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142화. 이 새끼들 재밌네(3)
초토화된 자리에서 유유히 걸어 나온 하베츠는 마치 자기 힘으로 막아낸 것처럼 거들먹거린다.
“별것도 아니구만.”
반면 세르지는 하베츠가 데려온 드래곤들의 엄청난 힘에 굵은 땀을 흘린다.
먼지 구름이 걷힌 그곳에는 드래곤들이 하베츠처럼 멀쩡히 서 있었던 것이었다.
마력포를 쓰기 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분명 타격을 입었을 거야…… 분명해……!’
멀쩡한 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분명 타격을 입은 게 확실했다. 저 X신 같은 하베츠만이 그러한 사실을 모를 뿐이지.
하베츠와 달리 가만히 자리에 서 있는 게 바로 그 증거라 하겠다.
‘……마력포만으로도 보통의 웜급 드래곤 10마리를 죽일 수 있다 했었어……!’
저 드래곤들이 보통의 웜급 드래곤보다 강한 것은 확실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분명 에이션트 급은 아닐 것이니 확실했다.
분명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X신. 네놈이 한 것도 아니면서.”
“내가 한 게 아니지만 내 편이니 내가 한 것이나 다름없지.”
“그래서 네가 아벨에게 안 되는 거야.”
“뭐?!”
아벨에게 안 된다는 그 말이 하베츠에게 발작 버튼인 것처럼 반응했다.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벨도! 아벨도 드래곤들이 돕잖아!”
그런 하베츠에게 스태프를 뻗어 마력광선을 쏠 준비를 한다.
웅웅웅―!
“하지만 너처럼 재수 없게 거들먹거리지는 않거든.”
피슝―!
휘익―!
콰쾅―!
검을 들어 막아냈다.
“이 새끼가…….”
“덤벼. 가짜 용사.”
그 말을 듣자마자 땅을 강하게 박차더니.
탓―!
“죽엇!”
쎄에에에엑―!
뛰어 날아와 검을 크게 휘두른다.
은은한 달빛 검격이 하베츠의 검에서 쑤욱― 뿜어져 나온다.
월광참검月光慘劍
제1식
참월斬月
아이러니하게도 하베츠는 아직도 마고스 백작의 월광참검을 쓰고 있었다.
자신을 배신한 스승의 검술임에도.
콰콰쾅―!
세르지의 몸을 양분하는가 싶었는데, 그때 다른 이의 검이 하베츠의 검격을 막아낸다.
“폐하를 해할 순 없지.”
쿠웰 단장이었다.
“쿠웰 이 개자식아! 넌 배알도 없냐?! 가문을 짓밟은 자들에게 복수할 생각이 없느냔 말이다!”
기기기기기기기기―!
검이 맞닿은 채 굉음을 내며 엎치락뒤치락 서로를 밀어낸다.
“하베츠. 불만은 내가 가져야지. 네가 아니라.”
“뭔 개소리야?!”
“네놈이 X신처럼 당하고 나서 네놈 어미부터 시작해서 모든 드로즈도프 공작가 사람들이 맹세의 마법을 했단 말이다. 막 태어난 갓난아기까지.”
“……?!”
두 눈이 찢어지라 부릅뜨는 하베츠를 바라보며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는다.
“모르는 척 마라. 길가 꼬맹이들도 다 아는 사실이니. 그러니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널 환영하지 않는 것이지. 어차피 그들은 돌아갈 곳이 없거든.”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면 저 빌어먹을 새끼만 죽이면 되는 거잖아! 그러면 그 거지 같던 맹세의 마법이 풀리는 거잖아?!”
하베츠의 말대로 맹세의 마법의 주主가 되던 세르지가 죽는다면 세르지와 이어진 맹세의 마법이 풀린다.
“훗―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세르지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가문의 주요 인물들은 다른 한 명과 맹세의 마법을 한 번 더 체결한 것이었다.
어벙벙해 하는 하베츠에게 쐐기를 박는다.
“하베츠. 네가 뭔 짓을 해도 넌 용사에게 안 돼.”
“뭐, 뭐, 뭐라고?!”
그때 세르지가 뒤에서 말한다.
“딴말할 필요 없고 넌 그냥 죽어.”
피슝―!
굉장히 근접한 거리였다.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보이는.
콰콰쾅―!
“……?!”
“제길!”
어느새 하베츠 앞에 반투명한 막이 생성되어 있었다.
수악―! 수악―! 수악―! 수악―!
드래곤들이 드디어 마력포에 의해 입은 데미지를 추스르고 행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순간이동을 한 그들의 손에 초록빛과 푸른빛의 엄청난 마력이 모여 있었다.
“성가신 놈들이군.”
그래서 아이작 백작이 한 발 빨리 미리 준비해 둔 마법을 시전한다.
위잉―!
파지지지지지직―!
자신의 머리 위로 뇌기雷氣로 이루어진 사람 머리통만 한 둥근 원이 생성됐는데, 그곳에서 아이작 백작의 의지대로 뇌전雷電이 뿜어져 나온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콰콰콰콰콰콰콰쾅―!
하지만 역시 드래곤들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수악―! 수악―! 수악―! 수악―!
그 어마무시한 번개 다발들을 순간이동으로 요리조리 잘 피해 뚫고 나온다.
그때 아이작 백작의 큰아들 필립이 소리친다.
“공격해라!”
필립의 명을 받은, 마력포에 탑승하지 않았던 고위 마법사들이 마력광선을 발사한다.
피슝―! 피슝―! 피슝―! 피슝―! 피슝―!
위잉―!
콰콰콰콰콰콰콰콰콰―!
하지만 그 수백 다발의 마력광선을 우습다는 듯이 마력장벽으로 막아냈고, 곧장 초록 머리의 드래곤들이 땅에 손을 박아 지진을 일으켜 대지를 흔든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그리고 푸른 머리의 드래곤들의 손에서 물줄기들이 날카롭게 뿜어 나와 혼란스러워하는 마법사들의 목을 잘라낸다.
“……!!”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휘익― 휘익― 휘익―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드래곤들의 무차별적인 살육이.
“근위기사들은 우선 마력포들을 지켜!”
무차별적인 살육이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마력포들도 순식간에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지휘하던 필립은 소리쳐 아군들의 사기를 북돋는다.
“조금만 버텨라! 곧 골리앗이 나올 테니!”
대드래곤용 방어 체계 ‘페리쿨룸’은 마력포와 함께 골리앗이라는 드래곤의 뼈와 살로 만든 플레시 골렘을 사용한 방어 체계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점이 있었는데, 골리앗의 발동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점이었다.
평소에 골리앗이 움직일 수 있게 마력을 최대치로 충전시켜 놓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인간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골리앗을 바로 움직이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페리쿨룸’을 발동시킬 때마다 적들이 마력포에서 끝나길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안타깝게도 이번엔 그 기도가 이뤄지지 않은 듯 보였지만.
“사, 살려줘! 으아아아악―!”
“이 개 같은 드래곤 새끼들!”
“하베츠! 이 쓰레기 같은 새끼! 비겁하게 드래곤을 데려오다니!”
“너 따위를 누가 믿고 따른단 말이냐?!”
“지옥에나 가라고! 제발!”
죽어가는 마법사들과 근위기사들의 저주가 울려 퍼진다.
하베츠는 그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며 그저 죽어가는 그들을 조롱할 뿐이다.
“X신 새끼들. 아까 네놈들이 아깝다고 한 말은 취소다. 어차피 죽어 사라질 것들이 무슨 말들이 이렇게 많아? 그리고 쿠웰. 네놈도 이젠 필요 없다. 그냥 죽어라.”
그가가가가가가각―!
검을 밀어내며 검을 아래로 내리긋는다.
휘익―!
쿠웰 단장은 밀려나며 그 검을 올려쳐 막는다.
콰콰쾅―!
“크윽―”
역시 하베츠의 힘이 조금 더 강했다.
밀려나던 쿠웰 단장을 하베츠는 또다시 조롱한다.
“너희가 아무리 아벨을 물고 빨아도 여기서 죽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이더냐? 그리고 아벨도 마족들에게 오늘 죽을 건데. 이 X신들. 맹세의 마법이 풀려 울고 불며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이젠 받아주지 않겠다.”
피슝―!
홱―!
세르지의 마력광선을 고개를 재빨리 돌려 피했다.
“누구 맘대로.”
“쥐새끼처럼 뒤에서밖에 공격 못 하는 놈이!”
“드래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새끼가 말은.”
“하베츠! 넌 말이 너무 많아! 그만 닥치고 죽어라!”
쿠웰 단장은 드래곤들이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지금이 아니면 하베츠를 죽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하베츠보다 약했지만, 세르지를 믿고 하베츠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휘익―! 휘익―! 휘익―! 휘익―!
그리고 쿠웰 단장의 뜻을 깨달은 세르지는 그것에 맞춰 마력광선을 쏘아댄다.
피슝―! 피슝―! 피슝―! 피슝―!
쾅―! 쾅―! 쾅―! 쾅―! 쾅―! 쾅―!
“제기랄!”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 막으며 최대한 그들과의 거리를 벌리려고 한다.
피슝―!
쾅―!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마력광선을 쳐내면 이어 쿠웰 단장이 하베츠의 다리를 잘라내려고 검격을 날린다.
촤아아악―!
조금 베이더라도 막기보다는 피하는 길을 선택한다.
무리해서 막으려다가는 다시 날아오는 마력광선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역시 피하는 순간 마력광선이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다.
휘익―!
콰콰콰쾅―!
검 자루 바로 윗부분으로 간신히 막아낸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손아귀로부터 고통이 온몸에 쫘악― 퍼져나간다.
노련한 쿠웰 단장은 이런 상황을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숨에 궁지로 몰아넣고 저 빌어먹을 목을 잘라내려고 한다.
“이제 정말 죽어라!”
휘이익―!
피슝―!
쿠웰 단장의 검격과 세르지의 마력광선에 목이 달아나기 직전이었다.
“……?!”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리가 없었으니.
수악―!
파란 머리 드래곤 한 마리가 순간이동으로 나타나 대신 막아 준다.
위잉―!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것들도 하베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것이었다.
자신들을 감히 놀라게 한 마력포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잠깐 다른 곳에 신경을 썼던 것일 뿐.
“이 괘씸한 것들.”
시종 무심해 보였던 드래곤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조금은 화가 나 보인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짜증과 분노로 물들어 있다.
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푸른 머리 드래곤은 엄청난 길이의 물줄기를 만들어 휘둘렀는데, 순식간에 싸움의 전세가 역전된다.
그 드래곤은 우선 쿠웰을 하베츠에게 맡긴 채 세르지를 죽이기 위해 마력줄기를 휘두른다.
드디어 1 대 1이 된 하베츠는 받은 모욕을 갚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듯이 환히 미소 지으며 지체하지 않고 쿠웰 단장을 공격한다.
“절대 살려두지 않겠다!”
콰콰쾅―!
쿠웰 단장은 하베츠의 검을 막아내며 소리친다.
“폐하! 골리앗이 나오기 전까진 어떻게 해서든 버티셔야 합니다!”
그 말에 세르지는 알겠다고 걱정 말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정신이 없다.
바로 눈앞에 물줄기들이 머리를 터트리려고 날아오던 것이었다.
휙―!
수아아아아아아악―!
가까스로 머리는 피해냈지만 세르지의 몸을 이곳저곳 훑고 지나간다.
촤아악―! 촤아아아악―!
그렇다고 걱정할 만큼 아주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세르지가 마력장벽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물줄기가 몸에 닿을 부분만 집중적으로 써서 데미지를 최소화한 것이었다.
“크윽―!”
하베츠는 세르지를 얕보고 있었지만, 세르지 역시 가만히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아이작 백작의 도움으로 죽은 파우스 황제와는 달리 진정한 대륙의 황제가 되기 위해 제대로 준비를 해 둔 것이었다.
그러니 드래곤의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하겠다.
솔직히 단 한 번의 출수에 죽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네놈도 동족의 심장으로 강해졌겠지.”
구오오오오오오오―!
마력을 끌어올려 좀 더 강한 힘으로 세르지를 공격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을 힘으로.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쨍그랑―!
전과는 달리 허무하리만큼 세르지의 마력장벽은 쉽게 깨졌다.
그리고 세르지의 몸을 난자한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악―!”
고통스러워하는 세르지에게 다가가며 말한다.
“그러니 나는 너의 심장을 먹겠다.”
세르지의 몸을 낭자하던 마력줄기가 세르지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붙는다. 그 세찬 물줄기가 마치 불덩어리처럼 뜨겁게 느껴진다.
“크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세르지의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폐하!”
쿠웰 단장이 깜짝 놀라 소리 난 곳을 바라본다.
“누가 폐하란 말이냐! 이 개새끼야!”
하베츠의 일검이 한눈을 판 쿠웰 단장의 가슴을 벤다.
촤아아아악―!
쿠웰 단장의 가슴에서 피가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그 세찬 피보라 속에서 쿠웰 단장은 푸른 머리 드래곤이 물줄기를 날카롭게 만들어 세르지의 가슴을 가르려는 걸 본다.
“끝내자.”
파란 머리 드래곤이 세르지의 왼쪽 가슴을 가르려던 그때.
쎄에에에에엑―!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골리앗이었다.
드디어 나타난 것이었다.
근위 기사들처럼 황금빛 중갑옷을 입고 있었다.
인간의 3배 크기였는데, 거대한 크기에 맞지 않게 엄청난 스피드를 지니고 있었다.
골리앗은 곧장 오러를 두른 검으로 푸른 머리 드래곤을 떨어트림과 동시에 세르지의 사지를 잡고 있던 마력줄기를 잘라냈다.
휘익―! 휘익―! 휘익―! 휘익―!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엄청난 위용이었다.
게다가 골렘이 오러를 쓰다니.
괜히 인간들이 골리앗만을 기다렸던 것이 아니었다.
“이 하찮은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드래곤들은 단번에 인간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이 플레시 골렘들이 동족의 뼈와 살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아챈 것이었다.
그러니 그냥 죽이지는 않겠다고 맹세하던 드래곤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