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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소설 속 먼치킨-135화 (135/178)

제135화

135화. 내가 널 믿어야 할지(2)

에디린은 심각한 아벨에게 ‘에이 별거 아니네.’ 하는 투로 말한다.

“그래. 믿지 마. 네 말대로 안 믿으면 되겠네.”

아벨은 에디린이 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못 느낀 듯하자 답답함을 토로한다.

“휴······ 에디린 님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말 중요할 때 모든 걸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휴······.

한숨이 전염이 됐는지 이번엔 에디린이 한숨을 쉬었다.

“아벨. 내가 네 옆에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딴 게 배신때려도 내가 막아 주면 되잖아? 나 그 정도 능력은 있다고.”

음 맞는 말이긴 했다.

그녀는 지금 로드나 마왕과 싸워도 막상막하일 것이었으니.

다시 생각해보니, 소설에서 아벨이 마왕을 죽이기 직전에 배신당해서 그런지 너무 예민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녀 말대로 괜한 걱정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딴 잡생각 말고 어서 와서 어깨나 주물러줘. 오늘 온종일 그 지루한 곳에 있다가 온몸이 쑤셔 죽을 뻔했다고.”

그 어린애 같은 투정에 아벨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터트린다.

“······그렇군요. 제 옆엔 에디린 님이 있었군요.”

“그래. 그러니 걱정 말고 내 옆에 딱 붙어 있으라고.”

‘정말 어쩔 수 없군.’ 하며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당근을 주기 위해 일어나던 아벨이다.

* * *

이틀째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제국 수도에서 펼쳐졌었던, 정의의 기간 중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정의의 날 행사’가 끝이 났었기에 본격적으로 대륙의 귀족들이 참여하기 시작했었다.

눈앞의 귀족도 그 정의의 날 행사를 끝마치자마자 달려온 듯했다.

“율리안······.”

율리안 다닐레비우스 자작.

아르시아의 셋째 삼촌이자 아벨과 인연이 있던 그는 3년 전 가문이 멸문당할 당시 황궁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그 끔찍한 화를 피할 수 있었었다.

‘많이 고생했나 보군······.’

그의 얼굴은 전과 같은 수려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매우 수척하면서도 생기가 없는, 어둠이 깔려 있는 게 마치 죽은 사람과도 같아 보였다.

물론 그런 그도 아르시아와 똑 닮은 에디린을 보고는 잠깐 조금 놀란 듯도 했었지만, 이내 그녀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는 다시 죽은 시체로 돌아온다.

“폐하께 허가를 받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황제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힘을 빌려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걸 빌미로 그를 이용만 할 뿐 좀처럼 힘을 빌려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가 황궁을 벗어나지 못하던 것이었다. 황제는 유능한 그를 붙잡기 위해 매번 조만간을 말하며 마족 멸살을 유보했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그래도 아벨이 그 누구보다 자신의 적인 마족들과 대척점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만이 지금의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괜찮다······ 오느라 고생했다······.”

“네. 저하.”

그를 보니 실어증을 앓았었던 아르시아가 떠올랐다.

“너에게 정말 미안하구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너의 가문이······.”

“아닙니다. 저하 때문이.”

“······.”

“그 더러운 마족들이 저하께는 상대가 안 되니까 그 비열한 짓을 한 게 아니겠습니까?”

차마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결과론적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 때문에 가문이 멸문당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러한 생각 마시고 정 저희 가문을 위해 주실 거라면 지금처럼 마족 멸살에 대한 생각을 절대, 절대 변치 말아 주시지요. 그러면 됩니다.”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알겠다······ 내 주신 아그네스의 이름으로 반드시 그러하겠다고 맹세하겠다······.”

조금 씁쓸한 얼굴로 대답한다.

“네. 그럼 됐습니다.”

“······너는 더 볼 것 없이 합격이니, 들어가 쉬고 있어라······ 아니면 아르시아를 만나보겠느냐······?”

의외로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지금은······ 지금은 그 아이를 볼 낯이 없습니다······.”

가문의 사람으로서 마족들과 맞서 싸우지 못했다는 사실에, 형 미카엘 백작뿐만 아니라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직도 크나큰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괴로워하는 그를 지금은 그냥 둬야 할 것 같았다.

“알겠다······ 그래. 어서 가서 쉬어라······.”

“네. 저하.”

예를 갖추고 면접실을 나섰다.

그가 나갔음에도 아벨은 여전히 괴로움에 빠져있었다. 그가 괜찮다고 했지만 역시 자신 때문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아벨의 마음을 꿰뚫은 에디린이 툭 하고 말을 던진다.

“너 때문 아니야. 네가 아니었어도 마족들은 인간들의 소중한 것들을 깨어 부수기 위해, 언젠가는 분명 두 가문을 공격했을 거야. 케이와 아르시아가 좀 예뻐? 인간들의 보물이라 할 만하잖아?”

그런 말을 하는 그녀를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자기가 말하고도 쑥스러웠는지 어서 다음 사람을 부른다.

“뭐 아무튼 잡생각 말고! 다음!”

그래서 다음 사람이 들어온다.

“······?!”

아주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지산과 같은 몸을 가진 여자였다. 외모도 우락부락해서, 심지어 머리도 숏컷이어서 여자보다는 남자처럼 보였다. 정말 아주 건장한 남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한데 아타이지.’

그런데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건 다름 아닌 이력서에 적힌 그녀의 이름이었다.

덕분에 율리안 때문에 생긴 복잡한 생각이 단번에 사라졌다.

천혜안을 쓴다.

『이름 - 한데 아타이지

정보 - 바일의 신이자 불의 여신인 베스타의 화신체化身體. 바일의 아타이지 후작가의 막내딸.』

‘막내딸 이미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막내딸 이미지는 아니었다.

아무튼.

“막내딸이라······ 가문에서 용케 보내줬군.”

“세상을 위한 일이니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말투도, 굵직한 목소리도 뭔가 역시 상남자 같았다. 하지만 여자가 확실했다.

“그래. 알겠다. 그럼 자네의 활약을 기대하겠다. 통과.”

“감사합니다. 저하.”

예를 갖추고 돌아갔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아벨은 텔레파시로 두 드래곤에게 알린다.

《바일의 화신체입니다.》

《······?!》

두 드래곤은 그녀가 화신체라는 것보다 아벨이 화신체를 보자마자 바로 알아차린 그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정말 대단해······ 어떻게 바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인지······.》

《우리 아벨이잖아. 당연하지. 이 정도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디린의 표정도 얼떨떨해 보인다.

《앞으로 두 녀석이 더 남았으니 잊지 말아 주시길.》

확실히 화신체의 출현에 복잡했던 감정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하고 우선인지도 떠올린다.

‘그래.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마족 멸살을 반드시 이뤄내는 거야.’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고 화신체를 찾는 데 열중한다.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대륙의 귀족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보니 오랜만에 보는 인물들이 많았다.

“지산!”

“하핫―! 저하! 잘 지내셨습니까?!”

지산은 아벨이 준 반사르가家 무투술武闘術로 일취월장한 듯했다.

순수하게 감탄하며 말한다.

“많이 성장했구나.”

“이게 다 저하 덕분이지 않겠습니까? 이제야 저하께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쁘군요. 전에 마족 침공 때는 제가 짐만 되어 드린 것 같아 항상 마음에 걸렸답니다.”

소설에서의 권왕拳王을 생각하자면 지금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확실히 전보다 많이 성장해 있었다. 그 역시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 것이었다.

“그래. 고맙다. 일단 들어가 쉬고 있어라. 다 끝나고 보자꾸나.”

“네. 저하.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따 형님도 들어올 겁니다. 형님이 저하를 굉장히 뵙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지산이 나갔는데, 지산이 나가자마자 7인의 성검사 중 아벨을 가장 따르던 앤디 피츠가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꾸벅 허리 숙여 예를 갖춘다.

“저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 역시 은인인 아벨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

‘역시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할 때 더욱 성장하는가 보군.’

자신도 죽은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수련에 전념하지 않았던가.

“내 예상보다 훨씬 성장했구나.”

천혜안으로 본 그는 9성이었다. 솔직히 7인의 성검사 모두 현재는 많이 어렸기에 9성을 넘기 어려울 것이었다.

드래곤 하트를 다수 먹은 죠슈아나, 복수에 대한 일념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던 리차드가 아니라면, 아마도 많은 적을 가진 로만 정도가 10성이 되었을 것 같았다.

“저하를 도울 수 있어 기쁠 뿐입니다.”

그는 확실히 소설에서의 그 충성스러운 모습, 즉 ‘용사의 검’으로써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고맙다. 이따 끝나고 잠깐 보자꾸나.”

“네. 저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도 아벨이 굉장히 바쁘다는 걸 잘 알기에 군말 없이 예를 갖추고 나갔다.

‘반가운 인물들은 피로를 해소해주는군.’

반가운 그들이 나타나 줘서 고마웠다. 덕분에 이 지루한 면접에 활력이 돋고, 그리고 끝났을 때 나눌 담소가 기대돼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그 날의 면접이 끝이 나는가 했는데.

마지막에 7인의 성검사가 한 명 더 왔다.

『이름 - 챠빌 켄드릭

정보 - 검술 강국 아덴의 백작. 훗날 ‘7인의 성검사’ 중 한 명이며 ‘치유의 검사’란 이명을 가짐. 10성 검사. 아덴의 사검대死儉隊 대대장大隊長.』

‘로만과 리차드를 제외하고는 10성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10성이었던 그자는 바로 아덴의 챠빌 켄드릭, ‘치유의 검사’라 훗날 불릴 자였다.

그는 아벨이 이 에브니아 세계에 와서 처음 보는 7인의 성검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예전 아벨이 우승했었던 정의 무투회에는 나이가 많아 참가신청을 하지 못했었고, 이번 마멸단 창단 이후에도 아덴은 아벨과 적이어서 감히 찾아오지 못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덴의 검사라.”

대단히 격식을 갖춰 아벨에게 예를 갖췄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덴의 챠빌 켄드릭이라 하옵니다.”

에디린이 챠빌을 향해 분노를 담아 말한다. 그녀 입장에서 아벨의 목숨을 노린 것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었다.

“간도 크군. 여기가 어디라고. 죽여 달라고 찾아온 건가?”

비공식적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아덴의 무인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음에도 온 것이었다.

하지만 아벨은 그가 얼마나 정의로운 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이명이 괜히 ‘치유의 검사’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는 마족 침공 때마다 피해를 본 백성들에게 직접 찾아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도와줌과 동시에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도움을 주었는데, 그래서 백성들에게 ‘치유의 검사’라고 불리게 됐던 것이었다.

챠빌 켄드릭은 심판자 클라우스 킨스키처럼 가족이 마족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었으나,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사랑한 이 에브니아 세계를 유린한 마족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러니 충분히 이 자리에 올 이유가 있다 하겠다.

“좋다. 들어나 보자. 아덴은 금지된 이곳에 왜 왔는지.”

덤덤하게 대답한다.

“저 역시 마족을 멸살하고자 하는 이 거룩한 사명에 동참하고 싶어서입니다.”

에디린이 묻는다.

“더러운 아덴놈의 말을 어떻게 믿지?”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의 마법을 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검술을 받고 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솔직히 고민할 것 없었다.

이렇게까지 하겠다는데.

분명 이 정도까지 하는 거 보면 아덴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고 온 것 같았다.

그래서 에디린이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더는 묻지 않고 흔쾌히 받아주기로 한다.

“좋다. 받아주지.”

“아벨 괜찮겠어?”

에디린이 걱정돼 물었다.

“이 자는 괜찮을 것 같군요. 그리고 맹세의 마법을 하겠다고 하니, 결코 배신할 수도 없을 겁니다.”

챠빌도 그것에 확신에 차 말한다.

“절대, 절대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히 에디린이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긴 했었다. 그래서 그녀도 더는 묻지 않는다.

곧장 맹세의 마법을 준비한다. 아벨은 준비된 마법 양피지를 그에게 건넨다.

“내가 불러주는 대로 써라.”

그리스에와 같은 맹세의 문장을 피로 쓴다.

“‘아벨 아이테르너스와 챠빌 켄드릭은 에브니아의 평화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숭고한 관계로, 이 숭고한 관계를 배신했을 시에는 목숨으로 대신하겠다.’라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양피지에 같은 맹세를 쓰자, 기분 나쁜 빛에 휩싸였고 챠빌은 드디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마족 멸살에 참여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순수하게 기뻐했는데, 아벨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그런 그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드륵―

아벨은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해 하는 그에게 다가갔다. 다가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쉽지 않은 선택일 텐데 고맙다. 앞으로 잘해 보자. 챠빌.”

내민 손을 잡으며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저하. 그럼 함께 마족들을 처단할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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