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136화. 전초전(1)
지산의 형인 파일 푸뉴스는 지산의 말과는 달리 순번이 밀려서 다음날에나 면접실에 들어왔다. 그래서 지산과의 만남도 다음날로 미뤄진 상황이었다.
“저하! 처음 뵙겠습니다!”
힘차게 외치며 예를 갖추는 그였다.
“그래. 정말 반갑구나.”
그 역시 리차드처럼 한쪽 팔을 잃었었지만, 그 역시 새 삶을 살며 리차드처럼 그의 재능보다 훨씬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달라.’
하지만 리차드와 다른 점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복수심의 세기였다. 그 세기가 리차드보다는 많이 약해 보였다.
고국이, 심지어 가문에서, 모두에게서 버려진 리차드와는 달리 옆에서 그와 함께해준 가문의 사람들 덕분인 것 같았다.
밝게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모든 게 다 저하 덕분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가 저하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아벨도 씨익― 훈훈한 미소를 보인다.
“내가 다 기쁘구나. 그래. 좋다. 너 정도면 충분히 모두에게 도움이 될 테니. 합격이다. 이따 지산과 함께 보자꾸나.”
“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그를 보며 다시 한 번 그들에게 반사르 가家 무투술武闘術을 가르쳐 준 것에 대해 만족해한다.
‘옳은 결정이었어.’
파일 덕분에 이후 참가자들을 좋은 기분으로 만났는데, 3일 차에는 남은 7인의 성검사 모두가 면접실에 들어왔다.
“오랜만이군. 크리스찬.”
“네. 저하 오랜만입니다.”
앤디와 함께 맹세의 마법이 필요 없었던 그였다. ‘정의正義의 검’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정의감 때문에 그는 맹세의 마법이 없어도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자였다.
소설에서 그만큼은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작가가 하도 떠들어대서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한센에서 반대하지는 않았던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설마요. 전 내놓은 자식인데 말입니다.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요한센은 관심이 없답니다. 아니, 오히려 가문의 이름을 높이다 죽는다면 쓸모가 있다면서 좋아할 것입니다.”
그 마음에도 없는 말에 피식― 실소가 새어 나왔지만, 뭐 본인이 그렇다는데.
“그래? 훗― 아무튼 네가 와서 정말 든든하구나. 고맙다. 지원해줘서.”
“별말씀을. 저도 마멸단원인데 말입니다. 당연히 마족 멸살의 사명에 제가 힘을 보태야지요.”
“좋다. 너에게도 더 물어볼 것 없겠지. 합격이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라.”
“네. 저하.”
다음 7인의 성검사는 마멸단 내에서도 적이 많은 로만 드로즈도프였다.
“저하를 뵙습니다.”
“의외로군. 마족과의 싸움에는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말야.”
“세계의 강자들이 모두 모였는데 관심 없을 리가요. 저하도 계시고.”
그는 역시 마족 멸살의 사명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강자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자신이 강해지는 것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뭐 상관없겠지.’
정의감?
솔직히 그런 거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냥 마족만 다 때려죽이면 되는 거다.
“좋다. 너만 한 강자도 어디 없으니. 통과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라.”
“네. 고생하시지요. 저하.”
마지막은 심판자 클라우스 킨스키였다.
‘하하…….’
아벨은 클라우스 역시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성장한 것처럼 보이자 조금 놀람을 보인다.
“잘 지냈는가?”
러네이에게 충격패한 후 절치부심한 듯했다.
“네. 저하. 덕분에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 역시 강해지기 위해 아벨에게 맹세의 마법을 하면서 구뇌전마검舊雷電魔劍과 파천검법破天劍法을 얻어갔으니 분명 도움을 받긴 했을 것이다.
‘하긴 파천검법 역시 대단히 뛰어난 드래곤의 검술이니.’
문득 정의 무투회에서 그를 이긴 러네이가 떠올랐다.
‘러네이. 잘 지내고 있겠지.’
그녀 역시 에디린처럼 대단히 귀찮은 존재이긴 했으나, 그래도 많은 도움을 줬었던 것이었다.
‘러네이가 그리워질 줄이야.’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클라우스를 바라본다.
“좋다. 합격이다. 가서 쉬고 있어라.”
“감사합니다. 저하.”
그는 자신의 실력을 잘 알았기에 당연하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갔다.
‘오늘은 안 오는 건가?’
화신체에 대한 말이었다. 이제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앞으로 3명이면 끝이었다.
‘뭐 언젠가는 오겠지.’
오늘 와도 되고 안 와도 됐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지막 차례에 화신체가 들어온다.
훤칠한 키에 강인해 보이는, 전형적인 뛰어난 검사의 모습이었다.
『이름 - 이언 글렌
정보 - 아덴의 신이자 풍요의 신인 키빌리의 화신체化身體. 아덴의 글렌 남작가의 차남.』
그때였다.
《저놈이군! 널 공격하고 하베츠를 데려간 놈이!》
아벨이 알려주기 전에 에디린이 알아본 것이었다. 그때 에디린은 간발의 차로 저놈을 놓쳤었다. 다른 드래곤들이 저 빌어먹을 것을 도와 순간이동으로 도망가 버린 탓이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에가 말한 대로 그는 정의의 신의 화신체가 아니라 풍요의 신의 화신체였군요.》
그는 소설에서 나온 화신체들 중 가장 강한 화신체였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 아덴에서는 별 볼 일 없는 난봉꾼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철저하게 자신의 본모습을 감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이언 글렌. 아덴에서 왔군.”
“네. 저하. 아덴은 받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 잘 알고 있으나, 저 역시 대륙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성취가 너무 낮은데. 듣지 못했나? 최소 9성 이상이어야 한다고?”
그는 알려진 바로는 32살에 겨우 6성 검사였다. 아덴에서 무인이 이 정도 성취면 그냥 보통 사람 취급당했었다.
뒤통수를 긁으며 머쓱해 한다.
“사실 그래서 제가 이곳에 올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가문에서 버림받았었거든요. 그래도 분명 제가 도울 자리가 있을 겁니다. 저하. 제게도 저하를 도울 기회를 주십시오.”
“음―”
아벨은 고민하는 척하며 비트칸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저 녀석은 비트칸 님께서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현 화신체 중에 가장 강한 놈이라 말입니다.》
가장 강한 놈이란 말에 뿌듯해한다.
《그럼 당연하지. 당연히 내가 해야지.》
반대로 에디린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성을 낸다.
《아니, 왜 내가 아니야? 왜?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냐?》
턱을 괴고는 이언 글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에디린의 말을 일단은 무시한다.
그러면서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네놈은 너무 형편없어서 굳이 맹세의 마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대신 다른 마멸단원처럼 네게는 검술서를 줄 수 없다. 아무래도 넌 아덴 출신이니 말이다.”
이언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괜찮습니다! 염치도 없이 어떻게 제가!”
“좋다. 그렇다면 받아주지.”
이가 다 보일 정도로 환히 웃는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솔직히 우리도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네가 아덴에서 보낸 첩자라는 게 밝혀지면 넌 그 자리에서 처형을 당할 것이다.”
“암요! 당연히 그래야죠!”
그러면서 넙죽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저를 믿고 받아주셔서!”
피식―
어떻게든 아벨을 죽이기 위해 마멸단에 합류하고자 하는 이 같잖은 화신체가 우습기만 한 아벨이었다.
* * *
『이름 - 유리 스피바크
정보 - 코렌트의 신이자 물의 신인 에르사의 화신체化身體. 코렌트의 마족에 의해 사라진 스피바크 백작가의 유일한 후손.』
‘마지막 화신체군.’
마지막 화신체는 마지막 일곱째 날에 왔다.
《마지막 화신체입니다.》
《오케이.》
《알겠네.》
마족에 의해 멸문된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라 그런지 조금 음울해 보였다. 하지만 굉장한 미남이어서 그 우수에 찬 모습이 썩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스피바크 백작가라.”
“가문이 마족에 의해 멸문을 당했습니다. 저하의 마족 멸살 사명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자식은 있나?”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후손을 만드는 게 우선이지 않나? 가문의 명맥은 이어야 하니 말이다.”
이번에 네놈이 죽을 테니 말이다.
“제 손으로 마족을 처단하지 않는 한 가문은 살아도 산 가문이 아닐 것입니다.”
이번에도 고민하는 척을 한다.
“음―”
턱을 괴고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뭐 괜찮겠지.”
드륵―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다.
“앞으로 잘 해보자.”
아벨이 내민 손을 잡으며 말한다.
“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씨익―
‘이제 마무리만 남았군.’
“그래. 그리고 내일 합격자들 모두와 전체 회의를 진행할 것이니 반드시 참석하도록.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번 마족과의 ‘정의 무투회’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알려줄 테니.”
“네.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 쉬어라. 내일 보자.”
“네. 저하.”
예를 갖추고 돌아갔다.
덜컥―
그가 나가자 함께 면접을 봤던 동료들에게 말한다.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쥬디스와 마고스, 조니 자작이 차례로 대답한다.
“저하께서 고생하셨죠. 저희는 지켜만 봤던 걸요.”
“맞습니다. 저하께서 고생하셨습니다.”
“저하 덕분에 복수가 빨라지겠군요.”
이어 에디린과 비트칸도 대답한다.
“그래. 네가 고생했지. 화신체 찾느라.”
“맞다. 우리야 자리만 채웠지.”
그 말에 훈훈한 미소를 짓는다.
“후후― 다들 겸손은. 아무튼 내일이 중요합니다. 전에 말씀드린 대로 비트칸 님께서는 이언 글렌을, 에디린 님께서는 한데 아타이지를, 그리고 저와 스승님, 교수님, 자작께서는 방금 본 유리 스피바크를 공격하겠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도 들어가서 정비를 좀 하시죠. 내일을 위해서 말입니다.”
내일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마족과의 전쟁의 전초전이.
* * *
예정대로 모든 참가자가 전체 회의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처음 예상보다 훨씬 많군.’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그만큼 1차 마족 침공에 의해 피해를 본 자들이 많았었고 마족에 대한 증오심이 엄청나다는 증거였다.
아무리 자신이 죽을지언정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한 마족들을 도저히 용서치 못한 것이었다.
‘그래. 모두가 힘을 합치면, 잘만 하면 드래곤이 참여하지 않는 이때 바로 모든 걸 끝낼 수도 있어.’
마족과 인간들 간의 정의 무투회가 끝나고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면, 에디린과 비트칸이 시작하자마자 떨거지 마족들을 최대한 줄여주어야 할 것이다. 마왕과 로드가 참전하기 전에 말이다.
‘무리긴 하지만.’
물론 이번에 다 끝낸다는 생각은 조금 무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소설보다 20년은 앞당겼으니.’
그러니 솔직히 말해 무리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어.’
무리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작가가 준 치트키와 알고 있던 소설의 정보들로 인해 아벨 역시 소설의 시기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과는 달리 믿을 만한 동료들도 엄청나게 모았었고.
‘다 끝내고 세계수의 뿌리를 찾자.’
마왕의 뿔과 에이션트 드래곤 하트는 이번 기회에 얻을 수 있겠지만 세계수의 뿌리는 아니었다.
사실 세계수의 뿌리를 먼저 찾지 않은 건 세계수의 뿌리가 십 년 주기로 그 위치가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그 위치를 지금에선 알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시 말해 현재 알고 있던 세계수의 뿌리가 있던 위치는 소설에서 아벨이 세계수 뿌리를 우연히 얻었던 스물여덟 때의 위치, 즉 몇 년 후의 위치였기에 아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리스에가 우리 편이니 그녀를 이용해도 되지만.’
그녀를 통해 알 수 있다면 확실히 편하긴 했다. 마족 멸살이 끝난 후 몇 년을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됐으니 말이다.
그때 조니 자작이 아벨의 상념을 깨 주었다.
“저하. 모두 모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