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125화. 잘라 내(2)
훌쩍훌쩍― 울고 있는 아르시아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녀야말로 그 누구보다 작가의 장난 속 희생양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절대 이 장난스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서운한 마음 다 이해한다…….”
그러면서 손수건을 건넨다.
조신하게 눈물을 닦고 흥―! 하고 힘차게 코도 풀며 묻는다.
“흐잉― 원래 드래곤들은 다 저런가요……? 흐이잉―”
러네이를 한 번 겪어 보았지만, 에디린은 러네이보다 몇 수 위였으니.
그녀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그리고 강한 드래곤일수록 훨씬 더 괴팍하지…….”
정말 안하무인격이긴 했었다.
내가 을이니까 참는 거지.
아무튼.
“아무튼 우리가 참아야 한다.”
“흐이이잉―”
그러면서 아벨에게 안긴다.
하아…….
왜 자꾸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건지.
확실히 아르시아도 그 성격이 소설하고 좀 달랐다. 소설에서는 그저 천생 여자로 현모양처 스타일이었다면 현재는 애교도 많을뿐더러 좀 더 사랑스러운 느낌이다.
‘둘 다 괜찮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하늘에서 작가가 이 장면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뭐…… 아주 나쁜 쪽은 아니니…….’
어찌 됐든 어느 정도 아르시아가 안정을 찾자 말을 꺼낸다.
“아르시아. 하지만 에디린 님의 말도 틀리지 않는다. 이번에 올 적들은 정말 강할 것이거든. 저번에 광장 무도회 때 내가 고위 마족에게 당한 것을 너도 보았을 것이다. 이번엔 그때보다 더 강한 적들이 온다.”
그 말에 적잖이 놀란다.
“그때보다 더요……?”
“그래. 그리고 그 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갈수록 더 강한 적들이 오겠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그 걱정스런 얼굴에 고마움을 느끼며.
“하지만 결국엔 끝이 있을 것이니.”
“아…….”
“그 끝에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겠지…… 그래서 하나 너에게 부탁해야 할 것은…….”
“……?”
막상 말하려니 민망했다.
괜한 헛기침을 하고선.
“흠흠― 나와 같이 살려면 다른 아이들도 허락해야 한다…… 케이라든지…… 사나라든지…….”
“아하―”
“……?”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무뎠다.
정말 별 타격이 없는 듯 보인다.
“괜찮아요. 오히려 두 언니 입장에서는 제가 불청객일 테니.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해요. 다만.”
“다만?”
“내 얼굴 따라 한 저 드래곤은 좀…….”
다시 작가가 원망스럽다.
“휴…… 그건 어려울지도…….”
“역시 그렇겠죠……?”
“그래. 그냥 어서 빨리 친해질 수밖에.”
“하지만…… 하지만 저 얼굴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데…….”
아오! 작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래도…… 조금 다르긴 하더라. 걱정 말거라.”
“달라요?”
“그래.”
“어떻게 알아요? 다른 걸?”
두 눈을 반짝이며 아벨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 반짝이는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힌다.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한다.
“흠흠― 뭐 그냥 보면 안다. 아무튼! 아무튼. 당분간은 가문으로 돌아가 있어라. 그리고 가문에서 최대한 빨리 검술 성취를 올려. 그래야 에디린 님도 다른 말 못 할 테니 말이다.”
그러면서 재빨리 자리를 피하던 아벨이었다.
* * *
에디린은 어서 빨리 아르시아를 마멸단에서 쫓아내기 위해 기꺼이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 해주었다.
“어서 사라져.”
“흥―! 안 그래도 갈 거거든요?”
그러면서 대담하게도 아벨의 품에 안긴다.
“스승님! 저 없다고 너무 슬퍼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그 깜찍함에 굵은 땀이 등 뒤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 그래…….”
에디린이 그 모습을 보고 헐― 어이없다는 듯이 한소리 한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에 대답으로 아르시아는 메에롱― 하고 혀를 내민다.
아벨은 덕분에 머리가 아파옴을 느낀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다닐레비우스 가문의 사람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저, 저하.”
“아― 미카엘 백작.”
“이게 무슨…….”
그들의 혼란을 이해했다.
아르시아와 에디린은 정말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구별하기가 어려웠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벨만 둘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알아보았지 다른 이들은 이상하게 잘 알아보지 못했다.
이거 참 문제라 할 수 있었다.
“휴…… 그건 이따 아르시아에게 들으시는 거로 하고…… 전 급한 일이 있어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여자의 긴박한 상황을 봐서는 어서 빨리 떠나는 게 나았다.
그래서 아르시아를 떼어내려고 하는데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저게! 감히!”
에디린이 그 광경을 보고 빡이 쳐 아우라를 뿜어내는데.
구오오오오―!
그 아우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벨밖에 없어서 아벨도 아우라를 내뿜어 막아낸다.
“휴…… 고정하시지요. 아르시아. 너도 이제 그만해라.”
“히잉…… 이제 오래 못 보는데…….”
아르시아의 애교 섞인 모습을 처음 보던 미카엘 백작과 가문의 사람들은 아벨의 엄청난 무위에도 놀랐었지만 오히려 아르시아의 그 모습에 더욱 놀란다.
“허허…….”
“이럴 수가…….”
“아르시아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을 줄은…….”
경악하는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던 아벨이었다. 소설에서는 이런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기에 말이다. 확실히 모든 게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벨부터가 성격이 변했지.’
소설에서는 그저 착하기만 한 바보 같은 느낌이라면 지금의 아벨은 영악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니 다른 캐릭터들도 바뀔 수밖에.’
아무튼.
소설의 큰 틀만 바뀌지 않는다면 뭐 다 괜찮다.
이제 적응 다 했다.
“에디린 님. 이제 가시죠.”
“흥―! 어서 거기서 나오기나 해!”
이제는 정말 아르시아를 떨어트린다. 아르시아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좋았지만 어쩌겠는가. 화를 면하려면 가야지.
“그럼 잘 지내고 있거라.”
울먹이는 아르시아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미카엘 백작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
“아르시아를 부탁하겠습니다.”
여전히 변한 딸아이의 모습에 적응을 못 하며.
“네? 아…… 네…….”
그 모습에 피식― 실소를 흘리며 에디린과 함께 돌아가던 아벨이었다.
* * *
잠시 어두운 밤을 통해 케이를 만나러 왔었다.
“케이.”
케이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는데, 순간이동으로 나타난 아벨을 보고 놀라기는커녕 달려와 안긴다.
“저하!”
보는 사람이 없다 보니 점점 과감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아벨도 현재 에디린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케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다정하게 묻는다.
“잘 지냈느냐?”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매우 길어 보인다.
아벨의 다정한 말에 대단히 감격해 하며 아벨을 올려다본다.
“네! 일이 있긴 있었지만 주신 아그네스께서 도와주셔서요! 그래서 아주 잘 지냈어요!”
거짓말이었겠지만, 뭐 결국에는 그 일이 잘 해결됐으니까 그 후로는 아주 편하게 잘 지내긴 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도 형님이 너를 괴롭힌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 많이 했었다. 그래서 도우러 가려고 했는데, 그전에 주신 아그네스께서 해결해주셨으니.”
나중에 다른 애들이 말하겠지만 지금은 굳이 말 안 하기로 한다.
“그러니까요! 정말 신기하다니까요?!”
“주신 아그네스께서 널 예쁘게 봐주시나 보다.”
“그런가요?!”
“당연하지.”
그러면서 케이를 품에서 놓아준다.
“일단 소파에 앉을까?”
“좋아요!”
예쁘게 미소 짓는 케이를 데리고 함께 소파에 앉는다.
소파에 앉자마자 케이가 말한다.
“맞다! 들어보니 사나와 아르시아가 마멸단에 입단했다면서요!”
“그래. 두 사람이 들어왔지. 하지만 지금은 황제 폐하의 명 때문에 아르시아는 가문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그럼 사나는요?!”
“사나는 같이 있다.”
아벨의 대답에 케이는 매우 조심스러워 하는데.
“진짜 저하 때문에 쫓겨난 거예요……? 미스라임에서……? 설마……? 아니죠……?”
그 조심스러운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하핫― 나도 사실 처음엔 너처럼 생각했단다.”
그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다 듣고 나서야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그리고 정말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후우― 난 또.”
다시 한 번 케이의 사랑스러운,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한다.
“그래. 너무 걱정 말아라. 그리고 내 걱정도 말고.”
케이가 분명 자신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에디린 님은 전에도 말했지만 정말 강하시다. 그러니 너도 우선 나를 도울 생각 말고 가문에서 확실한 힘을 키우거라.”
같이 못 가는 것에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이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걸 받아라.”
케이에게 구뇌전마검의 검술서를 준다.
“이건?”
그것이 그 화제의 뇌전마검 검술서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
두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 아벨을 바라본다.
“너희 가문만이 형님 때문에 못 보지 않았더냐. 이걸 죠슈아에게 주어라. 그리고 죠슈아에게 당분간은 혼자만 보라고 해라. 가문의 다른 이에게는 보여주지 말고.”
똑똑한 죠슈아라면 이 구뇌전마검의 검술서가 현재 마멸단원을 모으는 핵심이라는 걸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출된다면 얼마나 큰 피해를 미치는지까지도 말이다.
“아…….”
“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다.”
“벌써요……?”
온 지 정말 얼마 안 됐던 것이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미안하구나. 다음에 만날 때는 오래 함께 하자꾸나.”
와락―
순간 다시 아벨의 품에 안겨서 말한다.
“죄송해요…… 저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이해한다.
아주 잘…….
그래서 걱정이 많았다.
품속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아벨도 꽉 끌어안으며, 훗날 모두 다 함께 이전 세계로 꼭 돌아갈 수 있기를 주신 아그네스께 기도하는 아벨이다.
* * *
드디어 얀 국왕이 말했었던 한 달이 지나갔었다.
현재 폰투스 마멸단 본진 건물에는 아벨과 에디린, 마고스, 쥬디스, 사나, 마지막으로 조니 자작 이렇게 여섯 명만이 남아있었다.
그동안 아벨은 이들과 함께 폰투스에 남아 전열을 가다듬으며 확실한 계책을 세웠었다.
이제는 그것들이 언제 온다 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아니. 막아내는 걸 넘어서 계책대로 그들을 충분히 속일 수 있었다.
“오늘이군요.”
에디린이 그 말에 못마땅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약한 척하는 것도 어렵겠구만.”
사나가 에디린을 달랜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지만 그들이 방심할 테고,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힘을 키울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뭐 그렇긴 하지. 그래. 어쩔 수 없긴 하지.”
반면 조니 자작은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대륙을 파괴하려는 적들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솟아 몸을 떨었다.
“그 빌어먹을 것들이 감히 이 대륙을 유린하려 하다니.”
마고스도 그 분노에 동참했다.
“당장에 모두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때 조금 엉뚱한 쥬디스는 두 사람의 분노와는 다른 의미로 몸을 떤다.
“내 생에 드래곤과 붙게 될 줄이야…….”
아마도 흥분 때문일 것이다.
무인으로써 순수한 흥분.
그리고 그 흥분은 쥬디스만 느끼고 있는 게 아니었다.
분노에 휩싸여 있었던 조니 자작도, 마고스도 사실 같은 흥분에 함께 휩싸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