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117화. 잠깐, 너무 급해(2)
“……?!”
“자작께서 저와 함께 해주신다면 정말 든든할 것입니다.”
덥석―!
아벨의 손을 잡았다.
“이 늙은이도 저하께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물론입니다. 자작만큼 최정상의 검사가 대륙에 어디 있다고 말입니까. 그리고 지금도 창창하시고 말입니다. 함께 싸워본 제가 장담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 늙은이를 믿어 주셔서!”
“그럼 맹세의 마법을 바로 하시죠. 예외는 없어야 하니. 아 그리고 제가 알려드린 뇌전마검은 그 누구에게도 전해주셔선 안 됩니다. 마멸단에 입단하지도 않았는데 뇌전마검을 알아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바로 마법 양피지를 꺼내 맹세의 마법을 준비한다.
서로의 피로 서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맹세의 문장을 쓴다.
수아아아―
기분 나쁜 빛에 휩싸인 후 모든 게 끝이 나자, 아벨은 조니 자작과 악수를 한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보여드리죠. 원래는 그 자리에서만 보게 할 생각이었으나 특별히 자작께는 한 달간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아공간 주머니에서 미리 써놓은 구뇌전마검 검술서를 꺼내준다.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전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전하려고 했다간 맹세의 마법이 발동할 것입니다. 부디 명심하시길.”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리고 제가 당분간은 어딜 좀 다녀와야 합니다. 그동안 제가 소개해드릴 두 분과 함께 마멸단의 기본 체계를 좀 잡아 주셨으면 합니다.”
* * *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마고스와 쥬디스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저하.”
“오랜만입니다. 저하.”
“정말 오랜만이군요. 스승님. 그리고 쥬디스 교수님.”
두 사람과 악수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저하의 활약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모두가 저하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답니다.”
민망해하며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아직 많이 멀었습니다. 지금도 마족들이 활개를 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맞습니다. 정말 심각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신들이 왜 관망하고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벨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제가 준비하는 게 있습니다.”
“……?”
“무엇을 말입니까?”
두 사람 다 매우 궁금하다는 얼굴이다.
아벨은 덤덤한 얼굴로 조니 자작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다.
“마족 멸살 단체, 마멸단魔滅團을 만들 것입니다. 이 폰투스 땅에서 말입니다.”
“……!”
물음표에서 느낌표가 되는 얼굴이다.
“이미 이곳의 수장인 조니 자작이 기본 체계를 잡아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스승님과 교수님께서도 조니 자작을 도와 함께 그 기본 체계를 잡아 주셨으면 합니다.”
두 사람은 아벨의 계획이 확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에 순순히 받아들인다.
“네. 알겠습니다.”
“이거이거 그럼 루드스를 그만두고 와야겠군요.”
“감사합니다. 두 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원들을 모으실 겁니까? 그 강력한 마족들을 없애려면 그만큼 강한 무인들이 모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재를 모으기 위해, 마멸단에 입단하여 함께 하는 조건으로 뇌전마검과 드래곤의 마법들을 줄 생각입니다.”
쾅―!
“……?!”
조니 자작과 그 반응이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
“뇌전마검과 드래곤의 마법들을 말씀이십니까?!”
“네. 하지만 그건 일단 제가 어디 좀 다녀온 뒤에 본격적으로 줄 생각입니다. 그 전에 스승님께 먼저 뇌전마검을 알려드리지요. 그리고 교수님께도 새로 알게 된 마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두 사람도 기대로 두 눈이 반짝였다.
후우…….
그런데 별안간 마고스가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저는 제 월광참검도 완성을 못 시켰는데, 어찌 뇌전마검을 익히겠습니까. ……그나저나 저하께서는 월광참검을 수련하고 계십니까?”
그의 소원이 월광참검의 끝을 보는 게 아니었던가.
아벨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 10성에 올라 있습니다. 12성도 곧일 것입니다.”
이번에도 깜짝 놀란다.
“월광참검이 벌써 10성이십니까?!”
그는 현재 11성에서 멈춰있었다.
“네. 제 새로운 스승님께서 도움을 주셔서 말입니다. 덕분에 모든 검술을 매우 빠르게 익힐 수 있었습니다.”
“아…… 카인 폐하의 스승이셨던?”
“맞습니다. 에디린 님이십니다. 제가 그분의 도움으로 12성 완성을 시킨다면, 스승님께서도 12성에 도달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마고스는 아벨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쥬디스 교수님께는 제가 스승님께 배운 새로운 마법서를 드리는 거로 하고 지금 조니 자작을 같이 보러 가시죠. 저는 곧 떠나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벨을 따라 일어서는 두 사람이었다.
* * *
세 사람에게 기본 체계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뒤 아벨과 에디린은 백룡갑옷 투디오스보다 성스러운 자의 반지를 먼저 찾기로 했다.
사실 임명식을 치렀기에 성스러운 자의 반지 같은 경우는 단 몇 시간이면 얻을 수 있었다. 투디오스 같은 경우는 꽤나 걸릴 듯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반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오∼ 그래?”
“정말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아무튼 일단 알려드리겠습니다.”
에디린도 아벨을 전적으로 믿어서 그런지 어떻게 알게 됐는지 굳이 꼬치꼬치 묻지 않는다.
“좋아. 알려줘.”
‘다행이야. 더는 묻지 않아서.’
솔직히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곤란했었다.
소설에서 마치 용사가 운명에 이끌리듯, 죽기 직전의 절체절명의 위기 때 마치 무협 소설에서 주인공이 기연을 얻듯이 정말 우연히 얻었던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작가가, 주신 아그네스가 지 꼴릴 때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니 설명이 어려울 수밖에.
“아시다시피 파니츠를 제외한 용사의 무구들은 임명식을 마친 용사가 아니면 그 진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용사가 끼지 않는 이상 그저 그런 반지라는 것이죠.”
“으음― 그래서?”
“지금 그 반지는 아덴의 어느 남작가의 가보가 되어 대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남작가로 가서 그들에게서 받아오면 될 것입니다.”
“쉽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그들도 마족에 의해 죽기 직전이었음에도 워낙 완강하게 거부하여 조금 힘들게 받기는 했었다.
그래서 생각해둔 방법이 있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서 보여준다.
“오―!”
드래곤이라고 하지만 여성형이어서 그런지 보석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핑크 스타라고 불린답니다. 어마마마께 특별히 부탁해 구할 수 있었습니다.”
59.60캐럿의 핑크 다이아몬드가 박힌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운 반지였다. 아티팩트가 아닌 순수하게 귀금속으로만 따졌을 때 1, 2위를 다투는 나름 아주 귀한 반지였다.
소설에서는 아벨이 아무 준비 없이, 저 마족을 죽이려면 그 반지가 필요하다고 그냥 대뜸 달라고만 요구해서 힘들었던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이 반지라면 분명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거 그냥 내가 갖고 내가 구해주면 안 될까?”
씨익―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너무 생각대로 흘러가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그 핑크빛 다이아 반지를 에디린에게 넘긴다.
“좋습니다. 혹시 남작가 저택의 전부를 마법으로 재울 수 있겠습니까?”
매우 기뻐하며 소리친다.
“당연하지!”
그럴 줄 알았다.
“좋습니다. 지금 당장 출발하시죠.”
“좋아. 알겠어. 그럼 어디로 이동할지 말해.”
“아덴의 아빌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답 대신 손으로 원을 그리는데 새파란 포탈이 형성된다. 그리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간다.
포탈에서 나오자 아덴의 대도시 아빌라가 보이는 근처 숲속이었다.
“여기 근처입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지도로 대충 위치를 파악해두었다. 아빌라에서 남서쪽으로 2시간 정도만 날아가면 될 듯했다.
몸을 뛰어 날아가자 에디린이 뒤따라 날아온다.
“넌 정말 나 아니었으면 어떡하려고 그랬니. 진짜 넌 나 아니면 안 돼.”
솔직히 매우 편리한 건 사실이었다.
이동 워프 없이 언제, 어디서나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마족들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그녀와 함께 돌면서 하나하나 차근히 죽여도 됐었다.
“맞습니다. 전 에디린 님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말에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그럼 그럼. 그러니 알아서 잘 하라구.”
하지만 생색내는 건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
맨날 그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넌 나 없으면 안 되니 알아서 잘하라고.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예쁜 반지도 얻었겠다! 기분이다! 내가 오늘 너에게 선물 하나를 줄게!”
그 말을 듣자 좋기는커녕 오히려 불안했다.
“……무슨 선물 말씀이십니까?”
“기대하라구! 이따 밤에 줄 거니까! 후훗―!”
그러면서 그 커다란 눈을 찡그리는데.
소름이 무슨 발진처럼 온몸에 퍼져나간다.
* * *
아덴의 다부르 남작가.
임명식을 치른 진정한 용사가 아니라면 보잘것없어 보이던 반지가 그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가보가 된 이유는, 약 200년 전 마물들에게서 자신들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 진정한 주인이 오기 전까진 잘 간수하라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 때문에 그 반지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반지가 보잘것없어 보이긴 했으나 알게 모르게 성스러움으로 소유자의 피곤을 없애주어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예전 은인의 말은 깡그리 잊은 채, 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 되어 웬만한 게 아니라면 결코 내어주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냥 몰래 빼 오는 게 가장 나아. 어차피 주인은 나니까.’
그리고 모든 용사의 무구들은 허락된 용사가 제때에 가까이 가면 격렬하게 반응을 보였었다.
에디린이 사람의 접근을 차단해만 준다면 반지를 찾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
저택의 중앙에서 마법을 시전 하는데.
수아아아아―
엄청난 빛의 오로라가 순간 하늘에서 커튼처럼 다부르 남작가의 저택을 둘러쌓다. 그 오로라가 사라질 때쯤에 에디린이 말한다.
“어서 갔다 와. 나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을 테니.”
“네. 다녀오겠습니다.”
대답 후 바로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저택 안은 모두가 잠들어서 그런지 매우 고요했다.
신속하게 성스러운 자의 반지를 찾는다.
우우우우웅―!
오래지 않아 반응을 보이는 것을 감지하고 그곳으로 날아간다. 어느 중년 남자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검지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는 그 반지를 빼낸다.
반지와 접촉하자 별안간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온다.
화아아아아―!
절대방패 파니츠 때에는 임명을 받지 않아 시험을 받아야 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임명을 이미 받았기에 딱히 다른 시험이 필요 없었다.
곧장 반지를 손가락에 꼈다. 청량하면서도 거룩한, 성스러운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그러면서 엄청난 마력 상승과 동시에 변화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마력 특성이 몸 안에 축적된 것이다.
그런 후 오러 하트를 자극시켜 오러로 검을 만든다.
우우웅―
솨아아아―
아직은 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분명 빛의 특성이었다.
‘희망이 있군…….’
확실히 마멸광검에 희망이 보였다.
‘정 만들기 힘들면 뇌전마검에 빛의 속성만 덧씌워도 될지도. 아무튼 그건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감격에서 벗어나 아공간 주머니에서 은 한 덩어리를 꺼낸 후 성스러운 자의 반지와 똑같이 마법으로 만든다.
사사사삭―
매우 수수한 모습이라, 바람의 칼날이 순식간에 은을 깎아 만든다. 그리고 그 반지를 여전히 엎드려 자고 있던 중년 남자의 검지에 끼워줬다.
수악―
순간이동으로 에디린이 있는 곳으로 갔다.
“왔어?”
“네. 덕분에 무사히 끝났습니다.”
“좋아. 돌아가자.”
“가시죠.”
수아아아아―
포탈을 만들고는 아벨의 팔짱을 낀다.
“그럼 우리 애기 선물 주러 한번 가볼까?”
그러면서 한쪽 눈을 찡그리는데, 이번에도 소름이 발진처럼 온몸을 뒤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