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130화. 미끼(1)
긴급으로 소집된 10인회의 분위기는 참담하지 그지없었다.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왕 베리알도 드래곤들의 로드도 진심으로 야심 차게 준비했었던 계획이었기에 좌절감과 실망감이 대단했었던 것이었다.
특히 로드는 이번 계획을 위해 그 빌어먹을 늙은 드래곤 파라타온에게 고개를 숙였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로 모두가 한참을 입을 다물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의외로 제국의 파우스 황제가 최초로 입을 열었다.
“두 에이션트 드래곤의 영향력을 없애야겠습니다.”
“……?”
모두 ‘어떻게?’ 하는 얼굴로 파우스 황제를 바라본다.
“정의 무투회를 이용하는 겁니다. 그 두 에이션트 드래곤이 도울 수 없도록.”
그 가당치도 않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몇몇은 피식― 비웃었고 몇몇은 짜증을 냈다.
아벨이 미치지 않는 이상 자신을 죽이려는 적들이 우글거리는 정의 무투회에, 그것도 보호자인 에이션트 드래곤들도 없이 나오겠냐는 뜻이었다.
게다가 이미 정의의 기간은 지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번 연도에는 1차 마족 침공의 여파로 정의의 신전에서 개전하지 않겠다 천명한 후였고 말이다.
아벨을 증오하던 아덴의 마태오 국왕이 그래도 혹시 몰라 물었다.
“그런데 황자가 과연 정의 무투회에 참전하겠습니까?”
다른 이들의 비웃음에도 파우스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한다.
“미끼를 쓰면 됩니다.”
“미끼?”
그러면서 마왕 베리알을 바라본다.
“마족들이 잘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납치 후에 협박.”
“……?!”
“여기 계신 모두가 아벨이 특히 세 여자를 아낀다는 걸 잘 아실 것입니다. 현재 그 셋 중 하나는 아벨의 옆에, 나머지 둘은 각자 가문에서 조용히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오호라―”
이제야 파우스 황제의 말에 관심을 가진다.
“드래곤들과 마족들을 동시에 두 가문에 보내어 두 여자를 납치한 후, 납치한 여자들로 아벨을 협박하여 정의 무투회에 나오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정의 무투회는 30세 이하의 어린 무인들만 나오는 게 원칙 아닙니까? 어린 무인들 중에선 황자를 이길 자가 없을 텐데요.”
“이번 정의 무투회만큼은 참가 자격을 바꾸면 됩니다. 어차피 정의의 신께선 우리 편이시니까.”
“……!”
듣고 보니 다들 그것참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마왕 베리알이 묻는다.
“참가 자격은 어떻게 정할 것이지?”
“아벨이 원하는 게 마족을 죽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 정황상, 무엇보다 마족 멸살 단체를 만든 이상 그의 용사로서의 사명은 마족 멸살인 것 같았다.
“그래. 그런 것 같더군.”
“현재 용사가 아닌 척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벨이 용사가 틀림없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 원하는 대로 마족들을 출전시키시죠. 아벨이 어느 정도 해볼 만하다고 납득될, 착각될만한 적당한 서열의 마족들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회라고 흔쾌히 받아들일 겁니다.”
“그런데 아벨이 도움을 요청하던 인간들을 버렸듯이 그 여자들도 버리면 어떡할 것이냐.”
“장담하지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피식― 그 자신만만함을 비웃는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너무 안일한 생각 같군.”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황제의 생각에 동의했지만 베리알의 생각에도 동의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바일의 메히르 국왕도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맞습니다. 좀 더 확실한 유인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믿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뜻대로 따랐는데 우리가 돌려주지 않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때 베리알이 이상한 얘기를 한다.
“내가 알기론 어린 여자들 말고 늙은 여자 하나를 더욱 각별히 생각한다던데.”
“……?!”
다들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단번에 깨닫고는 조금 너무 했다는 얼굴이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지. 두 여자로도 안 끌리면 나중에 한번 생각해보자고.”
마왕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파우스 황제는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하려고 했었는데, 그때 로드가 황제의 감정 따윈 지금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무시하고 물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어떻게 믿게 만들 것이오? 우리가 약속을 지킬 것이고 그래서 여자들을 확실히 돌려보내 줄 거라는 걸.”
부들대는 황제 대신 마왕이 대답한다.
마치 처음부터 자기 생각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염치도 없게.
“아벨이 가장 좋아하는 마법이 있지 않습니까?”
다들 아―! 하면서 감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맹세의 마법을 나와 당신, 그리고 아벨 셋만 해도 서로가 약속을 지킬 거라 확신하고 참가할 것입니다. 아 물론 그 어린 여자들로 협박이 먹힌다면 말입니다. 크크큭―”
* * *
아벨은 곧바로 에디린과 비트칸의 도움으로 온전한 에이션트 드래곤의 하트와 여섯 뿔을 복용했다.
그사이 다른 동료들은 아벨의 명으로 마멸단 지부들에 아벨이 구뇌전마검보다 쉬운, 확실히 쓸 수 있을 드래곤의 검술과 마법들을 다시 한 번 뿌릴 것이라고 연락을 돌리고 있었다.
에디린과 비트칸의 도움으로 큰 무리 없이 에이션트 드래곤의 하트와 뿔을 복용한 아벨은 예전에 드래곤 하트를 복용했을 때와는 다른 미증유의 힘이 몸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마나 연공법은 무의미했었다. ‘카인의 마나 연공법’이 진즉에 12성을 넘은 것도 있었지만, 한계치를 초월해 체내 마나만큼은 드래곤 수십 마리에 육박했었던 것이었다. 사실 그것도 오러 하트가 더는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11성과 12성의 차이는 커.’
만약 훗날 12성의 벽을 깬다면 마나를 더욱 농밀하게, 강인하게 변화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잠재되어 있던 마나도 받아들여 에이션트 드래곤에 육박한 마나 양을 보유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12성의 벽을 깨는 게 중요했다.
‘너무 욕심인가.’
이제 21살이었다.
이 나이에 12성이 되겠다고 하는 건 욕심일 수도 있었다.
‘그래. 너무 조급해 말자. 그래도 두 드래곤들이 있으니 괜찮아. 당분간은.’
적들도 알았을 것이다.
아벨을 죽이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소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졌어.’
소설에서 21살의 아벨은 항상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고통을 받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벨은 어떤가? 물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긴 했었지만, 조력자들 덕분에 아주 편하게 마족 멸살의 계획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휘익― 휘익― 휘익―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는 아벨을 에디린과 비트칸은 각자 다른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에디린은 좀 더 빨리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불만족스럽게, 비트칸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만족스럽게 말이다.
“아오― 이 몸이 직접 가르쳤는데 아직 저것밖에 못 하다니.”
그런 에디린을 보며 쯧쯧― 혀를 찬다.
“너는 진짜 참.”
“왜? 내가 왜?”
“너는 12성 검사가 되기까지 천 년이 걸리지 않았더냐. 아벨은 이제 고작 21년 살았을 뿐이란 말이다. 이제 고작 말이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라고.”
“대신 나는 독학으로 배웠지만 쟤는 나라는 희대의 드래곤에게 배웠었잖아. 안 그래?”
에디린이 드래곤 중에서도 특출난 재능이긴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1,000년하고 20년하고 50배나 차이 나는 데. 성질머리하고는.”
“늙은이는 좀 닥쳐. 흑풍흡검도 제대로 못 만들어 왔으면서.”
“뭐라고?!”
“아벨이 요즘에 흑풍흡검은 아예 쳐다도 안 보는 거 알고 있지? 하긴 신뇌전마검이 있는데 쓸모없는 검술이긴 하지.”
“이 X이―!”
그러면서 마력을 끌어올리자.
아벨이 결국 수련을 멈추고 두 드래곤에게 다가가며 묻는다.
“휴― 또 싸우시는 겁니까?”
비트칸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다.
“아벨! 그게 말이다!”
그런 비트칸의 말을 에디린이 끊으면서 비아냥거렸다.
“진짜 나이 처먹고 왜 그런담? 애기도 아니고.”
“뭐라고?!”
“그만!”
아벨은 용골검을 손으로 거둬들이고 두 드래곤의 손을 잡는다.
“그만하고 들어가서 식사하시죠. 자 갑시다.”
“흥―!”
“쳇―!”
그렇게 두 드래곤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마멸단원 하나가 아벨에게 다가와 말한다.
“저하.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손님?”
“네. 죠슈아 경과 케이 영애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알겠다. 방에서 기다리라고 전해라.”
“네. 저하.”
현재 마멸단 본부는 전과는 달리 에이션트 드래곤과 10위권 내의 상위 마족들을 이겨냈다는 소문이 퍼져 자신감과 함께 매우 활기를 띠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대귀족 집안의 사람들이나 최상위 무인들은 이곳에 머무르지 않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벨이 주는 드래곤의 검술과 마법을 받아들고 곧장 자신이 맡고 있던 지부로 떠났었다. 그곳에서 더 큰 할 일이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아벨은 높든, 낮든 모든 마멸단원에게 같은 검술과 마법을 주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 검술과 마법을 다른 이에게 전해도 된다고 허용을 해주었고 말이다.
‘이제는 모두가 강해질 때가 됐어.’
전에는 사람을 모으기 위해, 그 모은 인원을 속박하기 위해 주었다면 이제는 함께 성장하기 위해 주었다.
그렇게 마멸단은 아벨과 함께 차근차근 강해지고 있었다.
“걔는 왜 또 온대. 정신 사납게.”
에디린의 불평과는 달리 아벨은 오히려 반갑기 그지없었다. 지금과 같은 날이 아니면 케이와 죠슈아를 만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트칸이 에디린에게 핀잔을 준다.
“너나 정신 사납지 아벨은 오히려 반가울 거다. 안 그러냐?”
씨익― 웃으며 미소로 대신 대답했다.
“뭐야?! 그 미소는!”
“뭐긴 뭐야 내 말이 맞는다는 이야기지. 근데 넌 왜 갈수록 그 지랄 맞은 성격이 더 괴팍해지는 것이냐? 도대체 뭐가 문젠데?”
“뭐어?!”
탁―!
“그만.”
스테이크를 썰던 칼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확실히 비트칸이 함께하는 것에는 그 장단점이 명확했다.
식사 때마다 제대로 밥을 먹기 힘들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휴― 밥을 못 먹겠군.’
아벨의 양옆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두 드래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아벨이었다.
* * *
“저하!”
케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아르시아나, 에디린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벨의 눈에는 케이가 최고였다.
여전히 케이를 볼 때마다 루드스에서의 그 빛나던, 초롱초롱하던 예쁜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지금은 아벨이 떠올리던 그 웃는 케이의 모습과는 달리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벨의 멀쩡한 모습을 보자 그간의 긴장이 풀어져 자신도 모르게 흘리던 것이었다.
케이의 마음을 아주 잘 이해했던 사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아벨도 케이의 그 착하고 따뜻한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를 살포시 안아 주며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준다.
“네가 걱정 많았겠구나.”
아벨의 품 안에서 행복해하며 속삭인다.
“네…… 걱정 많이 했었어요…….”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케이.”
“저하…….”
그때 어김없이 방해꾼이 등장한다.
“아니. 쓸데없이 걱정을 왜 해? 완벽한 이 몸이 있는데?”
감동을 깨는 그 말에 아벨도 얼른 정신을 차린다.
에디린이 보는 앞에서 너무 오래 다른 여자를 안고 있으면 나중에 굉장히 괴로워질 것이라는 걸 잘 알던 것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약하기에 훗날을 기약하며 케이를 놓아준다.
그리고 멋쩍게 웃었다.
“하긴 그 말도 맞습니다. 하하하―”
“그래. 내 말이 맞지?”
그 눈치 없는 행동에 비트칸이 핀잔을 준다.
“쯧쯧― 네가 그러니 안 돼.”
“뭐 또?”
“아벨이 그런 널 좋아하겠냐?”
텁석―
또 또 싸우려고 하기에 아벨은 다급히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싸우려고 할 때는 이렇게 손을 잡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러면 서로 창피해서라도 싸우지 않았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