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112화. 그냥은 안 되지(1)
죽은 마물들의 시체 위로 뒤에서 대기하던 다른 마물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와 다시금 우글거렸는데, 아벨은 계속해서 발록들만 공격해 그것들의 몸부림으로 마물들이 죽게 했다.
부웅―! 부웅―!
꾸에에에에엑―!
확실히 매우 효과가 있었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었다.
그래서 아벨은 발록에서 끝내지 않고 최상급 거대 마물들을 계속해서 노렸다.
발록 다음은 코카트리스였다. 날개들을 베며 날 수 없을 정도로만, 이것들도 고통에 몸부림쳐 다른 마물들을 죽일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라이칸스로프와 같은 지능이 있는 것들은 그러한 수법이 통하지 않아 그냥 베어 죽였다.
휘익―
촤아아아악―!
“크아아악―! 어디서 이런 인간이!”
“빌어먹을! 도대체 살레오스 님은 어디가신거야?!”
“마르코시아스 님도!”
“오로바스 님도! 설마 우릴 버리신 건가?!”
“아니 대운석 마법으로 성벽을 부수고 오겠다면서!”
“커컥―! 그냥 닥치고 저거나 막아! 크아아아악―!”
그것들의 꽁트 아닌 꽁트를 보니 예전 절대방패 파니츠를 얻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저 늑대 머리 새끼들은 이상한 헛소리들을 해대며 꽁트를 찍지 않았던가?
“훗― 늑대 새끼들은 원래 다 이렇게 귀여운 건가?”
아벨의 말에 조금 모자라 보이는 늑대 머리 새끼들이 발끈했다.
“뭐, 뭐?! 이 인간 새끼가!”
“우리가 귀여워?! 네놈이 더 귀엽다!”
“얼굴은 못 봤지만!”
“응? 나한텐 하나도 안 귀여운데?”
“맞아. 귀엽기는커녕 끔찍하기만 한데?”
“음― 그런가?”
아벨은 피식― 웃으며 날아가 신뇌전마검의 비기를 쓴다.
신뇌전마검新雷電魔劍
제 3 식
화전花電
콰콰콰콰콰콰콰―!
아우우우우우우―!
“이건 또 뭐야?!”
“크아아아아아악―!”
3식으로 혼란을 준 뒤 순간이동으로 하나하나 찾아가 머리를 반으로 쪼갠다.
빠직―!
그때였다.
팟―! 하고 눈앞에 반투명한 그토록 기다렸던 그 창이 나타났다.
[신뇌전마검 11 성 - 1%]
“……?!”
라이칸스로프들의 뚝배기들을 깨다 보니 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변화를 에디린이 캐치하며 자화자찬한다.
“오호― 것 봐. 내 말이 맞잖아? 역시 나의 선견지명은 대단해. 난 아주 훌륭한 스승이야.”
아벨은 너무 지쳤기에 그냥 무시했다.
못 들은 척을 하고 다른 것들을 공격하니.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순식간에 반경 1km 정도에 있던 마물들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있다.
상상도 못 할 미증유의 힘이었다.
“……?!”
아벨은 경악하며 이 힘의 주인을 바라보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눈앞에 검은 머리의 고귀한 남자아이가 굉장히 화난 얼굴로 서 있었다.
“좋은 스승은 개뿔! 내가 가르쳤다면 아벨은 벌써 12성 검사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법도 10 서클이었을 것이고!”
그 분한 모습에 에디린은 풋― 하고 입을 막으며 비웃는다.
“아∼ 네에∼ 그러셨어요∼? 그거 참 대단하시네요∼”
에디린의 빈정대는 태도에 그 고귀한 소년은 부들부들 대는데.
“이게 정말! 내가 네까짓 것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 고생하셨져요∼? 우쭈쭈쭈∼”
“이이이이이이―!”
“근데 당신이 무능해서 고생한 걸 왜 내 탓으로 돌린담?”
“네가 아벨을 데리고 숨었었잖아?! 내가 아벨을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왜 당신이 아벨을 찾냐고. 내 건데.”
“뭐라고?! 왜 아벨이 네 거야?!”
“내 제자니까 내 것이지.”
구오오오오오오―!
비트칸의 주위로 진득한 어둠이 내려앉는데 그것에 다시 밀려들어 온 마물들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 갔다.
아벨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소리친다.
“아벨! 네가 대답해라! 나인지 저 빌어먹을 발랑 까진 것인지! 너만 원한다면 내가 당장 저 것에게서 벗어나게 해주겠다!”
솔직히 솔깃했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에디린이 조금 지랄 맞긴 했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정이 든 것과 고마운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비트칸 님. 제가 에디린 님께 받은 게 많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저는 에디린 님께 감사하고 있답니다.”
그 의외에 말에 깜짝 놀라 방방 뛴다.
“뭐?! 너 설마 세뇌까지 당한 거냐?!”
에디린은 아벨의 말에 감동받으면서도 비트칸의 말에는 냉소적으로 받아친다.
“세뇌는 무슨. 늙은 용이 드디어 미쳤네.”
마물들이 여전히 망망대해와 같이 밀려들어 오는 이런 상황에서도 유치하게 말다툼하는 두 드래곤을 보며 아벨은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런 게 아닙니다. 아무튼. 전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비트칸 님에게 흑풍흡검을 반드시 꼭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참에 우리 모두 함께하도록 하시죠. 우리 셋 모두 함께 말입니다.”
그러자 에디린이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빽― 하고 소리친다.
“안 돼! 절대! 절대 안 돼!”
비트칸도 마찬가지였다.
“맞다! 그건 안 된다! 절대로 말이다!”
아벨만 덤덤하게 말을 한다.
“저도 역시 안 되겠습니다. 이번만큼은 두 분 다 저를 위해 양보해 주시지요.”
“안 돼! 싫어!”
에디린이 땡깡을 부리자 아벨이 강하게 나간다.
“우리의 맹세는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일 텐데요. 비트칸 님이 함께하지 않는 게 바로 저에게 해를 끼치는 겁니다. 에디린 님.”
비트칸은 아벨이 맹세에 대해 언급하자, 발작을 일으키듯 소스라치게 놀라 했다.
“뭐어?! 맹세?! 설마 너희들 맹세의 마법을 했느냐?!”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습니다. 비트칸 님. 그러니 저는 비트칸 님 보다 에디린 님을 항상 우선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디린이 끼어든다.
“비트칸이 우리와 함께 하는 건 나에게 해를 끼치는 거라고!”
계속해서 투정 부리는 그녀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 정도를 따져보면 제가 훨씬 더 클 겁니다. 그러니 안 됩니다. 그리고 비트칸 님.”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였다.
어떻게 드래곤이, 그것도 에이션트 드래곤이, 그 스스로가 철장으로 들어가는 억제기 마법을 그것도 인간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때 아벨이 비트칸의 상념을 깬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정말 진지하게 비트칸 님에게서 흑풍흡검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흑풍흡검의 최종 비기를 멀리서 다가오고 있던 발록에게 순간이동을 하여 쓰는데.
흑풍흡검黑風吸劍
제 6 식
흑풍흡검黑風吸劍
발록의 불꽃 채찍이 용골검에게 마력을 빼앗겨 파삭 빛을 잃음과 동시에 그의 몸이 한 줄기 검은 바람에 산산조각이 난다.
흑풍흡검의 대부분의 비기가 다수의 적을 위한 비기였다면, 최종 비기인 6식 흑풍흡검만큼은 단 하나의 적을 위한 비기라 하겠다.
그 완벽한, 12성 대성한 최종 비기를 본 비트칸은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대단히 탐욕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수악―
순간이동을 써 제 자리로 돌아온 아벨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 대단하구나!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나의 흑풍흡검을 완성하다니! 그래! 당연히! 당연히 나의 제자가 되어야겠어! 하하핫―!”
아벨이 원한 바였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었으니.
“그래도 역시 평등하게 해야 하기에, 저에게 흑풍흡검을 가르치시려면 비트칸 님도 맹세의 마법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아 물론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만 말입니다. 제자가 감히 스승에게 해를 끼쳐선 안 되는 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제자와 스승은 항상 같은 편이어야 하니 말입니다.”
“뭐?!”
“저는 비트칸 님을 대단히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혹여나 존경하는 분께 해를 끼칠까 봐 두렵습니다.”
비트칸은 그 대단했던 흑풍흡검을 보고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드래곤들, 특히 저 자존심 높은 에이션트 드래곤에게는 맹세의 마법은 극독이나 다름없었으니.
하지만 아벨이 펼친 흑풍흡검의 최종 비기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제 진심을 알아주시길.”
그러면서 스멀스멀 다가오던 마물들을 향해 흑풍흡검을 쓰기 시작한다.
흑풍흡검黑風吸劍
제5식
지옥地獄의 호흡呼吸
이번엔 5식이었다.
그 음산한 지옥의 검은 숨결이 마물들에게 흘러들어 가자 단숨에 마물들의 몸이 반으로 잘려 죽어 나갔다.
“……?!”
역시 이번에도 완벽했다.
정말 너무나도 완벽했던 이상적인 흑풍흡검이었다.
심지어 이 검술의 진정한 주인이었던 아서 아이테르너스 보다 더.
‘아니…… 어떻게 고작 3년 만에…….’
사실 아벨이 고작 3년 만에 흑풍흡검을 12성 대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에디린의 도움이 매우 컸었다.
그녀는 흑풍흡검이 신뇌전마검보다 아래라는 걸 아벨이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오히려 흑풍흡검을 익히는 데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로 아벨이 단기간에 12성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이었으니.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비트칸은 아벨이 저 마녀 같은 드래곤 아래서 몰래몰래 익혔음에도 재능으로 12성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제길…… 어쩔 수 없군…….’
대의大義를 위해 결국 자신도 에디린이 있던 그 철장에 들어가기로 마음먹는 비트칸이다.
* * *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대륙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대륙 전체인구의 10분의 3이 죽었으며, 완전히 소멸된 왕국들도 몇 곳 있었다.
그렇게 인류가 이대로 전멸하는 건 아닌가 하던 그때, 제국을 위시하여 아덴과 미스라임, 바일, 코렌트, 그리고 그 나라들을 수호하는 정의의 신 타티스의 신관들과 풍요의 신 키빌리의 신관들, 지혜의 신 에크네의 신관들, 불의 여신 베스타의 신관들, 물의 신 에르사의 신관들이 전세를 역전시켰다.
정확히 10인회 회원들이 속한 집단들이 힘을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10인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마족들이 알아서 도망치며 져주기 시작했다. 이후엔 버림받은 마물들의 학살이 이어졌고.
그 덕분에 에브니아 대륙 전토는 마물들의 피로 강을, 그 시체들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아벨은 창밖으로 멀리 산처럼 쌓인 마물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자신을 믿고 따라온 죠슈아와 지산에게 말한다.
“두 사람 다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젠 정말 끝난 것 같구나.”
죠슈아도, 지산도, 로디아도 정말 고생 많았었다.
모두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물론 아벨은 이들도 지켜야 했기에 더욱 고생했었지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죠슈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닙니다. 저하께서 저희들까지 신경 쓰시느라, 저희보다 훨씬 더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저하를 제대로 돕지 못해 너무나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산도 고개를 푹 숙이며 동의한다.
“맞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가서 수련을 전보다 배는 해야겠습니다.”
그들의 겸손한 모습에 아벨은 잔잔한 미소를 보인다.
“아니다. 너희들은 정말 최선을 다하였다. 나 역시 너희들이 없었으면 정말 위험한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도 아벨의 겸손한 모습에 훈훈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런데 저하, 정말 강해지셨군요. 예전에도 강하셨지만, 지금은 대륙 정점頂點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실히 다른 이들이 보았을 때 아벨은 그 차원이 다른 수준의 강함을 보여주었다.
순간이동 때문에 제국제일검이라던 마고스 백작보다 훨씬 더 강해 보인 것이었다.
역시 에디린에게 매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순간이동을 써서 싸우는 드래곤의 전투 방법을 뼛속까지 제대로 새겨놓은 결과라 하겠다.
“내가 운이 좋아서 좋은 스승을 만난 결과라 하겠다. 아무튼 이제 황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자꾸나. 지산은 로디아에게 말해주고.”
현재 로디아는 신관으로서 부상당한 인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많던 부상자들도 거의 다 치료가 끝나갔기에 로디아도 함께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말에 두 사람 다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저하. 당장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하.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돌아갈 이 날만을 기다렸었다.
사실 아벨이 자신들을 불렀을 때, 내심 ‘돌아가자’는 그 말을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먼저 말을 못 꺼냈을 뿐이었지, 항상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겠다.
그래서 혹시나 아벨이 번복할까 봐, 어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 신속하게 아벨의 방을 나서던 두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