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116화. 잠깐, 너무 급해(1)
타르타로스 대지, 주르나 산맥, 엔트로 산맥.
시작은 정확히 파우스 황제가 마왕 베리알에게 아벨을 공격한 대가로 넘긴 제국의 땅들이었다.
그곳들에 마족들과 마물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제국의 영웅이자, 정의의 신의 화신인 아벨을 내놓으라면서.
“꺄아아아아악―!”
“한 명도 빠짐없이 잡아들여라! 그리고 아벨이 오지 않으면 한 명씩 죽이라고 한 명씩!”
혼돈의 대지라 불리는 타르타로스에는 전선을 지키는 최소한의 군대만 있었지 거주하는 사람들은 없었었다.
하지만 주르나 산맥과 엔트로 산맥은 광산을 중심으로 꽤나 큰 도시가 형성된 곳이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마족들과 마물들에 의해 도시 중앙으로 잡혀 오고 있었다.
“아벨을 탓하거라! 그리고 아벨을 저주하고 원망하란 말이야! 그 대단한 정의의 신에게 내놓으라고 소리쳐 울부짖어!”
마족들의 원대로 인간들은 아벨은 원망하고 저주하고 울부짖는다.
“왜! 왜 우리한테 그러는 거야?!”
“아벨 잘못을 왜 우리한테 갚는 거냐고!”
“제기랄! 아벨! 네놈 때문이야! 네놈 때문이라고!”
“죽어! 아벨! 너의 삶이 항상 불행하길 저주하겠어!”
아벨이 제국의 영웅인 것은 어디까지나 폰투스에서의 활약 때문이었기에, 아벨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했던 그들은 쉽게 아벨을 저주하고 원망하고 탓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폰투스를 제외한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도 혹여나 자신들에게도 아벨 때문에 마족이 들이닥칠까 봐 불안에 휩싸인다.
현재 그 계획에 없던 마족들의 돌발적인 사건 때문에 제국에서만 난리가 난 게 아니었었다. 그 이유로 10인회가 급하게 소집됐다.
미스라임의 얀 국왕은 10인회 중 그 누구보다 큰 분노를 표출했다.
“아니! 이번 계획은 이미 모두 끝났던 게 아니었소?! 왜 또 그러시는 것이오?!”
아덴의 마테오 국왕과 바일의 메히르 국왕, 코렌트의 세런 국왕도 한 마디씩 거든다.
“맞소. 그것 때문에 백성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소.”
“귀족들의 불만도 마찬가지요. 가까스로 신들의 은혜로 막아냈다고 세뇌했는데, 이렇게 계속 진행된다면 은혜는커녕 원망만 늘어날 것이오.”
“뭐든 적당히 좀. 신들께서 시키는 대로만 하시오. 제멋대로 하다가 혼이나 나지 말고.”
그리고 최고 대신관들까지 거들었다.
“맞습니다. 신들께서 가만히 지켜보시지 않을 것입니다.”
“제 의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서 빨리 지금의 행패를 멈춰야 합니다.”
“신들의 명이 없었는데,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 당장 그만두세요.”
이 계획에 없던 회의를 열게 만든 마왕 베리알은 가만히 인간들의 투정 섞인 말들을 듣고만 있었다.
한참을 듣다가 인간들이 지쳐갈 때쯤에 입을 연다.
“다 지껄였나?”
쾅―!
“뭐라고?!”
왕들과 최고 대신관들이 내뿜는 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버러지들은 닥치고, 로드. 당신이 말해보시오.”
그의 말에 긴 금발의 대단히 아름다운 남자가 입을 연다.
“그전에 왜 계획에 없는 일을 벌였는지 설명해야 하지 않소?”
마왕은 자신이 로드라 부른 그에게만큼은 다른 이들에게 대하는 것과는 달리 매우 정중했다.
“당신이라면 내가 왜 그 인간을 공격하는지 잘 알 텐데. 신들과 가장 가까운 사이인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했음에도 금발의 미남자는 그를 쳐다만 본 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피식―
입꼬리를 올리고는.
“좋소. 말해드리지. 내가 왜 계획에도 없는 일을 벌이냐면, 그 인간이 내 생각엔 주신 아그네스의 용사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절대 타티스의 화신체일 리는 없으니.”
정의의 신의 최고 대신관이 끼어든다.
“우리 아이의 말에 의하면 황자야말로 정의의 신의 화신체가 확실하다고 전해왔소.”
아벨이 로디아에게 자신이 정의의 신의 화신 같다고 보고하라고 시킨 것이었다.
그러니 최고 대신관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베리알은 피식―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비웃는다.
“신탁조차 받지 못하는 X신 같은 놈이 어딜 끼어드나?”
“……?!”
“네놈은 타티스에게 버림받지 않았는지 걱정이나 해라.”
사실이었기에 아무 반박도 못 하고 그저 침음성을 흘렸다.
“크으으윽……!”
그때 바일의 메히르 국왕이 묻는다.
“그런데 어째서 정의의 신의 화신체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것이오?”
여전히 비웃음을 머금은 채 그의 물음에 답해준다.
“화신체라면 정의의 신이 그렇게 제멋대로 살게 방치해 둘까? 지금 아벨이 하는 짓이 정의의 신이 원하는 행동이냐 말이다.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그 일이.”
“……?”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그 밑의 수하라는 새끼들이 기를 쓰고 죽이려 들었는데도, 그런데도 타티스는 가만히 있었단 말이지. 그냥 지켜만 보았다고. 이상하지 않나? 황제, 내 말이 틀렸나?”
그의 물음에 일제히 시선이 파우스 황제에게로 갔다.
파우스 황제는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대단히 얼굴을 찡그린다.
“……마왕의 말이 맞소. 아벨은 결코 정의의 신의 화신체가 아닐 것이오. 그 빌어먹을 엄청난 재능과 능력으로 봤을 때 오히려 용사에 가깝다 보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말이야.”
망설임 없이 말한다.
“죽여야 하오. 반드시.”
짝짝―
“대단하지 않나? 신들을 위해 자기 아들마저 저버리는 저 충성심.”
다들 그 모습을 속으로 비웃었다.
그가 왜 아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지 아주 잘 알기에.
얀 국왕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입을 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용사라는 게 확실치 않지 않소.”
“훗― 딸의 남편이라고 편드는 건가?”
“그게 아니잖소. 확실히 하자는 것이지.”
“그 인간의 아비마저 맞는다고 하지 않나? 그리고 지금 너 혼자 억지를 부리고 있단 말이지.”
그렇게 마왕에게 비꼼 섞인 핀잔을 들음에도, 얀 국왕은 아까의 발언을 토대 삼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정의의 신의 최고 대신관에게 묻는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시오. 솔직히 말해보시오. 신관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들었을 것 아니오.”
솔직한 자기 생각을 말하면 회의가 끝난 후 분명 황제에게 추궁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무능력한 최고 대신관으로 낙인 찍혔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저는 황자가 역시 정의의 신의 화신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정말 다행이라는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다행이라는 기쁨은 오래지 않았다.
“다만…… 다만 황자가 용사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그가 용사가 아니라면 화신체라는 것에 확신합니다.”
마왕 베리알은 그 말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책임지겠소. 만약 용사가 아님에도 화신체가 아니면 여러분의 처분에 따르겠소.”
“좋아. 머리 잘 썼어. 그리고 한 번 봐주지. 목숨을 걸고 말했으니 말이야. 아무튼 일단 나는 그가 용사라고 확신한다는 점이야. 로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소. 나 역시 그가 정의의 신의 화신체라기보다는 용사라고 생각하오.”
“그렇다면 그가 진정 용사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야겠지?”
“……?”
모두 어떻게 확인한다는 것인지 의문 섞인 눈으로 바라본다.
* * *
10인회에서의 회의가 있었음에도 마족들의 테러는 멈추지 않았다.
물론 변화가 조금 있었는데, 전처럼 인질로 삼지도 않았었고 그리고 제국의 그 세 곳에서만 테러가 자행되지도 않았었다.
이제는 대륙 전역으로 그 공격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전처럼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간간이 아벨 때문이라는 소문을 흘렸다.
‘어떻게 신들이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거지?’
아벨은 도대체 지금의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1차 마족 침공으로부터 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을 것이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인간들이 신들을 찾고 따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은혜를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다니.
신들이 눈감아 주지 않는 이상, 그것보다 더 재밌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벨은 좀 더 빨리 폰투스에서 마멸단을 창설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벨은 이번 마족들의 테러 덕분에 원망을 받기도 했었지만, 폰투스에서만큼은 아니었다. 여전히 이곳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최후방에 혼자 남아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겪었기에 절대 아벨을 욕할 수 없는 그들이었다.
‘오히려 도와주는군.’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마족들을 다시 풀어놓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상황 덕분에 세상의 강자들은 모두 마멸단으로 모일 것이다.
‘다시 맹세의 마법을 써야겠어.’
소설에서의 멍청한 아벨처럼 배신당할 생각 전혀 없었다. 물론 아벨도 그들이 맹세의 마법을 쉽게 마음먹을 수 있게 무언가를 내놓을 것이었다.
‘빨리 모으려면 역시 뇌전마검과 흑풍흡검을 내놓아야겠지.’
당연히 신뇌전마검과 새로운 흑풍흡검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에디린 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누워서 책을 보고 있던 에디린이 묻는다.
“응? 뭔데?”
“전에 말씀드렸던 마족 멸살 단체를 만들고자 합니다.”
“오 그래?”
“네. 그래서 말인데 에디린 님의 구뇌전마검을 세상에 뿌릴까 합니다.”
흑풍흡검은 비트칸의 허락을 받지 못했기에 현재로썬 불가능했다.
“뭐?”
“솔직히 알려줘도 제대로 익힐 자가 없다는 건 에디린 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걱정 마시지요.”
“뭐 그렇긴 한데. 그런데 왜?”
“제가 만들 단체에 강자들을 빠르게 집결시키기 위함입니다. 최대한 빨리 말입니다.”
“으흠―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근데 예전에 카인도 그런 방법을 썼다가 오히려 욕만 먹은 거 알지? 거짓말을 했다며 말야.”
씨익― 웃으면서.
“그래서 맹세의 마법을 할 생각입니다.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그리고 그들은 제게 해를 끼치지 않기로 말입니다.”
“아이고 우리 애기 맹세의 마법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용사는 필연적으로 적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하긴 그렇긴 하지. 그럼 언제부터 시작하게.”
“지금 당장 시작할까 합니다.”
“잠깐.”
“……?”
“잠깐 너무 급해. 일단 몇몇만 구뇌전마검으로 꼬셔놓고, 그 녀석들로 체계를 구축해 놓으라고 해. 그리고 넌 우선 나와 함께 용사의 무구를 모아. 유게네스 말고는 다른 것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안다.
소설의 내용을 알고 있는 나만이.
그녀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기에 따르기로 한다.
씨익―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 *
탕―!
주체하지 못하고 테이블을 내리친 조니 자작이었다.
두 눈을 찢어지라 부릅뜬 채 아벨을 멍하니 바라본다.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저와 맹세의 마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성명절기를 주었는데 절 배신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익히기 힘들 테니.”
“그건 무슨?!”
“자작께서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건국황제이신 카인 폐하께서 뇌전마검의 후계자를 찾기 위해 누구나 받아주었지만, 너무 난해한 결과 아무도 익히지 못했었고 그 덕분에 오히려 거짓말을 했다며 비난만 받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
“자작께서도 원하시면 보여드리겠지만 아마 자작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거짓말을 했다고 따지면 어쩌실 겁니까?”
“그래서 맹세의 문장에 제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도 넣을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벨의 말에 조니 자작은 탐욕의 눈빛을 보인다.
그도 11성 초반의 대단한 무인이었으니 당연히 탐이 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고.
아벨은 그의 욕심을 꿰뚫고선 말을 한다.
“자작.”
“……?”
“가장 먼저 마멸단에 입단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