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172화. 최후의 결전(1)
다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
동맹군이 공격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 시기가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이었다.
“이 개X끼들이!”
가장 먼저 에디린이 뛰쳐나갔다.
그리고 케이와 아르시아가 뛰쳐나간다. 두 여자도 어느 때에 적이 와도 도움이 되기 위해 처음부터 무장을 한 상태였다.
아벨의 복수를 자신의 두 손으로 하기 위해 위험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거리낌 없이 에디린을 쫓아 나간다.
“우리도 가자.”
“그래. 그 싸가지 없는 것들을 다 죽이러 가자.”
마고스와 쥬디스가 다음으로 쫓아간다.
바로 뒤이어 죠슈아가 쫓아가려고 했는데, 그 전에 비트칸에게 부탁한다.
“비트칸 님 마법진과 마도구 설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아벨은 이미 죽은 사람 취급할 수도 있었으나 몰랐다. 확인사살 할 겸 다시 한 번 더 공격할 수도 있었다.
비트칸 역시 이곳부터 대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다. 나도 설치하고 곧 따라가마.”
“네.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죠슈아가 나가자 비트칸은 본격적으로 아벨을 보호할 마도구들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이제 비트칸을 제외하고 방 안에는 수잔 황비와 다프네, 사나, 그리고 제시와 제니 자매가 남아있었다.
사나는 여전히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런 그녀를 수잔 황비는 따뜻하게 감싸준다.
“너 때문이 아니란다.”
“어머님…….”
“정 네가 그렇게 괴롭다면 이번엔 네가 아벨을 지켜주면 되잖니. 나와 함께 아벨을 지키자꾸나.”
그 따뜻한 말에 다시 한 번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흐흑― 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지켜내겠어요…….”
그녀의 들썩이는 등을 토닥이며 적들이 다가올 곳을 바라본다.
‘주신 아그네스시여. 부디, 부디 당신도 양심이 있다면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당신이 직접 나서서 적들을 물리쳐주시길.’
이제는 주신 아그네스가 직접 나서야 할 때였다.
그가 나서서 적들을 물리쳐야 했던 것이었다.
그래야 당신의 편이, 당신의 정의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니.
* * *
저 멀리 엄청난 수의 대군이 엄청난 수의, 집채만 한 마력포들을 끌고 오고 있었다. 아벨에 의해 거의 다 죽었고 거의 다 부서졌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많은 수였다.
저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걸 보면, 분하지만 화신체들이 일부러 아벨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의 병력을, 심지어 크리스찬은 자신의 아비인 아이작 백작마저도 미끼로 썼다는 게 확실해 보였다.
“이 개X끼들……!”
정의의 신 타티스의 화신체인 크리스찬 요한센과 불의 여신 베스타의 화신체 아마라 푸뉴스, 물의 신 에르사의 화신체 게리 피츠, 풍요의 신 키빌리의 화신체 이스마일 우니베르스, 지혜의 신 에크네의 화신체 그리스에를 제외한 대륙의 화신체 모두가 모여 있었다.
그 넷이 앞장서서 전군을 이끌고 있었다.
오히려 코렌트의 세런 예이니 국왕과 바일의 메히르 투판 국왕은 그들 바로 뒤에서 따라가고 있다.
이제는 화신체들이 대놓고 인간들을 지휘할 생각인 듯했다.
그 모습이 더없이 역겹게 다가온다.
빠드득―!
어금니를 부서질 듯이 물었다.
“제기랄!”
문제는 이번에 반드시 모든 걸 끝내겠다는 듯이 최고 대신관들도 다시 뽑았다는 것이었다.
전장임에도 그 휘황찬란한 화려한 의복으로 그들이 새로 뽑힌 최고 대신관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예전 최고 대신관에 비해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분명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철컥―!
에디린은 투구를 제대로 고쳐 쓰며 분노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두 여자에게 말한다.
“아벨이 있을 땐 걱정이 없었지만 이젠 아니야. 그러니 알아서 싸워. 그리고 알아서 죽지 마.”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언니.”
“걱정 마세요. 우리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녀들은 아벨에게 폐를 끼칠까 봐, 그리고 혹시나 도와줄 일이 생길 걸 대비해 그동안 아주 열심히 수련해 왔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녀들은 정상급 무인들에 비하면 당연히 대단히 역부족이었지만.
‘아벨을 위해서라도 꼭 이겨야만 해!’
두 여자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아벨을 위해서 오늘의 이 싸움을 반드시 이겨내겠다고.
‘아벨! 나에게 힘을 줘!’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아벨이 없는 건 둘째 치더라도 압도적인 전력 차를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새로 미스라임의 국왕으로 취임한 반 카르하가 브릴튼 기사연합국에 요청한 지원군이 없었다면 아예 상대도 안 됐을 것이었다.
전의를 다지면서도 두려움을 느끼는 그녀들을 에디린은 측은하게 바라본다.
‘너희들도 걱정되겠지…….’
그리고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도 측은하게 바라본다.
‘빌어먹을…….’
에디린은 에이션트 드래곤이었을 때의 그 힘만 있었다면 저것들은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이길 자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힘이 없었으니.
“휴…….”
에디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뒤늦게 올라온 다프네를 바라본다.
‘성녀…… 너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건 그녀의 스타일이 결코 아니었으나, 모든 게 변한 이상 이젠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에디린은 다프네만 믿고 있었다.
다프네가 그때 보여준 그 정체불명의 힘만 있으면 화신체들을 어떻게 해서든 결국에는 막아낼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케이나, 아르시아를 따라오게 할 생각도 한 것이었다. 그 힘이 없었다면 그냥 아벨 옆에 있으라고 했을 것이다.
‘문제는 본인도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는 것인데…….’
다프네는 화신체들을 도망가게 한, 자신이 냈었던 그 힘의 정체에 대해서 모르는 듯했다. 그녀는 그때 기억이 아예 없었다.
‘주신 아그네스…… 당신도 똥줄 탔나 봐……? 진짜 아벨이 죽을 것 같으니까…….’
분명 그럴 것이다.
그도 똥줄 제대로 탔을 것이다.
자기 따까리 신들의 화신체 따위에게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용사가 꼼짝없이 죽게 되었으니 안 그럴 수가.
‘그러니 이 빌어먹을 신아…… 이번엔 좀 빨리 도와달라고…… 위험할 때만 도와주려 하지 말고…….’
다프네는 에디린이 아무 말 없이 그저 답답한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왜 그런가 하며 에디린을 의문 가득한 눈으로 덩달아 바라본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그 말에 상념에서 벗어난다.
고개를 다시 동맹군 쪽으로 돌린다.
“그냥 열심히 싸우라고. 그때처럼.”
“아…….”
그제야 왜 자신을 그렇게 답답하게 바라보았는지 깨닫는다.
다프네도 에디린을 따라 징그러운 개미 떼들처럼 스멀스멀 다가오는 동맹군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주신 아그네스께서…… 주신 아그네스께서 분명 우리를 도와주실 거예요…… 전 그분을 믿어요…….”
뭔가 주문을 외우듯이 말했다.
마치 그래야만 주신 아그네스께서 들어주실 것처럼.
훗― 실소를 터트린다.
“그래. 맞아 도와주겠지. 이번이야말로 주신 아그네스가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을 테니까.”
감히 주신 아그네스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용사와 그의 딸인 성녀를 죽이려고 하다니.
충분히 이번에는 분노한 주신 아그네스가 직접 나서서 도와줄 만했다.
‘그러니 아벨. 우리가 버티고 있을 테니. 어서 일어나라고.’
그때였다.
척―!
크리스찬이 멈췄다.
척―! 척―! 척―! 척―! 척―!
그가 멈추자 마치 하나의 몸처럼 그 엄청난 대군이 순식간에 걸음을 멈춘다.
꿀꺽―
덜덜덜―
그 압도적인 기세에 미스라임의 병사들은 오금을 저린다.
그리고 크리스찬의 백마가 앞발을 드는데.
히이이이이이이잉―!
황금 마갑으로 도배를 한 크리스찬의 백마의 거친 울음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그 말 울음소리가 그렇게 소름 끼칠 수가 없다.
크리스찬은 제국의 황제답게 그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미스라임의 성벽을 무심히 바라본다.
그가 멈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공격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
마력포 등 공성 무기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들의 그 위압적인 모습을 본 반 국왕도 소리를 지른다.
“발포 준비!”
그의 명에 맞춰 나팔수가 정해진 뿔나팔을 부른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미스라임의 군사들도 대방어용 무기들을 준비시킨다.
우선은 마력포였다.
마력포에 마력을 충전시킨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아무리 제국의 기습공격에 큰 타격을 입었었던 미스라임이라도 미스라임은 에브니아 대륙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마법 강국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대강국大强國이었다.
어느새 이동 워프를 이용해 충분한 마력포들을 충당시켜 놓았었다.
성벽들도 너덜너덜해질 만큼 부서졌었지만 마법으로 그래도 다시 쌓아놓긴 해놓았었다.
두 마력포들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당장에라도 발포할 수 있도록 이제는 제국도 준비를 마친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크리스찬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나온다.
척― 척― 척― 척― 척―
말이 움직일 때마다 마갑馬甲 이음새의 마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위잉―! 위잉―!
그가 약 10m 정도 앞으로 나왔었는데, 미스라임의 마력포들이 그에게 집중된다.
꿀꺽―
모든 마력포를 집중시켰지만 함부로 쏠 수 없었다.
그는 화신체라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막아낼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그들에게 한 번의 공격 찬스를 빼앗기는 격이 될 것이었다.
‘무슨 생각이지?!’
모두가 의문에 싸여 있을 때, 홀로 덩그러니 나선 크리스찬은 정확히 에디린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아벨은 잘 있는가?”
속삭이듯이 말했는데 소리를 증폭시키는 아티팩트 덕분에 마치 모두의 귓가에다가 입을 대고 속삭이는 것마냥 귀 깊숙이 꽂혀 들렸다.
“……?!”
미스라임 진영은 도대체 저 개X끼가 무슨 X소리를 하냐는 듯이 노려봤다.
에디린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그저 크리스찬을 당장에라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크리스찬은 대답이 나오지 않자 다시 한 번 입을 연다.
“아― 내가 괜한 소리 한 건가? 당연히 잘 못 지낼 텐데 말이지.”
그 말에 동맹군 진영에서는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시작은 코렌트의 세런 예이니 국왕이었다. 방정맞게 웃어대며 맞장구를 친다.
“크카카카카카―! 말 한번 잘하셨소! 당연히 못 지내겠지! 카카카카카―!”
그리고 이어서 바일의 메히르 투판 국왕도 마찬가지였고.
“그 애송이 녀석이 언젠가 큰코다칠 것이라 생각했었다! 푸하하하하하―!”
그러자 그들의 옆에 있던 각 군의 장군들도 비웃기 시작한다.
“감히 우리 대륙을 지켜주신 신들을 무시하다니!”
“꼴좋다! 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내 언젠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 용사는 무슨! 대륙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가득 찬 돼지 새X 같은 놈이지!”
“맞아! 용사는 무슨! 순전히 사기꾼이라고!”
맹세의 마법이 풀렸기에 여기저기서 조롱이 터져 나왔다.
확실히 그들은 사상 최악의 적이 될 수 있었던 아벨이 없으니 사기가 최고조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모든 걸 아벨만 믿고 일을 벌였던 미스라임의 사기는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부들부들―!
에디린은 그 조롱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이러한 시련을 준 주신 아그네스를 다시 한 번 원망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런 빌어먹을 개X끼 다 있나!”
누군가가 성벽 위로 날아올라오며 에디린 대신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어 주던 것이었다.
“어디 개X끼가 감히 주인을 물려고 하나?!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나?! 어?! 죽고 싶어 환장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