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126화. 잘라 내(3)
“왔군.”
붉은 머리의 미남자와 검은 머리의 미남자가 하늘에서 날아왔다.
모두 인간의 모습인 걸 보아 마족도 10위권 안의 고위 마족인 것 같았다. 10위권 안의 고위 마족만이 인간의 모습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아벨과 일행은 마멸단 건물에서 나와 있었는데, 건물 안의 중요 물품들은 일반 마멸단원들을 통해 이미 옮겨 놓았었다.
다시 말해 건물이 무너져도 상관없었고, 맘껏 싸워도 상관없다는 말이었다.
곧바로 천혜안을 쓴다.
『이름 - 코리티안
정보 - 레드 드래곤. 5,320년 산 웜Wyrm급 드래곤. 집행자執行者 소속의 드래곤.』
『이름 - 아몬
정보 - 마족 서열 7위. 40개의 악마 군단을 이끄는 지옥의 대후작. 대단히 강대하며 엄격한 악마라고 불릴 정도로 지옥에서 강력한 악마 중 하나.』
‘7위라. 운이 좋아.’
운이 좋았다.
먹기 쉽게 떨어뜨려 준 거 그냥 주워 먹기만 하면 됐었다.
물론 7위 정도면 12성 무인 셋 정도가 같이 싸워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했었다.
하지만 에이션트 드래곤에 비한다면 뭐.
‘에디린이 있을 때 고위 마족들이 많이 오면 좋을 텐데.’
에디린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죽여 놔야 했었다.
영원히 옆에 붙어 있을 것만 같았던 러네이도 생각지도 못한 때에 사라진 만큼 에디린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
에디린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든지 그러한 일은 일어날 수 있었고 준비해 두는 것도 좋았다.
‘물론 에디린을 믿긴 하지만.’
물론 에디린의 그 강력함을 아벨은 믿고 있었다.
그래서 가능만 하다면 그녀와 함께 마족을 멸살하고 원래의 세계로 함께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마족들은 드래곤들에게 떠넘기겠지.’
분명 오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고위 마족들은 에디린이 있을 때, 더욱 그 수를 늘려오거나, 아니라면 아예 오지 않으려 할 것이었다.
아벨의 생각에는 마족들은 에디린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트집 삼아 아벨의 일은 드래곤들에게 떠넘기고 하위 마족들로 구색만 맞출 가능성이 컸었다.
‘뭐 상관없으려나.’
하위 마족이 온다 하면, 오는 대로 죽이고 그 기간 동안 고위 마족과도 싸울 수 있는 시간을 벌기로 한다.
어차피 모든 마족을 멸살하는 게 용사의 사명이자, 작가가 준 사명이었으니.
“시작하시죠.”
“네. 저하.”
“준비됐습니다.”
“안 그래도 좀이 쑤셨는데.”
“그래도 다를 조심하세요.”
“음…… 나만 심심하겠군.”
에디린은 작전상 잠시 사나 옆에 있기로 했다.
아벨 쪽에서 먼저 그들을 향해 마력을 끌어올린다. 흉포한 아우라가 지상에서 뿜어져 나와 넘실넘실 공중에 수를 놓는다.
그 모습을 본 레드 드래곤 코리티안과 마족 아몬은 비웃기 시작한다.
“하하하―! 네놈들이 감히 우리를! 하하하―!”
“미친 거 아닌가요? 얼마나 죽고 싶었으면.”
레드 드래곤이라 그런지 성격이 매우 호전적이었다. 그래서 벌써부터 옳다구나 하고 마력을 끓어 올린다.
그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붉은 아우라가 마치 강렬한 여름 한낮의 햇볕처럼 내리쬐어 일행을 강압적으로 짓누른다.
그 폭력적인 내리쬠에 온몸이 눌려 터질 것만 같다.
“크윽―!”
그럼에도 에디린이 사나만 보호할 뿐 가만히 지켜만 보자, 그들은 에디린이 나서지 않고 그냥 멀뚱히 서서 지켜만 보는 것을 보고 지금이야말로 기회라는 걸 깨닫는다.
에디린이 아벨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단 지켜보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그들도 아벨을 시험하기로 한다.
그때 눈치 빠른 아몬이 뭔가 의아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던 걸까요?”
코리티안은 그런 아몬의 의아스러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에디린 님이 알려주셨겠지. 신과도 비긴다는 에이션트 드래곤이신데. 우리의 존재를 진즉에 느끼셨겠지. 그리고 주의하자면 에디린 님은 그냥 에이션트 드래곤이 아니다.”
그의 말투에서 에이션트 드래곤에 대한, 에디린에 대한 존경과 동경이 묻어나왔다.
에디린이 그에게 반응한다.
“짜식. 그래도 알긴 아는구나.”
우쭐해 했는데, 콧대가 하늘을 찌를 것만 같다.
코리티안은 그런 에디린에게 살짝 허리 숙여 존중을 나타낸다.
“당연하옵니다. 제 우상이셨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됩니다.”
“뭐가?”
“왜 저딴 벌레들하고 어울리시는 건지.”
“……?!”
그 말에 에디린이 아닌 쥬디스와 조니 자작이 반응한다.
“어디 도마뱀 새끼가!”
“뭐라고?! 이런 빌어먹을 놈이!”
두 사람의 격한 반응에 코리티안 역시 발끈한다.
“어디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진짜 뒤질래?!”
하지만 절대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 뒤질래! 뒤지고 싶다! 좋다! 덤벼라! 도마뱀아!”
“당장 안 튀어와?!”
구오오오오오오오오오―!
서로가 아우라의 범위를 더욱 늘려간다.
그런 유치한 말싸움으로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휴― 이거 참.”
마족 아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말 못 말리는군.’ 하는 얼굴이다. 그러면서 허공에 검은 공간을 만들어 아주 긴 장검을 소환한다.
그 장검을 매만지며 흥분한 코리티안을 향해 묻는다.
“코리티안 님. 계획대로 하시겠습니까? 아님 제가 황자를 맡고 있을 테니, 저 잔챙이들을 코리티안 님께서 빠르게 없애시겠습니까?”
계획대로 진행하기에는 감히 자신을 무시한 인간들을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었다.
“절대! 절대 저 건방진 것들을 그냥 둘 수 없지!”
이제 곧 에이션트가 되는 드래곤이었다.
아직 각성하지는 않아서 진짜 에이션트 드래곤과 같은 힘을 낼 수는 없겠지만 인간들 몇 명 정도는 순식간에 삭제할 수 있었다.
아벨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교수님과 자작으로는 무리야.’
두 사람 모두 11성 급의 무인이었기에 솔직히 무리였다.
사실 일행에게 말은 안 했었지만, 일행은 저 흉포한 레드 드래곤을 이길 수도, 아니 오래 버틸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와 붙어서는 결코 안 됐다. 붙어도 약한 마족과 붙어야지.
그래서 아벨이 앞장선다.
저 붉은 머리 양아치가 자신에게 관심을 두도록 일부러 더욱 화려하게 오러를 뽑아낸다.
우우우우우웅―!
파지지지지직―!
용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하는 뇌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
한편으로는 반대로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쳐 이어져 있는 것만 같다.
“오호?”
아몬이 먼저 반응했다.
그 역시 인간의 모습이었을 때는 장검을 썼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강한 것 같군요. 아직 많이 어리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아벨의 원대로 호전적인 코리티안도 순간 그 분노를 잊고 군침을 흘린다. 정말 좋은 먹잇감처럼 보인 것이었다.
“그렇군. 저 모습을 보니 한번 붙어보고 싶군.”
우우우웅―!
두 주먹에서 에디린의 오러 검처럼 붉은빛 오러 줄기가 흘러나온다. 오른손에서는 마치 송곳처럼 삐쭉 튀어나왔고 왼손에서는 채찍처럼 구불구불해졌다. 둘 다 진홍빛으로 타오르는 게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용사라고 하더니. 용사의 무구는 착용하지 않고 있군. 비트칸 님의 무구인 듯한데.”
“조금 이상하군요. 이제 와서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 텐데요.”
아무리 비트칸의 무구가 좋다고 하더라도 용사의 무구를 넘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의아함이 안 들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상관없지.”
아벨은 현재 용사의 무구가 아닌 비트칸의 무구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용사의 무구는 마왕의 오대 심복이 오기 전까진 아끼면서 혼란을 줄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코리티안이 좀처럼 아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아몬이 묻는다.
“아벨을 공격하실 겁니까?”
아벨의 뇌기 섞인 오러에 이미 눈이 돌아가 있다.
“그래. 잠깐만 먼저 놀아 볼게.”
역시 힘으로는 코리티안이 좀 더 강했기에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뭐. 괜찮겠죠.”
“훗― 고마워. 좀만 기다리라고.”
수악―
순간이동을 써서 아벨의 앞에 나타나더니 아벨을 향해 오러의 줄기를 내리친다.
쎄에에엑―!
수악―
물론 아벨도 순간이동을 하여 피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뒤에서 검을 휘둘렀다.
휙―
“와씨―! 정말 대단한데?!”
아벨이 순간이동 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능숙하게 마치 드래곤들처럼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한 것이었다.
수악―
흥분이 배가 되고 있었다.
이 흥미로운 인간을 저 마족 따위에게 양보하지 않아서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수악― 수악― 수악― 수악―
휘익―
휘익―
콰쾅―! 콰쾅―! 콰쾅―! 콰쾅―! 콰콰콰콰콰―!
두 사람은 어지럽게 서에 번쩍, 동에 번쩍하며 싸우기 시작한다. 아벨은 에디린과 이러한 전투를 대비해 특훈을 많이 해왔었기에 무리 없이 잘 싸웠다.
그 전투를 바라보던 조니 자작이 뇌까린다.
“대단하군…….”
순수하게 두 사람의 전투에 감탄했다.
그리고 쥬디스 역시 멍하니 바라보며 감탄한다.
“역시 순간이동의 힘이란…….”
그때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던 마고스가 말한다. 지금 이때 조금이라도 아벨에게 짐을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럼 우린 우리대로 싸워볼까?”
계획이 아벨과 남은 일행이 나눠서 싸우는 것이었다.
“그러지.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으니.”
아직 하늘에 떠 있는 마족을 향해 자세를 취하는데, 검사들은 자신들의 비기를, 마법사 쥬디스는 아몬에게 강력한 마법을 쓰려고 준비를 했다.
마족 아몬도 인간들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걸 깨닫는다.
“풋―”
하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지상으로 내려간다. 에디린이 관망하고 있는 이상 저들은 정말이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하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우우우웅―!
장검에 마기를 두른다.
검은 지옥의 불꽃이 오러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탓―!
그 오러와 같은 검은 마기를 보자마자 마고스와 조니 자작이 달려든다.
월광참검月光慘劍
제1식
참월斬月
마고스의 월광참검부터 시작해서.
구환마룡검九幻魔龍劍
제1식
일용一龍
조니 자작의 구환마룡검이 펼쳐졌다.
콰콰콰콰콰콰―!
그렇게 다른 쪽도 격돌이 시작된 것이었다.
코리티안은 그러한 상황을 인지하며 아벨을 상대한다.
“좋아! 아주 좋아!”
물론 아벨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이었지 그렇다고 엄청나게 강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아벨보다 강한 인간을 훨씬 많이 봐왔으니 말이다.
자신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다. 그저 에디린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상대해 준 것이지.
반면 아벨도 전력을 다 쓴 게 아니었다. 처음 오러만 눈요기로 보여주었지 검술 실력은 11성 초반으로 적당히 싸우고 있었다.
“크윽―!”
그렇다 보니 밀릴 수밖에 없었다.
촤아아아악―!
점점 용혈갑이 오러 줄기에 의해 갈라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송곳 같은 오러를 용골검으로 막아내면 어느새 뱀과 같은 채찍이 온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수악―
순간이동으로 급히 피하지만 이미 공격당한 후였다.
그리고 에디린이 특훈 때 그랬듯이 코리티안도 순간이동의 위치를 예측하고 공격하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저하!”
사나가 깜짝 놀라며 아벨을 도우려고 했다.
피슝―!
그래서 마력광선을 쏘았다.
그 힘차게 날아오는 마력광선을 본 코리티안은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푸핫―! 그딴 거에 누가 맞는다고!”
써걱―
그때 무언가가 잘려나가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고개를 돌렸는데.
써걱― 써걱― 써걱― 써걱― 써걱― 써걱―
“……?!”
에디린의 오러 검에 의해 마족 아몬의 몸은 형체도 없이 잘게 잘게 토막 나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한다는 말이.
“아가야. 대충 아벨의 실력을 봤으면 이만 돌아가. 오늘은 너까지 죽이진 않을 테니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