을 얕봤다는 생각에 오히려 전의戰意를 불태운다.
빠드득―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한다.
“다신 그딴 꿈을 꿀 수 없게 철저히 짓뭉개주지.”
아마라가 필요 이상으로 발끈한다 생각해 게리는 걱정하는 투로 말한다.
“야. 아마라 그렇다고 너무 단번에 없애려고는 하지 마. 좀 갖고 놀다 죽이자고. 그리고 당연히 여자들은 모두 살려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여자들은 당연하지.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그 대답에 대단히 만족스러워한다.
“크큭― 그래. 내가 괜한 걱정 했네. 크크큭―”
그때 이스마일이 경계하는 투로, 경고하는 의미로 말을 꺼낸다.
“근데 미리 말해두겠는데, 아르시아는 내 거다. 다들 잘 알아둬.”
그 말에 게리가 어이없어하며 발끈한다.
“누구 맘대로! 아르시아는 내 거라고! 넌 똑같이 생긴 드래곤 X이나 가져!”
“인간인지도 모를 X을 내가 왜? 너나 그 X을 가져.”
마치 어린아이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빼앗기는 것처럼 분노를 표출한다.
“이게 돌았나! 한 판 뜰래?!”
물론 이스마일도 결코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죽음을 불사할 각오도 있었다.
아르시아의 미모는 그만한 가치를 가진 것이었으니.
스릉―
검을 뽑아 든다.
“좋아! 한 판 뜨자! 승자가 갖는 걸로 하자!”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진짜 싸울 것처럼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아우라를 피워 올리는데.
“잠깐.”
가만히 지켜만 보던 크리스찬이 개입했다.
“네놈들은 다프네의 힘을 잊었단 말이더냐? 헛짓거리로 힘 빼지 말아라. 다프네가 확실히 죽기 전까진 결코 방심하지 말란 말이다.”
그 말에 모두 대단히 거슬린다는 듯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잊을 리가.”
“맞아. 그것도 똑같이 짓밟아줘야지.”
“아니, 찢어 죽여야지.”
그러면서 게리는 크리스찬을 비스듬히 노려본다.
“그런데 크리스찬. 네놈은 마치 우리보다 위인 것처럼 구는데. 썩 기분은 좋지 않군.”
그에 동의하듯 이스마일은 적대를 가지는 그런 게리를 넘어 크리스찬을 당장 죽일 듯이 살기를 담아 노려봤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크리스찬을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었다.
다름 아닌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부인을 빼앗겼으니 말이다.
“그래. 네놈이 위라는 생각 따위 버려라. 우리는 다 같은 선택받은 이니까.”
두 사람은 결코 크리스찬을 자신들보다 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제국의 황제라도 말이다.
그들에겐 다 같은 하위 신들의 화신체일 뿐이었다.
씨익―
그들의 적대에 크리스찬은 그저 양 입꼬리를 진하게 올린다.
아벨만큼은 아니었으나 그 역시 대단한 미남자라 그런지 그 미소가 썩 어울렸다.
“설마. 내가 그럴 리가. 나는 그저 우리가 방심해서 일을 그르치길 원치 않을 뿐.”
그렇게 말했음에도 이스마일은 여전히 살기를 담아 경고한다.
“조심하라고. 우리는 정의의 신 따위 두렵지 않으니까.”
게리도 그 말에 적극 동조한다.
“이스마일의 말이 맞아. 우리의 신들 역시 최고의 신. 그러니 거들먹거리지 말아라. 너부터 죽여 버리기 전에.”
아까의 장난과도 같은 상황이 아닌 진심으로 살기가 담긴 적의를 보이자 아마라가 더는 볼 수 없어 그런 둘을 말린다.
“그만해. 이스마일, 게리. 우리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큰일을 앞두고 우리끼리 분열되면 안 돼.”
사실 그 말이 맞았다.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큰일이 우선이었다.
이스마일도, 게리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잠시 크리스찬을 노려보다 툴툴대며 그만하기로 한다.
“젠장! 장난이었는데, 기분 다 잡쳤군!”
“쳇―! 재수 없는 새X!”
아마라는 크리스찬에게도 한마디 한다.
“너 역시 지금은 자극될 말은 피하는 게 좋겠다.”
다른 이들이 보았을 때 대단히 억울한 욕을 먹었음에도 크리스찬은 그럼에도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 조심하지.”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이제 어느 정도 서로의 첫 수들이 정리되는 듯했다.
몇 안 남은 동맹군의 플레시 골렘들이 미스라임의 얼음 골렘 겔루들을 전멸시켰고 그들이 자랑하는 마력장벽의 동력원을 때려 부수고 있던 것이었다.
저것만 파괴되면 본격적으로 동맹군들이 나설 때였다.
게리가 크리스찬을 비릿하게 바라봤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지?”
크리스찬이 황제이기에 명을 내리라는 소리였다.
쩌저저저정―!
그때 때마침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무니티오가 붕괴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