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168화. 그냥 다 죽어라(3)
에디린도 이 칼날 바람이 미스라임에는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휘이이잉―! 휘이이이잉―!
그 매서운 바람이 자신의 새하얀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그러네. 오래 못 버티겠네.”
아무리 털옷들을 겹겹이 입고 있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마나로 언제까지 몸을 보호할 수도 없었고.
분명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겠지.”
아벨은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상 어떤 수를 써도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인질만 안 잡히면 돼.’
인질만 안 잡힌다면 말이다.
그래서 비트칸을 미스라임의 왕궁에 보내놨었다. 이제 더는 소중한 사람들이 인질로 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때 에디린이 아벨에게 제안 하나를 한다.
“아벨. 저 새X들 다 없앨 생각이라면, 우리 기다리지 말고 그냥 우리가 선제공격을 하자. 야습 같은 거로 말야.”
고개 돌려 에디린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는 아벨이 참 멍청해 역시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는 듯한 우쭐한 얼굴이었다.
“너는 가끔 보면 되게 멍청한 거 같아. 야, 생각해봐. 우리 둘만 가도 저 새X들 충분히 다 없애버릴 수 있다고. 아무리 저놈들이 준비해놨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잘 알잖아?”
미간을 찌푸린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근데 진짜 재수 없네…….’
그걸 왜 생각 못 했지? 하는 생각과 저 잘난척하는 모습이 재수 없다는 생각을 함께했다.
‘……이젠 머리 쓸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해져서 진짜 머리가 굳었나 보군…….’
떨떠름해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말이 맞다.”
그녀의 말대로 기다릴 필요 없는 듯하다.
아벨 혼자서 야습을 해도 그들에겐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몸도 다 나았겠다.’
무리하게 공간이동을 쓰며 과부하 됐었던 뇌의 상태도 훨씬 예전에 정상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프네의 헌신적인 치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음― 당장 오늘 밤부터 시작해야겠군.’
“그렇다면 오늘 밤에 당장 가야겠군.”
“그래. 내 말이 맞는다니까. 좋아 오랜만에 나도 몸 좀 풀어볼까?”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나 혼자서 가는 게 낫다. 너는 이곳에서 사나와 다프네 님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뭐?”
“부탁한다. 너밖에 없다. 에디린.”
“으음…….”
사실 에디린도 알고 있었다.
아벨이 그 무엇보다 인질을 잡히는 걸 두려워한다는 걸.
그 가기 싫어하던 비트칸에게 사정사정해서 왕궁으로 보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벨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뭐 어쩔 수 없지…….”
덥석―
두 손을 잡고 말한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잡힌 손을 빼며 괜히 툴툴댄다.
“정 고마우면 평소에나 잘하셔. 아쉬울 때만 이러지 말고.”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알았다. 평소에도 잘하도록 하지.”
“그래. 평소에도 잘하라고.”
“아무튼 당장 오늘 새벽에 가야겠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거니까.”
그들의 준비가 조금이라도 덜 됐을 때 기습하는 게 좋긴 했었다.
“뭐 그래라. 알아서 하셔.”
그렇게 오늘 밤에 야습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 에디린이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묻는다.
“아 그런데 크리스찬이 화신체가 됐다고 했었지?”
“그런 거 같다. 내 생각엔.”
“그렇다면 다른 신들도 화신체들을 다시 정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번에 함께 총공격을 할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그땐 그리스에는 없었으면 좋겠군.’
소설에서 그리스에는 바로 앞의 순간을 내다보고 아벨의 공격을 피하고 공격하곤 했었다. 그렇다 보니 대단히 성가시게 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큰 문제는 안 되겠지만.’
물론 아벨에겐 당연히 안 되겠지만, 그래도 역시 대단히 귀찮은 존재인 건 틀림없었다.
“그리스에가 없다면 그렇다면 넷이로군.”
“혼자서 넷을 상대할 수 있겠어?”
“접신接神해봤자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니 걱정 말아라.”
누가 보면 자만이라고 하겠지만, 그건 아벨의 힘을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자만 따위가 아니라 이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것들이 접신해봤자 아벨에겐 정말 별거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디린은 걱정되는 얼굴이다.
다름 아니라 본인이 도와줄 수 없었기에.
사나와 다프네를 지켜야 하기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체가 인간이 된 이상 화신체가 접신했을 때는 그들을 당해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12성 검사라고 하더라도 웜급 드래곤 한 마리 정도의 힘밖에 못 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접신하면 드래곤 10마리 힘을 냈었다.
아벨밖에 없었다.
화신체들을 상대할 이는.
아벨도 그런 의미로 현재 화신체들이 될 만한 자질을 지닌 자들이 없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누가 돼도 자신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뭐든 더 쉬우면 쉬울수록 좋은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7인의 성검사가 아직 어려서 다행이야.’
그들은 아직은 애송이었다. 크리스찬이 그 뛰어난 재능으로 인해 조금 급하게 화신체로 선택받은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 애송이지만 그래도 또 다른 화신체들이 그들 중에서 나올 수도 있겠어.’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컸기에 이제부턴 무조건 천혜안으로 확인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에디린. 그렇다면 최고 대신관들도 다시 선택될 가능성이 있을까?”
소설에서는 최고 대신관들이 바뀌지 않았었고 그러한 역사에 대해서도 나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에디린은 이 에브니아 대륙의 역사와 거의 함께했으니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에디린은 아벨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에이션트 드래곤이었을 때는 바로바로 생각이 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머리도 인간의 머리가 된 듯하다.
항상 망각하는.
“음…… 그것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자신 없는 말투였다.
정말 모르는 듯한.
‘일단은 염두에 두어야겠군.’
화신체들에 최고 대신관들까지 더해지면, 그렇다면 똥파리에 모기가 더해지는 격이었다.
‘엄청 더럽고 귀찮은 싸움이 되겠어.’
앵앵거리며 최대한 도망 다니면서 피 채우고 또 덤벼드는, 그런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다.
‘훗― 그래봤자 지만.’
조금 귀찮을 뿐이지 그렇다고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이 이길 것이라 확신한다.
“일단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야겠군.”
“그게 좋겠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지. 아 그리고 사나는 좀 어때?”
그녀가 사나와 함께 있다가 와서 묻는 말이었다.
사나는 얀 국왕과 오빠들의 상황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혼절해 하루가 지난 아직까지도 끙끙 앓고 있었다.
“아직 그대로야. 근데 어쩔 수 없지. 아주 큰 충격을 받았으니까.”
드래곤 출신이었지만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이해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아벨을 바라본다.
이 세상에서 그녀에게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벨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만약 아벨이 누군가에 의해 죽는다면 자신도 사나와 같은 감정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우울해져 시무룩해진다.
“왜 그래?”
그런 인간적인 감정에 휩싸인 자신이 쑥스러웠는지 고개를 홱― 하고 돌린다.
“아니! 아니다!”
“뭐가 아니야?”
“아니라고! 아무튼 난 사나한테 간다.”
그러면서 그곳을 벗어난다.
아벨은 뭔가 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돌려 다프네를 바라본다. 다프네는 에디린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했기에 그녀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벨은 이번에도 의아해하며 다프네에게 말한다.
“다프네 님께도 부탁드려야겠군요.”
그가 무엇을 부탁하는지를 알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어요. 걱정 말아요.”
자기 일처럼 기꺼이 들어준 것에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춘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족의 죽음에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사나를 보니 정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비정한 전장에선 어쩔 수 없어…….’
그렇기에 아벨은 이 피비린내 나는 곳에 사나만 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 *
새벽이 되었다.
20km의 거리는 순간이동 몇 번이면 갈 수 있는 아주 짧다면 짧은 거리였다.
낮부터 지켜본 결과 그들도 미스라임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방어용 마법진들과 엄청난 크기의 마도구들로 단단히 준비해두었다.
아벨은 사실 저 방어용 마법진과 마도구들 때문에 운석 마법을 쓰지 않았었다. 운석 마법을 써도 막힐 가능성이 컸고 굉장한 마나를 써야 했기에 큰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원래 생각대로 그냥 몰래 혼자 가서 마법진과 마도구들을 부수고 모두를 없애기로 한다.
“시작해 볼까.”
아벨이 그들을 야습한다는 건 극비 중의 극비로 아까 함께 있었던 에디린과 다프네 정도만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혹시나 있을 첩자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수악―
정말 뜬금없이, 옆에 있던 보초들이 ‘어? 어딜 가시지?’ 하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뜬금없이 아벨은 순간이동을 하여 동맹군에게 진격했다.
‘병사들을 제쳐놓고.’
병사들은 공격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을 일반 백성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도 불쌍한 백성이니 그들만큼은 돌아갈 기회를 주기로 한다.
그래서 무인들만 죽일 생각이었다.
‘우선적으로 최상급과 상급 무인들을.’
무인들 중에서도 최상급과 상급 무인들을 먼저 죽일 생각이었다.
그들의 대단한 허영심 덕분에 천혜안을 쓰지 않고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다른 일반 병사들이나 중하급 무인들과는 너무나 차이 나는, 전쟁터임에도 대단히 눈에 띄는 화려한 천막에서 지냈다.
‘크리스찬이 없어 아쉽군.’
크리스찬은 역시나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다행히 아이작 백작은 보였지만.
‘오늘은 아이작 백작으로 만족하자.’
그래서 오늘은 아이작 백작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수악―
우우우웅―!
파지지지지직―!
성검 유게네스에 뇌기 어린 오러를 주입한다.
이제 한 번만 더 순간이동 하면 그들의 방어진이 구축된 곳에 이르렀다. 아벨은 동쪽 방어용 마법진과 마도구들이 있는 곳을 부수기로 결정했다.
수악―
순간이동으로 동쪽 방어 마법진과 마도구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 곧바로 검을 휘두른다.
신뇌전마검新雷電魔劍
제2식
연속벽력連續霹靂
번쩍―!
갑자기 나타나 갑자기 두 줄기 벼락을 떨어트린다.
콰콰콰콰쾅―!
그 두 줄기 벼락에 정성스레 새겨놓은 마법진과 방어 마도구가 박살이 난다.
“……?!”
“뭐, 뭐야?!”
아무리 마법진과 마도구들이 견고하게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아벨의 신뇌전마검의 비기는 결코 막을 수 없었다.
단번에 산산조각이 나 공중에 비산한다.
“아, 아벨이다! 아벨이 나타났어! 나타났다고!!”
그 굉음과 보초의 다급한 외침이 검은 하늘에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