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131화. 미끼(2)
아벨에게 손을 잡힌 두 드래곤은 예의 그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홱―! 하고 서로에게서 돌렸다.
“흥―!”
“쳇―!”
하지만 그거로 끝이었으니.
정말 효과 만점이라고 생각하며 죠슈아에게 묻는다.
“그래. 가문은 좀 어떠하느냐?”
훈훈하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저하께서 최근에 새로 보내주신 파천검법破天劍法을 모두가 열심히 익히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그 어느 때보다 가문에 활기가 돌고 있습니다.”
아벨도 그 대답에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구나. 도움이 돼서.”
훈훈한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정말 저하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자 그때 에디린이 끼어든다.
“나는? 그거 내가 줬는데?”
에디린이 툴툴대자 에디린에게도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에디린 님은 아벨 저하와 한몸이시니 당연히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주아주 많이 말입니다.”
역시 죠슈아는 눈치 있게 아부도 잘했다.
그 말에 에디린은 해맑게 웃으며 죠슈아를 칭찬한다.
“넌 언제 봐도 마음에 드는 인간이구나. 그래. 앞으로도 아벨을 잘 보필해.”
“네. 분부 받들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죠슈아는 말을 끊지 않고 계속해서 이었는데, 좀 더 동생을 위해 에디린을 공략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에디린 님께서 이번 에이션트 드래곤을 가볍게 없애셨다고 대륙에 그 소문이 자자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씨익―
“그으래?”
“네. 에디린 님. 정말입니다.”
그 훈훈한 모습을 본 검은 머리 꼬마 아이가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자, 이번엔 케이가 나선다.
“오라버니도 참. 비트칸 님이 없으셨으면 그게 쉽게 되었겠어요? 두 분이 함께하셨으니 손쉽게 해치운 거지요.”
그제야 그 검은 머리 꼬마도 ‘암― 당연하지.’ 하며 웃을 수 있었다.
아벨은 두 지혜로운 남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그때였다.
덜컥―!
누군가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큰일입니다!”
조란 자작이었다.
“……?”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조란 자작이 이어서 소리친다.
“다닐레비우스와 아슈트반이 마족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답니다!”
* * *
케이가 없었음에도 마족들이 아슈트반을 습격한 이유는 케이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과 아벨과 가까운 것에 대해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물론 무엇보다 아르시아라는 존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아르시아만 있어도 충분히 아벨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너무 늦지 않아야 할 텐데…….’
조니 자작에게 보고를 받은 후 곧장 두 드래곤의 도움으로 나눠서 움직였다.
아벨과 에디린, 그리고 사나와 조린 자작은 다닐레비우스 백작가로.
비트칸과 케이, 죠슈아, 마고스와 쥬디스는 아슈트반 백작가로.
“이런…….”
도착 후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오던 비트칸의 탄식처럼 아슈트반 백작가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 견고했던 성은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고, 곳곳에 아슈트반 사람들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털썩―
“……이럴 수가…….”
죠슈아는 망연자실하며 주저앉았다.
케이도 의식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마고스에 의해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모두가 싸늘한 시체로만 존재할 듯했다.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도 있을 것만 같다.
도저히 두 사람을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저히.
“어?! 다들 이리 와봐! 저기 뭐가 쓰여 있어!”
쥬디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일행을 불렀다.
“……?!”
다 무너지고 얼마 안 남은 벽에 무언가가 피로 적혀있었는데, 처음 보는 언어였다.
그때 비트칸이 그것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마족의 언어로군…….”
“……?!”
모두가 깜짝 놀라며 비트칸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비트칸이 저 언어를 해석해 주길 바란다.
“음…….”
하지만 비트칸은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침음성만 흘릴 뿐 해석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고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뭐라고 적혀있습니까……?”
잠시 케이와 죠슈아를 안쓰럽게 바라보는데.
“후우…… 그래. 그래도 알긴 알아야지.”
꿀꺽―
그 말에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벨과 가까이 한 벌이다. 그리고 오늘 죽지 않은 아슈트반의 인간들은 앞으로 편히 살 생각 말아라.”
스르륵―!
결국 케이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죠슈아는 피눈물을 흘리며 으드득―! 어금니를 깨문다. 입가로 피가 흘러내린다. 또한 부들부들 떠는 손아귀에서도 손톱에 눌린 살들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반드시…… 반드시 복수하겠다…….”
피의 복수를 다짐하던 죠슈아와 다르지 않게, 조니 자작 역시 폐허가 된 본가를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리며 피의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이곳에도 마족의 언어로 쓰인 글이 있었다. 그래서 비트칸이 그랬던 것처럼 에디린이 해석을 해줬다.
“여자를 찾으려면 타르타노스로 오거라.”
그 말을 듣고 아벨이 입을 연다.
“우선 죽은 자들에게 안식처를 만들어줘야겠습니다. 그런 후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아벨의 말이 맞았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아벨은 마법을 써 우선 땅을 팠다.
과과과과과과과―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지자 에디린을 제외한 모두가 조심스럽게 시체 한 구, 한 구 그 구덩이에다가 옮겼다.
그렇게 시체를 옮기던 도중 조니 자작은 어느 한 중년 여인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순간 걸음을 멈춘다.
“케이시…….”
그의 아내였다.
폰투스는 아직 위험했었기에 가문으로 잠시 보냈었던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 시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저벅― 저벅―
그리고는 무릎 꿇고 좀 더 자세히 그녀를 들여다본다.
심장에 귀를 가져다 댄다.
혹시 몰랐으니…….
“…….”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가 살아있을 리가 없다.
와락―!
그 싸늘하게 식은 아내를 껴안고는 이내 들썩들썩― 흐느끼기 시작한다.
믿기지 않았다.
도저히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흐흐흐흑……!”
한참을 그 자리에서 흐느끼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죽은 자신의 아내를 안아 들고 아벨이 파 놓은 구덩이로 이동한다.
이미 조니 자작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시체는 구덩이로 옮겨 놓은 상황이었다. 모두가 조니 자작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살며시 그 구덩이에 아내를 내려놓은 후 아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아벨이 마법으로 흙을 덮었다.
과과과과과과과과―
무덤이 완성되자 에디린은 폐허가 된 건물들을 깨끗하게 없애주려고 손을 든다.
그러자 그때.
“……아닙니다…… 이대로…… 이대로 놔둬 주십시오…….”
“……?”
“복수가 끝나기 전까진 이대로 두고 싶습니다…….”
그 모습을 대단히 안타깝게 씁쓸하게 바라본다.
‘미안합니다…… 자작…….’
이 모든 게 자신 때문이었기에 아벨은 그 죄책감에 가슴이 죄어 옮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 더러운 것들에게 이 모든 일의 죗값을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고 맹세한다.
그때 조니 자작은 주변에 널브러진 검 두 자루를 주워왔다.
그리고 그것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만들어진 무덤에 꽂았다.
주르륵―
다시 피눈물을 흘리며 아벨을 바라본다.
분노와 슬픔으로 뒤섞인 격정적인 얼굴로 부탁한다.
“저하.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아벨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에디린은 아벨의 수락을 보고는 곧장 포탈을 만든다.
위잉―
아벨이 말한다.
“……돌아가서 비트칸 님과 합류하는 대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는 아르시아를 되찾는 게 급선무인 듯했다. 그런 후 복수를 위한 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니 지체할 필요 없었다.
* * *
사나와 케이는 혹시 몰라 에디린의 오두막집에 숨겨두었다. 그런 후 곧장 그들이 원하던 타르타로스 대지로 이동했다.
두 에이션트 드래곤들이 있었기에 전투가 벌어져도 지진 않을 것이었다. 물론 두 드래곤을 제외한 모두가 죽을 가능성이 매우 컸지만 말이다.
‘그리고 네놈들도 마왕과 로드를 제외하고는 전멸하게 되겠지.’
그러니 웬만해선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게 좋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양쪽 모두가 냉정을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죠슈아와 조니 자작은 그게 쉽지 않아 보였다.
‘두고 왔어야 했나…….’
두 사람은 살기를 풀풀 풍기며, 안내를 하고 있는 저 인간 형상의 마족의 몸을 당장에라도 분쇄하고 싶다는 욕망을 결코 숨기지 못했다.
‘부디 두 사람이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그렇게 아벨은 부디 두 사람이 이 지옥 같은 순간을 잘 버텨주길 기도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도착했군…….’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듯했다.
복도의 끝이 보였던 것이었다.
안내를 하던 마족의 걸음도 느려지더니 문 앞에 서서 말한다.
“들어가시죠.”
그러면서 두 사람의 마음을 읽은 듯이 피식― 비웃는다.
“저게 죽으려고!”
조니 자작이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자 비트칸이 그를 말리며 마족에게 경고한다.
“그 역겨운 얼굴을 터트리기 전에 표정 관리 잘하는 게 좋을 거다.”
여유롭게 허리를 살짝 숙이며 그 협박을 받아들인다.
“명심하지요.”
그 여유로움에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제기랄!”
죠슈아도 그 빌어먹을 모습에 부들부들 떨며 아랫입술을 꽈악 깨문다.
아벨이 두 사람을 위해 입을 연다.
“조금만 참으시지요. 곧 기회가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은 그 말에 위로를 받아 간신히 참아낸다.
“네. 저하.”
“알겠습니다. 저하.”
덜컥―
가까스로 참아내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곳은 엄청나게 큰 회의실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검은 머리의 냉혈한처럼 보이는 미남자와 금발의 대단히 현명해 보이던 미남자가 앉아있었다.
천혜안으로 확인한다.
『이름 - 루시에르
정보 - 골드 드래곤. 6,297살 에이션트Ancient급 드래곤. 드래곤 로드. 집행자執行者들의 수장首長.』
『이름 - 베리알
정보 - 마왕魔王.』
“로드.”
“오랜만이군. 비트칸, 에디린.”
그들의 건너편에 앉는다.
에디린이 앉자마자 로드를 향해 빈정댄다.
“여전히 뒤가 구린 일들을 참 좋아해. 정말로.”
“뒤가 구리다라.”
“더 심한 욕이 있다면 해주고 싶지만 지금으로썬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서 말야.”
“훗― 그런가?”
“그 여유 있는 척하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았어. 로드.”
“그래. 그 조언 새겨듣지.”
그 여유로움과 침착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예전에도 그렇게 조언을 잘 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야. 나한테 고백했다 차였을 때처럼.”
피식― 실소한다.
“넌 항상 모든 드래곤들이 너에게 관심 있다고 착각하지.”
“그래? 뭐 이해해. 차이면 쪽팔리니까 그렇게라도 자위해야지. 안 그래?”
“…….”
“아무튼 그건 예전 일이니까 그렇다 치고. 이번엔 왜 또 그런 더러운 장난을 한 것일까? 드래곤 이름 더럽히게.”
에디린의 원대로 로드의 평정심이 무너지려고 했다.
“…….”
로드는 잠시 에디린을 노려보며, 애써 냉정을 유지하며 대답한다.
“……신의 뜻이다. 신의 뜻인데 드래곤의 이름이 더러워질 리가 있나.”
“항상 그딴 식이지. 무슨 역겨운 짓을 해도 다 신의 뜻이라고 핑계 대고.”
“드래곤에게 인간은 밟아 죽여도 모를 개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에디린.”
“오호∼ 그래? 그래서 개미의 모습을 하고 있나 보지?”
두 드래곤의 유치한 말싸움이 심화될 듯하자 비트칸이 말린다.
“둘 다 그만해. 그것보다 로드. 어서 용건이나 말해. 왜 우릴 이곳으로 불렀어?”
대답 대신 마법을 쓴다.
아르시아가 잠이 든 채 공중에 둥둥 떠 날아왔다.
벌떡―!
“아르시아!”
조니 자작이 일어나며 소리치자 조용히 있던 마왕 베리알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연다.
“아 귀 아파. 야 인간. 다음에 또 그런다면 그 입을 찢어버릴 거야.”
그 위협에 비트칸이 화답한다.
“네 입도 찢어버리기 전에 넌 그냥 닥치고나 있어.”
“오호라― 이거 참 무서워서 진행이나 하겠어?”
구오오오오오오오오―!
비트칸이 단숨에 질식시킬 엄청난 양의 어둠의 아우라를 뿜어내자 로드가 나선다.
“비트칸. 싸우자는 게 아니잖아. 거기 인간도 그만 앉아라. 저 아이 만큼은 손끝 하나 건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요구만 받아들인다면 저 아이를 바로 돌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