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140화. 이 새끼들 재밌네(1)
파이몬이 다가가자 귀를 대라는 식으로 검지를 까닥거린다. 그리고 귓속말을 한다.
그 귓속말을 들은 파이몬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부복한 뒤 곧장 아벨에게 다가가 말한다.
“용사시여 현재 무투회를 계속 진행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말에 실소를 흘린다.
“뭐라고? 하하― 왜?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이런 것 아니었던가? 그래서 승자연전제를 제안한 것이고.”
아벨의 생각이 오해라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오해입니다. 저희는 20위권부터 붙으면 그래도 엇비슷하지 않을까 했었던 것입니다.”
파이몬의 구차한 변명에 아벨은 마왕 베리알과 로드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그들도 아벨의 대답을 부들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잘하는군.”
그러면서 아벨은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두렵겠지. 남은 건 이제 죽음뿐이니까.”
그 말에 불쾌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한다.
“흠흠―!”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내게도 이득이 있어야겠지.”
역시 이번에도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제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5대 심복은 솔직히 좀 버거웠지만 이번 제안을 잘 이용한다면 충분히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에디린과 비트칸은 마왕과 로드를 죽이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아벨과 함께 말이다.
“……말씀해보시지요.”
“19위부터 역순으로 시작하는 거로 하지.”
씨익― 아벨이 걸려들었다는 미소를 짓는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시작하도록―”
당연히 아벨은 그거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잠깐. 그게 다는 아냐.”
“……?”
“내가 수락하는 조건으로 1위부터 5위까지 5대 심복이라 불리는 것들의 팔 하나를 잘라야겠다. 그리고 인간형으로 싸워야겠고.”
“……?!”
“뭐라고?!”
“저 건방진 새끼가?!”
“죽고 싶냐?!”
“이런 미친!”
그 발끈하는 모습에 자꾸만 비웃음이 터져 나온다.
“새끼들. 발끈하기는. 왜? 그러면 도저히 못 이길 것 같더냐?”
다시 시작된 도발에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이게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그러면서 마기를 끌어올리는데.
아벨도 그들을 향해 신성한 오러를 끌어올린다.
쿠웅―!
그때 마왕 베리알이 발을 땅에 찍어 주목시켰다.
“그만!!”
그리고 이어지는 강제성을 띤 위압적인 외침에 장내의 모두가 마왕 베리알을 주목한다.
“크윽―!”
“우웩―!”
그리고 인간들 중 비교적 약한 자들과 하위 마족들은 그 외침에 내상을 입어 피를 토했다.
아무튼 그러거나 말거나 베리알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아벨만 바라보는데.
“제기랄! 받아들여라!”
그 말에 깜짝 놀라 오대 심복들이 소리친다.
“?!”
“왕이시여!”
“어찌 저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건방진 인간의 말을 들어주시면 안 됩니다!”
“물론! 물론 저희가 이기겠지만! 계속 저딴 요구를 들어주면 버릇 나빠집니다!”
다른 마족들도 마왕의 파격적인 결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벨은 그런 마왕의 결정을 조롱한다.
“어쩔 수 없겠지. 맹세의 마법으로 속박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무투회에 절대 개입할 수 없거든.”
“……?!”
그제야 그 사실을 떠올린 듯한 멍청한 모습이다.
“그러니 깝치지 말고 한 팔씩 잘라라. 그래야 붙어줄 테니. 싫으면 그냥 닥치고 있고.”
저들은 아벨을 죽이고 나서는 인간들이 알아서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벨처럼 정의 무투회가 끝나고 전면전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정의 무투회 동안에 아벨을 죽이고 싶어 했다.
아벨만 죽이면 모든 게 끝이었으니.
“제기랄!”
푸악―!
불같은 성격의 서열 3위 바싸고가 자신의 팔을 뽑아낸다.
그리고 나머지 심복들도 따라 자신의 팔을 잘라냈다.
서걱―! 서걱―! 서걱―!
촤아아아아아아악―!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족들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때 바싸고가 소리친다.
“모든 마족은 지금의 이 치욕을 절대 잊지 말아라! 반드시 오늘 이 자리에서 저 괘씸한 인간들을 모조리 씹어 먹어야 한다! 뼈 채로 말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여기저기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들이 그것에 겁먹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분노에 찬 울부짖음을 즐겼는데, 마왕 베리알에 의해 내상을 입은 자들도 포션을 마시며 저들의 발악을 즐겼다.
“X신들! 지랄하고 자빠졌네!”
“어차피 너넨 용사에겐 한주먹 거리도 안 돼!”
“마왕도 쫄아서 아무것도 못 하고 저러잖아?! 안 그래?!”
“덤비라고! 덤벼보라고! 이 쫄보들아!”
진행자 파이몬도 마족이었기에 지금의 상황에 부들대고 있었다.
아벨이 그런 파이몬을 한 번 더 발끈하게 할 말을 한다.
“19위 없나? 아― 19위는 벌써 죽었었지? 그럼 18위를 내와. 바보처럼 그렇게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파이몬도 이제는 중립 따위 개나 줘 버리라는 듯이 아벨을 당장에라도 죽일 듯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바신! 뭐 하고 있어!”
그러자 서열 18위 바신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40위 라움은 알아서 조용히 들어갔다.
바신은 뱀의 꼬리를 가진 거대한 남자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몸뚱이에 맞게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벨이 어이없다는 한탄을 쏟아낸다.
“하― 이 새끼도 역겹게 사람 모습이네.”
바신도 씩씩거리며 반드시 아벨을 자신이 죽이겠다는 결연한 표정이다. 하지만 다른 마족들은 솔직히 바신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이때껏 아벨을 본 바 적어도 인간형으로 변신 가능하던 10위권 내의 마족들이어야 상대가 가능할 것 같았다.
바신이 아벨의 앞에 서자 파이몬이 지체하지 않고 시합 개시를 외친다.
“시합 개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벨은 예의 마력을 숨기고 순간이동을 하기 시작한다.
수악―!
아벨의 몸이 언제나처럼 시야에서 사라지자 바신은 기겁을 하며 소리친다.
“어디냐! 비겁하게 숨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그 어떤 마족도 저 수법에서 죽음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심지어 모습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수악―!
그때 아벨이 바신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검을 휘두른다.
“그냥 조용히 죽어.”
신뇌전마검新雷電魔劍
제6식
징벌懲罰
아벨은 이번 무투회에서 자신의 끊임없는 무한대의 마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구뇌전마검의 최종 비기였던 제6식 징벌懲罰만을 쓰고 있었다. 10위권 밖의 마족이라면 절대 막아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주신 아그네스가 내리는 숭고한 징벌처럼 마족의 머리통에 한 줄기 빛의 기둥을 내리꽂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단번에 바신의 몸이 그 숭고한 빛에 의해 분해되어 사라져 간다.
성스러운 자의 반지의 기운과 성검 유게네스의 기운이 더해져 마족에게만큼은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신의 징벌이 되었다.
아벨이 이번에도 너무나도 싱겁게 이겨버리자, 인간들에게선 엄청난 환호가, 마족에게서는 깊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덜컥―
투구를 개방한 아벨은 이번에도 별거 아니었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지루했다는 듯이 한껏 권태로운 목소리로 파이몬에게 말한다.
“어서 네놈과도 붙어보고 싶군. 물론 네놈이 내 파니츠를 쓸 수 있게 만들지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포션을 마시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아벨이다.
* * *
에브니아 대륙의 중심 티레시아스 제국의 황제 파우스 아이테르너스가 죽었다는 소식은 한밤중에도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다.
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파우스 황제는 마족에 의해 암살당했다고 발표했는데, 마족들이 제국을 이참에 완전히 무너트리기 위해 앞에서는 정의 무투회를 통해 아벨을 죽일 계획을, 뒤에서는 암살을 통해 제국의 기둥인 황제를 죽일 이중 작전을 펼쳤다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이 소식을 접한 백성들과 귀족들은 예상외로 그 공표를 매우 환영했다.
모두가 파우스 황제의 무능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아들인 용사 아벨을 수잔 황비의 사랑을 빼앗았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덕분에 아주 매끄럽게, 어떠한 장애물 없이 황제 대관식을 거행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주신 아그네스의 신전에서 한 번, 정의의 신전에서 한 번 거행했었는데, 이번엔 정의의 신전에서만 거행됐다.
심지어 황제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순간임에도.
전시라는 명목하에.
참가인으로는 황제가 될 세르지와 정의의 신의 허락을 받아낼 최고 대신관, 그리고 공증을 할 아이작 백작과 쿠웰 근위기사단장, 이렇게 단 네 명으로만 구성이 되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파우스 황제의 장례식에 남겨두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을 진행시켰다 하겠다.
정의의 신의 최고 대신관은 건국황제이자 용사였던 카인의 황금빛 검으로 세르지의 양어깨를 두드린다.
“에브니아를 지탱하고 제국의 수호하는 위대하고 거룩한 정의의 신의 뜻을 받들 준비가 되었는가?”
“네. 그렇습니다.”
“정의의 신의 타티스의 뜻이라면, 그 어떤 뜻이든 이 세계 정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믿고 따를 의지가 있는가?”
“네. 그렇습니다.”
“나 정의의 신 타티스가 세르지 아이테르너스를 나의 대리자로 선택하노니, 에브니아를 위해, 제국을 위해 목숨을 다 바쳐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세르지의 머리에 엄청난 수의 마력석과 금으로 치장이 된, 화려하게 그지없는 황관을 씌어준다.
“나 타티스는 그대를 티레시아스 제국의 황제로 임명하노라.”
그때 세르지에게 은은한 별빛처럼 반짝이는 빛이 무리가 내려온다.
정의의 신이 허락하겠다는 의미였다.
“드디어…….”
세르지는 자신에게 내려오는 빛무리를 느끼며, 드디어 자신이 타티스에게 선택받은 진정한 황제가 되었다는 것에 감격해 하는데.
쾅―!
벌컥―!
“웃기고 자빠졌네.”
“……?”
그때 신전 문을 박차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가면 쓴 자 한 명과 그를 따르는 네 명의 대단히 아름다운 자들이었다.
쿠웰 단장이 미간을 사납게 구기며 묻는다.
“누구냐?”
그의 물음에 가면을 쓴 자는 싸늘한 미소로 화답한다.
“천하의 드로즈도프 공작가의 남자가, 쓰레기 같은 요한센의 뒤나 핥고 다니다니. 이거 미치고 팔짝 뛰겠군.”
그 말은 드로즈도프 공작가의 사람에겐 결코 해선 안 될 말이었다.
빠직―!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쿠웰 단장은 그 도발에 넘어가고 만다.
“뭐라고?! 이게 좋은 날이라 봐주려 했더니!”
곧장 검을 뽑아 오러를 두른다.
챙―!
우웅―
그 모습에 가면을 쓴 자는 혀를 찼다.
“허―! 이 새끼 재밌네.”
“당장 그 더러운 혀를 뽑아 주겠다!”
발끈하며 당장에라도 공격을 하려던 쿠웰 단장을 보고 가면 쓴 자가 말을 잇는다.
“쿠웰. 남의 집 개가 되더니 벌써 주인의 목소리도 몰라보는 건가?”
“……?!”
휘익―!
가면을 벗어 던진다.
“아니!”
“너는?!”
“이,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