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155화. 청혼(1)
지금의 상황을 모두가 이해한 듯하자 아벨은 본격적으로 계획을 논의하기로 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계획을 논의해볼까 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단히 진지한 얼굴로 아벨의 입을 주시한다.
“사실 그리스에를 한 번 더 사용할까 했었는데, 조금 아쉽게 됐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시지요. 그래도 저와 맹세의 마법으로 엮여 있으니 허튼짓은 못 할 것입니다.”
이젠 아벨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지 못했기에 그리스에를 통해 미래를 보고 처리하려고 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최고 대신관이 눈치채고 빼내 갔으니.
마고스가 아벨의 말에 공감을 표한다.
“맞습니다. 미래를 알았다면 확실히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리스에를 다시 찾으실 겁니까?”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그리스에는 앞으로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그녀를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죠슈아가 묻는다.
“혹시 저하께서 생각해두신 계획이 있으십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 미스라임으로 갈까 합니다.”
“미스라임이요?”
미스라임이라는 말에 사나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얼마나 꿈에 자주 나타나는지.
정말이지 미스라임이, 가족들이 그리웠다.
그런 사나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미스라임의 얀 국왕이 저에게 매우 호의적이니, 그곳에서 움직이는 게 가장 좋을 듯합니다.”
마법사로서 아이작 백작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쥬디스가 동의한다.
“맞습니다. 제국에서 활동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것입니다. 새로운 황제인 크리스찬이 아무리 저하께 호의적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아이작 백작은 다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세르지 저하 때부터 아무리 같은 편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절대 그를 믿어서도, 방심해서도 안 됩니다.”
확실히 소설에서 그의 성격은 절대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대단히 자기중심적이었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냉혈한이긴 했었다.
그래서 세르지를 황제로 세우기 위해 함께 할 때도 그를 결코 100% 완전히 믿지 않았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이라 미스라임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무인들을 맹세의 마법으로 묶어두었다고 하더라도 아이작 백작은 방심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아벨의 대답을 대단히 흡족해했고 만족해한다.
“잘 판단하셨습니다.”
반면 흡족해하는 쥬디스와는 달리 마고스는 우려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그런데 얀 국왕도 10인회의 일원이지 않습니까?”
정말 끝까지 믿을 수, 함께할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다른 이들의 표정을 보니 확실히 그것이 걸리는 듯했다.
그래서 그들의 걱정을 해결하기로 한다.
“물론 주신 아그네스의 뜻을 전하면서 얀 국왕을 설득도 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확실하게 우리 편으로 만들 방법을 쓸 생각입니다.”
확실하게 우리 편으로 만들 방법?
아벨을 의아하게 바라본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참에 진짜 가족이 될까 합니다.”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해 누군가는 멍청한 소리를 냈다.
“네?”
자세한 설명은 수잔 황비를 바라보며 한다.
“어마마마. 미스라임에서 사나와 정식으로 혼인을 할까 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벌떡―!
“……?!”
“네에에에?!”
“호, 혼인이요?!”
홱―!
그러면서 모두 사나를 바라봤는데, 사나는 너무 놀라 사고가 정지된 것만 같았다.
그 큰 두 눈을 부릅뜬 채, 투명하고 예쁜 그 입술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 상황도 비슷했다.
사나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이었다.
그때 에디린이 아벨에게 따지기 시작한다.
“누구 맘대로!”
구오오오오오오오―!
파지지지지지지직―!
그러면서 뇌기가 뒤섞인 아우라를 피어 올리는데.
훗―
비웃으며 대들던 에디린을 지긋이 노려본다.
《이젠 내가 더 강해. 에디린.》
“뭐?!”
《충고하는데, 네가 정녕 나와 함께하길 바란다면 앞으로는 내 말을 따라야 할 거야.》
“!!”
그녀는 아벨이 사나에게 청혼한 것도 그렇지만 방금 한 그 경고의 말에 대단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에디린의 얼굴이 창백해졌을 뿐만 아니라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사람들 앞에서야 너와 비트칸이 사람임을 숨겨야 하니 예전처럼 대해주겠지만, 앞으로는 네 맘대로 할 생각을 버려야 할 거다. 그리고 혹여 내가 정 널 못 말린다 싶으면 두고 갈 수도 있으니. 그러니 잘 생각하라고. 하하하―》
에디린은 아벨과 처지가 뒤바뀌었음을 분명히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아벨을 무섭게 노려만 볼뿐 더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적응하라고 에디린.’
물론 아벨은 그녀를 두고 갈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도 있었고 이미 정도 많이 쌓였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기 위해선 그녀도 바뀔 필요가 있었다.
아벨은 지금부터라도 잘 교육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건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돌아가 수잔 황비를 바라본다.
수잔 황비 역시 이 깜짝 선언에 매우 놀랐었지만,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일이었기에 이내 환히 웃으며 허락한다.
“이 어미는 너와 사나의 혼인을 꿈에서도 원해왔었단다.”
더없이 확실한 허락의 말이었다.
그 허락을 듣고 다시 고개를 돌려 여전히 너무 놀라 입만 가만히 벌리고 있던 사나에게 다정히 말한다.
“사나. 내 청혼을 받아 주겠지?”
“…….”
역시 너무 놀라서 그런지 아무런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응?”
아무 대답 없이 계속해서 멍하니 있자, 옆에 있던 케이가 사나를 톡톡 건드렸다.
“……사나……?”
“…….”
그래도 가만히 있자 조금 힘을 주어 건드린다.
툭툭―!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어, 어?”
그런 사나를 케이는 애써 외면하며 말한다.
“저하께서 물으시는데……?”
“아…… 아! 네, 네! 저는, 저는…….”
“……?”
이내 부끄러웠는지 사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저는…… 네…… 좋아요…….”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수잔 황비를 제외한 모두가 무인이었기에 그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물론 수잔 황비도 그녀의 수줍고 행복한 얼굴을 보고는 그녀가 허락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
하지만 누군가가 행복해하는 순간인 만큼 반면 서운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케이와 아르시아가 서운해했었는데, 그들은 아벨 때문에 가문이 사라진 만큼 이 세상에서 의지해야 할 사람이 아벨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벨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사나에게 간다고 생각하니, 의지할 무언가가 순간 사라진 기분을 느꼈었다.
아벨은 서운해하는 다른 여자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너무 서운해 말아라. 사나와 먼저 하는 것은 우리의 일을 위해 꼭 필요해서 그런 것이니. 이후 바로 두 사람과도 할 것이다. 에디린 너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죠슈아가 아벨을 돕는다.
“케이. 저하를 이해해주렴. 확실히 지금 이때 사나 저하와의 결혼은 정말이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말이야.”
케이라고, 아르시아라고 왜 모르겠는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운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네에…….”
“네…… 알겠어요…….”
반면 에디린은 아니었고.
“흥!”
물론 다들 가볍게 에디린의 불평을 무시한다.
그렇게 여자들의 감정까지 정리되는 듯하자 눈치를 봤던 남자들이 아벨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다.
시작은 죠슈아였다.
“축하드리옵니다. 저하.”
그리고 마고스와 쥬디스.
“좋은 선택이십니다. 저하.”
“루드스 때부터 생각했었지만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하하하―”
비트칸도 아벨의 선택을 적극 지지하며 말한다.
“역시 머리가 좋아. 네 계획대로 하면 확실히 미스라임에서는 걱정이 없겠어. 근데 그런 후 어떻게 일을 진행할 것이냐? 그 이후도 생각해 둔 게 있느냐?”
비트칸의 질문에 아벨의 얼굴이 다시 진중하게 바뀐다.
“우선 최고 대신관들을 제가 암살할까 합니다. 순간이동을 써서 말입니다.”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옳은 생각이다. 그래. 최고 대신관들만 없애도 그들은 큰 힘을 잃을 것이다. 현재 화신체들도 없으니 말이다.”
에디린과 비트칸도 써먹을까 했지만 두 사람은 이제 순간이동을 쓰지 못함으로 조금 위험했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암살에 능한 것도 아니어서 최고 대신관들을 암살하기에 적합하지 못했다.
“맞습니다. 화신체들이 다시 선택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화신체들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공격을 감행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 암살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암살은 쉬울 수 있으나, 다음 암살부터는 분명 경계를 하고 있을 것이기에 더욱 어려울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벨은 대륙 사람들 모두가 다 아는 주신 아그네스의 용사이지 않던가?
너무 잘 알려진 얼굴과 그 특별함 때문에 이동 워프를 몰래 이용하기에도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죠슈아가 한숨을 내쉰다.
“후……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든 신을 없앤다는 것은.”
“백성들이 평생을 믿고 섬겼을 텐데. 그게 쉽게 될 리가.”
“언제까지 암살만으로 가능할 리가 없을 거고 말이에요.”
아벨도 솔직히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었다.
정해진 수가 있었던 마족 멸살의 사명과는 달리 이건 대륙의 모든 이들과 싸워야 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사건을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써왔었던, 그 더러운 수법들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을 만한 그러한 사건을.”
일어날 사건을 알 수 없으니 만들어 내기로 결심하던 아벨이었다.
* * *
다음날 예고한 대로 황제 대관식을 거행했다.
‘잘 어울려.’
크리스찬은 황제라는 자리에 썩 어울려 보였다.
‘의외로군.’
반면 아이작 백작과 최고 대신관은 의외로 전날과는 달리 나대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최고 대신관은 크리스찬에게 정의의 신 타티스를 대리하여 황관을 씌워주는 것만 하고는 그것 외의 진행은 부하 대신관에게 맡겼다.
그렇게 두 사람이 조용한 가운데 황제 즉위식은 엄숙하게 거행됐고 끝마쳤다.
“이어서 크리스찬 요한센 황제 폐하와 레이첼 아이테르너스 황녀 저하와의 결혼식을 진행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 윌리엄과 셀비 황비는 참석하지 않았다.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별 볼 일 없는 윌리엄은 그렇다 쳐도, 셀비 황비는 아직 제국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아덴의 힘을 빌려 제국을 찬탈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여전히 멍청해. 셀비 우니베르스. 주제 파악 못 하고 아직 제국을 포기 못 하다니.’
아무리 카시드가 소설에서처럼 최절정의 검사로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당시 크리스찬과 거의 비슷한 경지였었다.
카시드 혼자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이번 마족 침공과 하베츠의 반역 때문에 제국이 약해졌다 생각하는 건가?’
물론 두 사건으로 인해 제국은 수많은 강자들을 잃긴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국엔 여전히 현 인간계의 절대자인 아이작 백작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고.
‘차라리 덤볐으면 좋겠군. 이참에 자연스럽게 아덴에서 키빌리를 없애버리게.’
아벨은 황관을 쓰고 근엄함과 진지함, 그 황제의 무게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크리스찬을 바라본다.
그가 수줍어하는 레이첼과 함께 타티스 앞에 혼인 서약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찬의 도움을 받아야겠어.’
크리스찬의 도움을 받는다면 아덴은 생각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아이작 백작과 최고 대신관이 문제긴 하지만.’
두 사람이 문제이긴 했지만 크리스찬은 분명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그때 크리스찬이 순간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쳤는데, 대단히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마치 철천지원수를 바라볼 때 볼 수 있는 눈빛.
‘……?’
그 알 수 없는, 차가운 눈빛에 순간 불안을 느꼈지만 이내 크리스찬도 황자인 자신을 제치고 황제가 된 것에, 원하지 않는 상대와의 혼인 때문에 마음이 대단히 복잡해서 그런 거라고 가볍게 치부한다.
‘……그래. 너도 복잡하겠지.’
그래서 그렇게 착각하고 말았다.
크리스찬은 자신의 편이라고.
그가 아덴보다 아벨을 없애고 싶어 한다고는 결단코 생각도 못 한 채.
결단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