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129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3)
이미 엄청난 죽음의 어둠이 파라타온을 감싸고 있었다.
“쳇―!”
하지만 파라타온도 에이션트 드래곤이었으니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그의 몸으로부터 엄청난 한기가 뿜어 나와 죽음의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구오오오오오오오―!
쿠구구구구구구구―!
막상막하莫上莫下
어느 것이 위이고 아래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두 드래곤의 기세가 대단했다. 조금이라도 집중이 무너져 밀린다면 순식간에 한쪽이 잠식될 만큼 말이다. 그만큼 대단했고 엇비슷했다.
두 기운이 부딪혀 공기가 전율하듯 떨려왔고 그 엄청난 기 싸움에 모두의 몸이 움츠러든다.
“빌어먹을. 어쩔 수 없잖아?”
그래서 그 틈을 타고 푸른 머리 여자는 파라타온이 만든 포탈을 이용해 도망가려고 했는데.
수악―
“어딜.”
순간이동을 한 에디린은 먼저 오러의 검으로 포탈을 내리쳐 없앴다.
부와악―!
이후 그 무시무시하게 치솟아 오른 오러의 검으로 푸른 머리의 여자를 향해 이어서 휘두른다.
휘익―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직―!
탐색전 따위 없는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아무리 오대 심복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이 공격만큼은 절대 막을 수 없었다.
“이 미친!”
홱―!
미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그 여자는 순간 몸을 틀어 팔과 다리 하나를 잘리는 것으로 생명을 보존한다.
“그래 봤자지.”
에디린의 목표가 아벨과 함께 이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된 이상 그녀에게도 마족 멸살은 무조건 완수해야 하는 사명이 되었다.
그녀가 전력을 다하자 진짜 뇌신이 된 것처럼 온몸이 번쩍번쩍 뇌전雷電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그냥 죽어.”
현재 몸이 반밖에 남아있지 않은 마왕의 오대 심복 가미린으로써는 지금의 상황에서 무슨 수를 써도 에디린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에디린이 그 뇌전이 된 몸으로 가미린을 향해 후속 공격을 하려 하자.
“안 돼!”
“가미린 님!”
그때 블랙 드래곤 나렌드라와 마족 발레포르가 다급히 에디린을 향해 공격을 해 그 후속 공격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에디린이 팔을 한 번 휘두르자 가미린을 포함한 나렌드라와 발레포르 역시 절대적인 뇌기에 휩싸여 몸이 터져 나간다.
물론 에디린은 동족인 나렌드라에게는 저번 코리티안을 봐준 것처럼 적당히 힘을 빼고 공격했었다. 단번에 죽이지 않는다.
퍼퍼퍼퍼퍼펑―!
“크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마족들은 그 자비를 결코 얻지 못했으니.
발레포르는 온몸이 터져 나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었고, 가미린도 마족 본 모습인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전에 아무것도 못 한 채 온몸이 터져 머리만 남아있다.
에디린은 그 남은 머리채를 잡고는 경고한다.
“감히 내 것을 내게서 빼앗으려고 하다니.”
가미린은 머리만 남았음에도 결코 주눅 드는 법이 없다.
“이런 미친X. 네가이 이런다고 인간이 드래곤을 정말로 사랑할까?”
그 발끈하는 모습에 에디린은 피식― 비웃는다.
“X신. 곧 죽을 것이 말은.”
죽지 않을 정도로 기분만 나쁘게 인상 쓰고 있던 가미린의 뺨을 때린다.
철썩―
“야 이것아. 너는 못났으니까 이때껏 사랑받지 못했겠지만, 완벽한 나는 다르거든? 그리고 우린 이미 사랑하는 사이고 미래를 맹세했거든? 그러니까 지옥에 가서 네 못남이나 한탄하며 죽어가. 에브니아에 다시 나타날 생각 말고.”
그러면서 잡은 머리에 힘을 주어 펑―! 하고 터트린다.
그 머리 조각들과 뇌수들이 사방에 휘날리지만 에디린의 뇌기 섞인 아우라에 닿아 타닥타닥 타들어 갔다.
이제 비트칸과 여전히 기 싸움을 하고 있던 화이트 에이션트 드래곤 파라타온과 에디린이 살려준 블랙 드래곤 나렌드라만 남았었다.
나렌드라는 에디린이 자신을 일부러 살려줬다는 것을 깨닫고는 겁에 질려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에디린이 벌벌 떨고 있는 나렌드라에게 말한다.
“야 방금 내가 그 X신 같은 것에게 하는 말 들었지?”
화들짝 놀라며 대답한다.
“네, 네? 아 넵! 들었습니다!”
“그래. 일부러 너 들으라고 한 말이야. 그것 말고.”
“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그거 로드에게 그대로 전해. 우린 정말 진지한 관계고 무엇보다 난 내 것을 절대 포기 안 한다고. 그리고.”
“……?”
“비트칸이 우리와 함께 하는 이상 그 어떤 에이션트 드래곤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도 말야.”
그 경고에 나렌드라는 굵은 침을 삼킨다.
꿀꺽―!
에디린은 굵은 침을 삼키는 나렌드라에게 이어 말한다.
“잘 봐. 우리가 에이션트 드래곤을 어떻게 잡아 죽이는지.”
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에디린도 이젠 그 전력을 파라타온을 향하게 만든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엄청난 뇌전의 양이 파라타온을 압박했으며 도망치지 못하게 옭아맨다.
“이런 비겁한!”
파라타온은 에이션트 드래곤 두 마리가 전력을 다해 자신을 공격하자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는데.
《나렌드라! 당장 인간들을 공격해! 공격해서 인질을 잡아! 어서!》
자신은 두 에이션트 드래곤이 만들어낸 아우라에 묶여 순간이동을 펼칠 수 없었다. 현재 꼼짝도 할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문제는 나렌드라 역시 온전한 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에디린에 의해 거의 모든 내부의 장기가 터져버렸기에 현재 재생 중이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겁에 질려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렌드라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 하자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파라타온은 신의 전투 생물인 드래곤의 본 모습으로 변신하기로 결심한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부아아아아아아악―!
번쩍―!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신했다.
엄청난 빛에 눈 한 번 깜빡이자, 눈 덮인 거대한 설산과 같은 드래곤의 본래의 몸이 나타나 있었다.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덕택에 마력이 더욱 개방되어 눈발이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그 눈발과 같은 색인 은빛 비늘과 거대한 뱀의 노란 눈알과 에이션트 드래곤을 나타내는 여섯의 뿔과 여섯 장의 날개가 위협적으로 펼쳐지며 에디린과 비트칸이 만들어낸 아우라를 밀어낸다.
그러면서 입을 벌리는데.
“귀 막아!”
비트칸이 소리쳤다.
“……?!”
그 소리에 맞춰 아벨과 동료들은 곧장 귀를 막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드래곤 피어를 쓴 것이었다.
살기를 마력에 담아 공격하던 일종의 허를 찌르던 수법이었다.
“커컥―!”
아벨은 자신의 귀가 아닌, 아무래도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었던 사나의 귀를 막느라 드래곤 피어를 완전히 막지 못했다.
“쿨럭―!”
그래서 피를 토해냈다.
아그네스의 목걸이가 아벨의 상처에 반응하여 자연 치유를 하기 시작했다. 목걸이에서부터 온몸으로 성스러운 기운이 퍼져나갔다.
사나가 다급히 아벨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대답 대신 투구를 개방하고 포션을 마신다.
꿀꺽꿀꺽―
일단 포션으로 즉각 치료한 후 대답한다.
“괜찮다. 넌 괜찮으냐?”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울먹이는 사나에게 괜찮다는 듯이 다정히 미소 지어준 후.
“그럼 됐다. 그리고.”
그리고 일행을 둘러보며 말한다.
“이제 비트칸 님과 에디린 님도 드래곤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돌발 공격이 많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언제든지 막을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습니다.”
다들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걱정 마시지요.”
비트칸은 아벨의 예상대로 자신들도 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디린. 우리도 본체도 변신해야겠다. 변신해서 빨리 끝내버리자.》
《알겠으니 먼저 변신해. 난 저것이 그동안 어디 못 도망가도록 막고 있을 테니.》
《그래. 알겠다.》
그러면서 비트칸도 변신을 하기 시작한다.
번쩍―!
역시 이번에도 눈 한 번 깜짝할 순간에 거대한 흑요석黑曜石으로 이루어진 산이 나타났다. 그 흑요석의 산도 여섯 뿔과 여섯 장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펄럭― 펄럭― 펄럭―
웅장한 여섯 장의 날개가 펄럭이며 하늘로 솟아오르는데, 그 엄청난 크기에 비해 속도가 대단했다.
에디린은 파라타온이 도망가지 못하게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변신하지 않은 인간의 육체였기에 본체만큼의 힘은 내지 못했었지만, 그럼에도 에이션트 드래곤이 내뿜는 전력을 다한 아우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다.
파지지지지지지직―!
뇌신과 같은 그녀의 몸에서 그물과 같은 뇌전들이 뿜어져 나와 파라타온이 만들어낸 눈 폭풍을 뒤덮고 있었다.
정말 기묘한 광경이었다.
땅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공기와 하늘에서 내리는 엄청난 눈 폭풍, 그리고 그 하늘보다 위에서 뇌전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듯한 그런 그림.
아름다우면서도 괴기한 그 광경 속에서 아벨은 계속해서 옆에 빠져있는 흑발의 남자를 주시했다.
‘저것이 언제 움직일지 몰라.’
그렇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때 드디어 비트칸과 파라타온이 격돌했다. 에디린에 의해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던 파라타온에게 비트칸이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했던 것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마법의 주인이라는 명성과는 무색하게 두 에이션트 드래곤은 육탄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흑黑과 백白이 뒤섞여 서로의 목을 물어뜯으려고 사력을 다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하지만 이내 그 기세가 허무하리만큼 쉽게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에디린이 만들어낸 벼락들이 파라타온의 머리를 찍어 눌러, 비트칸의 공격을 원활하게 만든 것이었다.
조금 싱겁게도 너무 빨리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콰직―!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인간의 비명처럼 파라타온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도저히 승기가 보이지 않자 파라타온은 마지막 희망으로 나렌드라에게 절박하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어서! 인간을 인질로 삼아!》
그래서 그때 인간에게로 눈알을 돌렸는데.
《너 거기서 움직이면 바로 죽어.》
에디린이었던 것이었다.
나렌드라는 그 텔레파시에 다시 몸이 굳는다.
《지금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나 본데. 10초 줄게. 10초 뒤에도 네 녀석이 이곳에 있다면 그땐 내 다음 행동을 기대해도 좋을 거야.》
이어지는 에디린의 협박에 나렌드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10, 9, 8, 7, 6―》
5초가 되어갈 때쯤에야 결정을 내린 나렌드라는 목이 반쯤 뜯겨 울부짖던 파라타온을 바라본다.
“……죄송합니다…….”
수악―!
그리고는 곧장 순간이동을 써 자리를 빠져나간다.
《나렌드라!!》
파라타온은 나렌드라가 순간이동을 써 인간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자리를 빠져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설마 하고 계속해서 두 눈알을 굴려 본다.
“X신.”
그 모습을 비웃으며 에디린이 그 노란 두 눈알에 번개를 내리꽂는다.
콰쾅―!
퍼펑―!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두 눈알이 터져 나갔고 비트칸에게 물어뜯긴 목이 끊기기 직전이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어떻게 신의 사자가 신을 배반한 이들에게 진단 말이냐!”
마지막을 깨닫고는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마치 신에게 제발 좀 자신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듯이.
하지만 빌어먹을 신이 그런 호소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으니.
이제는 그 거세던 눈 폭풍도 마치 눈물처럼 빗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투명한 빗물 사이로 파라타온의 피가 함께 떨어져 내렸고.
쿠쿵―!
이내 그 우아하고 아름답던 여섯 뿔 달린 에이션트 드래곤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 거대한 몸뚱이 역시.
콰콰콰콰쾅―!
아벨은 그 떨어진 파라타온의 머리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곧장 용골검으로 그 여섯 뿔을 자른다. 에이션트 드래곤의 뿔 역시 드래곤 하트처럼 강력한 마력이 응집되어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복용하면 좋을 듯했다.
이후 몸뚱이로 가 정확히 심장 부분을 갈랐다.
촤아아악―!
죽은 몸뚱이지만 뜨거운 피가 세차게 뿜어져 나와 아벨을 뒤덮는다.
뚝― 뚝―
투구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 사이로 두 눈을 반짝인다.
“……운이 좋아…….”
그 갈라진 비늘 사이로 새하얀 다이아몬드와도 같은 드래곤 하트가 보였다.
“……작가의 도움인가…….”
온전한 에이션트 드래곤의 하트였다.
이런 걸 지금 구할 수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씨익―
그것 덕분에 또다시 강해질 생각을 하자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를 어쩌지 못하던 아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