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107화. 역할 분담(1)
“돌아오셨어요?! 언제요?!”
케이도 사나와 그 반응이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방금 통신 마법으로 연락이 왔는데, 이틀 된 듯하더구나”
“몸은?! 몸은 좀 어떠시대요?!”
“다행히도 괜찮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케이야.”
“네?!”
“이번에 네 오빠와 함께 황궁으로 가거라. 가서 저하를 만나 뵙고 당분간은 그곳에서 지내도록 하거라.”
스테판 백작의 생각에 에브니아 대륙 그 어떤 곳보다 세계의 중심인 제국의 황궁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러니 소중한 아들딸이 황궁에서 머무른다면 분명 목숨만큼은 지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아비의 마음을 몰라주던 죠슈아가 놀라 묻는다.
“아버님. 이제 곧 마족들이 마물들을 이끌고 대대적인 침공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대륙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어찌 우리 영지를 내버려두고 혼자 자신의 안위를 위해 피하겠습니까?”
“아슈트반의 땅은 제국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니, 마족들에 의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나설 것도 없다.”
“하지만―”
아들이 제발 그 고집을 꺾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죠슈아. 너는 이 아슈트반의 희망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에 네 목숨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뭐라고 따지고 싶었으나 가문이 3대 검술 명가 중 최약체로 평가받아왔기에, 죠슈아도 아버지 스테판 백작의 염원과 기대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버님. 만약 아벨 저하께서 마물들과 싸우러 나가신다고 하면 그땐 어떡하시겠습니까? 저하께서 황궁에 안 계시는데 제가 그곳에 있는 것도 우습지 않겠습니까?”
“……?”
“제 생각엔 저하께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마물들과 싸우러 직접 이동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아벨이 사라졌다 황궁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스테판 백작의 생각엔 아벨은 이번만큼은 황궁에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그렇게 하신다면 그땐 네가 따라가 옆에서 도와드리거라. 케이는 황궁에 남아 수잔 황비 마마를 위로해 드리고. 하지만 저하께서 나서지 않는다면 넌 절대 나서선 안 된다.”
죠슈아도 그 이상 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아버님.”
“그럼 어서 준비해서 황궁으로 가 보거라.”
조건이 붙긴 붙었지만, 일단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아들과 딸을 대륙 가장 안전한 곳으로 떠미는 데 성공한 스테판 백작이었다.
* * *
황궁도 다프네의 신탁 내용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네가 갈 것이더냐?”
세르지가 걱정되어 묻는다.
그 걱정하는 얼굴에 씨익―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걱정 마시지요. 제가 가는 곳에 에디린 님도 오실 것이니 말입니다.”
“아― 전설의 드래곤?”
“맞습니다. 후후― 그런데 형님. 나중에 에디린 님을 뵀을 때 드래곤이라는 말을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별로 좋아하시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래? 알겠다. 내 명심하도록 하지.”
“아무튼 이번에 제가 형님의 명으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고 하면 형님의 명성과 황제로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지실 겁니다.”
아벨의 팔을 툭툭 치며.
“고맙다. 정말 든든하구나.”
“아닙니다. 형님이 좋아야 저도 좋으니 말입니다.”
“하하― 그래그래. 그래도 무엇보다 네가 안전하다고 하니 다행이구나.”
“문제는 제가 가지 않는 곳입니다. 제가 가는 곳은 에디린 님 덕분에 큰 무리 없이 막아내겠으나 다른 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흠…… 그렇겠지.”
그때였다.
똑똑―
“아벨 저하.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집사의 말에 세르지가 묻는다.
“손님이 오기로 했느냐?”
“아마도 사나 아니면 케이가 왔을 것 같군요. 두 사람이 걱정을 많이 했을 것 같아 연락을 해 주어서 말입니다.”
“그래. 두 사람에게는 연락을 해 주는 게 맞지. 얼마나 널 걱정하던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면서 집사에게 명한다.
“들여보내거라.”
드륵―
문이 열리고 은발의 어엿한 숙녀가 된 사나가 있었다.
이미 벌써부터 두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타다다다―!
와락―!
달려와 아무 말 없이 아벨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흐느껴 울었다.
아벨도 아무 말 않고 자신의 품에서 조용히 떨고 있는 그 몸을 감싸 안아 준다.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안고만 있다.
세르지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지켜보다 조용히 자리를 피해줬다.
그가 나가자 이젠 정말 두 사람만 남게 됐었다.
“…….”
한참을 그렇게 아벨의 품에서 울었다.
한 30분쯤 지나자, 그제야 사나는 가슴이 진정됐는지 입을 연다.
“……많이 걱정했었어요…….”
“알고 있다. 미안하다.”
“……그동안 연락 한 번 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었나요……?”
“연락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칫…… 비겁해…….”
“어쩔 수 없었다.”
사나는 아벨의 품에서 벗어나며 자신이 그토록 기다렸었던 남자의 얼굴을 그 파란 눈동자에 담는다.
“너는 잘 지냈느냐?”
“잘 지냈을 리가 있나요……? 저하를 볼 수 없었는데…….”
그러면서 사나는 진짜 아벨이 맞나 확인하듯 아벨의 얼굴을 자신의 하얀 손으로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어루만진다.
아벨은 그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말을 잇는다.
“그래도 넌 내가 용사라는 걸 알지 않았느냐? 그러니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얼굴과 목소리, 분위기 그 모든 게 아벨이라는 걸 확인했는지 다시 아벨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용사라서 적들도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러니 죽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없었고…….”
“그런가…….”
“네…… 그렇죠…….”
“이젠 걱정 말아라. 충분히 강해져서 돌아왔으니.”
“저하께서 이번 마족 침공을 막을 선봉장에 선다는 말을 오다가 들었어요…… 거짓말이죠……?”
잠시 말을 멈추고 안겨 있던, 불안에 떨고 있던 사나의 등을 쓰다듬는다.
“……아니다. 사실이다.”
그 대답에 사나는 품에서 떨어져 아벨의 눈을, 어떻게 자신을 두고 또 떠날 수 있냐는 듯이, 야속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아니. 왜요? 3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잖아요? 돌아오자마자 어떻게 사지로 갈 생각을 하세요?”
하지만 아벨은 덤덤하게, 그리고 조금은 단호하게 말을 한다.
“용사가 해야 할 일이다. 사나. 하지만 정말 걱정 말아라. 내가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도 있지만, 전과는 달리 나에게 정말 든든한 조력자가 생겼으니 말이다.”
“조력자요?”
“그래. 얘기를 들어보니 모두 러네이가 드래곤이었다는 걸 아는 것 같구나. 그 러네이보다 훨씬 강한 분이시다. 그분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정말이죠……?”
“걱정 말아라. 그분이 옆에 계신 이상 결코 내가 다칠 일은 없으니.”
“……그런데 그분이 다친 저하를 데리고 사라지신 분인가요?”
“그래 맞다. 그분이시다. 그분이 내 검술 스승님이시다.”
“드래곤이라고 하던데…… 맞나요?”
“그래. 드래곤이시지. 하지만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걸 매우 싫어하시니, 훗날 만나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러네이 언니처럼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자 모습이라던데…….”
사나는 소설에서는 전혀 티를 안 내서 몰랐었지만, 생각 외로 질투가 조금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여자 취급받는 건 굉장히 또 싫어하신다.”
붉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툴툴거린다.
“뭐. 그건 보면 알겠지만. 그럼 여자 모습의 드래곤과 3년이나 같이 산 거네요? 단둘이서만.”
서운하다는, 조금은 매서운 눈빛의 사나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 일 없었다. 검술만 수련했다.”
“물론 그러시겠죠.”
사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그때.
똑똑―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저하.”
아벨은 짐작하는 얼굴이고 사나는 또 누가 왔나 궁금해 문을 바라본다.
* * *
불청객들이 생각보다 많이 와서 조금 놀라던 아벨이었다. 물론 덕분에 매우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아 반갑기도 했었지만.
‘루드스가 생각나는군.’
예상했었던 케이와 죠슈아뿐만 아니라 아벨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자체적으로 듣고는 지산과 로디아, 카시드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의외의 인물로 아르시아가 찾아왔었고.
‘정말 닮긴 닮았어…….’
완전히 닮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확실히 에디린과 많이 닮긴 닮았다.
‘아니…… 오히려 더 아름다운 것 같기도…….’
아르시아는 이제 곧 18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말 화중화花中花란 이명에 어울리는 꽃 중의 꽃 다운, 그 꽃 중의 꽃이 활짝 핀 것만 같아 눈을 뗄 수 없을 아름다움을 보였던 것이었다.
전에도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비웃을 정도로 훨씬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이제는 정말 그 잠재력이 폭발해 아름다움이 최절정에 도달한 것만 같다.
덕분에 황궁의 모든 남자와 지산, 카시드, 심지어 죠슈아까지 아르시아의 얼굴에서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정말 다행이라면 아벨은 에디린 덕분에 저 뇌쇄적인 외모에 적응은 했기에 거둘 수 있었고.
사나와 케이, 로디아는 남자들이 아르시아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자 혐오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아벨이 함께 동요되지 않자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던 중 지산이 가장 먼저 시선을 아벨에게로 억지로 돌리며 묻는다.
“……그렇다면 수련을 하다 오신 것입니까?”
“그래. 다신 저번처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깨어나고 3년 동안 수련에만 전념했었다. 오로지 수련에만.”
이번엔 죠슈아가 케이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느끼고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전보다 더 강해지셨겠군요.”
그 모습에 피식― 절로 웃음이 났다.
“나름 열심히 수련했으니 강해졌겠다 할 수 있겠지.”
강해졌다는 말에 카시드가 반응했다.
“저하.”
그러면서 카시드는 지산이나 죠슈아와는 달리 아르시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아벨에게 말을 걸었는데, 꼭 소설에서처럼 아르시아에게 첫눈에 반한 것만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저도 진지하게 수련을 했어서 말입니다. 대련 한 번 어떠십니까?”
마치 반한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대련에서 자신이 분명 이길 것이라는 확신도 있는 것 같았고.
이 건방지고 어처구니없는, 얼빠진 아덴의 왕자의 코를 납작하게 짓밟을까도 했지만, 그건 조금 이후의 일.
‘걱정 말아라. 넌 조만간 다신 재기할 수 없도록 만들어 줄 테니.’
조만간 하베츠처럼 한 번 조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족 침공을 코앞으로 앞둔 이 시점에서는 아니었다.
“그건 조금 미루도록 하자꾸나. 나는 당장 오늘 저녁에 폰투스로 넘어갈 생각이니 말이다.”
폰투스는 제국의 서쪽 끝에 위치한 지방으로 세계의 끝과 맞닿아 있는 제국의 몇 안 되는 지역이었다.
“네?!”
다들 방금 왔었기에 놀라면서도 아쉬워했었다.
단 한 명 죠슈아를 제외하고는.
죠슈아의 상기된 얼굴은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아벨을 선망의 대상을 바라보듯 바라보고 있을 때, 아르시아가 그 아름다운 얼굴을 걱정으로 물들이며 묻는다.
“스승님께서 꼭 가셔야 하는 건가요?”
카시드는 ‘굳이 네가 가야 해?’ 하는 얼굴로 말한다.
“맞습니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귀하신 몸이 꼭 그런 위험한 곳으로 가야 하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까?”
죠슈아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아벨이 그런 그들에게 자신이 가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제국이 대륙의 중심부에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폰투스 같은 지역 경우는 마족과 마물들의 서식지인 세계의 끝과 맞닿아 있으니, 제국 역시 위험에 100퍼센트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제국이 위험한데 제국에서 가장 정의의 신께 은혜를 받은 제국의 황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누가 과연 제국을 위해 움직이겠는가? 내가 가야 다른 이들도 움직일 것이다.”
죠슈아가 적극 동의한다.
“저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그러니 저 역시 저하와 함께하여 제국을 지키겠습니다.”
이번엔 오히려 아벨이 놀란다.
“괜찮겠느냐? 스테판 백작이 좋아하지 않을 텐데?”
소설에서 아벨을 돕다 죽은 죠슈아 때문에 절규를 하던 스테판 백작이 떠올랐다.
물론 소설에서도 아들의 고집을 꺾질 못해 전장으로 보내긴 보냈었지만.
죠슈아는 그런 말 말라는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아버님께서도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저도 저하를 돕겠어요.”
사나였다.
그녀는 8 서클의 마법사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아벨은 사나에게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전장이 아닌 황궁에서 다른 역할이 있었으니.