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144화. 반전에 반전(2)
진정한 본체로 돌아간 드래곤들은 에브니아 최강의 생명체답게 매우 강력했다.
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달려드는 골리앗을 강철도 종잇장처럼 가볍게 찢어버리는 이빨로 물어뜯으며 골리앗의 다섯 배는 될 만한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인간들과 마력포들을 쓸어버린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빠지지지직―!
하지만 아까와 같은 세기는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 인간들도 그냥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죽엇! 죽으라고!”
“여기다! 여길 찔러!”
“이 씹어먹을 도마뱀 새끼들아!”
푹―! 푹―! 푹―! 푹―!
근위기사들이 드래곤의 찢긴 피부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검을 쑤셔 박는다.
피슝―! 피슝―! 피슝―!
마법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태프를 들어 마력광선들을 쏘았고.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얼마 남지 않은 골리앗들도 마찬가지다.
다리가 없는 어느 한 골리앗은 손으로 기어서라도 블루 드래곤에게 다가가 기어코 발등에 검을 꽂아 넣는다.
푸슉―!
촤아아아아아아아―!
확실히 그놈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인간형일 때 너무 많은 타격을 입어 조금 약해진 게 문제였다.
필립이 목이 터지라 소리치며 명령한다.
“공격해! 충전됐으면 공격하란 말이야!”
쾅―! 쾅―! 쾅―! 쾅―! 쾅―! 쾅―!
얼마 안 남은 마력포들이 지쳐 느려진 드래곤들을 무너트린다.
쿵―!
결국 그린 드래곤 한 마리가 고개를 떨군다.
“······?!”
깜짝 놀란 하베츠를 세르지가 조롱한다.
“왜? 이제야 네놈의 끔찍하고 절망적이기만 한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는가 보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하듯 소리친다.
“이 새끼가 진짜! 별것도 아닌 게!”
구제불능을 바라보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 새끼가가 아니라 황제 폐하라고 해야지. 이 덜떨어진 녀석아.”
하베츠는 현재 한 팔을 내준 대신 쿠웰 단장을 죽이고 세르지와 대치 중이었다. 물론 세르지 역시 드래곤들에게 공격받은 것 때문에 몸이 성치는 않았다.
세르지도 한쪽 팔이 없다고 보는 게 맞았는데 부러져 완전히 뒤틀려있었다.
“그리고 황제 폐하의 존안을 뵀으면 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지. 이제 해도 떠서 몰라뵀다고 변명할 수도 없을 텐데. 이 덜떨어진 녀석 안 되겠구만.”
그때 세르지의 말대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눈 부신 태양을 세르지가 등에 업고 있어서 그런지 하베츠는 짜증 나게도 세르지를 바라보며 눈을 찡그려야 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세르지가 떠오르는 태양인 것만 같아서.
그리고 자신이 지는 태양 같아서 미칠 것만 같다.
주변을 둘러본다.
자신이 갖고자 했었던 그 자리를 찾아보려 한다.
하지만 황궁 시렌치움은 거의 대부분이 박살이 나 있었다. 자신이 원하던 그 황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하다.
그 황좌가 있던 본궁과 가깝게 있었던 정의의 신 타티스의 신전과 주신 아그네스의 신전까지도 박살이 났으니 말 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제기랄······.”
이 황폐한 곳에 멀쩡한 사람은 아이작 백작과 최고 대신관 둘 뿐이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최고 대신관은 애초에 중립에 서서 세르지도 도울 생각이 없었으니 상관없다 하겠지만, 세르지의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아이작 백작이 멀쩡했으니 말이다.
“······제기랄······ 어떻게 인간이······ 어떻게······.”
최고 대신관이 얍삽하게 그 누구도 돕지 않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었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자신이 데려온 드래곤들은 이제 모두가 죽기 직전이다.
“하베츠. 이제 포기해라. 네놈이 데려온 드래곤들은 하나하나 죽어 나가지만, 우리 할아버님은 멀쩡하시니 말이다.”
사실 아이작 백작도 드래곤 한 마리를 혼자 담당해야 했기에 결코 멀쩡할 수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그가 멀쩡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혼란 속에서도 도중에 혼자 최고 대신관에게 찾아가 치료를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러니 아이작 백작이라는 인간 때문에 결코 이 싸움은 이길 수 없어 보인다.
하베츠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걸 느낀다.
“개새끼야! 좀 닥쳐! 좀 닥치라고!”
“그래. 울분이 터지겠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항복한다면 깔끔하게 목숨만 걷어가겠다.”
결코 살려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끝까지 조금이라도 반항한다면 결코 편히 죽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세르지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는데, 자신이 황제가 된 이 좋은 날에 하베츠가 결과론 적으론 다 망쳤던 것이었다.
그러니 절대, 절대 편히 죽게 하진 않을 것이다.
사지를 다 자르고 당연히 자살할 수도 없게 혀도 자르고 매달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매일매일을 고문할 것이다.
제발 죽여 달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똥오줌 싸며 엉엉 운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영혼이 완전히 파멸되어 지옥에서라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게.
“잘 생각해라. 저 빌빌거리는 드래곤들이 얼마나 서 있을 수 있을지.”
쿵―!
그 말이 끝나자마자 또 한 마리의 블루 드래곤이 쓰러진다.
쿵―!
그리고 또 한 마리의 그린 드래곤도.
맥없이 축 늘어진 그 도마뱀 대가리들이 이 비참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함께 온 동족이 하나하나 모두 죽어 나가자 마지막 하나 남은 블루 드래곤은 남은 모든 기운을 담아 생각도 못 한 타이밍에 드래곤 피어를 썼다.
“커컥―!”
“이, 이건 뭐야?!”
“아아아아악―!”
마치 여자의 비명과도 같았는데, 엄청난 양의 마력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그 소리를 들은 인간들은 대부분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그때 아이작 백작이 나선다.
더 두고 봤다간 모두가 죽을 것만 같았기에.
“발악하는군.”
파지지지지직―!
펑―! 펑―!
보통의 마법사의 마력광선과는 차원이 다른 흡사 마력포와 같은 세기의 광선이 아이작 백작의 스테프에서 뻗어 나갔다.
콰콰콰쾅―!
구오오오오오오오―!
덕분에 드래곤 피어가 끊어졌고 인간들은 드디어 그 끔찍한 마력폭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것이었기에 이미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드래곤 피어에 죽어버린 후였다.
이젠 정말 몇 안 남았다.
세르지는 필립이 드래곤 피어를 대신 막아 주었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베츠는 아니었다. 하베츠는 이번 공격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고 온몸의 구멍이랑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세르지는 자신을 대신해 드래곤 피어를 막다 큰 타격을 입은 필립에게 포션을 먹인 후 다 죽어가는 하베츠에게 걸어간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분노에 찬 눈으로 쓰러져 꿈틀대는 하베츠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노려본다.
행복하기만 해야 할 자신의 황제 즉위식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정말 거의 다 죽은 것이었다.
자신이 만들 이 찬란한 제국의 기둥들이 말이다.
“······내가 분명히 얘기했었지······ 절대 그냥 죽게는 안 둔다고······.”
챙―!
허리에 차고 있던 카인의 검을 뽑는다.
그 황금빛 검이 반짝이며 하베츠의 눈을 어지럽힌다.
“일단 남은 한 팔.”
쎄에에엑―!
촤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꿈틀대는 하베츠에게 말한다.
“그러니 빨리 항복을 외쳤어야지.”
쎄에에엑―!
촤아아악―!
다시 다리 하나를 잘라내고.
쎄에에엑―!
촤아아악―!
마지막 다리 하나를 잘라낸다.
“크아아아아아악―! 이 악마 같은 놈! 으아아아아악―!”
그리고 잘라낸 부위에 포션을 뿌려 살을 다시 돋게 만든다.
“살아있어야지. 모든 이들 앞에서 평생 치욕을 당하려면.”
꽈악―!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을 억지로 벌려 혀를 잘라 자살하는 걸 막는다.
찌이익―!
곧바로 포션을 부어 잘린 혀에서 피가 계속 흐르는 걸 막는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혀가 없자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른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천지가 흔들렸다.
엄청난 진동으로 인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홱―!
고개 돌려 진동의 근원지를 보니 마지막 남은 그 블루 드래곤이 자폭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저히 아이작 백작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저 미친 도마뱀이!”
하지만 아까는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기에 방어를 하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평소 이럴 때 쓰기 위해 준비해 둔 방어 아티팩트를 사용한다.
팔찌 모양의 아티팩트에 마력을 주입하자 윙―! 하고 거대한 둥근 막이 세르지와 하베츠에게 덮인다.
“······아직 널 죽게 할 순 없지······ 그리고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널 친히 살리는 만큼 단단히 각오하도록 해라······.”
필립까지 살리기에는 시간이 없어 보였다. 가슴 아프지만 필립은 스스로가 살아나길 바랄 수밖에 없을 듯했다.
‘······필립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라······.’
솔직히 힘들 것이다.
정말 솔직히 지금 저 자폭에서 살아남을 이는 몇 없어 보였다.
아마도 아이작 백작과 최고 대신관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다.
번쩍―!
눈부신 광채가 그 드래곤의 몸에서 퍼져나가며 엄청난 굉음과 열기가 퍼져나간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크으으으으윽―!”
엄청난 마력이 만들어낸 초고열의 폭풍이었다.
그 초고열에 세상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 녹아 흐른다.
마력포들도, 골리앗들도, 인간들도, 그리고 에브니아 최강의 생명체라던 드래곤들도.
그토록 세르지와 하베츠가 원했던 그 황궁 시렌치움의 잔재들도.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 녹아 뒤섞인다.
영향력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마치 하나의 용액이 된 것만 같았다.
꼭 그런 느낌으로 기묘한 색의 용액들이 흘러내렸다.
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한참을 그 마력의 초고열 폭풍에 휘말려 있다.
쿠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보통의 웜급 드래곤이 아니었기에 자폭 마법의 파괴력은 어마무시했다.
“······이럴 수가······.”
드래곤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아도 10번은 지켜준다던 그 아티팩트도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위잉―!
세르지가 전력을 다해 한 번 더 마력장벽을 두르지 않았다면 분명 세르지도 죽었을 것이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젠 한계라고, 더는 도저히 못 버틴다고 포기하려고 했을 때, 그때 자폭 마법의 영향력이 끝이 났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자폭을 한 드래곤은 이번 한 번의 공격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었기에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그저 그가 남기고 간 초고열만이 대지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 엄청난 열기로 인해 몇몇 자리를 제외하고는 마치 용암처럼 흐르고 있다.
“할아버님!”
역시나 아이작 백작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최고 대신관도.
하지만 두 사람 역시 간신히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들의 피로해 보이는 얼굴과 근사했던 옷이 넝마가 되어 있던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아이작 백작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에게 천천히 날아오는 세르지를 지긋이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둘러본다.
세르지와 하베츠, 최고 대신관을 제외하고는 시체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 오랜 영광을 자랑하던 황궁 시렌치움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도 수도 에스토시아의 3분의 2는 이번 자폭 마법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아이작 백작이 무슨 짓을 해도 알아챌 자가 없다는 뜻이다.
피슝―!
아이작 백작의 마력광선이 정확히 세르지의 왼쪽 가슴을, 심장을 꿰뚫는다.
“??!!”
세르지는 그 충격에 날아가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멍하니 멈춰있다.
그 역시 대단한 마법사여서 그런지 바로 죽지는 않는다.
“······도, 도대체 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도대체 갑자기 왜?
갑자기 황좌에 욕심이라도 생긴 건가?
정말 그런 건가?
왜?!
정말 황좌에 욕심이 생겨서?
왜 이제 와서.
이제 다 끝났는데.
하필 왜 이제 와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도대체 왜……?!”
죽기 전에 이유를 듣고 싶어 하는, 복잡한 얼굴의 세르지에게 아이작 백작이 천천히 입을 연다.
“그래. 이유라도 알아야 덜 억울하겠지.”
아이작 백작의 차가운 말투에 오싹함을 느낀다.
“······황좌에 욕심이 생기신 겁니까······?”
“황제가 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손자보다는 아들이 황제가 되는 게 좋을 듯해서 말이지.”
피슝―!
펑―!
이번엔 심장 옆에 있던 마나 하트를 터트린다.
“······.”
이제는 세르지도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
슈우우―
허망한 눈으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하늘에서 떨어져 녹아 흐르던 용암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하베츠는 아이작 백작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아이작 백작은 세르지가 완전히 타 사라지는 걸 보고는 하베츠에게 말한다.
“네놈은 세르지의 말대로 그냥 죽지는 못할 것이다. 황제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이 제국을 무너트리려고 했던 놈이니까.”
덜덜덜덜―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정한 아이작 백작에게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최고 대신관. 당신이라면 내 뜻을 이해하겠지?”
최고 대신관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경악하면서도, 하지만 정의의 신 타티스가 이러한 상황을 대단히 좋아할 것이라는, 환영할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꿰뚫은 그의 혜안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누구를 세울 것이오?”
큰아들 필립은 죽었지만 아직 아들들이 여럿 남은 것이었다.
“크리스찬.”
“크리스찬?”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크리스찬은 마법 명가 요한센에서 홀로 검을 쫓아 이단아 취급받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런 이유로 아이작 백작이 내쳤다고도 했었고.
그런데 크리스찬이라니.
“그래. 그 아이를 레이첼과 혼인시켜 황제로 즉위시킬 생각이다. 당신에게 맡기지. 알아서 잘 처리해줄 거라 믿겠다.”
힘을 잃은 살쾡이 셀비 3 황비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니 아이테르너스의 피를 가진 레이첼을 명분으로 삼으면 크리스찬이 황제가 되는 것에 전혀 문제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