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166화. 그냥 다 죽어라(1)
이동포탈에서 나오자마자 아벨은 또다시 혼란스러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멀리 성벽에서 무시무시한 화염이 솟아올랐고 누군가의 비명과 귓속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다행히 이동 워프를 열어주지는 않았나 보군.’
하지만 다행히 누구의 명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제국에서 온 요청을 받아 주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동 워프를 열어서 받아 주었다면 아마 이곳은 진즉에 함락되었을 것이었다.
‘아직 뚫리지는 않았어.’
미스라임은 사실 다른 나라들이 공격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곳이었다. 사면 대부분이 사시사철 눈 폭풍이 내리는 천연의 요새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히튼이 바로 몇 안 되는 눈 폭풍이 내리지 않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미스라임이 이곳을 요새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마력포들과 아이스 골렘들로 단단히 준비해 뒀었지만.
“아벨 저하! 오셨습니까?!”
대기하던 마령대원이었다.
대답 대신 천혜안으로 전투가 벌어지던 성벽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바라본다.
곳곳에서 탑처럼 솟아오른 마력포들과 이때를 위해 준비해둔 엄청난 크기의 아이스 골렘들이 제국의 무인들을 죽기 살기로 막아내고 있었다.
정말 딱 맞게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성벽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었다.
“조금만 참아라! 용사께서 오시면 저딴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악에 받쳐 군사들을 독려하는 이는 바로 다름 아닌 사나였다.
사나는 전군을 지휘하며 본인도 마력광선을 쏴 적들이 성벽을 무너트리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듣진 못했지만 보니 다프네 역시 나서서 미스라임의 다친 마령대원들과 병사들에게 회복 마법과 버프 마법을 걸어주고 있었다.
상황을 인지하고는 에디린과 비트칸에게 말한다.
“먼저 간다.”
수악―!
지체하지 않고 아벨은 순간이동으로 사나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수악―!
이동하자마자 도착 기념으로 성벽을 부수려는 제국의 무인들에게 강력한 뇌기 어린 검격 한 방을 날린다.
파지지지지지직―!
휘익―!
콰콰콰콰콰콰쾅―!
단 한 방이었다.
단 한 방에 성벽 근처에 있었던 제국의 무인들 모두가 깡그리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벨!”
사나는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남편을 환영했는데, 아벨의 생각대로 조금만 늦었으면 뚫리기 직전이었던 것이었다.
미스라임의 마령대들과 병사들도 아벨을 확인하자마자 환호를 부르며 사기를 끌어올린다.
“아벨 대공이시다!”
“용사께서 저 악귀들을 물리치기 위해 오셨다!”
“너흰 이제 다 죽었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 말라고!”
반면 제국의 무인들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너무 당황하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 이럴 수가 아벨이 여길 왜……?”
“……아덴이 책임지고 죽였다고 하지 않았어……?”
“……반대로 아덴을 모두 죽이고 온 거 아냐……?”
“……에이…… 내가 듣기로는 아덴도 10만이나 준비했다던데…….”
“……마, 맞아…… 게다가 인질도 준비했다고…….”
“……그런데 왜……? 왜 여기에……?”
“……설마…….”
그렇게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애써 지금 이 상황을 외면하려고 하는데.
그때 그들 중 누군가가 초를 치는 소리를 한다.
“마족 원정에서 못 봤어? 아벨은 마왕도 죽인 인간이라고. 마왕은 에이션트 드래곤 급이고 말야. 에이션트 드래곤은 신과도 비긴다고.”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럼 우린……?”
그 물음에 이번에도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시킨다.
“죽은 거지……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5만 명 중 마족 멸살 원정에 참여한 자는 몇백이 안 됐지만 그곳에 참여한 자들 대부분이 이곳에 있었다. 물론 참여 안 한 인원들도 그 강렬한 소문을 들었기에 아벨의 강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마족 멸살 원정을 참여했든 안 했든, 여기 있는 모두가 마족 침공이라는 대재앙을 겪었다.
그때 마족이란 존재들이 얼마나 강했던가?
그런데 아벨은 그 강하던 마족 모두를 꺾고 심지어 마왕도 죽여 이 세상에서 마왕과 마족이라는 악의 세력을 지워버린 자였다.
누군가 패닉에 빠져 소릴 지른다.
“아, 안 돼! 아무리 맹세의 마법이 풀렸다고 하더라도! 아벨을 절대 이길 수는 없어!”
“맞아! 아벨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보면 안 돼!”
“난 가, 가겠어! 아벨이 죽었다고 해서 온 거지 이건 아니야!”
여기저기서 웅성웅성한다.
마치 막을 수 없는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그 두려움이 퍼져나간다.
그들의 의지가 꺾였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슬금슬금 뒤로 빠지려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놓아주겠다.’
아벨이 아무리 포션을 마시면서 몸을 회복시켰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오늘은 무리해도 너무 무리했었다.
공간 마법은 마나가 문제가 아니었다. 술식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 때문에 뇌에 과부하가 걸렸던 것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가 여전히 울렁거려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슈우우―
탁― 탁―
그때 아벨의 좌우로 에디린과 비트칸까지 나타났다.
그 두 사람까지 나타나자 그들의 마음은 더없이 확고해졌다.
도망가야 한다고.
무조건.
“…….”
순간 고요해졌다.
태풍의 눈에 들어온 것처럼.
마치 옆 사람이 흘리는 땀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만큼.
아벨은 그들이 도망갈 수 있게 친히 도와주기로 한다.
“궁금하군.”
너무 고요해서 그런지 나직이 속삭인 그 목소리가 이상하리만큼 귀속에 깊숙이 꽂혀 든다.
“……?!”
“나에게 대적할 수 없을 너희들이 어떻게 내가 있는 미스라임을 공격하는 건지.”
“…….”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두려움에 떨 뿐이었다.
계속해서 위압적으로 그들을 짓누른다.
“나에게 대적하면 그 결과는 죽음뿐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건가? 그런 건가?”
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위협용으로 무리해서라도 엄청난 양의 아우라를 뽑아 펼친다.
일부러 뇌기를 섞지 않고 용사의 성스러운 오러만 내뿜었다.
마치 마족 멸살 원정 때, 그때처럼.
나는 대륙의 선善인 용사이고 너희는 대륙의 악惡인 마족이라고 말하듯이.
움찔―!
먼저 반응하는 자들은 역시 아벨이 마왕과 마족들을 죽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던, 아직도 뇌리에 아벨의 그 엄청난 무위가 남아있었던 마족 멸살 원정 참여자들이었다.
“나, 난 안 해! 아니 못해!”
“나도! 나도, 나도!”
“황제 폐하도 안 오셨잖아?! 그러니 이제 그만해도 상관없다고!”
그러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시작한다.
타다다다다다다―!
아벨은 도망쳐가는 그들 속에서 누군가를 계속해서 찾았었는데, 이곳에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말 오지 않은 건가?’
그들의 말대로, 정말 교활하게도 주도자인 크리스찬과 아이작 백작은 천혜안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었다.
‘둘 중 하나는 왔어야 하는 건 아닌가? 정말 교활하군.’
그때 에디린이 묻는다.
“크리스찬은 없나 본데?”
비트칸도 같은 생각이다.
“그렇군. 없나 보군. 심지어 아이작 백작도 없어.”
“생각보다 엄청 약았잖아? 사내새X들이 쫄아서 부하들만 보내다니. 쯧쯧―”
아벨 역시 매우 아쉬워했다.
“아쉬워. 이번에 둘 중 하나는 죽여놨어야 하는데.”
에디린이 그런 아벨의 팔을 탁하고 친다.
“뭐 좋게 생각하자. 솔직히 아벨 너도 한계였잖아?”
“맞다. 너도 좀 쉬어야 한다.”
에디린과 비트칸의 말에 사나가 걱정하며 묻는다.
“어디 다치신 건가요?!”
다정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괜찮다. 아덴과의 전투 때문에 조금 피곤했을 뿐. 그래도 그것들은 충분히 없앨 수 있다.”
에디린이 그 말에 빈정거린다.
“웃기네. 지금 힘들어서, 그래서 일부러 겁줘서 쫓아냈으면서.”
피식― 씁쓸히 실소를 흘린다.
“아무튼 이제 바빠지겠군. 코렌트와 바일도 온다면.”
“노력한 보람이 없네?”
“제 복을 발로 찬 그놈들이 불쌍한 거지.
“그런데 맹세의 마법이 풀린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더군. 아는 얼굴도 몇 보이는 거 보니 풀린 게 확실한 듯해.”
로만의 얼굴도 보였던 것이었다.
그가 아벨을 당장에라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비트칸도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코렌트와 바일이 합류한 이상 양동작전이나 양공 작전을 펼칠지도 모른다. 네 몸은 하나이니까 말이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미스라임 역시 엄청나게 큰 피해를 이번에 입지 않았던가.
숫자로는 결코 싸움이 되지 않았었다.
휙― 몸을 돌린다.
“브릴튼에 갔다 와야겠어.”
“브릴튼에?”
“그래. 그들과 동맹을 맺어 제국을 견제하도록 해야겠어.”
아덴은 솔직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됐었다. 그들은 국왕을 포함한 대부분의 무인들을 잃었다.
“그들이 나서겠느냐?”
뭐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했다.
“도와준다면 아덴의 땅을 약속해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땅을 빼앗아 넘겨주겠다고.”
“아덴의 땅을?!”
다들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아덴의 땅을 얻으려고 이 큰 희생을 치른 게 아니었던가.
특히 사나가 토끼 눈을 뜨고 놀라자 좀 더 설명을 더한다.
“물론 미스라임은 제국의 땅을 얻을 거다. 그러니 아덴의 땅을 줘도 돼.”
그 말을 듣자 그제야 이해한다.
“아무튼 최대한 빨리 다녀올 테니. 두 사람이 사나를 도와 이곳을 좀 지켜줘.”
“그래. 알겠어. 걱정 말고 잘 다녀와.”
“어서 갔다 오거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사나를 잠시 안쓰럽게 바라본다.
차마 아덴에서, 제국에서 있었던 일을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없었다. 애써 외면한 채 순간이동으로 사라지는 아벨이다.
* * *
브릴튼 기사연합국은 사브라타, 메나튼, 오에아, 카락스, 시르트, 체르첼, 카르타고, 이들 일곱의 대규모 도시 국가들의 연합체였다.
현재 그 일곱 도시 국가의 대영주들이 이른 새벽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수장을 맡고 있던 사브라타의 기사들의 왕 케인 리즈웰이 묻는다.
“다들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의 물음에 다른 대영주들은 씨익― 미소 지으며 대단히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나는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기회라 보고 있네.”
“맞아. 우리에게 정말 좋은 기회지. 그 빌어먹을 아덴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말이야.”
“제국도 말이고.”
“이참에 용사가 두 쓰레기를 처리해줬으면 해.”
“그거 괜찮군. 우리는 누워서 떡만 먹으면 되니까.”
그때였다.
똑똑―
“대공 저하. 급히 알려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밖에서 들린 소식에 의아해한다.
“뭔가?”
“방금 용사께서 메나튼에 오셨습니다.”
“뭐?”
“이동 워프로 오셨습니다. ……어? 누구?”
“……?”
덜컥―
대답 대신 아벨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아벨이 이들의 회의 장소를 잘 알던 이유는 소설에서 그들의 특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10인회가 비밀리에 화상 마법을 통해 회의를 한 것과는 달리 정말 중요한 일은 무조건 만나서 회의를 했었다.
그 회의 장소는 다름 아닌 성검 유게네스가 있었던 메나튼이었다.
메나튼의 영주 성 지하에 모여서 회의를 했었다.
벌떡―!
“아니! 여길 어떻게!”
놀라는 그들에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님을 인식시킨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앉으시지요.”
그러면서 그들에게로 다가가 허락 없이 빈 의자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