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127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1)
“에디린 님!”
경악하는 코리티안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분명 마족 아몬은 다른 인간들과 싸우고 있었다. 결코 에디린이 아니었단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에디린이 나서서 아몬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잘게 썰어버렸다.
왜 그런 것인지 추측해본다.
‘황자가 위험해 보여서인가?!’
아벨의 몸을 보니 자신의 공격에 의해 조금 처참해 보이긴 했었다.
하지만 결코 살수를 펼치진 않았었는데!
‘그렇다면 혹시 아몬이 실수로 에디린 님에게 피해를 끼쳤다거나!’
아니다. 그건 말이 안 됐다. 아몬도 고위 마족일 뿐만 아니라 자기만큼은 아니었지만 꽤나 강한 놈이었는데 그런 것 하나 컨트롤 못 할 리가 없다.
‘아무튼 고위 마족을 순식간에 없애버리다니…….’
다시 한 번 그의 눈은 에디린에 대한 동경으로 물든다.
‘역시 신과 비긴다는 에이션트 드래곤의 힘……!’
현재 대륙에 에이션트 드래곤은 다섯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보통 그것들을 로드를 제외하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드래곤들 사이에서 에디린이 화제가 될 수밖에.
수악―
뒤로 멀찍이 물러난다.
순식간에 아몬의 몸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조금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에디린에게 묻는다.
“……저 인간 때문인 겁니까……?!”
“그럴지도.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있는데 나의 허락도 없이 전투를 벌인 결과라 하겠다.”
“……?!”
도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말하든가.
역시 안하무인의 대표 격이라 그 격이 달랐다.
그러면서도 한다는 말이…….
“아가야. 너는 내 동족이니 살려주는 것뿐이야. 물론 다음에 또 나타난다면 국물도 없겠지만.”
그 나긋하고 위협적인 말에 코리티안은 자기도 모르게 꿀꺽― 굵은 침을 삼킨다.
“……로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가만히 있고? 너는 집행자들 중에서도 간부일 테고, 꽤나 높은 위치에 있을 텐데? 안 그래? 그런 너를 보낸 것부터가 로드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지. 그것보다 너는 지금 이 상황이 납득이 돼?”
“……뭐가 말입니까……?”
“신의 대리인이자 선善의 중심이어야 할 드래곤들이 저딴 더러운 것들과 손을 잡는 것도 역겨운데 심지어 보호자를 자처하는 게 너는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들이 먼저 나서서 처리해야 하는 게 맞지 않냐는 말이야.”
평소와 다른 위엄 넘치는 모습이었다.
“……?!”
그래서 다들 평소의 그 생양아치 같은 에디린만 보다가 진짜 에이션트 드래곤과 같은 위엄을 보니 조금 당황스러워했다.
반면 그 위엄 때문인지 몰라도 코리티안은 입을 다문 체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인상만 잔뜩 쓸 뿐이다.
“로드에게로 돌아가서 전해. 우리가 선인지 악인지. 확실히 좀 하라고.”
사실 드래곤에게 선善과 악惡은 정해져 있었다.
따르는 신이 선이라고 하면 선인 것이고 악이라고 하면 악인 것이었다. 그러한 굴레는 에이션트 드래곤이 된 후에나 벗겨졌다.
그 전까진 웬만해선 다 따랐어야 했다. 당연히 에디린과 비트칸과 같이 따르지 않는 이단아들도 나오긴 했었지만 말이다.
뭐 물론 그렇게 뭣 모르고 막산다면 에이션트 드래곤이 되기 전에는 그만큼 엄청난 제약을 받았었다.
아무튼.
“……우리에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잘 아니까 하는 말이야. 너무 폼 안 나잖아? 너처럼 피가 끓는 놈이라면 더 그럴 텐데 안 그래?”
“…….”
“드래곤들은 모두가 저주받은 운명이 확실해. 이도 저도 아니고 맨날 끌려다니기만 하고.”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을 할 수가 없다.
“너도 잘 생각해. 저딴 거지 같은 것들의 보모 역할이나 하지 말고. 이제 곧 에이션트인 놈이 뭐가 그렇게 겁이 많아서 X신 같은 명이나 처리하고 다니냐? 안 그래?”
* * *
코리티안은 곧장 로드에게로 돌아가 방금 있었던 일들을 알렸다.
에디린이 갑자기 전투에 참여에 마족 아몬을 썰었다는 말에 로드는 침음성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군…….”
로드는 자신들이 아벨에게 살수를 펼치지 않는 이상 에디린이 나서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 조금 놀라던 중이었다.
하지만 아벨이 조금이라도 위험한 기미를 보이자 주저하지 않고 공격을 해왔다. 이게 그들의 계획이었는지, 아니면 에디린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는지 헷갈렸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에디린이 독단적으로 한 것 같더냐, 아니면 그들의 계획 같더냐.”
잠시 생각에 잠기는데.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분명 지켜보려고만 한 것 같았는데…….”
“황자가 곤경에 처하자 마족을 없애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 것 같다?”
“네…… 굳이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마족을 없앨 생각은 아닌 거 같고?”
“……그런데 그럴지도 모릅니다. 황자가 에디린 님의 도움이 없다면 위험에 처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것들이 인간들 중에 강자일 뿐이지 최강인 드래곤이나 마족에게는 별것도 아닌 게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곤란해. 매우 곤란해.”
“무엇이 말입니까……?”
“너도 알다시피 비트칸도 황자에게 관심이 있단 말이지. 벌써 에이션트 드래곤이 둘씩이나 그 인간에게 붙어 있으니. 신의 대리인들 중 가장 강력한 자들이 신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니.”
그의 말을 듣자 에디린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그 말 때문에 매우 혼란스럽던 코리티안이었다.
조심스럽게 로드에게 말한다.
“지금 떠올랐는데…… 에디린 님께선 드래곤들이 마족을 보호하는 걸 굉장히 불쾌해하셨습니다…….”
“……?”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했다.
“그러면서 너무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자 지상 최상의 생명체인 드래곤이라면 말입니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기 생각을 더한 코리티안이었다.
사실 코리티안이라고 이때껏 불만이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아무리 신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해도 해도 너무할 때가 많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에디린이 정확히 짚었었는데 코리티안은 신의 뜻을 집행하는 집행자이긴 했지만 드래곤으로써의 자존심도 챙기고 싶어 했었다.
“제 생각에는 아벨 황자가 곤경에 처한 것 때문에 마족을 죽인 것도 있지만 우리 드래곤들이 그 역겨운 것의 보모가 된 것만 같아서 그 반발심에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순간 로드의 얼굴이 매우 흉측하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감히 그 어떤 드래곤들보다 신에게 은혜를 받았으면서 그딴 망발을 지껄이다니.”
로드는 신에게 가장 사랑받는 드래곤으로써, 신께서 명을 내리신다면 그 어떤 명이라도 따라야 한다는 사명감이 넘쳐흘렀던 것이었다.
그러니 에이션트 드래곤임에도 집행자들의 수장으로써 여전히 신의 명을 일선에서 따르는 것이겠지.
코리티안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로드의 사명감은 변치 않을 것이니 말이다.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해서 로드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군요…….”
“아니다. 네 덕분에 확실하게 에디린에 대한 동정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비트칸이 오기 전에 에디린을 처리해야겠지.”
마왕과 긴밀한 협조가 필요함을 깨닫는 로드였다.
* * *
사실 에디린의 행동은 전혀 계획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다들 에디린의 엄청난 강함에 놀람과 동시에, 그 돌발 행동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난감해하는 일행들을 보고 에디린은 주절주절 변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일 거였잖아? 물론 계획대로 나에게도 공격하게 만들어서, 그래서 내가 기분 나빠서 죽인 것처럼 하고 싶긴 했었지만 도저히 그럴 기미도 안 보였고. 아무튼.”
아벨은 난감함만 느끼던 다른 동료와는 달리 동시에 조금 화도 난 상황이었다.
솔직히 자신이 순간이동으로 레드 드래곤은 그렇다 쳐도 마족은 충분히 계획대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것뿐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마족을 그 타이밍에 죽인 것은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마지막 그 도발은 정말 불필요했었습니다.”
아벨이 두 눈 부릅뜨고 마치 자신을 가르치려고 하자 이제는 에디린도 화가 났다.
그래서 적반하장격으로 성질을 부린다.
“이게 감히 스승에게……!”
그러면서 언제나처럼 폭력적인 아우라를 펼쳐 드는데.
아벨은 그 모습을 보고 ‘역시 어쩔 수 없나.’ 하는 체념의 얼굴로 에디린의 손을 살포시 잡는다.
“에디린 님. 전 에디린 님이 정말 걱정돼서 하는 말입니다. 그 속 좁은 로드가 에디린 님의 그 도발적인,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
에디린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너 로드가 속 좁은 거 어떻게 알았어?!”
아벨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음에도, 이 세상이 사실 소설이었다는 것과 그 내용을 아벨이 알고 있다는 것은 모르기에 하는 말이었다.
물론 아벨의 거친 손길 역시 그녀를 놀라게 한 주요 요인 중 하나임도 틀림없었다.
“그래서 다음에 우리가 계획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적이 올 가능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정말 매우 매우 말입니다.”
에디린은 아벨의 반항에 기분이 나빴다가도 아벨이 자신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이 말하자 금세 그 마음이 풀리는 걸 느낀다.
‘내가 왜 이러지…….’
자신의 변화를 체감하며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데.
“비트칸 님께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
당황할 틈도 없이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던 에디린이었다.
“……?!”
“에디린 님 비트칸 님의 레어로 공간 이동을 부탁드립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됐다.
“안 돼! 절대 안 돼!”
자신의 실수 때문에 그 늙은 노망난 드래곤에게 머리 숙여야 하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었다.
“이게 다 에디린 님을 위해서입니다. 만약 다음에 에디린 님에 버금가는 적들이 온다면,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오늘 온 그 레드 드래곤만 한 것과 함께라도 온다면 저희들 때문이라도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머리를 세차게 도리도리 젓는다.
“그래도 안 돼! 안 된다고! 그리고 만에 하나 간다 해도 그 늙은이는 거기 없어! 보통 에이션트 드래곤은 자기 레어에서 생활하지 않는다고!”
필사적으로 거절하는 에디린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아벨이 그럼에도 매우 평온해 했고 태연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군요.”
“그래! 어쩔 수 없다고!”
그러자 다른 이들이 걱정스러워 한마디씩 한다.
“그래도 비트칸 님이 계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에디린 님에 버금가는 것들이 온다면 결코 우리는 몰살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한 번만 신중하게 생각하시죠. 무엇보다 목숨이 더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제발! 제발! 저는 벌써 죽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 연구하고 싶은 마법들이 너무 많아요!”
그렇게 간절히 부탁함에도 에디린은 단호하다.
“안 돼! 그리고 네놈들은 날 못 믿는 거야?! 나 혼자서도 충분히 다 이길 수 있다고! 그리고 아벨이 본 힘을 쓰지 않았으니 너무 걱정 마!”
물론 아벨이 에디린의 드래곤 하트를 복용함으로써 비상식적으로 마나가 증가하여 그때 보여준 것보다 훨씬 강하긴 했으나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해 11성 후반에 머무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때 보여준 것보다는 강하긴 했지만 여전히 코리티안에는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에디린은 걱정 말라고 말한다. 비트칸에게 고개 숙이기 싫어서. 그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